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집 [☆사기장 심룡, 조선의 달을 띄우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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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백자박물관 심룡 문학창작집
[사기장 심룡, 조선의 달을 띄우다]
강영은 외 25인 / 양구군 (사)강원행복시대(2016.12.14) / 값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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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사기장 심룡方山 砂器匠 沈龍
강영은
두타연 맑은 물기를 날아다니는 잠자리 날개다 허공에 빗방울을 뿌리는 구름의 팔목이다 맨 발로 흙덩이를 짓이기는 수련垂蓮의 다리다
밤마다 꿈속의 잠, 잠 속의 꿈을 돌리는 곤충의 촉각觸角이다 애벌잠 완성하는 우화羽化의 틀이다
하공에 유약 바르는 초봄의 햇살이다 꽃과 나비를 불러 모으는 들판의 문장文章이다 천둥과 번갯불을 새기는 일 획劃의 붓대다
백토白土로 돌아가 백토에서 다시 태어난 이름, 용龍의 문양을 닮은 혼백의 날개로 다시 돌아온 그는 바람과 흙과 불의 길을 다스려 온 방산方山의 수호신이다
초벌구이 생각은 아낌없이 부셔버리는 두 손의 충신忠臣, 얼음을 불수레에 묶는 두 손의 공신功臣이다
양구 백자 앞에 서서
강영환
도공 심룡이
땅속에서 캐낸 것은
백토가 아니라
조선의 마음이다 흰옷이다
눈에 든 손을 처음 잡은 날
마음에 든 청화 문병은
백옥을 깎아 세운
아련한 첫사랑 향기다
네 마음속 빛이 투영되어
뜨거운 흙을 품고 가리다
출렁이는 물을 안고 가리다
어둠을 태우는 불로 일어서리다
네 앞에서면
메아리로 울려 나오는 미소
한 점 티끌로라도 오래오래
네 살에 살고 싶다
백자청화초화문 요강에 부쳐
구재기
어머니 가신지 십 수 년
고향으로 가는 밤길이었다
달은 높이 뜬
한 발 앞 선 동행의 혈족
구름 속에 포근히 안겼다
구렁목을 넘어서자
낯익은 옆집 개가 먼저
하늘 향해 컹컹 짖어댔다
울안의 귀뚜라미 떼가
일제히 울어대면서
사립문 밖에까지 마중해 주었다
그러나 뜨락은 여전한 고요,
어디서엔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야, 이제사 오니?”
문득 구름 뒤의 달이 나왔다
마루 한쪽에 밀쳐진
백자청화초화문요강 한 분
온몸으로 끌어안은 달빛이
토방 아래에까지 내려왔다
고향집 울안 가득 철철 넘쳐났다
양구 백자박물관
금시아
하얀 흙을 캔다.
흙의 두께를 열어보면 바람의 노래 겹겹이 쌓여있어j 제 주제곡 몇 개쯤 흥얼거리는 지층들.
하얀 흙 줄기를 캐낸다
백토에 날개가 돋는다
달항아리거나 큰 대접이거나 입이 훌쭉한 호리병이거나, 네모 난 몸이든 삐뚤어진 몸이든 군말 없는 흙의 몸짓, 참 하얗다, 산다는 것이 곧 죽음에서 완성된다면 죽어야만 보일 수 있는 하얀 직립의 내면에 좀체 알 수 없는 체면의 축을 버린 오로지 타자他者인 삶이 둥그렇게 들어 있다.
조선백자의 무결한 존재 방식,
영구백자박물관에는
600년을 날갯짓해온 백토 세계가 있다.
부뜨막
문부자
부지런한 어머니 부뚜막은
살빛이었다
살결 공운 분토를 물에 개어
볏짚 솔로 하루걸러 칠을 했다
기름 먹인 솥뚜껑 아래
끓는 밥이 눈물을 흘리면
구수한 밥 냄새
김에 서려 온 집안 깨웠다
오지 물두멍 맑은 물에
얼굴도 출렁 비추어지고
찬장에 포개 놓은 올망졸망
식구들 사기 밥그릇 눈동자 빛나던
부엌문 틈 옹이 사이로 아침 햇살
환해지던 삶의 실루엣
짭짜름한 반찬 내음
세월 저편에서
그리움으로 달려오는
어머니의 부뚜막
백토의 양구
박미량
우주의 빛과 어둠이
소리로 탄생 되던 날
그들은 그날을
태초라고 불렀다.
창조자의 깊은 염원
생명 서린 영혼이
먼지보다 더 작은 입자로
굳어 땅이 되던 하루
첫째 날
수직과 수평
중력과 무중력
7차원을
궤 뚫은 순백의
토土가 고향이라는
의衣를 걸쳤다
다완茶碗
박분필
멀리서 보면
그 살결은 그지없이 곱고 매끈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갈기갈기 쪼개진 피막
헤아릴 수없이 많은 금
깨진 틈 사이로
향기인 듯 방울방울 스미어든
푸르디푸른 눈물방울이 보입니다
뜨거운 눈물이 빚어낸 빛깔입니다
어머니, 당신이 흘린 눈물 잔입니다
항아리
박재연
짐짝 옮기듯 총명한 어머니를 이리저리 옮기다
윤달 든 해는 불효를 핑계대기 좋은 안식년
어머니의거처가 윤년에 붙박이다
무거워진 짐이 툭 끈을 풀다
오래 참았던 여독이 터지다
요양병원 달님 방 침대에서
어머니 거처를 털다
단풍로드가 맨발로 마중 나오다
“먼 길 떠나갈 때 눈이나 비가 오면 돌아가는 발자국을 지운다지”
이종사촌오빠가 비의 발자국을 배웅하다
발자국을 지운 어머니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시다
달항아리
박해림
어둔 밤, 젖은 눈으로 뜨는 달
날 저물어 지친 식구들 돌아올 무렵
달은 조금씩 제 몸을 깎아낸다
스스럼없이 밝은 달은
패랭이꽃 흔들린 문간방에도 떠오른다
떠오르다 다 못 밝힌 어둠 있으면
그 앞에서 기다렸다 떠오른다
돌아오지 않은 식구 수를 세어보고
주춤주춤 떠오른다
떠오르다, 떠오르다 생각이 막히면
할머니의 할머니,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머물다 간 마루 끝에 앉는다
오랜 침묵의 대가로 식구가 된
이마 훤한 달항아리
후미진 담장의 그늘까지 이슥히 품는다
얼음꽃
서범석
뼈가 부서지도록 괭이질을 한다
뼈가 녹아내리는 줄도 모르고 언 땅을 헤집어
뼈가 빠질 때까지 백토맥을 당긴다
모든 뼈가 묻히도록 좁은 굴이 무너진다
육백 년 깜깜한 세상 파고 또 묻는다
방산면 금악리 뼈 없는 백성들
점토공납에 시달리며 죽고 또 죽던 때
통뼈를 으스대는 도감사 일행
구덩이 속 시찰하러 들어간 후
아 그랬구나, 입구를 무너뜨려 매장시킨
시퍼렇게 멍든 감사구덩이의 전설이
슬픔의 눈물 모아 연못을 이룬 채
한 사람만 위하던 분노에 하얗게 얼어 있다
조선백자 물줄기의 채굴이 시작된 곳
끊임없이 피어나는 양구 땅의 얼음꽃
뼛속 붉은 피 청화백자 저 속에서 화사하다
사리별
신계전
맑은 물 높푸른 산
지저귀는 산새 소리
순백의 몸짓으로
똬리 튼 깊은 계곡
어룽진
역사의 뒤안
이슬 맺혀 돋는 별
발원 사리구發願 舍利具
윤용선
깜깜한 세상엔
깜 하
여
간절한 게 있고
절
하
여
미치는 게 있다.
미쳐서
그제야 피는 꽃
그 꽃은
어제나 오늘이나
어쩜
그리 똑같은지
그예
타는 갈증 하나까지
똑 닮았는지
맨 처음 만났을 때
이화주
양구 방산 백토가
맨 처음
물레 위에서
사기장 심룡의 손을 만났을 때
온몸으로 말했다
함께 춤추고 싶어요
사기장 할아버지
가슴속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요
칠전리 1호, 2호 가마터에서
임동윤
희뿌연 녹색의 유약만 태토에 흐릿하다
눈먼 시간들이 고스란히 머물고 있는,
좀처럼 온전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금파리들, 햇살 세례만 받고 있다
반쯤 개간된 밭을 넌지시 내려다보는,
삼시세끼 두레 밥상에 오르던 귀한 몸들
으깨진 몸으로 지금 구덩이에 몸져누웠다
어쩌다 지나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지만
온전한 얼굴이 없어 그림자놀이만 하다
며칠 전 내린 폭설에 꽁꽁 언 가마터
그 위로 가까스로 마무는 짧은 겨울 햇살
일어서려 해도 끝내 허리춤이 묶인 몸
반쯤 잊힌 것들은 저리, 아프다
양구백자
장시우
나는 백자를 사랑하죠
말갛고 매끄러운 피부, 완벽한 배율을 가진지 그를,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뜨다
조물조물 주물러
물레 위에서 둥글게 둥글게
보름달을 삼킨 뱀처럼 둥글게 둥글게
기다림처럼 늘어뜨린 목은 길게 길게
한달음에 쓴 글씨처럼 군더더기 없게
새벽하늘을 풀어 화룡점정!
그런 백자를 사랑하죠
그런데 어쩌다
강원도 양구에서 백자를 만났죠
그런데 그 백자
가을걷이 끝낸 논바닥에서 막걸리 한잔 들이키다
지푸라기 듬성듬성 붙이고 나온
말 걸기도 망설여지는 산골 노총각이었다니까요
그런데 그 남자 못 다한 말이 많은지
자꾸 말을 걸어요
행여 옷자락이라도 잡힐까
못 본 척 못 들은 척 내달려 도망가는데
그 남자 자꾸 눈에 밟혀요
그 길을 다시 흘러들어가 잠시 괴어 있을까 봐요
한 백 년쯤.
숨결
최돈선
백토의 하얀 숨결 흐르는 날에
그 그림자 고요히 번져 향기로이 퍼지다
= 시 다음에 수록된 수필과 동화, 소설은 생략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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