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을 읽다보니 동방삭이 이야기가 나온다.
어릴 때 책에서 3년 고개를 넘어오다 미끄러저 집에 와선 3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뭄져 누운 사람보고
사연을 물은 즉, 3년 고개에서 넘어져 자신은 3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자 한 번 넘어지면 3년이고 두 번 넘어지면 6년 아닌가?
일어나 다시 가서 고개에서 데굴데굴 굴러내려오면 장수한다는 말을 듣고는 가만이 생각해 보니까 그럴듯한 논리여서 벌떡 일어나 3년 고개로 달려가서 데굴데굴 굴른 작자가 바로 동방삭이 이야기다.
어릴 때는 동방삭이가 우리나라 사람인줄 알았는데 사기열전에는 중국 한나라 무제때 사람이라 하고 있다.
삼천갑자를 살았으니 갑자가 다시 돌아오려면 60년이 걸리 3000에다 60을 곱하면 18만년이 된다.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18만년을 살고도 죽지 않을건데 방심하여 자신의 신분을 저승사자한테 노출하는 바람에
잡혀가게 되었다. 자고로 개인정보를 예사로 취급하다간 낭패를 보게 돼 있다. 고사성어대사전에 나오는 동방삭 이야기를 한 번 보자.
[삼천갑자를 산 동방삭(東方朔)은 장수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천하에 공포하자 제(齊)나라 사람 동방삭이 대나무 한 짐에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써서 무제에게 올렸다. 동방삭의 글은 내용이 많아 읽는 데 두 달이나 걸렸다. 동방삭은 변론에 뛰어났으며 해학과 재치로 무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때로는 무제의 사치와 부국강병책에 대해 간언하는 등, 단순한 익살로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속설에 의하면, 동방삭은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장수하였다 하여 ‘삼천갑자 동방삭’이라고 불렸다.
이 이야기는 《한서(漢書) 〈동방삭전(東方朔傳)〉》에 나온다. 삼천갑자는 60갑자가 3천 번이므로 18만 년이 된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서왕모는 서방 곤륜산(崑崙山, 옥산(玉山))에 사는, 사람 얼굴에 호랑이의 이빨(虎齒), 표범의 꼬리(豹尾)를 가진 신인(神人)이라고 하는데, 민간에서는 불사의 약을 지닌 선녀라고 전해진다. 서왕모에 대한 이야기는 한대(漢代)에 이르러 민간에 널리 퍼졌다.
동방삭의 장수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졌다. 저승사자가 실수로 동방삭을 염라대왕 앞에 끌고 갔다. 잘못 데리고 온 것을 안 염라대왕은 저승사자에게 빨리 데려다 주라고 호통을 쳤다. 동박삭은 자신의 수명이 궁금해서 염라대왕에게 물었다. 그런데 염라대왕이 보여 준 명부를 보니 수명이 고작 일 갑자(一甲子)였다. 동방삭은 몰래 붓으로 획을 더 그어 삼천갑자로 고쳤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염라대왕이 동방삭을 다시 잡아 오라고 사자를 보냈지만, 그때마다 동방삭은 저승자사를 피해 도망 다녔다.
수소문 끝에 동방삭이 조선 땅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저승사자는 동방삭을 잡을 수 있는 꾀를 생각해 내고, 강가에 앉아서 숯을 씻었다. 동방삭이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보고 물었다. “도대체 왜 숯을 강물에 씻는 거요?” “숯이 검어서 내 옷을 더럽히기에 희게 만들려고 빠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동방삭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강물에 빠는 놈은 생전 처음 보네.” 이렇게 해서 동방삭은 저승사자에게 잡혀가게 되었다. 당시에 저승사자가 숯을 빤 곳이 바로 탄천(炭川)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동방삭은 BC154년부터 BC93년까지 62년을 살다가 병사했다. 동방삭은 죽기 전에 황제에게 아첨꾼을 멀리 하고 참언을 물리치라고 간언을 했는데, 이에 대해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동방삭이 늙어서 죽을 때 간언을 올렸다. “폐하께서는 아첨을 멀리하고 참언은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황제는 “지금 동방삭이 옳은 말을 많이 하는구나.”라고 말하며 괴이하게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삭은 과연 병으로 죽었다. 전(傳)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말하기를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선해진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