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도
놀라는 주안상(酒案床)
- 전주음식
이야기(4)
행촌수필 ,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이윤상
전주가 맛의 고장으로 유명해 진 것은 조선시대부터라고 한다.
조선시대 소위 대감이라 부르는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이 서울에서 말을 타고 전라도 감영이 있는 전주까지 불원천리 내려와서 맛깔스런 안주로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겼다는 내역을 아는 사람은 요즈음에는 별로 없다. 그 자리가 어딘가 하면 지금의 태평동 천변 쪽에 술안주가 거창하게 나오는
유명한 술집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그 자리에 기생들이 있어서 지체 높은 술꾼들을 불러들이는 유곽(遊廓)이 즐비했었단다. 그 자리의
전통술집을 보전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풍류객들도 많았다.
술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이나 모처럼 전주에 출장을 와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술을 마시는 이들은 세 번 놀란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상다라가 휘도록 푸짐하게 나오는 술안주를 보고 바가지를 씌우려는 게 아닌가
하여 첫 번째로 놀라고, 술값을 치르면서 그 많은 안주들을 공짜로 준다고 하여 두 번째로 놀란다. 그 많은 안주의 감칠맛에 세 번째로 놀랐다고
한다. 그 런 넉넉한 술안주와 술값이 싼 전주의 술맛이 그리워서 친지들과 함께 전주로 술을 마시러 오곤 했었다. 전국의 문인들이나 문화유적
답사팀이 감탄해 마지않는 것은 싼 술값에도 탄복했지만, 전주 술집들의 넉넉한 인심과 맛깔스런 음식솜씨에 반했다고 한다.
내가 전주 p초등학교에 근무하던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의
시청 자리에 전주역이 있었고, 역 주변에 술집이 많았다. 퇴근하면 학년단위로나 그룹별로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고단한 회포를 풀었다. 옥천집은
단골집이었는데 인근에 비슷한 술집들이 즐비했다. 막걸리 한두 주전자만 시켜도 술국에다 부침개, 꼬막, 달걀찜, 오징어회 등 열두 가지 공짜
안주가 나왔다. 거기에다 홍어찜이나 홍어회까지 푸짐하게 안주가 나왔다. 또한 술을 따라주는 접대부도 나올 때가 많았다. 안주가 푸짐하니 주인이
미안해서 몇 주전자를 더 시켜서 먹어야만 술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2001년 서울대학교사범대학 교육행정연수원에서 선발된 50여 명의
교장들이 지도자과정 교육행정연수를 받을 때, 나와 만난 강원도에서 온, 모 교장은 자기가 논산에서 군복무를 할 때 전주에 사는 친구를 따라와서
전주의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며, 전주의 푸짐한 공짜 안주에다 그때 술맛을 평생 잊을 수 없다며, 지금도 그런 술집들이 있느냐고 물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경원동을 중심으로 세무서, 완주군청,
전주시청, 전북도청 공무원들이 북적였고, 팔달로를 중심으로 술집들이 많았다. 인기를 끌었던 술집으로 팔달로주변에 이화집이 있었다. 푸짐한 안주에
약주와 정종을 냈는데, 외지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오래 인기를 끌었다. 그 밖에도 전주의 술집들은 안주가 참 푸짐했다. 그때의 그 술집들은 어떻게
수지 계산을 맞추었을까? 그토록 감탄의 대상이었던 술집들이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었다. 전주의 술집 안주인심도 많이 달라졌다.
1980년대 후반에는 중앙동을 중심으로 초밥집이라는 간판을 걸고
걸판지게 상다리가 휘어지게 안주를 차린 술상이 나오는 집들이 성업을 한 때도 있었으나 그런 집들도 점차 사라졌다. 요즈음은 외지에서 손님이 와서
전주에 공짜안주가 푸짐하게 나오는 술집을 안내해 달라고 하면 막상 어디로 안내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어느 집이나 음식을 팔면서 술은 반주로 내는
정도이다. 최근에는 삼천동 삼천남초등학교 뒷골목이나 본 병원 길 건너 서신동 뒷골목의 막걸리집들이 외지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인기를 끌고
있다니 다행이다.
아무튼 맛의 고장인 전주가 음식솜씨를 자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술을
전문으로 팔며 안주가 푸짐하게 나오는 옛날의 술집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전주의 음식 맛이나 식당인심은 다른
도시에 비해서 후하다고 한다. 전주의 비빔밥, 콩나물국밥, 한정식은 아직도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맛의 고장이라는 전주의 명성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2017. 8. 27. 전주음식 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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