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4 성탄전야
본문: 누가복음2:10
제목: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으며 살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천사가 목사들에게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기쁨의 소식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25일이 새벽이면 들리는 카톡 소리라고 합니다.
25일이면 무슨 카톡이 옵니까?
바로 국민연금에서 오는 알림 톡인데
연금이 입금 되었다는 카톡소리입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000님 오늘은 무슨 통장으로
국민연금이 지급되는 행복한 날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려주는 카톡 알림소리가
그렇게 좋다고 합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합니다.
이번 달은 내일이 25일 성탄절이어서 24일 오늘 왔습니다.
저도 지난 3월 달부터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해서
그런 알림이 매달 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돈이 오는 소리이기 때문에 좋기는 하지만
그렇게 기쁘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시집간 딸이 집에 오는 것이 기쁘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기쁘고
아름다운 노을과 해 뜨는 아침을 보는 것이 기쁘고
산과 강과 바다가 만들어 내는 세상을 보는 것이 기쁘고
여행을 통해 다른 문화 다른 산하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이 기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기쁘며
어떤 일이 기쁨이 됩니까?
오늘 본문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을 때
뜬금없이 들려준 소식입니다.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쁨의 소식은 목자에게만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실제로 연금이 오는 소식은 나에게만 기쁜 소식입니다.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슬픈 소식입니다.
많이 받는 사람에게는 기쁜 소식일지 몰라도
적게 받는 사람은 차별이 느끼어 저서
슬픈 소식일지 모릅니다.
아예 연금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적게 받는 것이 슬픔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기쁨은 어떤 사람에게만 기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기쁨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망과 죽을 것 같은 슬픔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은 참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천사는 어떤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고 말씀하십니까?
10절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온 백성은 모든 백성을 말합니다.
2018년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인구가 51.157,953명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인구수에는 누가 들어 있습니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숫자는 안 들어 있습니까?
요즘 막말로 교회를 부끄럽게 만드는
어떤 사람은 안 들어 있습니까?
광주항쟁을 일으키게 만든 전모씨는 안 들어 있습니까?
살인죄를 저질러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안 들어 있습니까?
나를 모욕하고 나의 돈을 뺏어가고
내가 누릴 좋은 것을 못 누리게 하는
그 어떤 사람은 안 들어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온 백성이라고 하면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두 살부터 그 아래는 다 죽이겠다고 했던
헤롯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사사건건 시비를 붙고
방해를 하고 따지던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죽였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장로들과
제사장들도 다 들어 있습니다.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 그런 사람들에게
왜 기쁜 소식을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좀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잘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데
나쁜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지만 분명히 오늘 말씀은 천사가 목자가 전해준 말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곧 영향을 줄 소식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냥 듣고 기분 좋은 정도의 소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축구에서 우승했다고 하면
분명 기쁜 소식입니다.
물론 몇 일은 기분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에 영향력을 주지는 않습니다.
몇몇 사람에게는 삶에 영향력을 줄 것이지만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소식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 기쁨의 소식이 무엇입니까?
구주가 나셨다고 합니다.
곧 그리스도 주시라고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인데
그분은 그리스도 주시라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그리스도는 이미 구약에서
수없이 예언되었던 분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나누었던
징조 곧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했던
그런 예언대로 오신 분이라고 하십니다.
그분이 바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아기를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표적은 어떤 일을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습니다.
구유는 무엇입니까?
소나 나귀나 양들에게 밥을 주기 위한 통입니다.
우리가 옛날에 흔하게 보았던
소의 여물과 여러 밥을 주기 위해
놓아두었던 통이 구유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바로 가축의 밥통에 누워계셨습니다.
누우실 곳이 없어서 그랬지만
천사는 그것을 표적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밥이라고 말씀해 주는 표적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참된 밤이요
음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밥은 우리에게 움직이게 하고
말하게 하고 삶을 살게 합니다.
어떻게 움직이게 합니까?
어떻게 말하고 살게 합니까?
어떤 삶을 살게 할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게 하실까요?
예수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어떻게 삶을 살까요?
14절이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멋진 삶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만든 목적대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마이크는 목소리를 크고 정확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장식품이나 사람을 때리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치욕적이며 슬픈 것이 됩니다.
바로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나에게나 권력자에게나 어떤 사람에게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아름답고 멋집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
가장 좋은 기쁨의 소식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에게 기쁨입니다.
우리의 삶은 기쁨을 위해서 애를 씁니다.
일을 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떤 행동을 하는 것도
기쁨을 위해서 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서 기쁨으로 끝날 때
우리는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은
애쓰고도 기쁘지 못한 일이 참 많습니다.
기쁘려고 애쓰지만
슬프고 낙망스럽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말씀을 따르면
우리의 삶에 기쁨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잘 믿었는지 못 믿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길은
삶에 기쁨이 있는지 아닌지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누구만의 기쁨이 아닌
그 기쁨이 확장되어 모든 사람들이 평화가 됨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오심은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똑같이 평화가 옵니다.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망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이 할 말일까요?
누구를 죽이고 내가 사는 것이 평화일까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나에게 기쁨이요
모든 사람에게는 평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우상숭배자들이 할 말이며
무당이나 잡신을 섬긴다는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나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심이요
나에게는 기쁨이 충만하도록 하심이요
우리 모두에게는 평화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까?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 영광과
사람들에게 기쁨과
사람들 중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성탄절이 되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