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역행한 국힘 전당대회…윤석열 우상화 대회로 전락
[시민언론민들레 | 김성진 기자 mindle1987@mindlenews.com 2023.03.09 00:07
낯뜨거운 ‘윤비어천가’…20년 전 과거로 돌아간듯
"소망 이뤄주신 분, 미래세대 책임의식 가진 분"
전대라기보다 윤석열 찬양대회·팬클럽행사 방불
단상 오른 윤, 후보 때처럼 어퍼컷, 손가락 V
입장 때 “민중의 노래가 들리나” 가사의 노래 틀어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3.3.8 [공동취재] 연합뉴스
2000년대 들어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와 정당 발전의 흐름 속에서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20여 년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의 부귀영화를 꿈꾸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내년 총선 공천권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진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선거 기간 윤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 추대론으로 논란이 됐고, 이른바 '윤심' 후보(김기현)에 대한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지지로 인해 대통령실 당무 개입, 대통령 정치 중립 위반 등이 도마에 올랐다.
선거 막판에는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김기현 후보를 지지했다는 논란이 일어 후보 간 '이전투구'까지 벌어졌다. 안철수 후보는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의 반성이나 절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단면은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당대회서 낯 뜨거운 '윤비어천가' 경쟁
이날 국민의힘 전당대회에는 정치 중립, 당무 개입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전당대회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지난 2016년 새누리당 당시 대통령 박근혜 씨가 참석한 뒤 약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이 행사장에 들어서자 사회자인 신영일·송상은 아나운서는 "윤석열" "윤석열"을 연호했고, 전당대회에 참여한 당원들도 '윤석열' 이름을 따라 불렀다. 윤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듯 손을 흔들거나 주먹을 불끈쥐기도 했다. 이어 당 주요인사들의 '윤비어천가(윤 대통령을 찬양하는 발언)' 경쟁도 이어졌다.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보다는 윤 대통령 찬양 대회나 팬클럽 행사를 방불케 했다. 낯 뜨거운 장면이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헌승 전당대회 의장은 "내일(3월 9일)이 우리 윤 대통령께서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대선 승리 1주년 되는 날"이라며 "윤 대통령 승리는 바로 이 자리에 계신 당원 동지의 승리"라고 했다. 당원들은 이에 "윤석열" "윤석열"이라고 외쳤다.
정진석 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자리에는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소망한 정권교체를 이룩해 준 분이 나와계신다"며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준 윤 대통령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안 계셨다면 감히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어려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비어천가'는 주호영 원내대표에 와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철저한 투지와 미래 세대에 대한 확고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우리 당 1호 당원 윤 대통령이 계신다"며 "우리 윤 대통령께 응원의 박수 보내드리자"고 했다. 그러면서 "힘내라 대한민국, 힘내라 국민의힘, 힘내라 윤석열"을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퇴장하며 김기현 당대표 후보 등과 차례로 인사하고 있다. 2023.3.8. 연합뉴스
윤석열, '어퍼컷'하고 유체이탈 축사로 화답
윤 대통령은 축사를 위해 무대를 오르자마자 대선 후보 시절 하던 '어퍼컷'을 하고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렸다. 사회자들도 마이크를 잡고 "윤석열" "윤석열"을 반복했고, 당원들도 이에 따라서 그의 이름을 외쳤다. 축사 직전에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0개월을 담은 영상까지 상영했다.
윤 대통령은 축사에서 '윤비어천가'에 답하듯 "이렇게 뵈니까 정말 1년 전에 우리가 다함께 뜨겁게 선거운동 했던 것이 다시 생각이 난다"며 "작년 이맘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부패세력을 내몰고 정상적인 나라고 재건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로 격려하며 뛰고 또 뛰었다"고 치하했다. 이어 "과거의 낡은 이념에 기반한 정책, 기득권 카르텔의 부당한 지대 추구를 방치하고서는 한 치 앞의 미래도 꿈꿀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면서 "국민 고통에 빠뜨리는 기득권 이권 카르텔은 확실하게 뿌리뽑아야 한다"고 했다.
최근 시중에는 '만사검통(모든 일이 검사를 통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 대통령을 둘러싼 '검사 기득권 카르텔'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음에도 유체이탈식 화법을 구사한 것이다. 기득권 카르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윤 대통령은 특히 3·1절 기념사, 일제 강제징용 해법 등으로 '심판론'까지 불고 있음에도 "한일관계 복원"을 또다시 강조하며 "기득권의 집요한 저항에 부딪혀도 미래세대를 위한 길, 나라 혁신을 위한 길을 결코 포기하거나 늦춰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나라의 위기, 당의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악용하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떠한 부당한 세력과도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것이 당이 국민으로부터 더욱 사랑받는 길"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축사를 마치고 무대 위에서 '윤석열' 이름을 연호하는 당원들에게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그는 전당대회 결과를 보지 않고 퇴장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 뒤를 따라 문 밖까지 따라나갔다.
'윤심' 김기현 새 당 대표…거수기 전락할 듯
이날 국민의힘 새 당 대표에는 김기현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52.9%를 득표, 4명의 후보 중 과반으로 1위를 차지했다. 나머지 득표율은 △안철수 후보 23.4% △천하람 후보 15.0% △황교안 후보 8.7%다. 최고위원은 김재원·김병민·조수진·태영호 후보, 청년최고위원은 장예찬 후보가 각각 선출됐다. '윤심' 후보로 불린 김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서 향후 당과 대통령실의 관계가 상명하복 구조로 바뀌고, 여당이 대통령실의 '거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야 갈등도 고조될 전망이다.
한편 이날 윤 대통령이 전당대회에 입장할 때 영화 '레 미제라블'의 대표곡 '민중의 노래'가 나와서 논란이 됐다. 이 노래는 핍박받는 민중의 시위 장면에 나온다. '민중의 노래가 들리나, 분노한 자들의 노래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민중의 음악이네'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관련 영상과 가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대통령 입장 음악으로 이걸 고른 사람은 윤리위 가야 할 듯"이라고 비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