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동 주 / 현대시 해설
한 작가의 삶과 문학의 상관 관계는 끊임없는 논란의 여지를 제공한다. 이는 전기적 사실을 중심으로 문학을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성취를 논해야 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를 유발하는 것이다. 윤동주의 시를 논할 때 제기되는 그의 삶과 문학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즉 그의 문학은, 전기적 사실과 시를 통한 문학적 형상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논란을 내포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윤동주의 시는 시인의 내면 세계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의 시 세계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동시(童詩)《거짓부리》《햇비》《오줌싸개 지도》등에서 어린이 화자를 설정하여 동심에 비친 현실을 그리고 있다. 초기의 동시에 표현된 세계는 밝음으로 나타나지만 그 단계를 벗어나면 어둠으로 표현된다. 식민지 현실과 고향 간도에 대한 향수는 그리움의 정서로서 내면 세계로 침잠하는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같은 윤동주의 내면 세계를 통한 자아의 성찰 의식은 ‘거울’을 통해서 타난다.
‘하늘’ ‘달이나 별’ ‘창’, 때로는 ‘우물’등은 ‘거울’을 통한 이미지로 형상화된다.《서시》에서는 별과 하늘을 보면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게도 부끄럽다고 기술하고,《참회록》 에서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은 왕조가 욕되고 부끄럽다고 노래하고 있다. 또《자화상》에서는 우물을 통하여, 《쉽게 씌어진 시》에서는 창을 통하여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시에 나타나는 주된 정서는 부끄러움이다. 그리고 괴로움, 슬픔이나 외로움, 측은함, 무서움의 정서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
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
가 그리워집니다. (《자화상》 일부)
《자화상(自畵像)》(1939.9)은 화자와 그 화자의 또 다른 모습인 사나이와의 관계, 즉 화자가 사나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정서를 표현한 시다. 1연에서 제시된 시적 정황은 우물의 위치가 주는 외로움과 ‘홀로 있다’는 것이 주는 쓸쓸함이다. 화자가 홀로 찾아간 곳은 ‘우물’이다. 그 속은 ‘달ㆍ구름ㆍ하늘ㆍ바람ㆍ가을’이 들어 있는 입체적 공간으로서 화자와 익숙한 공간이다. 그 속에 있는 한 사나이는 우물 속에 비친 화자의 얼굴일 것이다. 3ㆍ4ㆍ5연에서 화자와 사나이가 보이는 갈등 구조는 ‘미워져 돌아가고→가엾어서 다시가고→또 다시 미워져 돌아가고→그렇지만 그리울 수밖에 없다’는 순환적 반복을 이루고 있다.
2연에서의 공간 설정과 그 공간을 추억으로 다가오는 마지막 연의 사나이로 인해 화자의 갈등은 유발된다. 현재적 위치에서 화자의 내면적 성찰의 매개체로 나타난 사나이는 과거의 화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곧 추억처럼 나타난 사나이는 화자의 이력서처럼 붙어다니는 분신이고 미래의 전망을 도출하는 유일한 과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 세계의 출발점은 철저한 자아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 ─만(滿)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 무슨 기
쁨을 바라 살아왔든가’ (《참회록》 2연)
이 시에는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 동안의 ‘참회’를 ‘무슨 기쁨’으로 살아왔는가?는 표현을 통해 자아 성찰과 내면 고백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시에서는 과거에 대한 회고와 반성에서 화자가 참회의 글을 쓰고 있는 반면,《서시》 에서는 이를 통해 부끄러움이 없는 순결한 삶을 지향한다. 이러한 자아 성찰이 ‘서시’에서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는 순결한 삶을 지향하는 시인의 내면에 드러내게 한다. 이는 도덕적 결심에 추호의 흔들림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다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시에서 평범한 자연 현상 속에 숨은 시적 진실을 찾아내는 시인의 깊은 통찰력이 나타나기도 한다.
윤동주의 자아 성찰은 자신에 대한 참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 본 뒤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새로운 길》의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내일도……’라는 표현에서 찾은 길은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길이다. 언제나 있었던 길이고, 언제나 있을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이제 새벽이 오면 / 나팔 소리 들려올 게외다.’ (《새벽이 올 때까지》 일부분)라는 사실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봄》)에서처럼 그 길이 평범한 진리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쫓아오든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 첨탑이 저
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
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 괴로웠든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
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전문)
자아 성찰은 늘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고, 윤동주에 있어 새로운 길의 모색은 유년 시절부터 그의 의식을 지배한 기독교와 관련된다. 그리하여 희생 정신을 통해 길을 찾으려는 그의 의식은 예수의 행적을 연상하게 한다.
윤동주는 《십자가》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던 예수처럼 또 다른 순교자가 되고자 자신의 새로운 길을 찾았지만 그의 정신의 밑바탕이 되는 부끄러움이 완전히 극복된 것은 아니었다. 순교자와 같은 희생 정신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원용한 《간》에서도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 주는 과정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을 위해 제우스 신의 율법을 어겼다. 그래서 그는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시인은 이를 통해 누군가를 위하여 희생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철저한 부끄러움을 자각한 시인이 냉정한 자아 성찰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었던 한 지점인 것이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시인이란 슬픈 천명
(天命)인 줄 알면서도 / 한 줄 시를 적어볼까,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 대학 노트를 끼고 /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 생
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들 /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 나는 무얼 바라 / 나는 다
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
리는데, //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
의 나,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 전문)
이 시는 타향의 밤비 소리를 들으면서 가족들의 땀내와 사랑이 담긴 학비를 받아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는 화자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시적 화자가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가는 행위는 3연의 상황 설정에 의해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땀내와 사랑이 담긴 가족의 정성과는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의식이 그것이다.
시의 전반적인 주조음은 ‘부끄러움’에 있다. 부끄러움은 남의 나라에 있는 육첩방에 있기 때문이고,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끄러움’에 대한 화자의 성찰이 화자의 내면과 ‘시대’의 문제를 아우르고 있다. 그러나 화자의 자기 성찰은 ‘등불’을 밝힐 수는 있으나 어둠을 ‘조금’밖에 내몰 수 없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능동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수동적 자세를 보여 준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부끄러움 속에서도 화자인 ‘나’가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최초의 악수’를 하게 한다. 이는 자기 성찰을 통한 자아의 합일점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난다. 윤동주는 이러한 《쉽게 씌어진 시》에 보이는 철저한 뒤돌아봄과 부끄러움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출처 : http://www.esokdo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