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의 진리(苦聖諦)
또 선생님이 불교 교육생에게 사성제의 괴로움을 진리를 설명했다고 한다.
생노병사의 괴로움,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불득고, 오음성고, 고고, 괴고, 행고, 등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교육생이 반론을 제기했다고 한다.
"괴로움의 진리는 동사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변한다는 것입니다. 삶이란 것이 괴로울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삶이 괴롭다고 하는 것은 허무주의입니다.
그리고 또 괴로움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이 있다 하더라고 괴로움을 겪는 자는 없습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
고성제는 괴로움의 법칙이다.
법칙이라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고 공식, 규칙 같은 의미이다.
고성제가 단순히 생노병사하기 때문에 괴롭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생노병사라는 법칙, 그 존재의 속성이 괴로움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괴로움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는 고성제가 아니고, 사성제의 세 번째인 멸성제가 해당한다.
—존재론
붓다의 최초의 설법에 사성제가 등장하고, 그 사성제 중에서 고성제가 제일 앞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원래 모든 종교나 철학의 시작은 존재론이다.
“지금 그대는 왜 여기 있는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창조론자(Creationist)들은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 인해 그대는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은 주인이고 그대는 종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주인에게 믿음을 바치고 절대충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진화론자(Evolutionist) 들은 창조론을 부정하고 진화론을 주장한다. 세상과 인간은 신이 만든 게 아니고 진화해온 것이다. 그래서 그대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신의 피조물이 아니다. 종교를 믿을 필요도 신의 벌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으면 유전자와 생물학적 반응을 남길 뿐이다.
실체론자(Substantialist) 들은 인간을 포함한 세상 우주 만물에는 고정불변의 실체(subtance)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주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근본 에너지, 유일한 실체가 있다. 이것은 영원불멸의 생명력이다. 그것은 존재의 충만이자 완전함이다. 인간은 ‘나는 우주와 별개의 존재다’라는 착각으로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겪는다. 내 안에는 영원한 나(自性)가 있다. 이것은 영원한 자아, 참나이다. 내 안의 참나와 우주와 합일함으로써 생사의 윤회에서 해탈한다.
—불교의 존재론은 고성제와 집성제
사성제의 고성제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붓다도 최초의 설법을 존재론으로 시작한 것이다.
“존재란 무엇인가?
존재의 속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괴로움이다.
존재하는 것은 생노병사를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존재는 괴로움이다.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불득고, 한 마디로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존재는 괴로움이다.
오음성고, 색수상행식이 쉬지 않고 굴러간다. 그래서 존재는 괴로움이다.
괴로움의 진리가 존재론이라는 증거는 뒤에 바로 ‘존재의 원인(집성제)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앞에서 존재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이어서 존재하게된 원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럼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
무명(미혹) >행(과거의 습관적 성향) > 식(인식) > 명색(정신과 물질) > 육입(감각기관) > 촉(접촉) > 수(느낌) > 애(갈애) > 취(집착) > 유(존재, 有, Bhava)
가까운 원인은 욕망과 집착이고, 근본원인은 무명이다.
자, 이제 이해가 되셨나요?
사성제의 괴로움의 진리가 ‘삶은 괴로움이다. 태어남도 괴로움이요, 늙음도 괴로움이요, 병듦도 괴로움이요, 죽음도 괴로움이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아니, 사성제 전체가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대답이다.
“존재란 무엇일까?(고)”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집)”
“그럼 존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멸)”
“그럼 존재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이해가 되나요?
첫댓글 고맙습니다
사두ㅡ사두ㅡ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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