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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 03
#1. 지애 집 거실 (D)
지애, 소파에 엎드려 자다가 문득 일어난다. 시계 보면 6시 넘었고. 어스름한 새벽이다.
지애 : 이 인간이 미쳤나.
전화한다. 신호 가다가 달수 받는.
달수off : 여보세요?
지애 : 지금 뭐하는거야?
달수off : 어.. 미안. 술 먹다가...
지애 : 미쳤어 진짜!! 나 아침에 회진 돌기 전에 병원 들어가야 된단 말이야. 지금 어디야!
#2. 갤러리 안 (D)
소파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소현 보이고.
함께 잠들었던 듯 달수가 부스스한 머리로 긴장해서 전화 받고 있다.
그들 앞으로 테이블에는 양주병 몇 개가 보이고.
지애off : 지금까지 누구랑 있었는데! 여자랑 있었던 거 아냐?
달수 : (헉 놀라서 돌아보면)
소현 : (부스스 눈뜨면서 달수를 보고 잠기 있는 목소리) 왜 그래..
달수 : (새파랗게 질리고)
#3. 지애 집 거실 (D)
지애, 표정 사악 변한다.
지애 : 뭐야? 방금 누구 목소리 들렸던 것 같은데? 어디냐구! 누구랑 같이 있냐구 지금!!! (카랑카랑하게 소리 지르는)
#4. 갤러리 안 (D)
그제야 화들짝 정신이 드는 달수.
전화기 안에선 벌써 이 죽일놈 살릴놈 욕하고 난리가 났고.
달수, 눈 질끈 감더니 전화기를 탁 덮어버리고. 배터리까지 싹 빼버린다.
소현 : (보다가 피식 웃으며) 와이프?
달수 : (끄덕끄덕)
소현 : 어쩌려구..?
달수 :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벌떡 일어나고) 뭐.. 죽기야 하겠냐.
소현 : 표정은 죽으러 가는 거 같은데?
달수 : ... 우리 다음에 보자. 볼 수 있으면...
달수, 비장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갤러리에서 나간다.
그 모습 귀엽다는 듯이 보는 소현. 하지만 다음 순간. 좀 쓸쓸해지고.
#5. 갤러리 앞 거리 (D)
갤러리에서 나오자마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달수. 한손에 휴대폰을 꼭 쥔 채.
#6. 다른 거리 일각 (D)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는 달수.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뛰고 또 뛴다.
비장하게 뛰는 폼은 황영조 저리가라다.
#7. 지애 집 거실 (D)
지애, 달수에게 전화 걸어보면. 꺼져 있다.
지애 : 어쭈? 요거 봐라. (혈압 오르고 다시 전화해 봐도 또 꺼져 있고)
#8. 한강 다리 위 (D)
한강 다리 가운데 도착하는 달수.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잠깐 본다. 아찔한 것이 눈앞이 핑글.. 도는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비장한 표정으로 난관 끝을 턱 하니 잡는 달수.
#9. 지애 집 주방 (D)
열받은 지애, 냉장고에서 생수병 꺼내 병째 입대고 꿀꺽꿀꺽 마시다가 문득 냉장고에 붙은 지애 달수 사진을 본다.
울컥해서 사진 확 뜯어 손으로 달수 부분만 찌이익 잘라내는 지애.
달수 얼굴 부분을 잘기잘기 찢으며 분한 마음을 삭히는데.
이때 전화 걸려온다. 화들짝 놀라 전화기 들어 보면. 모르는 번호고.
지애 : 여보세요? 네. 맞는데요? (헉) 누구요?
경찰off : 경찰이라구요.
지애 : 경..찰이 왜.. 저희 남편을 찾아요? (덜컥 겁나고) 혹시... 무슨 일 났어요?
#10. 한강 다리 (D)
경찰차 서 있고.
경찰(까메오), 코 빨개진 채 칼바람 맞으며 짜증나 죽겠다는 표정이다.
경찰 : 일이 나긴 났죠.
경찰, 위를 올려다 보면. 달수 난관 바깥쪽에 올라서서 벌벌 떨고 있다.
경찰 : 남편분이 지금.. 자살하겠다면서 한남대교 난간에 매달려 계시거든요?
달수 : (일부러 큰소리로) 죽어버릴거야! 이렇게 살아서 뭐해!!
경찰 : (짜증스레 보며) 아 설득해 봤죠. 아무리 내려오라고 해도 계속 저러고 있는데 어떡해요 그럼.
달수 : (경찰 쪽 보며 큰소리로) 내 와이프를 불러줘라!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 빨리 불러줘라!!
경찰 : 암튼 얼렁 와서 해결 보세요. 우리도 바빠요. (전화 끊는다)
경찰, 호주머니에 손 찔러 넣으며 추워 죽겠고.
경찰 : 에이 아침도 못먹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달수 : (조심스레) 저.. 선생님.
경찰 : 선생님은 무슨. 아 엔간히 하고 내려와요. 나 비염 있어서 찬바람 오래 쐬면 안된단 말이야. (킁 하고)
달수 : 저 면목없지만요.. 집사람 도착할라면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국물 뜨거운 설렁탕 같은 거 하나만 배달해 주시면 안될까요?
경찰 : (기막혀) 뭐요? 아 다리 한가운데까지 누가 배달을 해줘요?
달수 : 아 공권력으로 그깟 설렁탕 하나 배달 못시켜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제가 허기가 지면 못참는 성격이라서...
경찰 : (버럭하며 삿대질) 이 사람이 진짜!!! 배고프면 내려와서 사먹어!!
달수 : (놀라 휘청하고) 으어어허. 놀랬잖아요. 에이 진짜로 떨어질 뻔 했잖아 에이... (엄마야... 아래 내려다 보면 아찔하고)
#11. 빌라 옆집 (D)
아직 잠도 덜 깬 옆집 아줌마에게 유치원복 입은 민주를 맡기는 지애.
지애 : 미안해 규용이 엄마.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아줌마 : (부스스) 그래.. 알았어. 너무 늦지 마.
지애 : 응. 내가 사과 사다줄께. 미안.
#12. 빌라 앞 (D)
급하게 뛰쳐나오는 지애. 부은 얼굴에 머리도 엉망이고. 택시 잡으려고 뛰어가면서 궁시렁댄다.
지애 : 택시비 많이 나오게 웬 한남대교? 가까운 마포대교 원효대교 다 놔두고? 암튼 재테크엔 눈꼽만큼도 도움 안되는 인간!!
말론 그러면서도 급한 마음에 택시 앞으로 뛰어들듯 가로막아 잡는다.
#13. 택시 안 (D)
지애, 택시에 급하게 올라타며.
지애 : 아저씨.. 한남대교 빨리 좀 가주세요. 따블.. 따따블 드릴께.
급하게 출발하는 택시.
창밖을 보는데 초조함이 가득한 지애의 눈빛.
#14. 한강 다리 (D)
달수, 난관에 매달린 채 주저리주저리 신세 한탄 하고 있다.
달수 : 제가 일천구백구십오년도에 서울대 딱 들어갔을 때만 해도 우리 고등학교에 막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그랬거든요. 진짜루.
경찰 : (시큰둥하게 보며 호오.... 손에 입김 쏘이고) 명문대까지 나온 사람이 지금은 왜 백순데요?
달수 : 그것이 바로 저의 슬픔이자 아픔이죠. 제가 머리도 좋고 다 좋은데. 원만한 사회 생활을 하기엔 약간의 결함이 있었거든요.
경찰 : 결함?
달수 : (씁쓸히 먼데 쳐다보는 표정 위로--)
#15. 회식 자리 (D) - 달수 회상
부장을 위시한 직원들 쭉 둘러앉아서 고기 구워 먹으며 술 한 잔 씩 하고 있고.
부장 : 편한 자리니까, 평소 불만 같은 거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라고..
직원1 : 그런게 어딨습니까. 부장님만한 상사가 어딨다구.
직원2 : 그럼요 그럼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요. 때론 큰형같고. 때론 아버지같고..
부장 : (껄껄) 에이 이 사람들두 참.. 괜찮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속엣 얘기 해보겠어.
평소 나한테 섭섭했던 거.. 불만 있었던 거 다 말해 보라니까?
직원들 : (입 모아) 그런 거 없대두요 부장님~~ / 섭섭한 게 어딨겠어요~~ (등등.. 시끄럽게 떠드는데)
달수 : (분위기 팍 깨며 일어나는) 솔직히.......
일동 : (동작 정지하며 표정들)
달수 : 부장님이 좀 그런 스타일이잖아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고. 수시로 직원들 아이디어 도용하시고.
본인은 시간외 수당 꼬박꼬박 챙기시면서. 우리가 올리면.. 애사심이 부족하다는 둥 막 뭐라 그러시고..
기획진행비도 맘대로 유용하시고... 저번에 인사 미끄러지셨다고 저희한테 성질내시는데.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요.
(나름대로 마무리) 편하게 얘기하라고 하셔서 한건데.. 기분 나쁘신 거 아니죠? (환한 웃음)
부장, 똥씹은 표정으로 자작하고. 전체 분위기는 싸해진다.
왜들 그러나 싶은 달수.
#16. 회사 사무실 (D) - 달수 회상
부장, 느끼한 표정으로 결재 받으러 온 여직원 엉덩이를 슬쩍 만진다. 여직원 불편해하고.
정자세로 꼿꼿하게 앉아 키보드를 때려 부술듯 열심히 일하던 달수. 부장이 하는 작태를 목격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달수 : 부장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성희롱으로 고발당하고 싶으세요?
부장 : (태연) 온달수씨 정신줄 놨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달수 : (주먹 불끈) 지금 부장님께서 이희주씨 엉덩이 만지셨잖아요!!!
부장 : (오리발) 내가? (여직원 보면) 내가 그랬어?
직원들 시선 집중되면.
여직원 : 아뇨? 그런 일 없는데요?
달수 : (불끈 쥐었던 주먹이 민망해지고. 주먹 사르르 푸는데)
부장 : (테이블 탕 치며) 이 사람이 진짜! 지금 뭐하자는거야! 자네야말로 무고죄로 고소 한번 당해보고 싶어?
달수 : (찔끔)
부장 : 나 지금.. (강조) 인원구조조정 회의 들어가는데 말이야. 다녀와서 얘기하자고.
달수 : (그제야 놀라서) 부장님... 저기...
부장 : (홱 나가 버리고)
다른 동료들, 안됐다는 듯 어깨 한번씩 툭 쳐준다.
달수 넋나간 표정.
#17. 한강 다리 위 (D)
달수, 미간을 지그시 누르며 눈물 참는 표정.
경찰, 동정 어린 표정으로 달수 올려다보고 있고.
달수 : 그렇게 짤리거나. 아니면 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제가 뛰쳐 나오거나. 뭐 둘 중에 하나였죠.
경찰 : 그래.. 너무 정직한 사람은 사회생활 하기 좀 힘들지..
달수 : 제 입으로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전... 일급수에서만 살 수 있다는 쉬리 같은 캐릭터라고나 할까요. 암튼 그렇습니다.
경찰 : (끄덕끄덕) 그래서 거기 올라간 거에요? 진짜 죽어버릴라구?
달수 : 사실 저.. 사회에서 마음의 상처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더 큰 상처는 집에서 받았습니다!! (표정에서)
#18. 달수 집 거실 (D) - 달수 회상
달수 : (무릎 꿇고 조심스레) 여보.. 나.. 또.. 짤렸어...
말 끝나기가 무섭게. 츄리닝 입은 지애, 달수를 마구 베개로 패는.
도망가는 달수 붙잡아서 코브라 트위스트로 조르는가 하면. 이거저거 마구 집어던져 달수를 초죽음으로 만든다.
도망가다가 유리창에 얼굴 흉하게 찌그러지는 달수 표정에서.
#19. 한강 다리 위 (D)
다시 생각해도 아프다는 듯이 움찔거리는 달수.
안타깝게 보는 경찰.
달수 : 평소에도 그렇게 저한테 거칠게 대했는데. 아무 말도 없이 외박을 했으니...
(끔찍하다는 듯이 눈 질끈 감으며) 맞아죽느니... 그냥 뛰어내려 죽는 게... 낫지 싶어서....
경찰 : 세상에... 아니 하늘같은 남편한테 그게 뭐하는 짓이야!
달수 : (하늘 보며) 뭐, 다 무능한 제 탓이죠... 맨날 짤리고 돈도 못갖다주는데.. 가장 대접 해주고 싶겠어요?
경찰 : (괜히 감정이입) 하여튼 요새 여자들 너무해. 아니.. 남자들이 짤리고 싶어 짤려? 가장 노릇 못하고 싶어서 못해?
아무리 빡세게 일해도. 이노무 사회가 안도와주는 걸 어떡해 사회가.
달수 : 그러니까요. 저도 가끔.. 욱.. 하면서 속에서 막 뜨거운 게 치밀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그냥 확... 이혼도장 찍어버릴까부다.... (핏대 한참 세우는데)
이때 택시가 끽 서고. 탁 내리는 지애.
달수, 지애 보더니 흡 말 삼키는 표정.
지애 : (달수 보고 한심해 죽겠다) 여보!!!
달수 : (180도 돌변, 순해져서) 당신.. 왔어? 추운데... 오느라 수고했어.
지애 : 야 인간아. 너 진짜 죽을래? 죽고 싶어? 거길 왜 기어올라가? 뭐 잘한 게 있다고?
달수 : 아니 난.. 밤새.. 한강 다리에 서서.. 내 인생이 뭔가... 왜 이렇게 됐나. 내가 당신한테 잘못한 게 참 많구나...
이런 거 반성하느라.. 집에 못들어간거거든.
지애 : (소리소리) 그렇다고 거길 올라가? 미친 거 아냐?
달수 : 나 진짜.. 당신이 용서해준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내려갈건데.. 나 안때린다고도 약속해주고... 경찰 선생님 앞에서. 응?
지애 : 아무 말도 없이 외박해놓고 뭐? 용서? 장난해?
경찰 : (못참고 끼어드는) 진짜.. 해도해도 너무하시네.
지애 : (황당) 네?
경찰 : 아무리 한심해도 남편 아닙니까. 인간 대접은 해주셔야죠! 오죽했으면 맞기 싫어서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다 했을까..
(말하다 목메고) 정말..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지애 : (이건 또 뭐야..싶다)
경찰 : 원래는 이런 데 올라가서 소동 피우고 그러면 벌금 물리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제 직권으로 벌금 안받겠습니다.
달수 : (위에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여보, 고맙다고 그래. 참 좋으신 분이셔.
지애 : (버럭) 안 기어내려와 인간아?!!!!
달수 : (깜짝 놀라서 얼른 내려온다)
#20. 한강다리 위 다른 일각 (D)
달수와 지애가 찬바람 맞으며 걸어가고 있다.
지애 앞장서 가고. 그 뒤로 쫄래쫄래 코 훌쩍이며 따라가는 달수.
달수 : 여보.진짜 미안해. 내가 어제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솔직히.. 당신도 너무했잖아. 그 사람들 많은데서.. 뺨을 때리면..
내 체면은 뭐가 돼? (아무 말이 없자, 말해도 되겠다 싶은지) 그래. 집에서 때리는 건 내가 얼마든지 다 참겠어.
그런데 밖에선... 나도 쏘셜포지션이라는 게 있고..
지애 : (우뚝 멈추면)
달수 : (지레 놀라서 급변) 아니야 여보. 내가 맞을 짓을 했지. 잘못했어.
지애 : (홱 돌아보고)
달수 : (흠칫)
지애 : 여자 목소리 들렸잖아. 누구야?
달수 : ...(당황) 응?
지애 : 아까 전화했을 때. 옆에 여자 목소리 들렸잖아!!!
달수 : 무슨...? 글쎄... 난 잘... 그냥 뭐 지나가던 사람 목소리였나보지.
지애 : 한강 다리 위로 누가 지나가!
달수 : 새벽에 조깅 많이들 하더라구. 난간에 매달려서 보니까... 생각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많더라. 하하하!
지애 : (그런가 싶기도 하고)
달수 : 당신은 죽으려던 남편이 살아돌아왔는데. 별 쓸데없는 데 신경을 다 쓴다. 근데 여보. 추운데 언제 다리 건너가.
택시 타면 안될까?
지애 : 아 시끄러!! 올 때 택시비 얼마 들었는지나 알아? (앞장 서서 가면)
달수 : (다시 쫄래쫄래 따라가고) 근데 당신 병원 회진할 시간 다 되지 않았어?
지애 : (허걱!!) 맞다. 회진!!
#21. 병원 입원실 (D)
의사들과 간호사들. 서 있고. 텅 비어 있는 지애 침대.
의사 : 어디 간거야?
간호사 : 글쎄요... 어젯저녁에도 안 보이시던데..
의사 : 나일롱 아냐 이거? (표정)
이때 미친 듯이 뛰어 들어오는 지애. 너무나 숨이 차서 천식환자처럼 말도 못한다.
환자복 아무렇게나 걸쳐입고. 산발이 된 지애.
의사 : (표정) 괜...찮으세요?
지애 : (괜찮다는 손짓)
간호사 : 어디.. 다녀오세요?
지애 : (헥헥대며 겨우 말하는) 병원.. 옥상에.. 운동..삼아.. 몇바퀴.. 도느라고...
의사 : 허리 아파 죽겠다는 분이 운동삼아 옥상을 돌아요?
지애 : (순간 허리잡으며 팍 고꾸라지고) 아이구 허리야.. 괜히 운동을 해서... 아이구... 그놈의 옥상을.. 괜히 올라갔어.. 아이구..
의사, 간호사 : (미심쩍은 표정들)
그런데 뒤늦게 헥헥대며 도착하는 달수.
달수 : (도와준답시고, 헥헥대며) 여보.. 괜찮아..? (헥헥) 저희.. 집사람이.. (헥헥) 변비가 심해서.. 화장실 좀 다녀오느라고..
여보.. 힘들었지... 그러니까..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랬잖아... (헥헥)
의사, 간호사 :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들)
지애 : (아씨... 하며 째려보면)
달수 : (눈치도 없이 나 잘했지... 하는 듯이 윙크 날린다)
#22. 퀸즈팰리스 외경 (D)
#23. 소현집 안방 (D)
소현 외출복 차림으로 들어오는데.
태준이 침대 위에 앉은 채 트레이에 놓인 빵과 커피를 먹으며 영자신문을 읽고 있다.
소현 : (들어오다 그 모습 보고, 아무렇지 않은 듯 화장대 앞에 앉고)
태준 : (신문 넘기며) 어디 갔다 와?
소현 : (귀걸이 빼는)
태준 : (훗..) 웬일이냐? 외박까지 다 하고? 반항해?
소현 : (반지와 목걸이도 빼서 악세서리 함에 넣어둔다)
태준 : 뭐.. 나 신경 쓸 건 없어. 너 하고 싶은대로.... (말하는데)
소현 : (일어나고) 그런데 왜 당신은 맨날 영자신문 읽어?
태준 : 뭐?
소현 : 영어 잘 못하잖아. (빙글 나간다)
태준 : (찔리는 표정 있다가 신문 접고)
#24. 소현 집 주방 (D)
소현,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25. 갤러리 (N)
나란히 앉은 소현과 달수, 함께 와인 마신다.
소현은 조금 취한 상태. 우울한 눈빛.
달수 : (걱정되는) 왜.. 뭐 힘든 일 같은 거 있어? 저번에 너 우는 거 봤을 때도 좀 그랬고..
소현 : 선배. 선배는 결혼 생활이 행복해?
달수 : 나? 나야 뭐.. 그렇지..
소현 : 선배처럼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랑 사는 여잔 행복할 것 같애.
달수 : 어? 내가.. 좀 그렇긴 하지? (괜히 어색하자 하하! 크게 웃고)
소현 : 얼마 전에 무슨 영화를 보는데. 어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의 귀에 대고 노래를 불러주는거야. 그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달수 : 그게.. 뭐가 부러워.
소현 : 그러게.. 그까짓 게 왜 그렇게 부러운지... 뭐 어려운 거라고... (하더니 달수 어깨에 가볍게 고개를 기댄다)
달수 : ...!! (움찔)
소현 : 선배.. 나 노래 불러주면 안돼?
달수 : 어??
소현 : 선배 노래 잘했잖아. 한곡만... 응? (맑게 올려다보면)
달수 : 어... 그게... (목소리 가다듬고 긴장) 하..한다.
소현 : (좀 더 어깨에 고개를 깊숙이 기대고)
달수, 초긴장 상태에서 노래 부르기 시작하는데.
‘고해’나 ‘겨울비’류의 롹이다. 처음에는 달콤하게.. 속삭이듯 부르는데.
점점 음이 높아져만 가고. 귀에 대고 부르기엔 부담스러운.
결국, 하이라이트 부분에선 목소리 흉하게 갈라지고 만다.
소현, 풋.. 하며 웃기 시작하고.
달수 : (민망) 너는.. 갑자기 노랠 해달라고 해서.. 이게 목이 덜 풀려서 그래.. 원랜 내가 고음처리가 잘되는 스타일인데...
(괜히 콜록콜록 기침하고)
소현 : (깔깔대고 웃는다)
달수 : 뭐가 그렇게 웃겨. 야. 그만 웃어. (하다가 자기도 따라 웃고)
소현 : (참으로 오랜만에 배를 잡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유쾌하게 깔깔깔 웃는다)
#26. 소현 집 주방 (D)
소현, 에스프레소 잔을 집어들고. 한모금 마시는데.
그 순간이 생각나는 듯.. 다시 풋.. 웃는다.
#27. 병원 복도 (D)
어느새 환자복을 벗고 스카프와 선글라스 등으로 최대한 변장을 한 지애 그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달수.
빠르게 경보하듯이 나가고 있는데.
맞은편으로 의사와 간호사가 스쳐 지나간다.
지애와 달수,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어서 코너 꺾어 나가면.
의사 : (돌아보며) 방금.. 1402호 천지애 환자 아니에요?
간호사 : 네. 그랬던 것 같은데요.
의사 : 무단외출 체크해놔요. 저 사람들.. 안되겠네 진짜.. (가면)
#28. 병원 비상구 (D)
지애와 달수, 안도의 한숨 내쉬고 있다.
지애 : 거봐. 변장하길 잘했지. 전혀 못알아보잖아. 사람이 머리를 써야 돼 머리를.
달수 : 그러게? 역시 당신은 이런 쪽으론 두뇌회전이 빠른 것 같애.
지애 : 얼른 가자. 시간 없어.
달수 : 그런데 여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난 안 내킨데.
지애 : 누군 내켜서 이러는 줄 알아? 어떻게 잡은 기횐데 그냥 놓치겠다는거야.
달수 : 그래도... 난...
지애 : (눈 크게 뜨면)
달수 : (포기하고) 알았어.
#29. 산소 (D)
일꾼들 사이에서 관 귀퉁이 잡고 영차 영차 하며 옮기는 달수.
영숙은 새초롬하게 팔짱 끼고 유족들과 함께 있고. 그 옆에서 비굴하게 사과하고 있는 지애.
지애 : 어젠 정말.. 죄송했어요 사모님. 저 인간.. 아니 저이두 많이 죄송했는지 저렇게 돕겠다면서 온 거 있죠?
영숙 : 뭐... 반성은 하고 있는 것 같네.
지애 : (90도로 굽히며) 정말.. 죄송했습니다.
영숙 : (그제야 약간 풀리며) 뭘 그렇게까지.. 어머. 이러지 마 자기.
지애 : (다시 굽히며) 아니에요. 정말 죄송해서 이래요.
영숙 : 아우. 자기 마음 알았다 그랬잖아. 우리 이사님은 걱정하지 마.
지애 : (반짝) 정말요?
영숙 : 그래. 젊은 치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어.
지애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숙 : 그럼 뭐해. 더 큰 산이 있잖아.
지애 : 네?
영숙 : 한준혁 부장. 그쪽은 어쩔건데?
지애 : (표정)
#30. 산소 다른 일각 (D)
일꾼들과 함께 열심히 삽질하고 있는 달수. 얼른 다가오는 지애.
지애 : (속삭) 삽질 그만하고 얼른 나와.
달수 : (땀 닦으며) 왜. 아직 한참 파야 돼.
지애 : 그만하고 나오라고. 이쪽은 된 것 같고. 다음으로 이동하자구.
달수 : 다음? 어디?
#31. 봉순 집 거실 (D)
지애와 달수, 뻘쭘하게 서 있고. 봉순이 몹시 도도하게 보고 있다.
혁찬이 인사한다.
혁찬 : 안녕하세요.
봉순 : 우리 아들.
지애 : 아.. 그렇구나. 몇 살?
혁찬 : 일곱 살요.
지애 : 우리 민주랑 동갑이네. 너 있는 줄 알았으면 과자라도 사오는건데.
봉순 : 우리 혁찬인 과자 안먹어. 혁찬아? 들어가서. 위씽 시리즈 한번 보고 있을래? 이따 엄마가 체크해줄게?
혁찬 : 네. (들어가고)
봉순 : 왔으니까 앉아라. 앉으세요.
지애, 달수 : (앉고)
봉순 : 그런데 어쩌지? 우리 그인.. 주말이면 오수를 즐기는 스타일이라.
지애 : 오..수? (그게 뭐냐는 듯 맹하게 달수 보면)
달수 : (작게) 낮잠 잔다고..
지애 : (속으로 궁시렁) 그냥 낮잠 잔다 그러면 될 것을..
봉순 : 어떻게.. 기다릴래? 우리 그이 달게 자는데 깨우는 거 질색해.
지애 : 그래. 뭐 기다리지. 우리가 용건 있어서 갑자기 온거니까.
봉순 : (미소) 그러게. 보통은 미리 전화해서 시간 어떠냐.. 양해 구하는 게 기본적인 매너인데.
뭐 어쨌든 왔으니까, 앉아서 기다려보든가. (하고 싹 돌아 들어간다)
지애 : (미소 지으며 보고 있다가, 입가가 떨리는) 아후... 저 재수꽃다발. 저거 왜 저래?
달수 : 그냥 가자. 왔다 갔다고.. 전해 달라 그러면 되잖아.
지애 : 됐어. 이미 쪽팔릴 거 다 팔렸고. 끝장을 보고 가야지. 앉아. (달수 앉히고, 자기도 앉는다)
기지배가.. 물 한잔을 안주네. 못된 기지배.
#32. 봉순집 안방 (D)
준혁은 멀쩡하게 앉아서 책 보고 있다. 클래식 음악 나오고 있고.
봉순, 씨디 고르며.
봉순 : 가라고 해도 저렇게 버티고 있네요. 애가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참.. 뻔뻔해진 것 같아요. 낯도 두껍지 참..
준혁 : (책만 본다)
봉순 : 어제 당신한테 그렇게 험한 꼴을 보이고. 뭐 더 할 말이 남았다고. 남편 취직 시킬 욕심에 눈에 뵈는게 없는지..
준혁 : (그대로 책 보고)
봉순 : 당신.. 음악 뭐 들을래요? 기분 다운됐으면, 산뜻하게 쇼팽 왈츠 어때요?
준혁 : (책 덮더니) 손님 왔는데 차라도 내야하지 않아?
봉순 : (표정)
준혁 : (거울 보며 셔츠 윗단추 채우고)
봉순 : (샐쭉해지는 거 애써 감추며) 만나주게요?
준혁 : 그럼 그냥 돌려보내? (나간다)
봉순 : (표정)
#33. 봉순 집 거실 (D)
봉순,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차를 내오고 있다.
어색하게 앉아 있는 지애, 달수. 그리고 그 앞에 얼음장 같은 표정의 준혁.
봉순 : 마셔. 마시세요.
지애,달수 : 어..고맙다 / 감사합니다.
지애 : 자는데 깨운 거 아냐?
준혁 : 괜찮아.
봉순 : 이이가 이래. 집에 찾아온 잡상인 한사람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거든.
지애 : ... 우리가 잡상인이야?
봉순 : 얜. 삐딱하긴. 그런 얘기 아니잖아. 차 들어.
지애 : (참으며 차 마신다)
봉순 : (힐끗 보며 도도하게 차 마신다)
지애 : (준혁 보며 다정하게) 어젠.. 내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제대로 인사도 못했어.
(분위기 풀어보려 농담조) 그나저나 준혁이 너.. 용됐다. 몰라보겠어. 너무 근사해져서.
달수 : (찌릿.. 지애 째려보고)
봉순 : (흘낏 본다)
준혁 : (냉랭) 딱히 변한 거 없어. 용 된 건 더더욱 아니고.
지애 : (어색) 어머.. 유머로 던졌는데 다큐로 받으면 어떡해. 너무 정색이다 너. 하하....
준혁 : (자르며) 용건이 뭐야?
지애 : (표정) 응.. 어젠 우리 남편이 실수를 좀..한 것 같아서. 사과하겠다구.. 그래서. (달수 쿡 찌르면)
달수 : (자존심 상하고)
지애 : 왜. 당신 하겠다고 하던 말 해.
준혁 : (해 보라는 듯, 뒤로 느긋하게 기대며 쳐다본다)
달수 : (쏘아보듯 마주 쳐다보고) 난 잘못한 거 없는데?
지애 : (나무라듯) 여보!
준혁 : (표정) 됐어. 맘에 없는데 일부러 사과할거 없어.
달수 : (OL) 내 마누라 돌림빵 시켰다는 둥.. 마누라 팔아 취직하려고 한다는 둥.. 그런 소릴 들었는데.
거기서 가만 있는 놈이 더 병신 아냐?
지애 : (홱 준혁 보고)
준혁 : (표정)
봉순 : (표정)
지애 : 진짜.. 그런 소릴 했어?
준혁 : (시니컬하게 웃으며) 나도 틀린 말 한 거 없는데? 이거 봐. 그런 소리 들은지 채 하루도 안돼
또 너 팔아서 취직자리 구걸하고 있잖아.
지애 : (표정)
달수 : (노려보면)
준혁 : (씁쓸) 천하의 천지애가 이런 남자 만나 살고 있을 줄은.. 진짜 몰랐다.
지애 : (한참 표정 있다가, 미소) 너 용된 거 맞네.
준혁 : (표정)
지애 : (숨 쉴 틈도 없이) 옛날에 니가 나한테 한번만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열두시간씩 집앞에서 기다리고 그랬잖아.
무릎도 꿇었지 아마? 그땐 너도 나한테 구걸했었잖아. 정말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하게.
준혁 : (표정)
봉순 : 천지애!
지애 : (봉순 말 무시하고) 그때에 비하면 진짜 용됐지. 니가 감히 나한테. 고개 빳빳하게 들고. 할 말 다 하고.
좋겠다야. 완전 복권 탔네. 인생역전 했어. 여보, 가자. 일어나. (일어나면)
달수 : (얼떨떨 표정 있다가 일어난다)
지애 : (준혁 내려다보며) 나. 너한테 구걸하러 온 거 맞거든? 내일이 면접보는 날이잖아. 그래서 우리 남편 잘 봐달라고.
취직 좀 시켜달라고. 아부 떨러 온 거 맞아. 그런데 목적 달성 못하고 간다. 아니, 안하고 간다.
나 여기 왔던 거, 없던 걸로 해. 잊어버려. 그럼 우리 너한테 구걸 안한거다?
준혁 : (아무도 보지 못하게 피식 웃는다)
지애 : (홱 돌아서 가려다가 봉순 보며) 야. 차 맛 드럽게 없다. 무슨.. 화장품 냄새가 나냐? 토할 뻔 했다.
지애, 달수를 데리고 나가 버리고.
봉순 : 저...저게... (화 못 참고) 봤죠 여보. 쟤가 저런 애에요. 어쩌면 저럴까.
준혁 : 그러게. 변한 줄 알았더니 하나도 안 변했네. (하고 차 한모금 마시더니) 이 차.. 나도 예전부터 거슬렸어.
진짜.. 화장품 냄새 나.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봉순 : (표정)
#34. 점집 외경 (D)
왕꽃처녀도사라고 쓰여진 입간판이 보인다.
현금 우대 어쩌고... 귀퉁이에 조잡하게 써진 것도 보이고...
#35. 점집 (D)
달수와 지애가 들어온다.
달수 : (둘러보며) 여기가.. 어딘데..?
지애 : 가만 있어봐.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것 같고. 이제 신의 힘을 빌어보는 수밖에.
달수 : 잡신? 이런 걸 믿어?
지애 : 에헤.. 있어보라니까?
하는데. 병풍 뒤에서 고고하게 나타나는 처녀도사, 화자.
화자 : (쓱 보고) 오랜만이다?
달수 : (작게) 아는 분?
지애 : 어, 지화자라고... 내 고등학교 동창.
화자 : 친하진 않았어요.
달수 : (황당) 아.. 예.
화자 : 또 뭐 부탁하게? 넌 그럴 때만 오잖아!
지애 : 기지배.. 우리 남편 내일 진짜 진짜 중요한 면접이 있어서. 진짜 죽이는 거 하나만 부탁한다.
화자 : (달수 관상 지긋이 보더니) 딱 보니까 관운 좋은데? 왜 백수야?
지애 : (기막힌) 그걸 물어보려고 온 거 아니겠니? 넌 니가 대답해줘야 할 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
화자 : (슬쩍 째려보고 쌀 던지며) 다른 건 문제 없는데. 마누라 복이 없네. 와이프랑 갈라서야 뭐가 풀려도 풀리겠어.
달수 :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아.. 그래요?
지애 : (째려보고)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일 제대로 철썩 붙을 걸로 하나 만들어 줘 봐. 그런 거 있잖아 왜.
화자 : 있지. 그런데... 10만원.
지애 : 얘는! 2만원.
화자 : 너무 저렴하면 신도 자존심 상해서 안 붙어. 7만원.
지애 : 증말.... 3만원.
화자 : (표정 있다가) 5만원. 그 이하론 절대 안돼.
지애 : 알았어 알았어. 대신 진짜 잘 돼야 돼.
달수 : 여보. 난 이런 거 필요 없...
지애 : 빨리 해줘. 우리 오늘 바빠.
달수 : 또 어딜 갈라구?
#36. 고급 백화점 양복코너 (D)
양복을 입어보고 있는 달수. 옆에는 지애.
지애 : 좋네. 이걸로 할까?
달수 : (가격표 보더니) 가격표.. 보고 얘기하는거야?
지애 : (태연) 응.
달수 : 이걸 사겠다고? 당신 뭐.. 복권 당첨됐어?
지애 : (점원 보며) 여기요. 이걸로 주세요.
달수 : (좋긴 하지만 걱정스럽고)
#37. 고급 백화점 구두코너 (D)
반짝이는 구두까지 신어보고 있는 달수.
달수 : (영 불안한) 이것도 사겠다구? 당신.. 진짜 왜 그래.
지애 : 그럼 면접 보는데 후즐근하게 입고 갈거야? 걱정 말래두 그러네. (계산대로 가며) 얼마죠?
점원 : 네. 29만 8천원입니다.
지애 : (카드 꺼내며) 일시불로 해주세요.
달수 : (얼른 와서 작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점원 : (카드 긁더니 갸웃) 고객님.. 이 카드가.. 안되는데.. 혹시 다른 카드..
지애 : (표정 있다가 얼른 고고하게 웃으며) 아.. 카드 마그네슘이 손상 됐나보네요.
점원 : ...?
달수 : (얼른) 여보. 마그네틱.
지애 : (수습) 그래. 마그네틱. 나도 알아. (다른 거 꺼내며, 도도) 이걸로 해주세요.
#38. 지애 집 안방 (N)
달수, 조심스럽게 옷장 안에 양복을 건다.
지애는 옆에서 스카치 테이프를 찌이익 뜯고 있고.
달수 : (흐뭇) 나.. 당신이 이렇게까지 날 생각해 주는지는 몰랐어. 새양복에..새구두에... 당신 돈도 없는데.
지애 : (대꾸 없이 찌이익 스카치 테이프 뜯고)
달수 : 근데 당신 뭐해?
지애 : (새구두를 뒤집더니, 구두 바닥에 스카치 테이프를 촘촘히 붙이기 시작한다)
달수 : 뭐하냐고.
지애 : 보면 몰라. 먼지가 안묻어야 환불 받을 때 문제가 없지. 내일 하루 딱 신고 스카치테이프만 딱 뜯어서 가져가면 완전 새구두야.
달수 : (김새고) 환불 받게?
지애 : 그럼 사냐?
달수 : 양복은?
지애 : 말해 뭐해. 텍 절대 뜯지 마.
달수 : (그럼 그렇지..) 알았어. 근데 나.. 내일 면접 보러 가야 되나?
지애 : (스카치 테이프 붙여가며) 가야지 그럼! 가서 장렬하게 전사하더라도.. 할건 하고 와. 비겁하게 피하지 말고.
달수 : 그래. 알았어. (표정)
#39. 베란다 (N)
베란다에 놓인 긴 의자. 지애와 달수가 무릎을 끌어안은 채 나란히 앉아 컵에 따라진 맥주를 마시고 있다.
달수 : 나 때문에.. 오늘 힘들었지.
지애 : 말이라구 해 그걸? 부적에 새옷에 새 신발에... (맥주 홀짝)
달수 : 당신 말대로, 잘 안되더라도 내일 최선을 다할께.
지애 : (그런 달수 보다가) 어렸을 때는 사는 게 진짜 만만했는데. 살수록 왜 이러냐?
달수 : (표정)
지애 : 인생이라는 게 있잖아. 아무리 찔러도 절대 안 넘어오는 그런 남자 같애. 너무.. 팍팍하고 냉정해.
달수 : 당신이 찔러서 안 넘어온 남자도 있었어?
지애 : (! 표정 위로)
<플래쉬> 과거. 무대 위의 화려한 지애. 환호성 하던 남자들.
현재의 지애, 표정 위로 그때의 환호성이 메아리치고.
지애 : (아련한) 없었지. 안 찔러도 다 넘어왔지 그땐.
달수 : (맞장구쳐준답시고) 그러게... 지금이야 당신이 이모냥 이꼴이지만. 그땐 잘나갔지.
#40. 지애 집 거실 (N)
베란다 쪽에서 기겁해서 뛰쳐들어오는 달수. 맥주병 목 잡고 뒤쫓아오는 지애.
지애 : 이 모양 이꼴? 이 모양 이꼴?
달수 : 여보.. 내 말은 그게 아니고... 그거 내려놓고 해 내려놓고!!
빙글빙글 돌며 쫓고 쫓기는 두 사람.
#41. 회사 외경 (D)
#42. 회의실 앞 (D)
새양복에 새구두를 신은 달수. 회의실 앞 의자에 잔뜩 긴장한 채 앉아 있는데.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온다.
딱 봐도 좀 뺀질하고 재수없게 생긴 공영민. 달수를 흘낏 보더니 바로 옆에 앉는다.
달수, 가볍게 웃으며 목례하는데. 쌩..외면하는 영민.
달수 표정.
이때 회의실에서 나오는 여비서.
여비서 : 공영민씨? 온달수씨? 들어오십시오.
영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일어나 들어가고.
달수, 주머니에서 황급히 우황청심환 꺼내 우적우적 깨물어 먹다가 켁... 토할 뻔 하는.
겨우 꿀꺽 삼키고 얼굴 벌개져서 들어가는 달수.
#43. 회의실 (D)
달수와 영민이 들어선다.
반짝반짝 빛이 날 정도로 말끔하고 날카롭고 차가워 보이는 회의실 분위기.
꽤 넓은 회의실 안에 달랑 세명의 인사위원들이 앉아 있고.
청문회하는 것처럼 영민과 달수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영민은 인사부장과 눈빛 슬쩍 교환하고. 여유롭게 자리에 앉는데.
잔뜩 긴장한 달수는 자리로 가다가 미끄덩.. 넘어질 뻔.
구두 밑바닥에 다닥다닥 붙여놓은 스카치테이프가 문제다.
겨우 수습하며 자리로 가서 털썩 소리나게 주저앉는 달수.
무표정하게 그 모습 보는 준혁.
#44. 회사 앞 정문 (D)
주변 살피고 슬금슬금 다가오는 지애. 통유리에 슬쩍 엿을 붙이더니. 그 옆에 부적까지 탁 붙이고. 그 위에 침 바르는데.
그 모습 보고 질겁해서 달려오는 경비.
경비 : 아줌마. 지금 여기서 뭐해요? (부적과 엿 보고 질색하며) 이게 뭐야. 당장 떼요.
지애 : 아저씨. 잠깐만요. 이거 잠깐만.. 10분만요.
경비 : 안돼요. 남의 회사 앞에서 뭐하는 거에요? (떼내려고)
지애 : (막으며) 아 그럼 5분만요. 진짜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요. 정문앞에 딱 붙여놔야 한다고 했는데.
경비 : 여기가 무슨 수능장이에요? 붙여놓긴 뭘 붙여놔? 이거 다 안 떼?
지애, 경비와 옥신각신하는데.
그 뒤로 리무진 멈춰서고. 다른 경비들과 직원들, 얼른 일렬로 인사하는.
태준 내리고. 비서 그 옆으로 붙어서 가는데.
경비와 지애가 싸우는 모습이 저만치 보인다.
지애, 경비 손을 막으려다가 얼굴 추하게 떠밀리고. 그러면서도 막무가내로 부적을 지키려고 아둥바둥.
태준, 그냥 지나치려다 멈칫하고 다시 보면. 분명 지애다.
#45. 사장실 (D)
태준, 들어오고. 그 뒤로 따라 들어오는 비서.
태준 : 지난번에 주차장에서 접촉사고 난거 말이야.
비서 : 아.. 네. 그건 전혀 신경쓰실 거 없습니다. 보험 쪽에서 다 알아서 처리해줄 겁니다.
태준 : 피해자가 입원해 있다 그러지 않았나?
비서 : 네.
태준 : (표정)
비서 : 무슨... 문제라도..?
태준 : (표정 위로)
<플래쉬>
지애 : 나 뒷목이 이상해요. 목뼈.. 아니 척추에 이상이 생긴 거 같아.. 아야... 속이 미쓱거리는 게.. 뇌가 놀랬나..?
맞다. 뇌가 충격받았나봐.
엄살 떨며 생난리 치던 지애 모습 떠오르고.
태준 : 고 아줌마.. 괘씸하네..?
비서 : 네?
태준 : 아니야. 보험사에 연락해서. 피해자 입원해 있다는 병원이랑 병실 좀 알아봐. 상태 어떤지도.
비서 : 네.
#46. 회의실 (D)
달수와 영민이 나란히 앉아있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홍식 : 왜 우리 퀸즈푸드에 입사하려고 마음 먹었는지, 그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
영민 : (참 또랑또랑하게) 사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이 자리에 계신 박수동 부장님게서 제 외삼촌이십니다.
전 오히려 그래서 이 회사로 오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인사부장 : (적극 동조한다는 듯이 크게 끄덕이는)
영민 : 제가 지원한 걸 두고, 내정이니 뭐니 말도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제 외삼촌께서는 혈연 따위에 이끌려
중요한 결정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 점을 믿었기 때문에 경력사원에 지원을 하게 된 겁니다.
일동 : (표정)
영민 : 누구보다도 공평한 점수를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인사부장 : (그럼그럼... 하는 눈빛으로, 영민에게 점수를 체크하는데 만점이다)
영민 : (또랑또랑) 외삼촌을 비롯해 퀸즈건설과 그룹 쪽에도 집안 많은 어른들이 계시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저는 이 회사를
제 회사라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다른 곳에 몸담고 있을 때도 저는 언젠간 퀸즈푸드로 돌아갈 거라고....
(어쩌고 저쩌고 유창한데)
달수 : (영민의 달변을 힐끗 보는 위로, off) 자식... 거 말 많네. 왜 들어오긴 왜 들어와. 먹고 살려고 들어온 거지. 먹고 살려고...
인사부장 : 온달수씨는 왜 우리 회사에 지원한 겁니까?
달수 : (화들짝 놀라고, 얼결에) 먹고 살려고....
인사부장 : (설핏 비웃음)
달수 : 아니 저기.. 그게 아니라... 이 회..회사가 왠지 적성에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워낙에 먹는 쪽으론 재능이 있거든요.
미각도 예민하고.
인사부장 : 자네가 무슨 대장금이야? 미각 타령하게?
달수 : (주눅 들고)
홍식 : 그전에도 여러 회사의 기획팀에 있었던 걸로 아는데 퇴사의 이유는 뭔가?
달수 : 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인사부장 : 이 회사도 조직인데. 들어오면 또 적응 못하겠지. 안그래?
달수 : 아뇨. 이번엔 다릅니다. 저도 몰릴대로 몰려있고. 절박하기 때문에. 들어만 갈 수 있다면,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인사부장 : (비아냥) 여기가 무슨.. 궁지에 몰린 쥐새끼들 받아주는데도 아니고...
홍식 : (나무라듯) 박부장..
인사부장 : 아.. 죄송합니다. 저희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아서.
준혁 : (날카로운 눈빛) 기획부장 한준혁입니다. 두분 모두에게 질문 드리죠.
영민, 달수 : (표정)
준혁 : 현재 퀸즈푸드에선 메이저 방송사들을 통해서 다양한 방식의 광고전략을 펴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영민 : (얼른 대답하는) 네. 퀸즈푸드는 얼마전에 티켓 투 더 문에 출연해 주가를 올렸던 국민요정 오승아씨를 전면에 내세워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메이킹하는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인사부장 : 우리 기획부장이 광고 쪽 전공이거든. 그런 쪽으론 감이 아주 탁월해.
준혁 : (기분 나쁘지 않은데)
달수 : (조심스럽게) 뭐 내용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데요. 시간대 편성에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동 : (보면)
준혁 : 문제라니 무슨?
인사부장 : 구체적인 근거를 한번 대보지 그래?
달수 : (아무 말 못하고)
준혁 :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경솔하시군요.
인사부장 : (설핏 비웃음)
홍식 : (표정)
준혁 : (펜 들어 달수 이름 옆에 체크하려고 하는데)
달수 : M채널 월요일 기준으로 현재 퀸즈푸드의 기업 이미지 광고는 15회입니다. 새벽 뉴스전 CM. 아침 토크쇼 후CM.
스포츠 프라임 전CM. 경제타임 전CM. 전국화제집중 후CM ... (줄줄줄 읊어대는)
일동 : (표정들)
달수 : 병원현장 전CM... (계속 읊어대는 표정 위로)
(플래쉬컷)
츄리닝 차림의 달수, 소파에 늘러붙어 배를 북북 긁으며 하루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모습 위로.
달수 읊어대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달수 : ...... 그리고 마감 뉴스 후CM. 이상입니다.
일동 : (잠시 말을 못하고)
홍식 : (준혁 보면서) 저게 다 맞는건가?
준혁 : 글쎄요. 저도 모든 시간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
홍식 : (옆에 서 있는 비서에게) 광고 시간표 좀 가져와 보지?
(컷 튀면)
홍식,준혁,인사부장,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모두 정확히 일치하고.
놀란 듯 동시에 고개 들어 달수를 본다.
홍식 : 이걸 일부러 외웠나?
달수 : 아닙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보니까....
홍식 : 저절로 외워졌다?
달수 : 네.
준혁 : (표정 있다가) 이걸 외웠다는 게 크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래서? 이 시간대 편성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죠?
달수 : 현재 퀸즈푸드의 광고 시간은 삼사십대 성인 남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뉴스와 토론프로그램, 시사교양 프로그램,
스포츠 시간대에 집중 배치 돼 있습니다. 주부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의 광고 시간대가 오히려 밀리는 기분입니다.
준혁 : 그건 탤런트 오승아씨가 30대 이후 남성들이 선호하는 모델이라서...
달수 : 물론 그렇긴 하지만,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층은 주부층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경쟁사인 P사에서는
신제품 광고에 주부들이 선호하는 남자 모델을 기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홍식 : 그건 어떻게 알았나?
달수 : 제가 주부모임사이트 정회원인데. 거기서 아줌마들이 그러더라구요.
홍식 : (표정 있다가 체크하고)
준혁 : (표정 있다가 체크하고)
인사부장 : (괜히 다른 사람들 꺼 넘겨보다가 체크하는)
#47. 회의실 앞 (D)
잔뜩 긴장한 표정의 달수와 영민이 나온다.
달수 : 힘드네요. 하하.. 수고하셨...
영민 : (굳은 표정으로 쌩하니 가 버린다)
달수 : (표정)
#48. 회사 앞 (D)
회사앞 일각 벤치. 기도하는 마음으로 엿과 부적을 들고 기다리던 지애. 달수를 보자 벌떡 일어난다.
지애 : (다다다 달려가서) 이제 오는거야? 어떻게 됐어? 뭐 뭐 물어봐? 대답 잘 했어? 붙을 거 같애?
달수 : (신발 얌전히 벗으며) 신발.
지애 : 그래, 맞다 신발. (백화점 쇼핑백에서 헌구두 꺼내서 주면)
달수 : (헌구두 신으며) 밑창에 붙인 거 때매 미끌미끌해서 자빠질 뻔 했어.
지애 : (새구두 밑창에서 유리 테이프 찍찍 뜯으며) 어떻게 됐냐구. 대답은 잘 한 것 같애?
달수 : 글쎄. 그게.. 잘한 것 같기도 하고.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지애 : 그런 게 어딨어. 시험 치고 나오면 딱 감이 오잖아. 잘봤다, 못봤다.
달수 : 당신은 그랬어?
지애 : 나야.... 늘 한줄로 쭉 찍고 나왔으니까 뭐. 기분이 늘 일괄적이었지.
달수 : 잘났다.
지애 : 결과는 언제 나온대?
달수 : 내일 개별연락 주기로 했어.
지애 : (나름 초연하게) 이제 어쩌겠어. 나침반은 던져졌는데.
달수 : 여보. 주사위가 던져졌겠지.
지애 : (표정 있다가) 지금 그게 중요해? 암튼 먼저 들어가 있어. 나 백화점 가서 이거 싹 환불해 가지고 갈테니까.
#49. 회의실 (D)
홍식, 인사부장, 그리고 준혁이 나란히 앉아 있고.
홍식 : 각자 점수표를 제출하도록 하지.
하며 홍식의 점수표를 제출하면. 항목별 점수의 평균. 영민에게 6점. 달수에게 9점을 주었고.
인사부장, 그거 보고 자신의 점수표를 제출하는데. 영민에게 10점. 달수에게 7점을 주었다.
홍식 : (보고는) 이렇게 되면 합이 15점으로 같은데.
인사부장 : (표정)
홍식 : 한부장이 매긴 점수가 승부처가 되겠구만. (흥미롭다는 듯이 준혁을 보면)
인사부장 : (표정)
준혁 : (표정에서)
준혁이 내민 점수표 내민다. 점수표를 뒤집기 직전에서.
#50. 사장실 (N)
태준, 인터넷으로 만화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는데. 비서가 들어오고.
태준, 얼른 경제 신문 뉴스창을 클릭하는.
태준 : (태연) 응? 무슨 일?
비서 : 아까 말씀하셨던 접촉 사고 건 말씀인데요.
태준 : 어. 그래. 알아봤나?
비서 : 네. 안 그래도 보험 쪽에서 암행어사 실사도 나가보고. 병원측 얘기도 들어봤는데. 아무래도 나일롱 환자인 것 같다는데요?
치료도 거의 안 받고 있고. 병실도 안 지키고 있구요.
태준 : (그럴 줄 알았다..) 그래?
비서 : 조치를 취할까요?
태준 : 아니, 내버려 둬. 내가 알아서 할께.
비서 : (의아하지만) 네.
#51. 동네 일각 (N)
삼겹살 봉지를 달랑거리며 걸어가는 지애. 전화통화 중이다.
지애 : 응, 여보. 옷이랑 구두 다 환불받았어. (사이) 재주 좋기는 뭘. 지금 삼겹살 사가지고 가니까, 상추랑 깻잎이랑 다 씻어놔.
어? 다른 전화 들어온다. 끊어. (버튼 누르고) 여보세요?
태준off : 밖이신 것 같네요?
지애 : 누구세요?
태준off : 그때 접촉사고...
지애 : (헉...) 아, 네. (갑자기 앓는 목소리로) 웬일이세요?
#52. 사장실 (N)
태준, 책상에 다리 올려놓고 작은 게임기 하면서 통화중.
태준 : 많이 아파서 장기입원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니. 목소리는 괜찮으시네요?
지애off : (끙끙 앓는소리) 무슨 소리세요. 지금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고. 장기 쪽 손상까지 의심갈 정도로.
얼마나 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태준 : 아.. 그러세요? 제가 인간적으로 문병도 한번 못가본 게 죄송해서요. 지금 좀 가려고 하는데.
#53. 동네 일각 (N)
지애 : (헉 놀라서) 네? 지..지금요? 아니 지금.. 시간도 너무 늦었고... 다음에 밝은 날 오시지 그러세요.
태준off : 아뇨. 생각났을 때 가야죠. 지금 곧 출발할테니까 이따 병원에서 뵙죠. (딸깍)
지애 : 여보세요? 여보... 아우... 뭐야.... (시계 보더니 뒤돌아서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하는)
#54. 병원 앞 (N)
지애, 땀범벅 돼서 열심히 뛰어가는. 전화 오면 받고.
지애 : 나 지금 집에 못 가. 갑자기 그 백수가 병원으로 오겠다잖아. 끊어. 숨차 죽겠어. (끊고 들어가는)
#55. 병실 (N)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지애, 헐레벌떡 들어오고.
지애 : 이게 진짜 뭐하는 짓이야.
삼겹살 봉지를 냉장고에 집어넣고. 얼른 침대로 쏙 들어간다.
뒤척뒤척하면서 시계 보는 지애.
(컷튀면)
코골며 잠들어 있는 지애. 번쩍 눈 떠 보면 아무도 없고. 뭐야..싶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나고.
지애, 열받아 전화해 보는.
지애 : 여보세요? 네. 여기 교통사고 피해잔데요. 안오세요?
태준off : (태연) 아~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요. 못갈 것 같아요.
지애 : 뭐에요? 아니 무슨 급한 일인데요?
태준off : 오늘이 불가마 동호회 정모날인데 깜박하고 있었네요. 그럼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딸깍)
지애 : 여보세요. 여보... (후... 열받고) 장난해? 이럴 거면서 뭘 오겠다고 해서. 사람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아후 이런 불가마 같은 놈.
다시 꼬르륵.. 배고프고.
지애, 다시 전화하는.
지애 : 당신이야? 아직 밥 안먹었지?
#56. 병원 옥상 (N)
지애, 달수, 민주까지 평상 위에 앉아서 삼겹살 구워 먹고 있다.
민주는 담요를 둘둘 말고 앉았고.
달수 : 좀 춥긴해도, 이렇게 먹으니까 맛있네.
민주 : 재밌어.
달수 : 그지? (귀여워서 볼 꼬집고) 여보. 소주 한잔?
지애 : 그래. 따라봐. (종이컵 내밀어 받고)
민주 : 나는?
지애 : 우리 민주는... (종이컵에 사이다 따라주는)
달수 : 건배할까 그럼?
지애 : 아빠의 취직을 위하여.
달수 : 여보. 그건 좀.. 부담스럽다. 나 체할 것 같애.
지애 : 그래? 그럼 우리 쥐구멍에도 볕뜰 날을 위하여. 일동 건배!!
하얀 입김과 고기 타는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57. 준혁 집 서재(N)
준혁, 컴퓨터 보며 뭔가 자료 정리하고 있는데.
들어오는 봉순.
봉순 : 여보. 컴퓨터 키보드 어때요? 손목이 좀 편하지 않아요?
준혁 : 어. 그러네.
봉순 : 이번에 새로 개발된 거라 그래서. 구매해 봤어요. 손목과 어깨에 훨씬 힘이 덜 가는 구조라,
당신처럼 장시간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좋대요.
준혁 : 응. 고마워.
봉순 : (표정 있다가) 어떻게 됐어요? 지애..남편? (사이) 뭐 당신이 알아서 하겠지만.. 난 별로.. (말하려는데)
준혁 : (OL) 당신 말대로. 내가 알아서 해. 커피 부탁해.
봉순 : ...네. (나간다)
#58. 방문 앞 (N)
문닫고 나오는 봉순. 왠지 모를 모욕감.
#59. 회사 외경 (D)
#60. 인사부 (D)
로보트처럼 예쁘게 생긴 여직원이 서류를 들고 와서 자리에 앉는다.
서류를 펼치는 여직원. 전화를 건다.
여직원 :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퀸즈푸드 인사관리팀입니다.
그리고 화면이 삼등분된다.
윗화면에는 인사부의 여직원. 아랫화면으로는 달수와 영민이 각각 보인다.
여직원 : 귀하께서는 저희 퀸즈푸드에서 실시한 경력직 사원 모집에 응시하셨고. 그 결과....
달수와 영민, 각각 긴장한 모습.
여직원 : 3개월 인턴사원의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인턴사원은 정규직이 아님을 알려드리며. 3개월의 인턴 과정 후. 실적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를 수락하신다면. 내주 월요일부터 기획팀으로 출근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M) 환희의 - 달수는 뛸 듯이 기뻐하고. 영민은 실망하는데서.
#61. 병실 (D)
앞의 삼등분씬이 병실씬으로 이어지며.
지애, 병원 밥 먹던 중이었던 듯 숟가락 들고 초긴장.
달수가 좋아라 날뛰자. 지애도 덩달아 날뛰며.
지애 : 뭐래?뭐래? 합격이래? 응?
달수 : 완전..합격은 아니고. 반합격이라고나 할까..?
지애 : 그게 뭐야. 반합격이.
달수 : 인턴사원으로 3개월동안 일하래. 실적 봐서 정규직으로 돌려준다구.
지애 : 뭐? 그럼.. 인사부장 조카는?
달수 : 그 사람도.
지애 : (툴툴대는) 그게 뭐야. 합격한 것도 아니네 그럼.
달수 : 여보.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인사위원이 세명인데. 한명은 내 경쟁자의 외삼촌이었고. 나머지 한명은.
나랑 멱살잡이했던 사람이었다구. 이런 불리한 환경 속에서. 이 정도 성과를 올린 건 대단한거야.
지애 :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네.
달수 : 나 다음주부터 출근한다!!! (팔짝팔짝 뛰면)
지애 : 우리 남편 백수 아니다!!! (손잡고 덩달아 팔짝팔짝)
#62. 차 안 (D)
지애, 끊임없이 전화하고 있다. 달수는 운전중.
지애 : 그렇다니까. 엄마 내가 뭐랬어? 온서방 믿어보라 그랬지? 그 자리가 보통 자린 줄 알아? 아무나 못가는데야.
달수 : (으쓱)
(컷 튀면)
지애 : 네 어머님.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좋은 날이 오려나봐요. 그럼요 고생 끝났죠.
달수 : (약간 부담스럽고)
(컷 튀면)
지애 : 응 올케. 엄마한테 얘기 들었구나? 그냥... 퀸즈그룹 알지? 대기업은 대기업이지. 연봉? 뭐.. 받을만큼 받겠지? 아하하하.
달수 : (표정 굳는)
지애 : 그래. 그럼 나중에 또 통화해. (하면서 수첩 뒤적이는데)
달수 : 잠깐만. 여보.
지애 : 왜.
달수 : 아니.. 너무 오바하지 마. 삼개월 뒤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잖아.
지애 : 모르긴 뭘 몰라. 무조건 잘해서 누릉지처럼 콱 눌러붙어야지. (수첩 뒤적이고) 아. 미영이 기지배한테도 알려줘야지.
(전화하고) 어. 미영이냐?
#63. 퀸즈팰리스 앞 (D)
달수 차가 덜덜거리며 멈춘다. 지애 떡케익 들고 내리는.
지애 : 갈 땐 지하철 타고 갈테니까 먼저 집에 가 있어.
#64. 영숙 집 앞 (D)
지애, 조심스럽게 초인종 누르면. 잠시 뒤 영숙이 고개 쏙 내민다.
영숙 : 어머나. 왔어?
지애 : 네 사모님. (90도 꺾는) 배려.. 감사드립니다.
영숙 : 무슨.. 정식사원도 아니라면서.
지애 : 그게 어디에요 사모님. 감사의 뜻으로.. 떡케익 좀 만들어 봤어요.
영숙 : 자기가 직접?
지애 : 네. 제 특기거든요.
영숙 : 맛있겠다. 냄새 좋은데? 들어와.
지애 : (들어가고)
#65. 영숙 집 거실 (D)
지애, 만면에 미소 띠며 들어오다가. 멈칫한다.
봉순이 여유롭게 앉아서 차 마시고 있다가 지애를 본다.
영숙 : 응. 한부장네가 놀러와서. 앉어.
지애 : (표정) 네.
봉순 : 인턴직 하기로 했다며? 얘기 들었어.
지애 : 응. (앉는)
영숙 : 차 마셔야지?
지애 : (엉거주춤) 아니에요 사모님. 제가..
영숙 : 아냐아냐. 아줌마 시킬거야. 둘이 얘기 나눠. (주방으로 가며) 아줌마? 허브티 좀 더 내려 주세요.
지애와 봉숙. 서로 어색하고 팽팽한 정적.
봉순 : 우리 그이.. 화 많이 났었어.
지애 : (보면)
봉순 : 내가 설득하느라 애 좀 먹었어. 우리 그이.. 내 말이라면 뭐든 오케인데. 이번엔 좀 그렇더라구.
그래도 내가 니 처지..그러니까.. 좀 도와주자고...
지애 : (자존심 상하고) 내 처지가.. 뭐?
봉순 : (웃으며) 뭐긴 뭐야. 남편 백수에.. 너 알바하면서 사는 처지잖아. 솔직히. 힘들지 않아?
지애 : (후.. 열받고)
봉순 : 물론.. 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아직도 옛날 생각이나 하면서 건방 떠는 것 같긴 하지만... (웃는)
지애 : 야! 너...
봉순 : 너? (훗) 이거 봐. 아직도 뭘 모르잖아. 얘. 난 니 남편 상사 부인이야.
지애 : ....
봉순 : 물론 3개월이지만. 임시직이라고 해서. 위 아래도 몰라보면 되겠니?
게다가... 3개월 후에 니 남편을 정규직으로 전환할지.. 짜를지 결정할 당사자는..... 내 남편. 한준혁 부장인데?
지애 : (표정)
봉순 : 사적으론 너랑 나랑 고교동창이지만. 공적으론 안 그렇잖니? 앞으론 호칭 문제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서롤 위해서.
지애 : (겨우 참는다) 그래.
봉순 : (아직도 반말이냐는 듯 빤히 보면)
지애 : (버럭) 사람들 앞에선 존대해 주면 될 거 아냐!
영숙 : 왜 그래?
지애 : (깜짝 놀라며, 순한 양) 아니에요 사모님.
영숙 나오고. 그 뒤로는 아줌마가 차 쟁반을 들고 따라온다.
영숙 : 떡케익 잘라왔어. 어쩜 이런 걸 만드는 재주가 다 있어? 한부장네두 먹어봐.
봉순 : 네. (포크로 찍어 우아하게 조금 먹고)
영숙 : 참. 이번주 토요일에 직원단합대회가 있는데...
지애 : 단합대회요?
영숙 : 일년에 두번씩 하는건데. 꼭 참석해. 정식으로 신고식도 하고.
지애 : 네.
영숙 : 공영민씨라구.. 이번에 자기 남편이랑 같이 인턴직 하게 될 사람 있잖아. 그 사람 와이프도 올 거라고 하더라구.
지애 : (표정) 그래요?
영숙 : 첫인상이 중요하잖아. 사람들 의식 안하는 척 하면서도. 은근히 두 사람 비교할 거라구.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지애 : (결연) 네!!
#66. 지애네 집 주방 (D)
마구 어질러놓고 김밥 싸고 있는 지애. 그 옆에선 주워먹고 있는 민주와 달수.
지애 : 그만 좀 먹어. 싸놓으면 다 먹고. 다 먹고.
달수 : 어차피 먹으라고 싸는 거 아냐?
지애 : 재료 모자라니까 그렇지. 사모님들꺼랑 가져가려면 많이 싸야 되는데.
지애, 김밥을 솜씨좋게 썩썩 썰어내더니. 찬합에 척척척 넣고.
이쁜 방울토마토로 데코레이션까지 끝낸다.
지애 : (후... 보며) 이 정도면 됐나? (하고 찬합을 척척척 쌓는다)
달수 : 우와.. 이게 몇단짜리야?
지애 : 4단. 이 정돈 돼야 다른 사람들이랑 나눠 먹기도 하면서 인심쓰지.
달수 : 당신.. 최고!
민주 : 엄마.. 최고!
지애 : (흐뭇한데)
#67. 단합대회 장소 (D)
지애, 달수, 민주와 함께 도시락과 돗자리를 들고 걸어온다.
달수 : 우리 너무 오바해서 잘해왔다구.. 눈총 받는 거 아냐?
지애 : 원래 잘난 사람들은 튀게 돼 있어. 군대일학이라고 하잖아.
달수 : ..... 군계일학이겠지.
지애 : (째려보고) 민주야. 좀 이따 밥 먹을 때 부를테니까. 조오기 애들 있는 데 있지? 거기 가 놀구 있어. 친구들도 좀 사귀구.
민주 : 응. (하고 놀이터 쪽으로 간다)
지애 : (흐뭇하게 보다가 킁킁..) 근데.. 이게 무슨 냄새야?
지애, 저만치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입 떡 벌리고 놀란다. 달수도 놀란다.
통돼지 바비큐가 구워지고 있다. 그 옆에는 영민과 영민 와이프가 나란히 앞치마를 두르고 고기 자르고 있고.
지애 : 저게.. 뭐야?
달수 : 통돼지 바비큐 같은데?
지애 : 그걸 누가 몰라서 묻냐구. 저게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단 얘기잖아. (잔뜩 긴장해서 다가가는데)
영숙 : (우아하게 다가오며) 우리 공영민씨 댁은 아니.. 어쩜 이런 걸 준비할 생각을 다 했을까?
영민와이프 : 처음으로 인사 드리는 건데. 어떻게 하면 사모님들의 입맛을 맞출 수 있을까 하구.. 고민 좀 했어요.
봉순 : (얼른 옆으로 오며 펌프해주는) 사모님. 이거 보세요. 공영민씨 부인이 대하찜까지 준비했지 뭐에요?
영숙 : 대하찜?
이슬, 정란 : (놀라서 보고)
지애 : (멀리서 보며 입 딱 벌어지는) 대하찜?
영민와이프 : (겸손하게) 야채 샐러드 과일 샐러드는 각자 드실 수 있게, 작은 접시에 따로 만들어 뒀어요.
영숙 : 어머나.. 세상에.. 보통 정성이 아니네.
봉순 : (힐끗 지애 쪽 보더니) 저기.. 온달수씨 부부도 오네요.
영숙 : 이제 와?
지애 : 늦어서 죄송해요. (라며 도시락을 슬쩍 뒤로 숨기고)
봉순 : (놓치지 않고 보는) 그건 뭐야?
지애 : 어?
봉순 : 뭐 싸온 거 같은데. 내놔봐. 먹고 시작할거야.
지애 : 아니.. 이따가...
영숙 : 궁금하네. 우리 천지애씨 솜씨면.. 기대 되는데?
지애 : 네? (부담백배)
영숙, 봉순, 이슬, 정란, 영민와이프까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몹시 부담스런 지애. 표정 있다가 할 수 없이 찬합 뚜껑을 여는데.
김밥이 뛰어오느라 이리저리 밀려서 모양이 영 안난다. 약간씩 옆구리 터지기도 했고.
다들 말은 안해도 실망하는 분위기.
봉순 : 그게.. 다야?
지애 : 어?
영숙 : (약간 새초롬해지며) 맛있겠네. 많이 먹어. (하더니 영민와이프 쪽으로 싹 가며)
근데 바비큐 소스는 뭘 바른거야? 달콤한 게 맛있다.
지애 : (표정)
봉순 : (피식 웃고 영숙 따라가고)
정란 : (작게 한다는 말 다 들리고) 난 또.. 괜히 긴장했네.
이슬 : (가면서 수근수근) 그러게. 난 그래도.. 장어덮밥에 치킨샐러드는 해왔는데. 김밥은 좀 그렇다. 뭐.. 유치원 소풍 가?
지애 : (표정)
달수 : (다들 가고 나니까 그제야 큰소리치며) 아니.. 저 아줌만 무슨 말을 저렇게... 해?
내가 진짜 한소리 하려다가. 당신 봐서 참은거야.
지애 : (풀죽어 뚜껑 닫으며) 됐어. 내가 여기 분위길 파악 못한 게 잘못이지. 이 정도면 당신 기 살려줄 줄 알았는데.
달수 : 기? 여보! 걱정 마. 난 이런 걸로 기 안 죽어!! (큰소리 치는데)
저쪽에서 바비큐 굽는 연기 모락모락. 주변 사람들 하하호호 웃고.
영민과 영민 와이프 사람들과 화기애애하게 인사 나누는 모습 보이고.
지애, 달수, 확 기 죽는 표정 위로.
안내방송 : (E) 알려드리겠습니다. 여자부 피구 경기가 곧 진행되겠습니다.
여사원 여러분과 가족 여러분은 모두 구령대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68. 놀이터 (D)
(E) 방송 소리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들 자기들끼리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고. 돗자리 위에 앉아 과자 등을 먹으며 놀기도..
민주 : (심심한지 두리번거리다가, 얌전히 앉아 영어 동화책 보고 있는 혁찬과 눈 마주친다) 안녕?
혁찬 : (나? 하는 듯 본다)
민주 : 너 영어 잘해?
혁찬 : (끄덕한다)
민주 : (옆으로 바짝 다가가 앉으며) 읽어봐 그럼.
혁찬 : (움찔하더니, 시키는대로 읽는다. 꽤 유창한 발음)
민주 : 우와. 너 영어 잘한다. 너 영어유치원 다녔어?
혁찬 : 영어유치원도 다녔고. 미국에서 살기도 했어.
민주 : 우와 언제?
혁찬 : 네 살부터 다섯 살까지.
이때, 리본 주렁주렁 달린 드레스 입은 공주풍의 여자 아이 오더니.
여자아이 : (민주 힐끔 보며) 야. 니네 아빤 뭐야?
민주 : (못알아듣고) 응? 우리 아빠 온달수씬데?
여자아이 : (답답하다는 듯) 대리냐고, 과장이냐고, 부장이냐고.
민주 : (멍하게 보면)
여자아이 : 아무 것도 아니구나? (비웃듯) 우리 아빤 부장님이야. (혁찬 가리키며) 얘네 아빠도 부장님이구.
민주 : (표정)
여자아이 : 혁찬아. 가자. 우리끼리 놀자. (팔 확 끌어당기면)
혁찬 : (애매한 표정으로 끌려가면)
민주 : (멍...)
#69. 운동장 스탠드 (D)
영숙, 가장 좋은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다. 그 옆으로 두어명의 이사 부인들 앉아 있고.
이사부인 : 그나저나. 올해도 사장님 사모님은 안오시나봐요?
영숙 : (선글라스 꺼내 끼며) 언제 이런 자리 오시는 거 보셨어요?
이사부인 : 뭐.. 우리야 편하지만. 참..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영숙 : 누가 아니랍니까? 요새 강사장 체제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 모양이던데. 안에서라도 좀 잘해줘야지 원.
#70. 일각 (D)
지애 피구공 들고 가는데. 준혁과 마주친다.
준혁 : 왔구나.
지애 : (몹시 깍듯이) 네 부장님. 요 며칠간 안녕하셨죠.
준혁 : 말에 어째.. 가시가 있는 것 같다?
지애 : 어머. 제 말에 가시가 있었어요? 부장님께 잘 보이려면 옷벗고 춤이라도 춰야 할 판에.
가시 박힌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꾸벅)
준혁 : (표정)
지애 : 참. 그리구요. 저희 남편 인턴으로라도 뽑아주셔서. 너어무 감사드립니다. (쌩하니 지나가면)
준혁 : (그 뒷모습 보며, 피식 웃는. 어쩐지 좀 아련한 듯 보는데)
어느새 저만치 뒤에서 보고 있는 봉순.
준혁이 지애를 보는 눈빛 보면서. 부글부글 끓는 봉순.
#71. 몽따쥬 (D)
# 운동장
피구 대열로 서 있다. 지애와 봉순은 각각 다른 팀이고.
호각 소리와 함께 경기 시작하는데.
봉순, 거의 우생순 선수처럼 공만 잡으면 펄펄 나는데. 봉순, 작심한 듯 지애만 맞춘다.
앞통수 뒷통수 계속 강타 당하는 지애. 이씨.. 아프고.
# 응원석
달수, 공으로 얻어맞는 지애 보면서 움찔움찔 안타깝고.
# 운동장
판이 바뀌어도 여전히 첫 희생타는 늘 지애고.
독이 오른 지애. 봉순을 맞추려고 있는 힘껏 공을 던져 보지만.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하고.
지애가 던진 공을 그대로 받아서 지애 안면을 강타해 버리는 봉순. 그대로 뻗어버린다.
# 응원석
여보! 하며 벌떡 일어났다가 주변 눈치 보고 앉는 달수.
# 운동장
지애,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는데. 코피가 쭉..
사람들 표정. 쪽팔리는 지애.
#72. 수돗가 (D)
지애 얼굴 씻고. 달수가 옆에 서서 돕는다.
달수 : (코에 휴지 꽂아주며) 여보 괜찮아? 완전 지대로 맞았지. 그렇게 맞고 쌍코피 안터진 게 다행이지.
지애 : (자존심 상하고) 그만해. 됐어.
달수 : 아니 당신은 무슨 운동신경이 그렇게 없어. 왜 계속 얻어맞아.
지애 : 아 조준사격이잖아 조준사격! 나만 계속 맞추려고 작정을 했는데 무슨 수로 피하냐고.
달수 : 이렇게 해 봐. 코피 멈췄어? 야. 그 여잔 웃기더라?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괜찮냐구 물어보지도 않냐?
지애 : 아후. 양봉순 니가 내 코피를 다 내고. 하하. 너 진짜 많이 컸다.
봉순OFF : 괜찮니?
지애달수 : (헉 해서 보면)
봉순 서 있고. 그 뒤로 이슬 정란 등도 있다.
지애 : (표정) 어. 괜찮아. (달수 질벅하며) 가봐 여보. 곧 축구한다면서.
달수 : 어. (인사하고 간다)
봉순 : (손 씻으며)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 그게 왜 그쪽에 가서 맞았는지 몰라.
지애 : 그래... 니가 뭐.. (했다가) 사모님이 뭐... 일부러 그러셨겠어요?
이슬 : (봉순에게 얼른 손수건 내밀어주며) 암튼 사모님 피구 실력은 여전하세요. 작년에도 VIP 타셨잖아요.
정란 : 올해두 뭐. 사모님 덕분에 우리팀 이겼으니까. 사모님은 어쩜 요리면 요리. 남편 내조면 내조.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으세요?
이슬 : 맞어. 사모님 학창시절엔 정말.. 남자들한테 인기 너무 많았을 것 같아요.
지애 : (듣다가 풋.... 웃고)
봉순 : (쳐다보는)
지애 : 어머. 아니에요. 전 그냥.. (풋 웃으며) 인기 많았어요. 제가 사모님 학창시절을 좀 알긴 알거든요. (다시 쿡...)
봉순 : 너 가봐야 하지 않니? 공영민씨 와이프는 아까부터 사모님들 시중 들던데.
지애 : 어. 가봐야지. 가볼께. (킥킥대며 가고)
이슬 : 왜 저래?
봉순 : (얄미워서 보는 표정)
#73. 단합대회 응원석 (D)
앞에 테이블도 있고. 운동장이 바로 내려다 보이며. 의자도 좋은 자리에 영숙이 앉아있다.
그 옆 자리로 봉순과 다른 부장 와이프들이 앉고.
영민 와이프는 영숙 앞 테이블에 바비큐며 대하찜이며 과일샐러드 등 음식을 계속 갖다 나르며 칭찬받고.
구석에서 아니꼬운 표정으로 과일깎는 지애. 민주가 오면 사과 하나 물려주며 저쪽 가서 놀라고 몰아내고.
#74. 운동장 (D)
축구 유니폼 입은 남자들. 팀별로 동그랗게 모여 있다.
준혁을 위시로 팀원들 모여 있고. 저쪽 팀으론 홍식을 비롯한 팀원들이 파이팅하고 있다.
준혁 : (팀원들에게) 다들 알지? 굳이 이기려고 하는 경기 아니라는 거?
일동 : (웃음)
준혁 : 첫골은 김이사님이 넣게 해드리자구. 그게 전통이었으니까.
하대리 : 퀸즈의 박지성인 제가 왜 참고 있겠습니까. 그 전통 안 깨려고 꾹 참고 있는 겁니다.
일동 : (또 웃고)
준혁 : 그렇다고 너무 티나게 그러지는 말고. 승부욕 대단하신 분인 거 알지?
일동 : 네!
준혁 : 그럼 다들 제 자리로..
일동 흩어지는데. 뒤늦게 헐떡이며 뛰어오는 달수.
달수 : 죄송합니다. 화장실 좀 다녀오느라..
준혁 : (별 말 안해주고 제자리로 뛰어가 버린다)
달수 : 뭐야. 작전 같은 거 없어? (궁시렁대면서 뛰어간다)
#75. 응원석 (D)
경기 시작한다.
봉순 : 올해두 첫골은 우리 김이사님이 넣으시겠죠?
영숙 : 아우.. 몰라. 다들 우리 이사님 봐주는 것 같애.
봉순 : 사모님두. 다들 얼마나 승부욕 강한 사람들인데요. 그럴 리 없어요.
영숙 : (흐뭇) 그런가? 하긴. 우리 이사님이 나이에 비해. 빠릿빠릿하긴 해. 경기 시작하네?
(하더니 선글라스 벗고. 망원경 들고 보는)
#76. 운동장 (D)
모두 약속한 것처럼 패스도 홍식에게만 하고. 길도 막 터준다.
심지어 홍식이 골대 바로 앞에서 하늘 높이 똥볼을 차도 격려해 준다.
‘이사님! 슛 멋졌습니다’ 라고 외쳐주는 식.
홍식이 차는 슛은 골기퍼도 크게 안 막으려고 막는 척 액션만 하는데. 그걸 못 넣고 자꾸 헛발질이다.
간발의 차였다면서 함께 안타까워해주는 남자들.
그런데 그런 분위기 파악 전혀 못하고 최선을 다해 뛰는 달수. 홍식의 볼을 태클 걸어 뺏기까지 한다.
남자들, 저거 뭐야!! 하는 표정들.
#77. 응원석 (D)
구경하는 여자들, ‘어머.. 왜 저래..’ 수근댄다.
이슬 : (소곤) 첫골 김홍식 이사님이 넣으셔야 하는거잖아.
지애 : (? 표정)
정란 : 첨이라 분위기 파악이 안되나보지.
이슬 : 그래두... 저쪽에 새로온 공영민씨 봐. 바로 분위기 파악하고 계속 이사님한테만 볼 주는 거. 척하면 척이지.
정란 : 그러게. 근데 온달수씬 왜 저래?
이슬 : 내 말이. 어우.. 눈치 너무 없다.
지애 : (말 듣는데 점점 초조해진다)
#78. 운동장, 응원석 (D)
그런데 달수, 지애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쌘돌이처럼 땀 뻘뻘 흘리며 종횡무진하고.
그런 달수가 거슬리는 일동.
달수, 기회를 보다가. 홍식의 공을 백테클로 뺏고. 그 바람에 발라당 자빠지는 홍식.
그러든가 말든가 자기 길을 열심히 가는 달수.
그 모습 보는 지애. 여보.. 안돼.. 하지 마.. 열심히 눈짓 손짓 해보지만. 보일 리가 없고.
이슬 : 어머어머. 어떡해요 이사님 넘어지셨어.
정란 : 허리다치신 거 아냐? 어머. 엄청 아프신가봐.
영숙 : 흠... (표정 안좋고)
그런데 업된 달수, 결국 그길로 내달리더니 중거리 슛을 쏜다.
시껍해서 안돼...벌떡 일어나는 지애.
홍식, 준혁, 영숙, 지애, 봉순 등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데.
철렁.... 골인 돼 버리고 마는.
지애, 비틀...
달수, 크게 흥분해서. 오바하며. 무릎 슬라이딩해서 기도한다.
그리고 같은 팀 사람들이 하이파이브라도 해 주길 바라며 손 쳐드는데.
다들 멍하게 홍식 보는. 홍식, 표정 어둡다.
그러든가 말든가 반지 세리머니를 하며 지애에게 키스 날리는 달수.
응원석 일동, 모두 지애에게 시선 몰리고.
얼굴 벌개진 지애, 저 웬수... 하며 잔뜩 찡그린 채 외면하는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