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읽는 강론
살면서 힘든 순간들,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죠. 그때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행복할 거예요 .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만, 마음의 병은 그렇게 쉽지 않아요 .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내 속상한 마음을 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정말 위로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답니다 .
정말 힘들고 아플 때, 예상치 못한 위로가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해요 .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아브라함은 127년을 함께 살았던 아내 사라를 먼저 떠나보내고 몹시 슬퍼했어요 . 사랑하는 동반자를 잃은 슬픔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이 컸겠죠 .
살다 보면 내 삶이 어둡고 힘들어지는 때가 있어요 . 그때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면 참 행복할 거예요 . 몸이 아프고 병이 들면 언제든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죠 . 의사가 내 몸을 회복시켜 줄 거라는 믿음이 있으면 병을 두려워하지 않게 돼요 .
하지만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건 쉽지 않아요 .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속상한 마음을 들어주거나 함께 밥을 먹어줄 수도 있어요 . 하소연을 챙겨줄 수도 있죠 .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정말 위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
위로가 힘을 발휘할 때, 정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가 있어요 . 그건 바로 사람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랍니다 .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볼까요? 아브라함은 127년을 함께 살았던 아내 사라를 먼저 떠나보냈어요 . 아내를 잃은 아브라함의 마음은 몹시 슬프고 아팠겠죠 .
인생의 동반자를 잃었을 때의 슬픔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이 아브라함에게 분명 있었을 거예요 .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운 이 순간에 그에게 큰 위로가 된 사람이 나타나요 .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이방인이에요 . 가나안 땅에서 살던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를 묻기 위해 묘지가 필요했는데 .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던 또 다른 이방인에게 땅을 달라고 청했어요 . 아브라함을 본 가나안 지역 사람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내어주었답니다 .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해요 . 바로 아브라함의 종이죠 . 아브라함은 종을 신뢰하며 맹세하게 해요 . 아들 이사악이 아내를 맞이하게 되면 가나안 땅이 아닌 하느님이 축복하신 본 고장에서 아내를 찾으라고 부탁했죠 . 종은 그 약속을 지켰고, 이사악은 레베카를 만나요 . 성경은 이사악도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아내 레베카를 통해 위로받았다고 말해요 .
신약 성경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요 .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를 부르셨죠 . 마태오는 세관이었는데, 당시 로마 지배 아래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했어요 . 동족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겠죠 .
세관 일을 하던 마태오는 예수님의 "나를 따라라"는 말씀에 아무 조건 없이 그분을 따랐답니다 . 예수님은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항상 세리와 죄인들을 식탁 자리에 초대하셨어요 . 이들은 유대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멸시받던 사람들이었어요 . 이방인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기도 했죠 .
로마에 부역하는 세리는 유대 동족들에게 미움의 대상이었고 . 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해 사회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었어요 .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들과 함께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셨답니다 . 왜냐하면 그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에요 . 세금 징수 일이 얼마나 자신들에게 고통스러웠겠어요 . 동족들의 눈길과 손가락질, 그리고 죄인이라는 단죄의 늪에 빠져 늘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세리와 죄인이라는 이름 안에 담겨 있었답니다 .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살면서 정말 힘든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죠 . 주머니에 여유가 있다면 금전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고 . 물질적인 보상을 해줄 수도 있어요 .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기도해 줄 수도 있답니다 .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고통 내면에 있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그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죠.
살면 살수록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에 익숙해지기 쉬워요 . 누군가가 느끼는 고통에 무관심해지기도 하죠 . 자꾸만 이기적으로 나만 문제없으면 되고 내 마음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돼요 . 이런 내면의 어두움이 커지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자비심인 것 같아요 .
넉넉한 마음, 상대방이 좀 잘못해도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 . 좀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 .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어줄 수 있는 마음 . 이것이 자비심이랍니다. 혹시 가까운 가족 중에 다툼이 있어서 집에서 얼굴도 안 보고 말도 안 하고 밥도 같이 안 먹는 상황이 있다면 그럴 때는 그냥 식탁에 맛있는 밥 하나 차려 놓고 밥이라도 먹여주세요. 그러면 그것이 같은 식탁 공동체 안에서 그를 치유해 줄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답니다 . 밥상을 함께 나누는 작은 행위가 관계를 회복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전혀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벽이 쳐져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고통이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그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헤아려 보고 그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
그것이 바로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비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요 .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려는 마음. 이것이 자비심이고, 이 자비의 힘으로 우리는 관계의 벽을 넘어설 수 있답니다.
아멘.
송용민 사도요한 신부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