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을 팔고 다니는 사람들 ]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였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은 ‘혁신기업의 딜레마’라는 책을 통해 세계적인 혁신 전문가의 반열에 올라선 사람입니다. 크리스텐슨은 새로운 기술 혹은 사업 모델이 기존의 시장, 기업, 제품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파괴적 혁신’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크리스텐슨이 설립한 컨설팅 회사인 이노사이트(Innosight)는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크리스텐슨은 기업이 파괴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기존의 기술 또는 산업을 때려 부수고 새로운 제품이나 사업 모델을 계속해서 내놓는 기업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1980년대 디스크 드라이브 산업을 뒤흔든 신생기업들을 주요 사례로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2010년대에도 그 기업들이 여전히 동 산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애플(1976년), 아마존(1994년), 구글(1998년), 메타(2004년) 등도 각각의 분야를 뒤흔든 신생기업이었지만 자신들은 파괴적 혁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그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토론토대학교의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 교수는 과학자, 엔지니어, 예술가, 배우, 디자이너, 건축가 등과 같은 창조 계급(Creative Class)이 지역 발전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창조 계급이 원하는 멋진 술집, 고급 커피숍 등과 같은 핫플레이스와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관용적 문화가 갖추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플로리다 역시 창조계급그룹(Creative Class Group)이라는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수많은 자문을 했습니다. 미국의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속해 있는 쇠락한 도시들도 플로리다의 조언에 따라 수백만 달러를 들여 커피숍, 고급 문화시설, 자전거 공유 프로그램 등을 도입했지만 도시 부흥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전설적인 디자인 회사 아이데오(IDEO)는 1980년에 최초의 애플 마우스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명품 디자인을 남겼습니다. IDEO는 단순한 외형 디자인을 넘어 사용자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 중심 디자인(Human-Centered Design)'의 방법론을 확립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IDEO의 공동 창업자인 데이비드 켈리(David Kelley)는 좋은 디자인의 핵심을 ‘공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경험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능력, 사람들이 무엇을 왜 하는지 이해하는 능력‘이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켈리와 그의 동료들은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숫자에 의존하던 디자인 방식에서 벗어나 ’공감‘을 중심으로 새로운 디자인 교육과정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바로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입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디자인 싱킹이 디자인 분야의 기초를 가르치는 데 매우 편리한 방법이라고 얘기합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시장 진입으로 인해 격화된 경쟁 환경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만으로 생존이 어렵게 된 IDEO는 사물 디자인에서 컨설팅으로 사업의 무게 중심을 옮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 싱킹이 IDEO의 핵심 제품으로 둔갑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디자인 싱킹은 경영 컨설팅과 기업 교육에 사용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적 교육 상품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디자인 싱킹이 모든 것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켈리가 스탠퍼드 대학 내에 설립한 하소 플래트너 디자인 연구소, 일명 디스쿨(d.school)의 4일 교육 프로그램의 수업료는 1만 5,000달러나 되고, 온라인 강좌의 수강료는 399달러에 달합니다.
크리스텐슨, 플로리다, 디자인 싱킹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특정한 혁신 이론이 돈벌이를 위한 컨설팅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혁신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한다면 혁신을 설명할 수 있는 단일 이론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혁신을 촉발하는 확신한 방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팔려고 하는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