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갖고 사는 것이
문희봉
어느 대학 교수가 아들과 함께 기차를 기다리다가 기차가 1시간쯤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승객들은 하나둘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심지어 화를 참지 못하고 철도 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스케치북을 꺼내더니 화가 난 승객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척 신나는 표정이었습니다. 나중에 기차가 도착하자 오히려 낙담한 표정까지 지었습니다. '90대 10의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인생의 10%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로 결정되고, 나머지 90%는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기차가 연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쓰기보다 교수의 아들처럼 생산적으로 쓰는 것이 현명한 일이겠지요. 통제할 수 없는 10보다 통제 가능한 90에 집중하라는 얘깁니다.
한 젊은 사업가가 버진아일랜드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에 하나뿐인 비행기가 항공사의 사정으로 출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비행기를 못 타면 그날 하루가 엉망진창이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사업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큰 손해를 눈앞에 두고 흥분할 만도 했지만, 그 젊은 사업가는 공항 데스크로 가서 비행기를 전세 내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휴대용 칠판을 빌려서 이렇게 썼습니다.
"버진아일랜드행 비행기 좌석 있습니다. 39달러!"
그는 공항 로비에서 이 칠판을 들고 섰습니다. 그리고 금세 비행기 임대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좌석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버진 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이 경험이 그가 10년 뒤 버진항공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 상황을 타개할 것인지 방법을 모색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 현명한 일이지요.
어떤 부부가 큰 아이의 돌잔치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첫아이의 돌잔치인 만큼 부부는 가급적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장식을 맡아 며칠 동안 풍선을 불고 장식물을 준비했습니다. 남편은 주로 사진 작업을 맡았습니다. 엄청난 분량의 아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것으로 대형 브로마이드와 포토북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애써 만든 사진파일을 제작업체에 맡겼고 드디어 돌잔치가 열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브로마이드를 펼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잘못된 철자가 눈에 딱 들어왔습니다. 아뿔싸! 철자를 뒤바꿔 썼던 것입니다. 그것도 'Bravo'라는 단어를 잘못 입력해서 'Barvo'가 된 것입니다. 낭패였습니다. 자꾸 '바보'라고 읽혔습니다. 그때부터는 그 글자만 보였습니다. 브로마이드에서 0.1퍼센트나 차지하고 있을 것 같은 철자 하나가 백 배 천 배로 확대되어 보였습니다. 손님들이 틀린 글자를 보며 비웃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돌잔치에 와서 브로마이드 귀퉁이의 단어 철자까지 세밀하게 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남편은 그것만 신경 쓰느라 돌잔치 내내 노심초사했습니다. 뒤바뀐 철자를 지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에도 남편은 거기에 마음이 쓰여서 돌잔치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정작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와 손님들은 잘 챙기지 못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이 쓴 《천 개의 문제, 하나의 해답》의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전이나 완벽은 불가능한 법이 아닌가요.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면 빨리 받아들이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는 게 현명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수현이는 과학 숙제와 함께 낼 포스터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수현이는 색깔 펜을 모두 꺼내 놓고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수현이는 서로 다른 색깔 펜 세 개를 집어서 태양계에 대한 글과 어울리는 태양을 신중하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태양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좀 더 붉어야 하고, 약간 왼쪽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린 것을 버리고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태양이 조금 컸습니다. 수현이는 종이를 버리고 다시 그리고, 또 버리고 다시 그리는 일을 몇 시간이고 반복했습니다.
어린이 도서 《괜찮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에 실린 이야기를 조금 각색했습니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무결점으로 완수해 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완벽주의'라고 합니다. 완벽주의가 '이 정도면 별 문제 없겠지'라는 식의 '적당주의'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완벽주의는 오히려 혁신의 걸림돌이 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지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심한 불안감에 휩싸이거나, 때로는 도전해보지도 않고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부정적 확신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혁신은 치밀한 계획과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리스크를 감내하는 도전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수 세기 전, 이탈리아의 조각가 도나텔로는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흠과 갈라진 틈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 대리석을 반품했습니다. 그의 곁에 있던 미켈란젤로도 대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역시 흠이 있음을 발견했지만, 그 흠을 예술가로서 자신의 기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도나텔로가 반품한 대리석 덩어리를 다시 사들여서 그것으로 시대를 초월한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다윗(다비드)상입니다.
우리는 시작도 하기 전에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사실, 시작하기도 전에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만약 더 좋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가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수단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