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은퇴한 의사 키스 톰슨(71)씨는 최근 설암(舌癌)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recover from tongue cancer surgery). 그런 그의 병상을 밤낮으로 지키며(keep vigil beside his sickbed) 극진히 돌본(sit up with him devotedly) 여성이 있다. 아프리카 출신 간호사 캐서린 콘테(44)씨. 은혜를 갚으러(return his favor) 호주에서 왔다.
두 사람 인연은 1993년 시에라리온의 한 병원에서 시작됐다. 톰슨 박사는 의료 자선 단체에 속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do volunteer work with a medical charity). 어느 날 산부인과 병동(maternity ward)에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moan in pain) 어린 임신부를 보게 됐다(come across a young expectant mother). 나흘째 산고(産苦)를 겪고 있다고(be in labor) 했다.
불과 18세의 콘테는 목숨을 구할 제왕절개 수술에 필요한 70파운드(약 10만원)를 구하지 못해(be unable to afford £70 needed for a lifesaving Caesarean) 죽어가고 있었다. 가난에 찌든 그 나라에선 월급 1년치에 해당하는 액수(the equivalent of a year's salary in the impoverished country)였다. 톰슨 박사가 그 수술비를 대신 내줘(fund the operation on behalf of her)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은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준 최고의 선물(ultimate gift),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또 위기에 처했다(be endangered). 1995년 내란(civil war)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졌다(come under threat). 그러자 이번엔 인접국 기니로 탈출할 수 있도록 온갖 도움을 줬다.
2000년 기니에서 대대적인 난민 단속(massive crackdown on refugees)이 벌어져 다시 위험에 빠지자(fall into danger) 이번엔 가나로 이주하도록 이동 수단과 숙소를 마련해주고 교육비까지 보태줬다(pay towards their education). 그리고 5년 후인 2005년 콘테 가족은 유엔의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에 따라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됐고, 같은 해 톰슨 박사는 설암 진단을 받았다.
콘테는 호주에서 간호사가 됐다. 톰슨 박사가 아니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meet her mother) 못했을 딸 레지나(26)도 얼마 전 간호사 자격증을 땄다(be qualified as a nurse). 두 모녀는 톰슨 박사에게서 영감을 받아 간호사 직업에 종사하기로(be inspired by him to pursue the profession) 했다. "베풀어주신 것의 다만 한 조각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하지만, 그분의 자리를 채우지는(fill his shoes) 못할 것"이라고 했다. 끝없는 빚을 졌다고(eternally indebt herself to him)도 했다.
"해가 갈수록(as years go by) 더 느끼게 돼요. 세상의 다른 면을 보게(see the other side of the coin) 해주신 거예요. 제 인생에 그런 분이 계셨다는 걸 영원히 감사하며(be forever grateful to have him in my life) 살아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