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그리고 예배
최근 저희교회가 속한 강원노회 부서 모임을 다녀왔습니다.
개인적 성향상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편이어서 노회를 참석해도
부서 모임은 참석을 피하곤 했습니다.
양구에 온 햇수가 거듭될수록 년차가 쌓이다보니 부서 모임 구성 협력 요청을
외면 할 수가 없어서 인사차 참석했었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부서장이신 목사님께서 집필하신 디아코니아 관련 책을 선물하시며
의미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디아코니아를 연구해보니, 디아코니아는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하나는 디아코니아의 일반적 개념인“ 봉사, 섬기다 ”이고,
다른 하나는(신께) 예배(봉사)하다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속적 섬김이 가능하려면 하나님께 예배하는(위로부터 임하는 은혜)
영적 경험과 위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을 들으며 매우 일리있는 발견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죄성을 지닌 인간의 특성상 일방적 섬김과 희생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인풋(input)이 있어야 아웃풋(output)이 있다는 말 역시
내면의 채움이 있어야 채움을 통해 외부로 흘러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저수지에 물이 차 오르면 저절로 외부로 흘러 나가는 것이 이치이듯이,
인간의 내면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큰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타적 심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주님께로부터 값없이 받은 은혜를 주체할 수 없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던
마리아를 보면 디아코니아(섬김)는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영역임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부은 여인을 나무라는 분위기를 감지하신 예수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하시는 말씀을 보면 받은 은혜의 크기와 섬김은 비례함을 알게 됩니다.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4-47)>
누가 지속적으로 연약한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길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함을
깊이 경험한 사람만이 진정한 디아코니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탈진했다 라 말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배의 실패에서 기인(基因)된다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수가성의 여인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한복음 4:23)>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