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명실공히 한국 현대시인의 대명사이자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추앙받는 김소월(金素月)이 1925년에 발표한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되어 있는 〈초혼〉이라는 시(詩)이다. 시제인 ‘초혼(招魂)’은 글자 그대로 ‘혼(魂)을 부른다(招)’는 뜻인데, 우리나라 전통적 상례의 절차의 하나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이 생전에 입었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은 허리에 대어 지붕에 올라서거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망자(亡者)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일종의 고복의식(皐復儀式)이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민족시인 김소월의 〈초혼〉은 그렇게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 번 부름으로써 그 사람을 소생하게 하려는 전통적인 의식에서 시적 착상을 하여, 간절한 소망을 통하여 사별의 슬픔을 노래한 작품인 것이다. 김소월의 여러 작품들 중 특히 〈초혼〉이라는 시가 대중들에게 오래토록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한 맺힌 우리민족의 민족적 정서와 깊이 연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예전 동요로써 순수한 동심과 토속적 정서를 잘 담아낸 〈엄마야 누나야〉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국민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혼〉과 함께 김소월의 작품 중 수없이 많은 민중의 사랑을 받아온 〈엄마야 누나야〉는 1922년 《개벽》 1월호에 발표된 김소월의 시로써 총 4행으로 된 다소 짧은 민요조의 서정시이다. 소월의 아름다운 시구(詩句)에다 이후 나주 출신의 죽산(竹山)안성현 선생이 맛깔난 노랫가락을 입혔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소월은 오산학교(五山學校) 시절에 고당(古堂)조만식을 교장으로, 안서(岸曙)김억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오산학교 중학부에 다니던 중, 3·1운동 직후 일제에 의해 한때 폐교되자 배재고보에 편입,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 동경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지진이 나는 바람에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소월과 가까이 지냈던 문우(文友)로는 <벙어리 삼룡이>로 유명한 소설가 나도향이 있다.
우리 민족의 최고의 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김소월은, 잇따른 사업의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로 술독에 빠져 살던 1934년12월23일 밤. 33세의 나이에 아편을 마시고 자살함으로 짧고 외로웠던 그의 인생을 마감한다.
넋두리 : 동네 뒷산에 올라가 허공을 바라보고 큰소리로 고함을 질러도 얼마 후 그 소리는 곧 메아리로라도 돌아오건만, 참으로 야속하고 씁쓸한 심정일 뿐이다.
김소월의 시구 ‘불러도 주인(대답) 없는 이름이여...’
김동길 교수께서는 이명박 후보가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직 나라의 앞날만을 걱정하며 글(처음에는 편지였으나 2011년8월15일부터는 우리 민초들을 위한 칼럼이 되었다)을 써 오셨다. 시작하신지가 무려 1,470일이나 되었는데, 1년이 365일이니 정확히 만 4년이 넘은 것이다. 이젠 더 이상 기다리시지도 않겠지만, 여태도, 역시나, 아무런 대답은 없다.
올해로 85세의 노존(老尊)이 되신 김동길 교수께서는 젊은 시절, 그 서슬이 시퍼렇던 정권을 향해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며 감히 그들(?)을 향해 심한 말을 서슴없이 했던 용맹한 투사였다. 그런 김동길 교수님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그 분을 가리켜 ‘시대의 지성’이란 수식어(修飾語)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 김동길 교수의 행적을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그분의 그런 크신 뜻도 모른 체, 예의에도, 도리에도 어긋난 막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지성이신 김동길 박사님은 이 나라를 짊어지고 세계와 경쟁을 해야 할 우리 젊은 사람들을 향해 노구(老軀)의 몸으로도 이곳저곳을 가리지 않고 늘 바쁜 시간을 쪼개어 시국강연을 하고 다니신다.
무엇 때문일까?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당신의 조국이 결코 몇몇 매국도당들의 거짓 선전과 조장(助長)에 넘어가 한순간에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지경으로 가는 것을 수수방관(袖手傍觀)하고만 계실 수는 없겠기에...
수없이 잦았던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은 국가존망의 위기에서도 온갖 우여곡절(迂餘曲折)끝에 오늘의 자유민주주의의 당당한 기틀을 만들고 또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후손들에게 세계 으뜸의 부강한 나라를 물려주고자하는 대다수 민초(民草)들의 간절한 요망이 있기에, 늙은 애국자의 구국(救國)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목하(目下) 위기의 일로에 서있는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염려(念慮)하는 국가원로로서의 강한 책임감과 으뜸 선각자(先覺者)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갈구하고 선망(羨望)하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향한 가르침은 때와 장소를 가릴 수 없으며, 죽는 날까지 멈추지 말고 계속되어야 할 당신의 역사적 사명(使命)이자 운명(運命)이라 확신하시기 때문일 것이라 나는 감히 단언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 처먹으려는 매국도당들과 사리 분별조차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몇몇 젊은이들로부터 이런 크신 국가지도자급의 어른이 경봉(敬奉)되기는커녕 극우(極右)의 좌장(座長)으로 치부(置簿)되는 작금의 사태야말로 기성세대가 당장 고쳐 잡아나가야 할 크나큰 문제일 것이다.
장차 미래의 희망이며 우리 조국을 이끌고 갈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들께 감히 한마디 당부하건데, 모든것을 다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올바른 태도를 가질수 있게 자식교육 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말 지어다. 이것은 단순히 나와 내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보다 더 큰 범위의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첫댓글 '올바른 태도를 가질수 있게 자식교육 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는 제언은 공자 맹자님 말씀 이상인데 요즘 세상은 포기하도록 하게만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