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청순했던 시절, 정치인들이 하는 이야기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라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똑똑하고 지혜로우면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어서 나라를 위해 일을 하나라고 생각하며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저녁 뉴스에 국회의원이 재래시장을 방문해서 시장 사람들과 악수를 하면, 악수를 한 분들이 부러워서 나도 국회의원과 악수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순진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국회의원의 이미지를 미디어가 잘 포장해서 속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평소에 그들이 재래시장에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가지도 않을 겁니다. 표를 구걸해야 할 시기가 아니면.)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내가 예전에 바보였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방송에 나와서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국민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의 말을 다 믿었으니 말입니다. 그들도 사람입니다. 권력이 있는 자리에 올라가면 권력의 힘을 누리고 싶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 힘을 이용하여 부도 축적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 많은 보수를 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으로 만족이 안 되나 봅니다. 다다익선이라고 더 많은 권력과 부를 누릴 수 있는데 명예로는 만족이 되지 않겠죠. 그럼 정치인은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에서 정치에 대해서, 정치가는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정치인들은 어떠한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은 막스 베버가 독일 뮌헨대학 학생단체에서 한 강연입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하니 정치적 발전이 우리보다 그만큼 앞섰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베버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바는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적 조건하에서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이며, 정치적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지입니다. 이 강연을 할 당시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정치에 대한, 정치가에 대한 고찰이 요구되지 않았었는지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정치를 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국민이 잘 먹고 잘 살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패전 후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으니 정부의 역할이 컸을 수 밖에 없었겠죠. 어떤 정치인이 현명한 정책을 내놓느냐가 중요한 때였을 겁니다. 이건 시기에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것은 그 시대상황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베버는 정치가는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열정은 그가 가진 ‘합법적 폭력 행사권’이라는 수단을 ‘책임의식’으로 통제되고 조절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열정이 통제되지 않으면 위험하고 파괴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균형감각’을 통해서 이러한 책임의식을 단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균형감각’을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서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베버는 정치가의 윤리도 이야기합니다. 그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이야기합니다. 신념윤리가 란 자신의 신념의 실현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결과들은 도외시한 채 신념의 실현 그 자체에만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 실현의 현실적 결과가 자신의 의도와 어긋나는 경우 세상을 탓하지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책임윤리 가는 인간이 어리석고 비열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원칙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념과 책임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정치가는 이 둘을 균형 있게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베버가 말한 정치인의 자질과 윤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죄송스럽지만 지금의 정치인들 중에서 베버가 말한 정치인의 자질과 윤리를 조화롭게 쓰고 있는 정치인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개인의 부를 축적하고, 내로남불식의 불법행동의 정당화 우기기는 국민들이 평범하게 사는 것을 지치게 합니다. 국민을 생각하느라고 밤잠 못 잔다는 말을 방송에서 들으면 이제는 웃음이 납니다. 자신들의 신념만이 국가를, 국민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그렇다고 책임지는 행동을 하는 것도 잘 모르겠고 ...
베버는 정치는 단단한 널빤지를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정치가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어려운 작업에 열정과 균형감각을 갖고 도전했기에 지금의 성취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지도자나 영웅이 아니어도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라구요.
저는 성악설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악한존재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평범하고 착하게 살다가, 권력을 손에 쥐거나 눈앞에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지면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싶은 욕심이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관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에 불법을 행사할때 처벌할 수 있는 법을 엄정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정치에 대한 소명만으로 정치인에게 선한마음을 바라는 것은 천진난만한 바램이라고 봅니다.
그럼 왜 정치인의 자리가 중요할까요? 베버는 말합니다.
‘국가는 정당한(다시 말하여,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강제력이라는 수단에 기반하여 성립되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관계다. 따라서 국가가 존속하려면 피지배자가 그때그때의 지배집단이 주장하는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직업으로의 정치- 중에서
베버는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에 대한 지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국가에 복종을 해야합니다. 국가는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정치인들에 의해서 운영이 되니 베버의 말에 의하면 정치인들에게 복종해야한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물론 지금은 국가에 복종한다는 개념은 아닙니다. 말그대로 국민을 대신해서 나라를 운영해줄 대리인의 개념으로 국회의원을 뽑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베버가 말한 것처럼 국가나 정치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공동체안에서 서로의 합의하에 법의 테두리를 만들고 그 사회속에서 같이 생활하는 개념입니다. 말 그대로 정치인은 국민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기한이 정해진 대리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권리를 4년동안 내가 뽑은 국회의원에게 위임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못하는지 매의 눈으로 감시를 해야 합니다. 항상 내가 지켜보고 있다. 조심해'라는 암시를 주어서 국민들 무서운 줄 알게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고민하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생각합니다. 진정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그런 정치인이 있나요? 진짜 정치인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