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부결되었습니다. 투표가 끝난 후 제주는 제주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시끄럽습니다. 투표로 인해 발생한 주민 상호간의 불신의 골이 투표가 끝났다고 해서 쉽게 메꾸어 질 성질의 것도 아니고 국책사업에 대해 주민소환의 방식으로 사업 수행을 가로막는데 대해 여당과 야당,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안상수 의원이 돌아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주민소환법을 손질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그의 이런 발언은 지난 3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어서 사회적 파장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청구절차만을 규정하고 청구사유를 규정하지 않은 주민소환법에 대해 “주민소환제는 기본적으로 대표자에 대한 신임을 묻는 것으로 재선거와 속성이 같기 때문에 선거와 마찬가지로 그 사유를 묻지 않은 것이 취지에 맞으며 비민주적, 독선적 정책 추진 등 광범위하게 통제하려면 청구 사유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헌재결정과 어긋나지 않게 법안을 손질하는 것은 입법자들의 몫입니다. 하지만 주민소환 청구절차도 까다로워 제도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청구사유마저 제한한다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주민들의 투표참여에 대한 조직적이고도 광범위한 방해 행위도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주민소환운동본부는 투표 당일인 26일 성명을 통해 "자유당 정권 치하를 방불케 하는 관권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와 함께 투표방해행위에 대한 제보가 폭주하고 있다며 그 구체적인 사례로 제주 서귀포시 예래동에 '투표하지 맙시다' 홍보문구 부착 사례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2리에서 투표 주민 명단을 기록한 쪽지를 제시했습니다.
예전 김황식 하남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있던 당시에도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문제가 됐던 조직적인 투표방해 행위가 이번 제주도지사 소환투표에도 똑같이 벌어졌다는 것은 주민소환투표가 제도상의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듭니다. 특히 주민소환 대상이 된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관에 관계된 어떤 사람도 선거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게 할 필요성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투표를 만류하는 행위를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주민소환제도의 취지를 무색케하고 유권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 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15년 이상이 흘렀고 주민소환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조금 넘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관심도는 저조합니다. 이 시점에서 고민해야 할 것은 주민소환의 요건과 절차를 까다롭게 하여 주민소환운동이 벌어질 여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를 순수한 주민자치로 전환하여 주민스스로 책임을 갖고 지역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더 이상 ‘지역’이 중앙정치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며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