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길거리를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정말 나이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낮 시간에는 거리나 대중교통이나 거의 대부분이 노년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마도 출퇴근 시간의 젊은층을 피해 낮에 밖으로 나오니 발생하는 모습일 것이라 판단한다. 베이비부머들 가운데 가장 그 수가 많다는 1960년생에서 1963년생들이 정년퇴직했으니 노인층의 수가 더욱 늘어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베이비부머들이 누구인가. 전세계적으로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다시말해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세계가 어느정도 안정될 때까지 출생한 세대이다. 전쟁통에 아이를 제대로 낳지 못했으니 전쟁후 이제 맘 놓고 자식을 놓으려는 부모들의 의지가 발로된 결과였을 것이다. 지금 나이로는 77살부터 59살까지이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 전쟁으로 한반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수도 서울에서 남은 건물이 거의 찾기 어려웠다. 세계에서 가장 극빈국이 되어버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원조물자로 근근히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밀가루 배급을 받기 위해 동사무소앞에는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동네 뒷산에는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겨 식량화하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많이 띄던 때였다. 여름철이면 그많은 가족들이 큰 대야에 수박을 짓이겨놓고 그 속에 단 맛을 내는 뉴슈가라는 사카린을 넣어 한숟가락씩 떠서 먹던 그 시절이다. 몸에는 좋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 달달한 맛에 더위도 잊었다.
한국인들은 정신을 차렸다.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몰락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그 누구 집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부모들은 자식들의 교육에 올인했다. 부모들은 먹고 마시고 입지 못했지만 자식들만큼은 못배운 한을 되물림하지 않겠다고 이를 깨물었다. 전쟁통에 자식을 잃은 한을 풀려는 듯이 자식들도 많이 생산했다. 1960년 당시 보통 6명정도는 낳았다. 없는 살림에 자식들이 많으니 뭘 제대로 먹고 입었겠는가. 하지만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치겠다며 허리를 졸라맸다. 돈이 되는 일에는 어디나 손을 내밀었고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때는 용병으로 한국 군인들이 대거 파병됐다. 목숨을 바꾼 그 용병비로 한국은 조금씩 경제적 성장을 이룬다. 독일 탄광으로 독일 간호사로 베이비부머들의 삼촌 이모 형 누나들이 달려갔다. 그들이 보내온 월급이 한국 경제가 일어서는 종자돈 역할을 하게 된다. 집에서 읽는 베이비부머들의 책소리가 동네를 울리는 가운데 부모들은 지친 심신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계속됐다. 베이비부머들이 공부만 한 것이 아니였다. 정말 열악한 가정에서는 학업을 이루기 불가능했다. 베이비부머들 가운데 일부 형 누나들은 서울 청계천 좁디 좁은 열악한 공간속에서 미싱을 돌리면서 한푼 두푼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동생들은 대학교까지 진학해 공부를 하게 된다.
베이비부머들은 1970년대 후반 그리고 1980년대 급속히 발전하는 나라 경제에 힘입어 비교적 수월하게 취직을 하게되고 나라는 급성장하게 된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그 압축성장 말이다. 뭔가 이뤄지는 성취감에 국민들은 도취됐다. 그래 열심히 하니까 되잖아...무조건 돈이면 최고이지...그러기 위해서는 공부가 최우선 아닌가...공부만 잘하면 모든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온 국민들을 휘감기 시작한다. 전쟁때 참혹함을 겪은 부모세대가 전력투구해서 키워온 베이비 부머들이 취직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그리고 자식들을 낳기 시작한다.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한국은 또 한차례 도약을 한다. 베이비부머들은 성장에 도취한다. 압축성장의 최고 수혜자인 베이비부머들은 그야말로 공부와 돈의 신봉자가 된다. 그래서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돈과 공부 지상주의적 교육을 강요하게 된다.
공부만 잘하면 다른 것은 개차반이라도 용서가 되는 사회를 이룬다. 학교폭력을 일으켜도 공부만 잘하면 눈감아주는 학풍도 만들어진다. 고시를 붙으면 동네에 플랭카드가 휘날리는 사회가 됐다. 주변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확립됐다. 베이비부머들의 자식들은 베이비부머들 보다 한술 더뜨는 공부와 돈 지상주의의 신봉자가 된다. 한국 베이비부머들의 자식들이 바로 지금 50대 초반, 40대에서 30대들이다.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 넉넉한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부족함이란 모르고 살아온 세대들이다. 1960년 GDP 100달러에서 2023년 현재 3만 3천달러 시대로 무려 60년만에 330배 세계속 유래가 없는 급성장속에 베이버부머들은 살았고 그들의 자녀들은 자라온 것이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이 한국의 경제 성장에 끼친 지대한 공을 어찌 가볍게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속 한국인을 만드는데 참으로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 빛만큼이나 어두움은 짙다. 그들은 고도의 압축성장에 현혹되어 잃어버리면 안되는 덕목을 많이 상실했다. 베이비부머들의 부모들이 가르쳤던 참교육을 아예 무시해 버렸다. 밥상머리 교육을 송두리채 팽개쳐 버렸다. 가족도 중요하지만 이웃도 중요하다는 그 평범한 덕목도 가르치지 못했다. 오로지 내 자식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그 아주 천박한 생각이 온 나라와 사회를 뒤덮게 만들었다. 물론 급성장을 이루는데 한 요인이 됐지만 그 내부에 정신적 윤리적 부분에서는 지대한 패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돈이면 최고라는 그 심리가 지금 주택가격을 하늘 모르게 솟구치게 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위정자들의 말도 안되는 실정과 패착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 폭등 심리에는 베이비부머들의 역할이 지대하게 작용한 것도 사실 아닌가.
그들이 낳고 기른 자녀들이 그들의 뒤를 이어 부동산 투기와 주식 투기에 올인하고 있다. 자신의 돈으로 더 큰 부를 이루겠다는 것을 뭐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투기를 한다고 해도 그 정도가 있어야 한다. 무슨 영끌족이라는 괴상한 세력까지 등장하는 것은 바로 베이비부머시대로 부터 전수되어온 돈 지상주의의 결과 아니겠는가. 자신의 돈으로 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갑지도 못할 빚을 내서 부동산과 주식에 투기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하는 것인지. 지기 싫어하는 국민성이 투기바람을 부채질해서 온나라가 투기장 되는 것을 한두번 본 것이 아니다. 전세계에서 가계부채가 가장 많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한국이 세계 경제 10위국의 위업을 이루는데 베이비부머들의 역할이 지대하다. 하지만 그 지대한 역할이 너무 지나쳐서 이제 나라를 서서히 붕괴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외형을 키우는데만 열중한 나머지 내면의 성숙함과 덕목을 모조리 폐기처분한 그 댓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강조했던 돈 지상주의와 공부 지상주의의 혜택을 지금 베이비부머들은 맛보고 있는가. 잘 키운 자식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가.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마지막 부모 공경시대이자 처음으로 자식으로 부터 천대를 받는 유일한 세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길에서 폐지를 줍고 자신의 몸도 이끌기 힘든데 손자 손녀들 봐주러 새벽 지하철 타고 이동하는 노인들, 그리고 무료 급식소에서 제공하는 설렁탕 한 그릇으로 하루를 때우는 노인들도 모두 한때 이 나라를 급성장시키는데 일조한 베이비부머들 아니겠는가.
한국 베이비 부머들은 고학력때문인지 자기 중심 성향이 매우 강하다.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고학력 층이 많은 베이비부머들이 없다. 그래서 인지 은퇴를 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생각을 내세우려는 성향이 강하다. 극좌와 극우들 가운데 이 베이비부머들이 유독 많다는 통계도 있다. 넉넉하게 잘 먹고 살아서인지 체력도 강해 앞으로도 그들의 주장을 상당히 오랜 시간 강조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은퇴하고 이제 서서히 사라져야 하지만 여전히 사회 중심에서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 베이비부머들이 아닐까 한다. 지금 한국이 처한 심각한 저출산 문제도 바로 베이비부머들의 자식 교육방식과 생활태도에서 기인했다는 지적도 있다. 돈 지상주의와 성적 지상주의를 만든 그 베이비부머들때문이라는 말 아니겠는가.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한국을 급속도로 일으켜 세웠지만 서서히 붕괴시키는데도 큰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모든 면에서 말이다.
2023년 9월 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