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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佛骨表(논불골표)
한유(韓愈 : 768-824, 字 退之, 號 昌黎, 諡號 文公)는 당(唐)나라의 문장가, 정치가, 사상가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 韓愈, 柳宗元, 歐陽修, 蘇洵, 蘇軾, 蘇轍, 曾鞏, 王安石)의 한 사람이며, 유학(儒學)을 옹호하고 불교를 배척했다.
당(唐) 헌종(憲宗)이 불도를 숭상하여 법문사(法門寺)의 사리(舍利)를 궁중으로 들여오려 하자,
양(梁) 무제(武帝) 의 고사를 인용하여 부처는 믿을 것이 못된다(佛不足信).는 「논불골표(論佛骨表)」를 올려 불법을 비판하다가 8천 리 떨어진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황제는 격노하여 사형에 처하려 했으나 배도(裵度), 최군(崔群) 등이 주창하기를,
“한유(韓愈)의 말이 비록 과격하기는 하나 나라를 근심하는 뜻이 있으니 너그러움을 보이시와 간언하는 길을 막지 마시옵소서.”라고 간청하여 형부시랑(刑部侍郞)에서 조주자사(潮州刺史 : 廣東)로
좌천되었던 표문(表文)이다.
다음은 한유(韓愈)가 당(唐) 헌종(憲宗)에게 올린 「論佛骨表(논불골표)」이다.
“臣某言(신모언) 伏以佛者(복이불자) 夷狄之一法耳(이적지일법이) 自後漢時(자후한시) 流入中國(유
입중국) 上古未嘗有也(상고미상유야) 昔者(석자) 黃帝在位百年(황제재위백년)
年百一十歲(년백일십세) 少昊在位八十年(소호재위팔십년) 年百歲(연백세) 顓頊在位七十九年(전욱재위칠십구년) 年九十八歲(연구십팔세) 帝嚳在位七十年(제곡재위칠십년) 年百五歲(년백오세) 帝堯在位(제요재위) 九十八年(구십팔년) 年百一十八歲(연백일십팔세) 帝舜及禹年皆百歲(제순급우년개백세) 此時天下太平(차시천하태평) 百姓安樂壽考(백성안락수고) 然而中國未有佛也(연이중국미유불야)
신(臣) 아무개는 아룁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불도는 오랑캐의 한 도법일 뿐입니다.
후한시대(後漢 明帝 永平年間)에 중국에 들어왔던 것이고 상고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황제(黃帝 : 軒轅氏)께서는 재위 백년에 나이가 백 열 살 이었고, 소호(少昊)께서는 재위 팔십년에 나이가 백 살 이시었으며, 전욱(顓頊)께서는 재위 칠십구년에 나이가 아흔 여덟이시었고, 제곡(帝嚳)께서는 재위 칠십년에 나이가 백오 세 이시었으며, 요(堯)임금께서는 재위 구십팔 년에
나이가 백여덟이시었고, 순(舜)임금과 우(禹)임금은 같이 백세를 사셨습니다. 이분들 때에는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락하여 장수를 누리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는 불도란 있지 않았습니다.
其後(기후) 殷湯亦年百歲(은탕역년백세) 湯孫太戊在位七十五年(탕손태무재위칠십오년) 戊丁在位五十九年(무정재위오십구년) 書史不言其年壽所極(서사불언기년수소극) 推其年數(추기년수) 蓋亦俱不滅百歲(개역구불멸백세) 周文王年九十七歲(주문왕년구십칠세) 武王年九十三歲(무왕년구십삼세) 穆王在位百年(목왕재위백년) 此時(차시) 佛法亦未入中國(불법역미입중국) 非因事佛而致然也(비인사불이치연야)
그 후 은(殷)나라 탕왕(湯王)께서도 또한 백 세를 사시었고 탕왕(湯王)의 손자 태무(太戊)께서는
재위 칠십오 년 이었고 무정(戊丁)께서는 재위 오십구 년 이었던 바, 역사서에는 그분들의 생존
나이를 적지 않았으나 그 햇수를 추측하건대 역시 백 세 이하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문왕(周文王)께서는 나이 아흔 일곱에 세상을 마치시고 무왕(武王)께서는 아흔 셋의 연세를 누리시었고,
목왕(穆王)은 임금의 자리에 백년을 계시었던 바, 이분들 때에도 중국에는 불법이 들어와 있지를
않았으니 선왕들께서 장수하신 것은 불도를 섬겨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漢明帝時(한명제시) 始有佛法(시유불법) 明在位纔十八年耳(명재위재십팔년이) 其後亂亡相繼(기후난망상계) 運祚不長(운조부장) 宋齊梁陳元魏已下(송제양진원위이하) 事佛漸謹(사불점근) 年代尤促(연대우촉) 惟梁武帝在位四十八年(유양무제재위사십팔년) 前後三度(전후삼도) 捨身施佛(사신시불) 宗廟之祭(종묘지제) 不用牲牢(불용생뢰) 晝日一食(주일일식) 止於菜果(지어채과) 其後竟爲侯景所逼(기후경위후경소핍) 餓死臺城(아사대성) 國亦尋滅(국역심멸) 事佛求福(사불구복) 乃更得禍(내경득화) 由此觀之(유차관지) 佛不足事(불부족사) 亦可知矣(역가지의)
한명제(漢明帝) 때에 비로소 불법이 있게 되었는데(서기 67년) 명제(明帝)가 임금에 계신 것은 겨우 십팔 년이었습니다. 그 뒤 나라의 어지러움과 망함이 서로 계속되어 국가의 운명이 길지 못했으며 송. 제. 양. 진. 원위(宋, 齊, 梁, 陳, 元魏) 등의 나라 이후에서는 점점 더 깊게 불법을 받들었음에도 천자의 재위 연수와 세대가 극히 짧았습니다. 오직 양(梁)나라 무제(武帝)만 재위의 연한이 길어
사십팔 년 지냈는데 무제(武帝)는 생애 전후 세 번이나 불문에 들어가 불도가 되어 종묘의 제사에는 생뢰(牲牢 : 牲은 소, 말, 돼지, 양을 말하고, 牢는 이를 삶지 않고 통째로 제물로 바친 것을 말하며, 천제, 종묘제향에 쓰이는 소, 돼지, 양 등 犧牲을 말한다)를 쓰지 않고, 종일 한번 만의 식사를 들음에 야채와 과일만 취하셨는데 그 후 마침내는 후경(侯景)한테 몰려 대성(臺城)에서 굶어 죽었고, 나라 또한 얼마 안 되어 멸망했으니 불도를 섬기어 복을 빌었다가 도리어 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불도는 섬길 것이 못됨을 알겠습니다.
高祖始受隋禪(고조시수수선) 則議除之(즉의제지) 當時君臣(당시군신) 材識不遠(재식불원) 不能沈知先王之道(불능심지선왕지도) 古今之宜(고금지의) 推闡聖明(추천성명) 以救斯弊(이구사폐) 其事遂之(기사수지) 臣常恨焉(신상한언)
당(唐) 고조(高祖)께서 비로소 수(隋)나라로부터 황위를 받았을 때, 곧 이를 제거할 것을 의논하셨는데, 당시 뭇 신하가 재능과 식견이 훌륭하지 못하여, 능히 선왕을 도와 고금의 마땅함을 깊이 알고
성명(聖明)을 추천하여 폐단을 구하지 못해 이 일이 드디어 그쳤으니, 신은 항상 이일을 한탄스럽게 여깁니다.
伏惟叡聖文武皇帝陛下(복유예성문무황제폐하) 神聖英武(신성영무) 數千百年已來(수천백년이래) 未有倫比(미유윤비) 卽位之初(즉위지초) 卽不許度人爲僧尼道士(즉불허도인위승니도사) 又不許創立寺觀(우불허창립사관) 臣常以爲高祖之志(신상이위고조지지) 必行於陛下之手(필행어폐하지수) 今縱未能卽行(금종미능즉행) 豈可恣之轉令盛也(기가자지전령성야)
엎드려 생각하건대, 예성문무황제폐하(憲宗)의 신성하고 영무(英武)스러움은 수천 백년 이래 비할 바가 없습니다. 천자에 오르신 처음에 도첩을 발급하여 승니(僧尼 : 남자중과 여자중)나 도사가 되는 것을 불허하시고, 또 사찰과 도교의 사원창립을 불허하셨는데 신(臣)은 항상 고조(高祖)께서 지니셨던 뜻이 폐하의 손에 의하여 행해지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제 비록 원래의 뜻을 실행하지 못 하실망정 어찌하여 불도가 제 마음대로 더욱 성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今聞陛下令群僧(금문폐하령군승) 迎佛骨於鳳翔(영불골어봉상) 御樓以觀(어루이관) 舁入大內(여입대내) 又令諸寺遞迎供養(우령제사체영공양) 臣雖至愚(신수지우) 必知陛下不惑於佛(필지폐하불혹어불) 作此崇奉(작차숭봉) 以祈福祥也(이기복상야) 直以年豊人樂(직이년풍인락) 徇人之心(순인지심) 爲京都士庶(위경도사서) 設詭異之觀戲翫之具耳(설궤이지관희완지구이) 安有聖明若此(안유성명야차) 而肯信此等事哉(이긍신차등사재)
이제 듣자오니 폐하께서는 많은 중으로 하여금 불골(佛骨)을 봉상(鳳翔) 땅으로부터 맞이하게
하시고, 누상에 오르시어 바라보시며, 궁중으로 떠메어 들게 하시고, 또 모든 사찰로 하여금 번갈아 맞이하여 공양을 드리게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신은 비록 지극히 어리석다 할 것이오나 폐하가 불도에 미혹되시어 이렇게 부처를 높게 받드는 일을 하시고 복을 비는 것이 아님을 반드시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단지 풍년에 인민이 화락하므로
인민의 심정을 따라 서울의 인민들을 위하여 색다른 구경거리를 마련하시어 즐거운 놀이 도구가
되도록 하자는 뜻일 따름이지 어찌 성스럽고 밝으심이 이와 같은데 즐겨 이런 일을 믿으시는 일이
있겠습니까?
然百姓愚冥(연백성우명) 易惑難曉(이혹난효) 苟見陛下如此(구견폐하여차) 將謂眞心事佛(장위진심사불) 皆云天子大聖(개운천자대성) 猶一心敬信(유일심경신) 百姓何人(백성하인) 豈合更惜身命(기합경석신명) 焚頂燒指(분정소지) 百十爲群(백십위군) 解衣散錢(해의산전) 自朝至暮(자조지모) 轉相倣效(전상방효) 惟恐後時老少奔波(유공후시노소분파)
棄其業次(기기업차) 若不卽加禁遏(약불즉가금알) 更歷諸寺(경력제사) 必有斷臂臠身以爲供養者(필유단비련신이위공양자) 傷風敗俗(상풍패속) 傳笑四方(전소사방) 非細事也(비세사야)
그러나 백성들은 우매하여 미혹되기 쉽고 깨우치기는 어렵습니다. 진실로 폐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고서는 장차 폐하가 진심으로 불도를 섬기는 것이라고 여기고서 다 ‘천자의 큰 어지심도 일심으로 공경하고 믿으시는데 백성이 무엇이라고 신명을 아낀단 말이냐?’ 하고 정수리에 향을 불사르고 손바닥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는 등의 불신자의 고행을 행하고, 수백 수십이 떼를 지어 의복을
벗어내고, 돈을 모아서 시주함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고, 서로가 본받아 오직 늦을세라 걱정하여, 노소가 세차게 달음질쳐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만일 불골(佛骨)을 메고 다님을 금하여 그치게 하지 않으시고, 여러 사찰을 지나가게 하신다면 팔을 끊고 몸의 살을 베어 공양하는 자도 있게 될 것이니 좋은 풍속을 깨고 사방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夫佛本夷狄之人(부불본이적지인) 與中國言語不通(여중국언어불통) 衣服殊製(의복수제) 口不言先王之法言(구불언선왕지법언) 身不服先王之法服(신불복선왕지법복) 不知君臣之義(부지군신지의) 父子之情(부자지정) 假如其身至今尙在(가여기신지금상재) 奉其國命(봉기국명) 來朝京師(내조경사) 陛下容而接之(폐하용이접지) 不適宣政一見(부적선정일견) 禮賓一設(예빈일설) 賜衣一襲(사의일습) 衛而出之於境(위이출지어경) 不令惑衆也(불령혹중야)
무릇 부처란 본래 오랑캐 땅의 사람으로 중국과는 언어가 통하지 않고, 의복의 제도가 다르며
옛 어진 임금들의 어진 말을 한 일이 없고, 몸에는 옛 어진 임금들이 마련한 옷을 걸치지 않았으며, 임금과 신하의 의리나 부자지간의 정을 몰랐던 것입니다.
가사(假使) 그가 오늘에 이르도록 생존하여 국명을 받들고 우리의 서울에 왔다면 폐하께서는 그를 접견하시되 단지 선정전에서 한번 만나 보시고, 예빈원에서 한번 연석을 베풀어 대접한 뒤 한 벌의 옷을 하사하시고, 호위를 하여 국경까지 보내주어 그 때문에 우리 민중을 현혹하지 못하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況其身死已久(황기신사이구) 枯朽之骨(고후지골) 凶穢之餘(흉예지여) 豈宜令入宮禁(기의영입궁금) 孔子曰(공자왈) 敬鬼神而遠之(경귀신이원지) 古之諸侯(고지제후) 行弔於其國(행조어기국) 尙令巫祝(상영무축) 先以桃茢(선이도렬) 祓除不祥(불제불상) 然後進弔(연후진조) 今無故取朽穢之物(금무고취후예지물) 親臨觀之(친임관지) 巫祝不先(무축불선) 桃茢不用(도렬불용) 君臣不言其非(군신불언기비) 御史不擧其失(어사불거기실) 臣實恥之(신실치지)
하물며 그가 죽은 지 이미 오래인데도 썩은 뼈의 더러운 한 끝을 어찌하여 신성한 궁중 안에
들어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길, ‘귀신들을 공경스럽게 다루되 그것들을 멀리 할 지니라.’ 하였습니다.
옛날의 제후가 조상의 예를 그 나라에 행함에 있어서도 오히려 무당으로 하여금 먼저 도열로 관의
부정을 털어 깨끗하게 하고 난 뒤에야 조문을 했던 것 입니다.
그리하였거늘 이제 까닭도 없이 썩고 더러운 것을 취하시고 폐하께서 친히 임하시어 이를 관람하심에 무당을 시켜 빌지도, 도열로 쓸지도 않으시며, 많은 신하들도 그 그릇됨을 말하지 아니하며, 어사(御史)도 그 실책을 들어 말하지 않으므로 신(臣)은 실로 이를 부끄러워하나이다.
乞以此骨(걸이차골) 附之有司(부지유사) 投諸水火(투제수화) 永絶根本(영절근본) 斷天下之疑(단천하지의) 絶後代之惑(절후대지혹) 使天下之人(사천하지인) 知大聖人之所作爲(지대성인지소작위) 出於尋常萬萬也(출어심상만만야) 豈不盛哉(기불성재) 豈不快哉(기불쾌재)
비옵건대 이 불골(佛骨)을 맡아보는 관리에게 분부하시어 물이나 불속에 던져서 근본을 영원히 끊고 천하의 의심을 끊으며, 후대의 의혹을 끊어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크게 성스러운 폐하의
하시는 바가 아주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려 주옵소서. 그리하면 어찌 훌륭하지 않으며,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佛如有靈(불여유령) 能作禍祟(능작화수) 凡有殃咎(범유앙구) 薏加臣身(의가신신) 上天鑒臨(상천감림) 臣不怨悔(신불원회) 無任感激墾悃之至(무임감격간곤지지) 謹奉表而聞(근봉표이문) 臣某誠惶誠恐(신모성황성공)
부처가 만일 신령스러움이 있어 능히 재앙의 빌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닥쳐오는 재앙을 모조리
신의 몸에 받겠나이다.
하늘이 굽어보심에 그리되어도 신(臣)은 조금도 원망하고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성심으로 감개분격함을 견딜 수 없어 삼가 이 표를 받들어 올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