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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굴업도 개머리언덕에 백팩커들이 텐트를 치고 있다 . 심석용 기자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3시간 남짓 바다를 가르면 외딴 섬이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다. 푸른색 하늘과 바다 사이 에메랄드빛 녹림을 뽐내는 이곳은 덕적군도를 수놓는 41개 섬 가운데 하나인 굴업도다. 섬의 모습이 사람이 엎드려서 일하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굴업도엔 태고의 모습이 대부분 남아 있다. 접근이 어려워 오랫동안 육지와 고립된 덕분이다. 바닷바람이 세월을 깎아 만든 언덕엔 난대성식물과 한대성식물이 공존한다. 사슴들의 천국인 이곳은 국내 최대 송골매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 탓에 백팩커들 사이에선 성지로 통한다. 외부와 분리돼 희귀한 동식물이 살았던 남미의 갈라파고스와 비슷한 점이 많아 ‘한국의 갈라파고스’란 별칭도 얻었다.
쓰레기가 점령한 해안
굴업도로 밀려온 쓰레기를 임시로 보관하는 곳. 지자체와 계약한 업체가 1년에 1~2번 방문해 수거해간다. 심석용 기자
그러나 최근 굴업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처에 신음하고 있다. 해안으로 연일 밀려드는 각종 쓰레기가 그 주범이다. 지난달 20일 굴업도 선착장에서 도보로 15분 남짓 떨어진 목기미해변은 바닷물이 빠진 뒤 남은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각종 스티로폼 파편과 술병, 페트병, 엔진오일 통 등이 모래사장 곳곳을 잠식했다. 여기에 그물 등 폐어구가 뒤엉켜 맨발로는 걷기 어려웠다. 주민들은 매일 쓰레기를 치우지만 그 양이 많고 장비가 열악해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이렇다 보니 해안가 옆 공터는 일종의 ‘쓰레기 야적장’이 돼버린 지 오래다. 최선엽 굴업도 이장은 “매일 경운기를 몰고 와 쓰레기를 주워 담지만 한계가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20일 굴업도 목기미해변 주변은 해안으로 밀려온 쓰레기로 가득했다. 심석용 기자
“쓰레기 발생이 처리속도보다 빨라”
굴업도 주민들은 해안 쓰레기를 경운기에 담아 '임시 야적장'으로 옮긴다. 심석용 기자
주민들은 쓰레기가 섬에 쌓이는 속도를 처리속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10여 년 전부터 바다, 육지, 해외 곳곳에서 원산지 모를 각종 쓰레기가 계속 흘러들어오고 있지만, 처리가 늦어져 섬 내 쓰레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해안으로 들어오는 쓰레기의 상당수가 플라스틱이란 점도 문제다. 바다에서 발생한 쓰레기가 가장 많지만, 하천에서 바다로 흘러가 다시 해안으로 돌아온 ‘육지’ 쓰레기 비중도 상당하다는 게 환경단체의 분석이다. 플라스틱은 해양 생태계를 악화하는 동시에 먹이사슬을 거쳐 인간에게 피해로 돌아올 우려가 크다.
해양환경정화선 늘린다지만
인천씨크린호가 바다에서 건져올린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 인천시
해역을 관리하는 지자체는 해양 쓰레기 정화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입장이다. 인천시의 경우 해양환경정화선 ‘인천씨크린호’를 운영한다. 바다로 나가 컨베이어 벨트를 내린 뒤 걸리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방식이다. 모든 섬에 배를 댈 수 없기에 승무원이 보트를 타고 무인도 등에 내려 직접 쓰레기를 치우기도 한다. 해양환경조사와 쓰레기 수거를 병행하면서 중점 지역·기간을 정해 쓰레기 수거량을 늘려가겠다는 게 인천시의 구상이다.
해양 쓰레기 문제를 총괄하는 해양수산부도 지자체를 지원하는 한편 현장에 투입할 해양정화선과 바다환경지킴이를 늘릴 방침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국비를 지원해 해양정화선 7척을 추가로 건조하고 있고 바다환경지킴이도 300명을 더 뽑을 계획”이라며 “가능한 예산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양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선 수거도 중요하지만, 유입을 줄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양폐기물법 등 관련법을 정비하고 쓰레기 차단시설 기준을 마련해 바다로 흘러가는 쓰레기부터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해양 쓰레기 문제는 지자체만의 노력으론 해결이 힘들다”며 “해수부와 환경부, 지자체가 한데 모여 유입 차단막 설치 등 문제를 논의하고 맞춤형 정책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굴업도
굴업도
굴업도는 섬 면적 1.7㎢, 길이 3.8㎞, 해안선 길이 13㎞인 작은 섬이다. 남북으로 길쭉한 섬에 덕물산, 연평산, 개머리언덕 등 산과 구릉이 늘어서 있다. 1994년 정부가 방사성폐기물처리장으로 지정해 발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굴업도 지반이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활성 단층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듬해 지정고시가 해제됐다. 2006년 옹진군으로부터 섬의 98.5%를 사들인 CJ그룹이 굴업도에 관광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인구에 회자됐다.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골프장 건설이 무산되면서 현재는 주민 10가구가 사는 조용한 섬으로 남아있다.
[출처: 중앙일보] 송골매 최대 서식 '한국 갈라파고스'…원인 모를 쓰레기 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