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6-24(금).덕향의 아침산책. 서울에서 살아남기- 최금진
서울에서 살아남기 - 최금진 - 바퀴라는 이름의 벌레 사는 건 줄기차게 도망을 하는 것이다, 우리 가문의 가훈이다 나는 옥탑방에서 밥상과 냉장고를 등에 지고 달린다 젊어서 할아버지는 제 몸뚱이 하나만 달랑 지고 술항아리 속으로 달아나 가랑잎배 한 척을 띄우다 가셨다 바람 빠진 바퀴와 체인 소리를 내며 한강이 흐르는 서울에서 의식주가 아닌 식의주여야 하는 까닭을 깨닫느라 단벌 신사복 하나로 살아온 아버지는 항상 징그러웠다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처럼 눈치가 빨라 김밥과 월 십오만 원짜리 셋방과 붙어먹은 후에 서둘러 나를 낳았다 사는 게 늘 팔차선 도로를 횡단하는 것 같았다고 재빨리 등을 보이는 버릇, 수준급이다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서울에서 우리는 바닥을 붙잡고 늘어졌다 해고, 실업, 복수 따위의 그늘진 낱말들 사이를 기며 우리 가족은 벌레가 되어갔다 아버지의 망가진 자전거 같은 걸 타고 오실 구세주는 없었다 어머니 더러운 자궁에라도 다시 들어갈 수 있다면 하수구와 한강이 윤회하는 이 서울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어둠이 반들반들 코팅된 징그러운 얼굴들이 박멸되었으면 좋겠다고 믿는 관료들은 우리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 애정결핍에 대하여, 두리번거리는 스스로가 벌레 같음을 인식하는 나의 자의식에 대하여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아버지는 무책임하며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법을 모른다 원룸의 찬 바닥과 막힌 수챗구멍에서 올라오는 썩은 냄새를 긍정하자, 새로 만든 우리집 가훈이다 아버지, 우리를 이런 볕도 안 드는 곳에 버려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에게서 물려받은 벌레 형상을 껴입고 노동을 하고 오는 저녁 바퀴의 정체성은 끝없이 달아나는 데 있으니까 콘크리트처럼 굳은 발을 씻으면 이상하게도 달려가야 할 내일의 골목길이 식욕처럼 떠오른다 납작한 자세로, 먹이를 향한 재빠른 자세로, 엎드리거나 비는 자세로 달려 나가는 바퀴의 마지막 진화 형태는 벌레라는 걸 식사를 마치고 누우면 시계 소리는 어제보다 더 바닥에 가까워지고 한강이 흘러가는 소리가 베개 밑에서 들린다, 쥐며느리 같은 전철을 타고 사람들이 퉁퉁 부어오른 바퀴를 달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 깨진 창문 밖으로 날아다니는 갑충 같은 별자리들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처럼 아름답다 월간 『현대시학』 2010년 11월호 발표 시인. 최금진.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 ♣
https://youtu.be/9rimkIqbLOc
*********************************************************
안녕하십니까? 덕향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3~14) !!!
09-06-24(금) 미국에서 덕향
♣음악이 안들리면 여기를''♣ [덕향의 아침산책]의 글,그림,음악은 원저작자의 동의 없이 올린 게시물입니다. 원하시면 문제가 되는 점은 시정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