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원에서 좌동교를 지나 오른쪽 편에 있는 담배 가계 뒷집이 마누라 외갓집이다. 조금 일찍은 시간에 담배를 사러 가게에 갔다.
가겟집 아줌마는 옛날 아줌마 그대로였다
소 외양간 옆에 서 있던 아름드리 감나무는 베어지고
장독대 둘레에 심은 민들레, 봉숭아, 나팔꽃, 분꽃도
장독대 뒤에 복사꽃 나무, 조팝나무, 해바라기도 사라지고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원룸 벽에 임대라는 현수막이 너절하게 붙어있다.
아침 5시에 체위를 변경시키고 암웨이 비타민을 챙겨주는 것이 힘들다기보다는 언제까지라도 내가 해야 할 마땅한 일로 여겼다.
당신이 나에게 했던 "여하튼 당신은 필요할 때 찾으면 안 보인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까지라도 진정으로 함께 있고 싶었다.
진주가 자기가 비용을 댈 테니 간병인을 두자고 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간병인이라도 내 마누라 몸에 손 닿는 자체가 싫었다
"내가 돌보겠다". 다툼이 벌어졌다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면 올라가라"
"엄마 하자는 대로 합시다" 진주답게 중재안을 제시한다. " 좋다 그라자"
나는 교육원에 출근해야 하는데 24시간 병원에 함께 있는 것을 걱정한 마누라가 "진주 의견에 따르자"할까 노심초사했다
마누라가 맑은 소리로 이야기한다.
"진주야! 아빠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개무량이었다. 힘든 일을 감내해야 할 상황에서 "자기를 보살펴 줄 사람이다"라고 나를 인정해 준 것은 "나는 당신을 많이 사랑한다" 라고 고백한 것이다.
내가 마누라와 살면서 저질은 잘못을 눈곱 만큼
이라도 덜어 줄 기회를 준 것에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혹시나 진주가 비용을 대겠다는데 부담스러워 한 결정이라도 나는 함께 있게 되어 너무 좋았다
퇴근해서 병원에 오면 저녁밥이 배달되어 있다
마누라 옆에 앉아서 바깥쪽 이팝나무를 보며 저녁을 먹는다. 그 흰 꽃의 순수함은 환자와 환자 가족 들에게 "삶의 시련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며,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없다."고 한다
태풍이 올 때 우리는
태풍을 없애지 못하지만
그것이 지나가기까지
내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피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게 될 거야
언젠가 태풍이 걷히고
파란 하늘을 보게 될 땐
다시금 인생의 희열감을 느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