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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와 루아르1 - 앙굴렘에서 기차로 투르에 도착해 루아르강 슈농소성을 보다!
**** 프랑스 중부 투르 인근 루아르 강변에 여자들의 성이라 불리는 슈농소성 ***
우린 보르도 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앙굴렘 에 도착해서는 투르 Tours 가는 기차표를
끊는데, 어찌된 셈인지 인터넷에서 조사한 것 보다 30분 일찍 출발을 한다네요?
그리고 투르 에서 르망 가는 기차시간은 예정대로이나... 거기서 렌 으로 가는 기차는
인터넷에 나온 것과는 달리 너무 늦은 것 밖에 없어 몽셀미셀 은 포기해야 할러나....
앙굴렘역 에 코인라카가 없어 배낭을 메고 언덕길을 걸어서 1월말에 국제 만화페스티벌 이
열린다는 앙굴렘 시가지를 둘러 보고는 다시 Gare Angouleme 기차역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기차역으로 들어가는 문이 모두 잠겨버려 여행객들이 우왕좌왕
하는데... 사람들을 따라 역사 뒤로 돌아가 실내로 들어갔으나 안쪽문이 또 잠겼네요?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따라 다시 밖으로 나와 야트막한 나무 울타리 문 을 밀고는 바로
선로로 들어가 플랫폼에 이릅니다.
잠시후에 경찰들이 나무 울타리 문을 열고 나간후, 안쪽 문이 열려 다시 대합실로 들어
가는데 아마도 철도파업 Strike 이 일어나 기차역 보호를 위해 폐쇄 했던 모양이네요?
그동안 유럽 여행을 무수히 다녔지만 철도 파업 을 경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엄청 불편한데도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항의하는 법 없이 아주 조용조용히 움직입니다.
총을 든 경찰이 보이길래 처음엔 무슨 테러 대비 훈련인줄 알았으니.... 또 11시 35분
에 출발 예정인 기차는 연착 을 하여 12시나 되어서야 선로로 들어 옵니다.
우린 유레일 패스 가 있기로 좌석표를 끊었는데 운행 편수가 갑자기 줄어서 그런지
기차는 만원이고 우리 자리에는 누가 앉아 있다가 비켜줍니다?
끝없이 너른 평원을 한시간 반을 달려서는 기차가 생 피에르 역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바로 옆 선로에서 투르 로 가는 로컬 기차가 바로 도착하기로 환승 을 합니다.
투르 Tours 에 도착하니 13시 40분인 데, 앙굴렘 역에서 유레일패스로 기차표를 끊기로
투르 까지는 좌석예약비가 없고 여기서 르망 가는 기차는 예약비가 18유로 인데...
역 구내에 코인라커 Consignas 가 있으면, 14시 05분 기차를 타고 1시간만에 르망 으로
가서 1시간 반을 기다려 16시 29분 기차로 라발 Laval 에 도착해....
또 1시간을 기다려 18시 24분 기차를 타면 19시 04분에 렌 Rennes 에 도착하는 데,
좌석예약비는 없지만 문제는 도착시간이 파업전 보다 무려 2시간이나 늦으니.....
렌에서 몽셀미셀 가는 버스 가 있느냐 하는 여부라!!! 버스가 없으면 기차로 퐁 토르송
몽셀미셀 Pontorson-Mont-St-Michel 로 가서 택시로 16~ 20유로에 몽셀미셀 로 가는데!
20여분을 생각하다가 파업 이면 또 퐁 토르송 몽셀미셀 로 가는 기차가 없어질 수도
있기로 불확실하니 그만 몽셀미셀은 포기 하고 인터넷으로 예약한 호텔을 찾아 갑니다.
구글 맵에서 보고는 손으로 종이에 그린 수제 지도 를 들고 기차역을 옆으로 돌아가
거리 이름을 대조하면서 가는데 7분만에 로시니 호텔 De Rosny Hotel 이 보입니다.
주소는 19’Rue Blaise Pascal Tours, 37000 ☎ 02 47 05 23 54 더블룸 49유로( 64$ )
이고 역에서 5~6분 거리입니다.
아주 작은 호텔이라 가족경영을 하는 분위기인데 프론트에서 영감님을 만나서는 기차파업
때문에 내일 하루만 예약했지만 부득이 하루 먼저 도착했다고 방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다행히 방은 비어 있어 배낭을 넣고는.... 원래 오늘밤에 묵기로 예약한 몽셀미셀의
세인트 오베르트 Saint Aubert Hotel 호텔에 취소 전화를 하려는데....
아니? 인터넷사이트 아고다에서 예약하고 휴대폰으로 97.12 $ 를 전액 결제
했는데, 세상에나.... 전화번호가 없네요?
이메일로 받은 호텔 바우처에 주소 는 적혀 있으나, 전화번호가 없는 것입니다!
이를 어쩌나 싶어 주인 할아버지에게 로비에 놓인 컴퓨터를 좀 쓰자고 부탁하여
자물통 3개(!) 로 잠가 놓은 것을 열쇠를 받아 열었으나.... 부팅이 안되네요?
호텔 주인 할아버지가 한참 깅낑대더니 어디에 적어둔 비밀번호 를 찾아 부팅 은
간신히 되었으나.....
이번에는 호텔 홈페이지 주소가 없으니 그냥 이름만 쳐서는 찾을 수가 없네요?
한국으로 전화 를 해서는 딸에게 저 몽셀미셀의 호텔을 찾아 예약취소를 하라고
부탁했건만..... 결국 잘 되지 않아서 호텔 요금만 날렸습니다!
아니 어차피 하룻밤 자는거고 투르 호텔에서 하루를 추가했으니 트윈에 49 유로
(64$) 주었는지라.... 그만큼이 손해를 본 것입니다!!!
억울하기 그지 없지만 황금 같은 시간 을 허비할 수 없어 그냥 나와서는 기차역 앞
에서 택시를 잡아 루아르 강변의 고성 으로 향합니다.
프랑스에는 천개가 넘는 성이 있다는 데..... 그중에서도 여기 루아르 강변에는 왕궁
으로 사용한 30여개의 유서 깊은 성 이 있으니!!!
지금 시간이 오후 2시이고 모레 아침에는 기차로 오를레앙 으로 가야하니 관광은 오늘
과 내일을 합쳐 하루반 뿐이라....
내일 앙제와 낭트 를 다녀와 투르 시내를 본다면 그럼 고성 관광은 오늘 반나절 인데!
대중 교통 이 불편한 곳이라 차량을 렌트하지 않는한 많이 볼 수는 없는 것이고.....
하여 두서너 곳을 볼 수 밖에 없으니 역 앞으로 가서는 택시 를 교섭 합니다.
우선 교통이 불편한 투르에서 35km 거리에 있는 슈농소성 을 먼저 본 다음에 이어
앙부아즈 성 까지 가자고 하니....
기사는 요금은 그냥 대기료 포함해서 미터기 요금 나오는대로 받겠다고 하네요?
택시는 시가지를 빠져나가 루아르 강변의 포도밭 을 거쳐 들판을 달려 조그만 마을을 지나
숲속에 슈농소 성 에서 30분을 보고는 다시 앙부아즈성 으로 가는 일정 인데....
슈농소성 에 도착하니 택시 미터기는 52유로이고 성을 보고 나오니 대기료가 더해져
69 유로 인데,
앙부아즈 성 에 도착해서 미터기를 보니..... 1시간 반에 모두 99 유로 가 나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파리 몽파르나스역 에서 떼제베를 타고 St. Pierre des Corps
역에서 환승하여 슈농소역 Chenonceau 까지....
2시간 걸리는 데, 슈농소 역에서 성 까지는 도보로 20분 가량 걸린다고 합니다!
슈농소성 은 입장료가 10.5 유로 하는데 한글 로 된 두터운 방문 안내서를 주며....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긴 나무 터널 을 지나는 것이 참 운치가 있습니다!
그러고는 루아르강의 지류 인 세브르 강에 놓인 다리 를 지나 백설 공주 에나 나올법한
고깔모자의 성채 로 들어가는데 강에 쌓은 성벽이 참 견고해 보입니다.
슈농소 성 Chateau de Chenonceaux 은 루아르 강의 지류인 셰르강변에 백조가 수면
에 날개를 접고 쉬는 모양 으로 지어졌는데....
여기 루아르 강변 지방의 성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섬세하다" 는 평을 듣습니다.
*** 까트린 드 메디치는 다리위에 60미터에 달하는 회랑을 만들고 벽난로를 설치해 무도회장으로 사용***
슈농소성은 16세기에 재정출납관인 보이에와 아내 까트린 브리소네 가 성을 건축한 후에
6명의 여성이 성주 로 군림했기로 “6명 안주인의 성” 이라고 불리기도 한답니다.
6명은 디안 드 푸아티에 - 까트린 드 메디치 - 루이즈 드 로렌느 - 루이즈 뒤뺑 -
마르그리트 플루즈를 거쳐 시온 머니에 에 이른다고 하네요.
이중에 루이즈 뒤뻥 은 18세기 말의 성주로 백과전서가들의 보호자 를 자처했으며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디드로 등을 이 성에 초대하여 친교를 유지하였다고 합니다.
*** 퐁텐블로 화가 르 프리마티스가 그린 사냥의 여신 복장을 한 디안느 드 뿌아티에의 초상과 반다이크의
자화상, 뒤브와가 그린 사냥의 여신 복장을 한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초상이 걸린 프랑수아1세의 침실 ***
1,547년에 프랑스왕 앙리 2세 는 이 성을 20세 연상의 정부인 디안 드 푸아티에에게
선물 했으나....
왕이 죽은후 왕비인 피렌체 출신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 에게 강제로 뺏겼다고 합니다.
*** 1,650년 슈농소성을 방문한 부르봉왕조 루이 14세의 초상으로 리고가 그렸으며 루이14세의 응접실 ***
앙리 2세의 부친 프랑수아 1세 는 북이탈리아로 쳐들어가서는 신성로마 황제 카를 5세
에게 패배해 포로 가 되어 스페인 마드리드의 감옥에 갇혔다가....
굴욕적인 조약을 맺은후 귀국하니 왕자 앙리 2세가 대신 스페인에 인질 로 남았습니다.
형이 죽자 귀국해 프랑스 왕위에 올라 국내 개신교는 엄하게 탄압 하면서 독일에서는
가톨릭 합스부르크가를 견제 하기 위해 오히려 개신교도를 적극 지원 하였습니다.
또 앙리 2세 는 영국으로부터 칼레를 탈환했으나 엉뚱하게도 1559년 7월 신하인 몽고메리
백작과의 마상시합 에서 눈에 창을 맞고 10일 뒤에 파리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조선 같으면 임금이 신하와 무술시합 을 하다가 창을 맞고 죽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지요?
여기 슈농소성 은 장구종의 벽난로가 있는 다이아나의 방이나, 루벤스의 삼미신 과
프리마티스의 수렵의 여신 다이아나등......
관능적인 회화 로 장식된, 블루아-앙굴렘 왕조 를 연 프랑수아 1세의 침실 이 참으로
볼만 합니다.
*** 앙리 2세에게서 슈농소성을 선물받은 디안 드 뿌아티에의 침실이나, 왕이 마상 창시합으로 죽자 성을
메디치 왕비에게 뺏기고 대신에 쇼몽 쉬르 루아르 성을 받아 옮겨갔다 ***
3층에는 불운하게도 기즈 공작측에 암살된 앙리 3세 국왕의 비 “루이즈 드 로렌의방”
이 있는데....
왕비는 흰색과 검은색등 무채색의 방에서 상복을 입고 기도의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발루아 왕조 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도 간에 서로 사탄과 마귀" 라고 비난하며
재산을 탈취하고 서로를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 내전 에 빠져들었는데.....
프랑스에는 칼빈파 개신교 위그노 의 대표가 둘 있었으니 하나는 콜리니 장군 이고,
다른 하나는 보르도 인근에 나바르의 여왕 마르그리트의 아들 앙리 나바르 입니다.
*** 앙리 4세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아들이며 루이 14세의 삼촌이 되는 방돔 공작 세자르의 침실 ***
앙리 2세의 둘째 아들 샤를 9세 는 지긋지긋한 내전을 수습하기 위해 콜리니 장군을
중용하여 스페인에 대항하고....
여동생 마르그리트 를 개신교 칼빈파 위그노인 앙리 나바르와 결혼 을 시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가 출신의 왕후 카트린 드 메디치 는 개신교도 위그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염려하여 가톨릭 세력인 기즈 공작 과 의논해서는....
위그노 왕자를 사위로 맞으면서 파리에 상경한 축하객 개신교도 들을 1,572년 8월 23일
밤에 기즈공작과 가톨릭 교도 들을 시켜 성 바르톨로뉴 대학살 을 일으켜....
파리에서만 콜리니장군을 비롯 3천명을 학살 하고 그 광풍은 지방으로도 번져 갑니다!
2년후 샤를 9세가 죽고 왕이된 동생 앙리 3세 는 세력이 커진 기즈공작 을 바로 여기
슈농소성 에 불러서 암살 하니.....
가톡릭 기즈 측도 보복으로 가톨릭 수도사가 앙리 3세 프랑스왕을 암살 하게 됩니다!
졸지에 발로아계 왕조가 단절 되어 왕위가 비었는지라..... 프랑스 왕실의 사위 가 된
개신교도 나바라의 왕자가 왕 에 오르니.....
이른바 앙리 4세 Henry Ⅳ 로.... 곧 프랑스 부르봉 왕가 의 시작입니다!
앙리 4세 는 국가 통합을 위해 자신은 가톨릭교도로 개종 하고 파리는 오직 가톨릭 만
믿는다는 전제하에.....
기존의 개신교 칼빈파 위그노들의 자기 고향에 한정해 믿음 은 인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후일 앙리 4세의 후손인 부르봉가 루이 14세 는 한 나라에 두
종교가 있을 수 없다며 가톨릭으로 개종을 강요 하니.....
상공인 위그노 들은 네델란드와 독일로 망명하고 프랑스는 가톨릭으로 통일 되는데
이때 프랑스 개신교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프로이센 은 성장을 거듭하게 됩니다.
성 밖으로 나와서는 디안 드 뿌아티에의 정원 과 까트린 드 메디치의 정원 등 성을
에워싼 프랑스식 정원을 보는데.... 그 너머에는 채소밭과 오래된 농가도 있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때는 세브르강을 경계로 여기 정원과 입구는 독일군 이 점령하고 다리 건너
슈농소성은 페텡 원수의 비시정권 프랑스령 이라 레지스탕스의 도피로 였다고 합니다.
전쟁피해자가 소련은 군인 1,370만에 민간인 700만명 이었고 독일이 군인 350만에
민간인 280만명 인데 비해 미국이 29만명, 영국이 35만명, 프랑스가 56만명이라!
미국은 전쟁터가 아니고 영국은 적에게 침범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프랑스는 전투를
계속하지 않고 드골등 군대가 영국으로 도망쳤기로 희생이 적었던 것 이네요?
여기서 보이는 성의 모습도 일품 인데, 밤에는 소리와 빛 행사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야
시간이 없으니.... 서운하지만 그만 대기해둔 택시에 올라
루아르 강변 앙부아즈시에 위치한.... 앙부아즈 성 으로 향합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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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습니다
프랑스 왕들은 이런 왕궁이 여러 곳에 있었으니.....
파리 시내 말고도 여기저기 거처할 곳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