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통계 조작은 ‘㈜대한민국’ 상장 폐지 사유
중앙일보
입력 2023.09.26 01:01
송영훈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
옛 민주당, 통계 중립 입법 남발
감사원 “문 정부 통계조작” 적발
‘통계 주도성장’ 행위 엄벌해야
1962년 제정된 통계법은 지금까지 17회나 개정됐다. 그중 최근 가장 많이 알려진 개정은 2016년 1월에 있었다. 여러 민주당 의원들이 2013년 여름 통계법 개정안을 앞다퉈 발의한 결과다. 그해 6월 통계청이 전년 11월 고소득층 가구 소득을 보정한 ‘새 지니계수’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공표하지 못했다는 ‘지니계수 논란’이 있었다. 지니계수는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시론 일러스트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너도나도 통계의 중립성 확보를 위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현미 의원은 “작성된 통계를 공표하지 않는 행위 역시 통계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고, “통계청에서 작성한 통계가 공표되기 전에 다른 행정기관 등에 유출되는 것은 통계 결과 및 공표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공표 전에 통계를 유출하는 행위에 대하여 제재를 가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통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안민석 의원도 “공표 전에 통계를 열람하거나 제공받은 자를 처벌하도록 함으로써 통계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를 강화하여 통계의 중립성을 확립”하자며 법안을 발의했다. 정청래 의원은 “통계 조작에 대한 처벌도 너무 가벼워 통계 조작을 방지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처벌 강화를 꺼냈다. 박남춘 의원은 통계청장 임기를 4년으로 법제화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박근혜 정부도 통계 작성·공표 과정에서 영향력 행사 금지를 골자로 하는 통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들을 심의·통합해 2016년 1월 통계법이 개정됐다. 그 과정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은 자못 비장했음이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 회의록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훗날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되는 윤호중 의원은 “통계청장에 대해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대통령 임기보다도 훨씬 더 길게 임기를 보장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고 일갈한다.(2014년 11월 17일) 김현미 의원은 “통계 자료를 미리 줘서 마사지한다고 그러지요. (중략) 그런데 이게 청와대나 기재부가 통계청에 업무 수행에 필요하니까 요청을 하면 24시간 이내에 줄 수 있는 거잖아요. 24시간이면 충분히 자료를 마사지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것으로 과연 통계의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지적한다.(2015년 11월 20일) 그는 통계가 어떻게 마사지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토록 통계의 중립성과 통계청장 임기 보장을 주장하던 민주당이 탄핵으로 집권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은 정말 가관이다. 최근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을 조작하도록 지시했다. 국토부는 한국부동산원 직원을 불러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장관은 김현미 민주당 의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후 소득분배가 오히려 악화했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청와대 경제수석은 통계청 직원들에게 아예 원자료를 들고 들어오라고 해서 통계를 다시 만들도록 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통계주도성장’이었다. 그 무렵 황수경 통계청장은 청와대의 불법적인 자료 제공 요구를 거부하다 경질됐다.
정권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통계 농단’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상장회사가 조직적인 분식회계로 주주와 시장을 속이면 상장폐지(상폐) 사유다. 국민과 세계를 속인 문재인 정권의 통계 농단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으로 치면 상폐 사유가 된다. 실제로 2000년 재정 적자 규모를 속인 그리스는 2010년 구제금융을 받고 유럽연합(EU)의 ‘법정관리’를 받는 신세가 된 일이 있다. 통계 조작이 반복되면 대한민국도 그리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을 조작하려고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고 압박한 2019년 서울 아파트 시가총액은 약 1234조원이었다. 0.01%만 속여도 1234억 원이다. 버스 기사가 버스요금 800원만 횡령해도 해고 사유가 되는 세상이다. 말도 안 되는 통계주도성장이 다시는 자행되지 못하도록 통계 농단을 법이 정한 최고 수준으로 엄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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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훈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