세종이 길이 도량형을 개혁할때 사용시에 표준이 되는 자尺는 물론 주척周尺이었지만 모든 척도의 표준으로서 만든 것은 황종척黃鐘尺이라고 세종대 개량된 표준척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세종은 문란해진 길이 도량형 표준을 세우는데 있어서 음악을 통해 표준척도를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악에 사용된 악기중에서 소簫를 선정합니다.

그림 1. 소簫
세종대의 소簫는 竹管수가 16개로 이루어져 한관에서 한음을 내게 되어 있으며 음이 저음에서 차례로 높아짐에 따라 관(管:竹管, bamboo pipe)이 긴 것에서 차례로 짧아진 배소(排簫)와 좌우 두 끝에서 중앙으로 향하여 차차 짧아진 봉소(鳳簫)중 송대에 많이 쓰여진 봉소鳳簫였습니다.

그림 2. 율관 - 재료는 대나무·구리, 3촌(寸) 9분(分)의 율관을 불면 그 음은 황종(黃鍾)음에 해당하여 황종관(黃鍾管)이라 한다.
그래서, 악기 소簫를 이루는 16개의 죽관竹管의 하나인 제1관(黃鐘, C)의 제작을 박연(朴堧) 등에게 명하여 황종률관黃鐘律管을 만들고 여기서 황종척黃鐘尺을 얻어 이를 도량형 척도의 표준으로 하여 기존의 고구려척을 대신할 영조척營造尺(=32.08cm)을 만들어냅니다.
이 황종률관은 길이뿐만 아니라 부피의 기준도 되는데 황종률관에 들어가는 만큼의 물을 무게의 기준으로 정합니다.
이는 마찬가지로 물 무게를 기준으로 한 프랑스 미터법보다 370년가량 앞선 것입니다.
왜 굳이 악기의 음으로서 도량형 척도를 만들고자 했고 하필이면 소簫를 선택했을까요?
소簫라는 것은 최소한 고구려시대부터 내려온 것으로 동이족인 강족姜族들의 악기이기도 하여 동이계가 함께 공유한 악기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족들이 받아들여 개량등을 하며 자신들의 악기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당시 유교문화의 세례에 흠뻑 젖은 지배층에게도 상당히 명분이 있는 악기이기 때문이라 보입니다.
(4세기경의 안악 제3호분(安岳第三號墳:冬壽墓)의 벽화나 고구려 고분벽화 그리고 근간에 발굴되었던 백제대향로에도 소簫가 등장합니다)
또한, 음으로서 도량형 척도를 삼는 것은 세종대왕이 처음이 아니라 삼국시대 아니 이전부터 동양 아니 동이족의 오래된 문화전통이였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당시에 이미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알려져있던 서적들을 읽었을 터이고 도량형 개혁등 새롭게 문화를 변모시키고자 할때에 이러한 점을 고려해 박씨문중에 깊은 관심을 갖고 박씨문중을 두루 구제하고 종가와 차가를 성균관 옆에 와 살도록 배려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래는, 김은수 역 "부도지"에 신라시대 옥적에 대한 주석으로 달린 글입니다.
길이 단위인 尺이 음악이나 춤등과 고래부터 관계가 깊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길이뿐만 아니라 부피등 다른 종류의 척도들에도 이런 방법이 적용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길이가 한 자 아홉치인데, 그 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세속에서 이르기를, 동해의 용이 바친 것이라고 한다. 대대로 보물로 전하였다. 전설에 고려 태조가 옥척을 구경하려고 사람을 시켜 가져오게 하였다. 조령을 지나오다 이 옥적을 불었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려 태조는 이것이 신물임을 알고 돌려보냈다. 그 후 불에 타서 부서져 지금 공방고에 간진되어 있다." (출처- 앞의 책, <동경잡기> 269~270쪽)
"피리는 도량형으로도 쓰였다. "척도는 황종관 12율의 기본음인 황종을 내는 피리의 길이를 기본으로 삼는다. 기장의 중쯤 되는 낱알을 황종관과 나란히 일렬로 이어서 배열하면 이관의 길이는 기장 알 90톨의 몫에 해당한다. 이 한 톨의 폭이 1 분, 10분이 1촌, 10촌이 1척, 10척이 1장.. 이며, 양은 황종관의 부피를 기본으로 한다. 즉 황종관에 기장 알을 넣으면 1,200톨이 가득 찬다. 이때의 부피를 약으로 하고 그 약을 합, 10합을 승, 10승을 두, 10두를 곡이라 하며...." (출처- 김용운, <한국수학사>, 열화당 : 송 채원정의 <율려신서> )
"금척무(金尺舞)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척(尺)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예가 있다.
성락기(聲樂器)의 수와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은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옛 기록에 이르기를 정명왕 9년에 신촌에 거동하여 잔치를 베풀고 음악(音樂)을 연구하게 하였는데,
가무(笳舞)에는 감(監)이 6인이요. 가척(歌尺)이 2인, 무척(舞尺)이 1인이며, 하행열무(下幸熱舞)에는 감(監)이 4인, 금척(琴尺)이 1인, 무척(舞尺)이 2인, 가척(歌尺)이 3인이며,
사내무(思內舞)에는 감(監)이 3인, 금척(琴尺)이 1인, 무척(舞尺)이 2인, 가척(歌尺)이 2인이며, 한기무(韓岐舞)에는 감(監)이 3인, 금척(琴尺)이 1인 무척(舞尺)이 1인 가척(歌尺)이 3인이며, 소경무(小京舞)에는 감(監)이 3인, 금척(琴尺)이 1인 무척(舞尺)이 3인이며, 미지무(美知舞)에는 감(監)이 4인, 금척(琴尺)이 1인, 무척(舞尺)이 2인이었다.
애장왕 8년에 음악을 연주했을 때 처음으로 사내금(思內琴)을 연주했는데, 무척(舞尺) 4인은 푸른 옷이요. 금척(琴尺) 1인은 붉은 옷, 가척(歌尺) 5인은 채색(彩色) 옷에다 수놓은 부채에 또 금(金)으로 아로새긴 띠를 둘렀으며, 다음에 대금무(碓琴舞)를 연주했을 때에는 무척(舞尺)은 붉은 옷, 금척(琴尺)은 푸른 옷이었다고 하였다. 문헌이 이러할 뿐 그 자세한 것을 말할 수 없다. 신라 때에는 악공(樂工)을 모두 척(尺)이라고 하였다."

그림 3. 사각 유척鍮尺
소 장 :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유물번호 家 1053) 재 료 : 놋쇠
크 기 : 주척 103.50mm(반척), 예기척 137.37mm(반척), 황종척 173.08mm(반척), 포백척 246.27mm(반척), 영조척 154.19mm(반척)
놋쇠[鍮]로 만든 사각기둥 모양의 자의 사면에 주척, 예기척, 황종척, 영조척, 포백척이 음각(陰刻)되어 있다. 이 자에 새겨진 눈금은 매우 균일하며, 영조척과 포백척에 새겨져 있는 설명문은 그 자의 용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매우 뚜렷하고 품위가 있다.
암행어사 가지고 다녀야 했던 중요물품의 하나로 도량형을 가지고 속이는 탐관오리들을 징계하고 적발하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당시. 암행어사로 임명되면 임금으로부터 봉서, 의정부로부터 사목(事目)·마패·유척(鍮尺)을 받았다.

그림 4. 조선 순조 때 유척鍮尺, 보통 지방 수령이나 암행어사(暗行御史)가 검시(檢屍)할 때 사용하던 표준 자
길이(길이) : 24.6 cm / 너비(너비) : 1.5 cm / 두께(두께) : 1.2 cm
이 자에는 ‘四角鍮製棒基準尺’이라 쓰여 있고, 또한 앞면에는 ‘黃鐘尺’이라 새기고 그 아래에 눈금이 그려져 있다. 좌측 윗부분에는 ‘禮器尺’, 아랫부분에는 ‘周尺’, 우측에는 ‘營造尺’, 후면에는 ‘布帛尺’이라고 새겨져 있다.
사진출처
http://www.gogung.go.kr/royal/search_view.jsp?no=714&rn=610&tot=1510&gubun=&pg=77&searchvalue=&ret=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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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簫 : 고구려 때부터 현재까지 아악(雅樂)에 사용되는 관악기의 하나.
아래가 막힌 가느다란 죽관(竹管:대나무관)을 나무로 깎아 만든 몸통에 차례대로 배열한 팬파이프의 일종인데, 각 관의 위쪽을 단소의 취구처럼 파고, 거기에 아래 입술을 대고 소리낸다.
한 관에서 한 음만 낼 수 있으며, 빠른 템포의 음악을 연주하기 불편하다.
12관·16관·24관의 다양한 악기가 있었으나, 현재 쓰이는 것은 16관이며, 몸통의 모양이 봉황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비슷하다하여 ‘봉소(鳳簫)’라 부르기도 한다.
아악 연주에만 사용된다.
< 출처 : 사이버국악교실 >
소簫 : 고구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아악(雅樂)에 사용되는 관악기의 하나.
〔종 류〕
소는 16개의 죽관(竹管:대나무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한 관에서 한 음씩 내게 되어 있고, 그 밖의 네 가지 악기는 몇 개의 지공(指孔:손가락을 떼는 구멍)이 있어서 손가락으로 막고 떼어 각각 정해진 음을 내는 점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들 다섯 가지 악기들은 모두 앞면 위쪽에 조그만 홈(吹口 또는 부서라고 부른다)을 파고 거기에 아랫입술을 대고 김을 넣어 소리를 내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소에는 12율(律)에 따라서 12개의 관으로 된 것도 있고, 12율 4청성(十二律 四淸聲)을 낼 수 있는 16개의 관으로 된 것도 있으며, 24개의 관으로 된 것 등 그 종류가 많았으나, 현재 우리 나라에서 쓰고 있는 소는 16개의 관으로 된 송나라의 봉소형(鳳簫形)이다.
소는 ≪악학궤범≫ 권6 아부악기 도설소조(雅部樂器圖說簫條)에는 아부(雅部)악기로 분류하였으며,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 권90·95에는 아부 중 죽부(竹部)로 분류하였다.
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음이 저음에서 차례로 높아짐에 따라 관(管:竹管, bamboo pipe)이 긴 것에서 차례로 짧아진 배소(排簫)가 있고, 둘째는 좌우 두 끝에서 중앙으로 향하여 차차 짧아진 봉소(鳳簫)가 있다.
〔기록문헌〕
≪고려사≫ 권70에 의하면, 1114년(고려 예종 9) 안직승이 송나라 휘종(徽宗)에게서 받아온 신악기 중에 주칠(朱漆)·누금(縷金)으로 장식된 소 10면(面)이 있으며, 또한 1116년 송나라에서 받아온 대성아악(大晟雅樂)에도 소가 들어 있다. (원래 삼국시대의 소는 12관이나 24관이 아니었을까 추정됩니다.)
즉, ≪고려사≫ 권70의 등가악기조(登歌樂器條) 및 헌가악기조(軒架樂器條)에 의하면, 등가악기에 소는 중성(中聲)·정성(正聲)의 것이 각각 2면씩인데 채색으로 나는 봉황새〔飛鳳〕가 그려져 있고, 헌가악기에 소는 중성과 정성의 것이 각각 22면씩인데 구름 속을 나는 학〔雲鶴〕이 채색으로 그려져 있다고 하였다.
〔생김새 및 연주법〕
≪악학궤범≫ 권6의 소조(簫條)는 ≪대성악보 大晟樂譜≫를 인용하여 “봉소는 대나무로 만드는데 그 몸길이가 1척(尺)4촌(寸)이고, 16개의 관대가 있으며, 너비는 1척6푼(分)인데 납밀(蠟蜜)로 밑바닥을 채워 넣는다. 가(架:틀)는 1척2촌이고 나무로 만든다.
제1관에서 제8관에 이르기까지의 관대 길이는 다시 제16관에서 제9관에 이르기까지의 관대 길이의 치수〔寸數〕와 같다.”고 하였다. 즉, 제1관(黃鐘, C)과 제16관(淸夾鐘, D#)이 가장 길고, 제8관(林鐘, G)과 제9관(夷則, G#)이 가장 짧으며, 제10관(南呂, A)부터 제16관(淸太簇)까지는 차례로 길어진다.
소를 만드는 법은 해죽(海竹)으로 관대〔管〕를 만들고 붉은 색칠을 한다. 지금 분촌의 수에 따라 율관에 맞추는 제도는 황종관(黃鐘管, C)에서부터 청협종관(淸夾鐘管, D#)에 이르기까지 모두 밑바닥에 납밀을 넣어 율관에 맞춘다. 만약 소리가 높은 관대가 있으면 그 속의 납밀을 조금 빼내고, 소리가 낮으면 납밀을 조금 더 넣어서 음정을 조절한다.
가(틀)는 가목(假木)으로 만들고 검은 칠을 한다. 현재 쓰이고 있는 소는 16개의 관대가 모두 틀 속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으나, ≪악학궤범≫의 소는 16개의 관대 아랫부분이 틀 아래쪽으로 나오도록 꽂혀 있는 점이 다르다.
소를 부는 법〔吹法〕은 틀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되 취구가 앞쪽으로 되도록 하고, 취구에 아랫입술을 대고 음률에 따라서 한 관 한 관을 찾아서 김을 넣어 분다.
≪참고문헌≫ 增補文獻備考
≪참고문헌≫ 韓國音樂硏究(李惠求, 國民音樂硏究會, 1957)
≪참고문헌≫ 韓國音樂序說(李惠求, 서울大學校 出版部, 1967)
≪참고문헌≫ 韓國樂器大觀(張師勛, 銀河出版社, 1969)
<출처 :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