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묵상할 때
신앙의 영웅들과 관련된 믿음의 워딩을 숙지하면 놀라운 성경의 상식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여호와 이레, 야곱의 마하나임,
모세의 여호와 닛시와 여호와 라파, 기드온의 여호와 살롬,
삼손의 엔학고레, 사무엘의 에벤에셀,
이사야의 임마누엘, 에스겔의 여호와 삼마 등등
신앙의 인물이 하나님을 체험한 바로 그 현장의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산 신앙의 체험이 되어 기도의 능력과 힘이 됩니다.
사사기의 삼손 이야기는
출생과 성장과 사역과 죽음을 모두 기록한 사사 시대 삶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많은 도움을 줍니다.
사사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삶의 문화를 가진 삼손의 이야기는
성경신학을 연구하는데 많은 자료를 제공합니다.
삼손의 엔학고레는
사역의 목마른 갈증, 그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엔학고레의 샘은 삼손이 가진 몸의 힘이 아니라
그 몸의 힘을 주신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은혜였습니다.
나귀 새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여명을 죽인 후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삿15:18-19)
라맛레히는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여명을 죽여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은 무덤입니다.
삼손의 라맛레히의 기적은
엘리야의 갈멜산 대결의 승리와 같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대결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의 군대에 쫓기며 도망자가 되어
지치고 목마르고 힘이 없어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며 위기의 순간을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라맛레히의 기적을 이룬 삼손에게 엔학고레의 샘으로 은혜를 베푸셨고
갈멜산 대결의 승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인 엘리야에게 가늘고 세미한 음성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갈6:9)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한 삶의 사역은
세상의 강한 저항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는 사역의 근원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세속의 이를 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일의 결말이 계속된 하나님의 동행이 될 때.....
고난의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종말론적인 사역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삼손의 엔학고레는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다는 삼손의 신앙이었습니다.
유다 자손의 결박으로 묶인 사슬을 끊어내고 나귀 턱뼈로 블레셋을 도륙한 것은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다는 삼손의 신본주의 신앙이 돋보였습니다.
심손으 철병거를 가진 블레셋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블레셋과 싸우는 전형적인 여호와 전쟁의 전사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자손은 블레셋을 두려워 하고 그들의 압박에 굴복하여
하나님의 사사를 결박하고 블레셋에 넘겼습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킨 굴종의 전략은
삼손의 반전으로 라맛레히의 큰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선한 목자의 삶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 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를 위해 대를 희생시켜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세는
사역의 본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잃어 버리지 않는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복음 사역의 사명입니다.
베드로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4:11)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지혜로운 삶은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그 은혜의 힘으로 해야합니다.
단 지파의 삼손과 당시의 유다 자손은
너무나 대조가 되었습니다.
유다 자손은 블레셋의 지배를 받는 노예 근성으로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에게 넘기려 하였으나
삼손은 유다 자손과 싸움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결박되어 블레셋의 진영으로 인도되어
하나님의 큰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블레셋의 협박을 당하여 삼손을 결박하였던 유다 자손은
하나님보다 블레셋을 두려워하는 불신앙의 민낯, 그 부끄러운 수치를 그대로 보였습니다.
이러한 유다 자손에게서 다윗의 용맹을 찾을 수 없고
가나안 땅 맹주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초대 이스라엘의 왕이 유다 지파에서 추대되지 않을 정도로
다윗이 유다 자파를 이끌기 전에는 유약한 지파에 불과하였습니다.
환경의 노예로 굴복당한 유다 자손을 부끄럽게 하였던 삼손의 힘은
하나님의 큰 구원을 이루는데는 숫자의 많음에 있지 않고
기드온의 삼백 용사로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친 바로 그 구원의 역사를 재현하였습니다.
일당백도 힘든 싸움인데 일당천의 싸움은
삼손이라도 힘들고 지쳤습니다.
일당천의 싸움은 승리하였으나 또 다시 블레셋 군대가 몰려온다면
삼손은 죽게 될 것이라는 생명의 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즉시 응답하여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왔습니다.
삼손은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여
그 샘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으로 힘들고 지칠 때......
오직 신본주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할 때 삼손의 엔학고레를 얻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