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과의 전쟁
TV에세이ㅡ다큐 079 전홍구 원작 2004. 05. 09. 방영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외출이었습니다.
가족의 도움을 받아 세수를 해결하고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외출이 아닌 전쟁을 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전철역에 도착하니 계단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계단이 한 번에 끝나는 곳도 거의 없고 계단 다음에 평지를 돌아 다시 계단, 그리고 평지, 다시 계단을 어렵게 지나 표를 체크했지만 출입구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목발을 짚고 가기에도 좁은 입구…….
휠체어는 어림도 없습니다.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입구를 들어서면 다시 계단이 기다리고 있고, 어쩌다 계단이 아니고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해도 절전이다, 고장 수리다 해서 멈추어 있으면 그것 또한 계단이 되어 있습니다.
휠체어 리프트는 어느 곳에나 다 있는 것도 아니고, 있어도 고장이거나 사용을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의족, 지팡이, 목발, 휠체어 ……. 보호 장구에 의존하여 계단과의 전쟁을 치르고 어렵게 전철을 탔습니다.
내가 부자연스럽게 들어서면 선뜻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픈 듯, 잠자는 듯, 꼼짝도 안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쁨으로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면 힘들었던 피로를 금방 잃어버리고 외출의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전철에서 내리면 계단과의 전쟁은 다시 시작됩니다.
이제 버스를 타야 합니다.
휠체어가 자유스럽게 다닐 수 있도록 턱없이 이어진 인도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거기다 턱이 높고 입구가 좁은 버스는 목발을 짚고 타기도 어렵고, 휠체어는 아예 탈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기 힘들어 택시를 타려고 합니다.
이 또한 쉽지가 않습니다.
장애인이 손을 들면 반갑게 세우고 문을 열어 주기보단 그냥 지나쳐갑니다.
장애인에게 문을 열고, 부축하여 탑승시키고, 보호 장구를 트렁크에 넣고, 미소 짖는 얼굴의 기사 아저씨는 일 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입니다.
보통사람은 느껴보지 못한 세상…….
그러나 이런 고통을 받고 사는 사람이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 역시 9년 전엔 보통 사람들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불의의 사고로 불편한 몸이 된 것입니다.
보통사람에겐 걷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장애인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곡예와 같으며 진땀 나는 중노동입니다.
오늘의 외출이 너무 힘들어 이만 중단하고 돌아가야겠습니다.
http://tvpot.daum.net/v/Zlg_dPuTCQM%24
( 클릭하시면 화면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첫댓글 전홍구님 안녕하세요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