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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
익스트림무비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왔다. 인터넷을 잘 안 한다니 모를 수도 있을 텐데.
몰랐다가 얼마 전에 익스트림무비 회원들을 초청한 GV 시사회를 계기로 들어가 봤다.
우리 회원들 중에 장준환 감독의 팬이 많다.
영화를 굉장히 사랑하는 분들 같다.
<여배우는 오늘도>(장준환 감독 부인 문소리 배우가 연출 및 주연)에서 연기도 잘 봤다. 그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웃음)
그 영화 완성본을 내가 없애버리려고 했는데... (일동 웃음)
개봉 전에 보셨나?
너무 민망하고 창피했다.
시사회 때 보다가 너무 크게 웃어서 옆 사람이 눈치를 줄 정도였다. 어찌나 대사를 그렇게 절묘하게 끊고 연결하던지...
글쎄다. 카메라 뒤에 있는 건 이제 많이 편한데, 앞에 서는 건 정말 어렵다
연기하는 걸 즐기는 감독들도 있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나?
잘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가 연기하면 경직이 돼서 부자연스럽다. 배우가 아닌 사람은 확실히 티가 난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어색하다. (웃음)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웠다.
<1987>을 보고 많이 울었다. 나는 박종철 열사와 동갑에다가 같은 부산 출신이고 내 친구의 친구였던 사이다. 또 이한열 열사는 내 모교의 같은 과 후배였다.
어떻게 그런 인연이...
사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당시 나는 철원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을 때라서 항쟁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제대한 뒤에 뭔가를 상실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꼭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돌을 던지는 친구 곁에 있었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르니까. 그래서 그때 일에 대해 콤플렉스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1987>을 보면서 그 시간을 보답 받은 느낌이 들었다.
다른 기자분도 영화가 씻김굿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분은 그 당시에 치열하게 싸웠던 것에 대해 굉장히 후회하고 있었다더라. 젊음을 한곳에 다 쏟아 부었던 분들은 또 다른 자책감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1987>이 위로가 돼서 반갑다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박종철, 이한열 열사와 간접적으로나마 인연이 있어서 더 울었는데, 내 뒷자리에 있었던 젊은 여자 관객은 그 세대가 아닌데도 펑펑 울더라. 아마도 강동원 배우 때문이 아니었을지.
세대를 뛰어넘어서 말인가?
중요한 건 현재의 젊은 세대인데 그들도 공감한다는 것이 무척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보통 영화를 보고 그 감독에게 고맙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지만 이번에 그런 감정이 들더라.
영광이다. (웃음)
나만의 영화가 아닌 것 같아
영화 개봉 후에 4~50대가 많이 찾는 인터넷의 대형 커뮤니티들에 들어가 봤는데 <1987>을 보고서 자기 고백들을 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우리를 위한, 우리를 위로하는, 우리를 보여주는 영화가 나왔다며.
내가 인터넷이나 SNS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별점을 가끔씩 본다. 오늘 아침에도 <1987>에 관한 관객 평을 보고 또 눈물이 났다. 그냥 단순한 평이 아니었다. 정성스럽게 자기가 겪었던 일, 혹은 그때 참여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고백한 글들이었다.
언론 시사회 때도 눈물을 보였다던데?
그 일로 울보 감독으로 등극해서 다신 안 울겠다고 다짐하고 다니는데... (웃음) <1987>은 신기한 것이, 나만의 영화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 혹은 많은 인연들과 다 연관된 영화라서 마음을 흔들고 또 내 안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나도 위로를 많이 받는다.
<벤허> 감독이 말했듯이 ‘신이여, 진정 이 영화를 제가 만들었습니까’ 같은 건가? (웃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영화가 원래 가고자 했던 바를, 크게 해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CG 보정을 좀 더 할 수만 있다면 몇 개월 더 하고 싶지만 영화의 큰 줄기는 잘 살아있다. 영화의 내적으로는 작법, 구성 면에서 어떤 약점이 있다는 걸 알지만, 보다 큰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던 거라서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떻게 관객들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느냐, 어떻게 그들과 소통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특히 이한열 열사와 관련된 장면들이 영화가 가진 긴장의 얼개 부분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박종철 열사로 시작해서 이한열 열사로 끝맺음을 하는 것이 우선시됐다. 서로 알지는 못했지만 동시대의 두 젊은이를 연결해주고 싶었던 의도가 있었기에, 작품적으로는 성긴 부분이 생기더라도 더 큰 에너지, 더 큰 카타르시스, 감동을 주고자 했다.
<1987>은 연말에 보기에 조금 부담스런 영화다. 이전에 그 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개인적으로 청춘을 보냈지만 한편으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기여서 말이다. 그 시대를 정직하게만 그리는 것도 원치 않아서 관람 전에 걱정도 많았는데, 첫 장면을 보고서 바로 빠져들게 되더라. 요즘 젊은 사람들은 ‘땡전뉴스’의 의미를 잘 모를 텐데, 나는 거기서 감독의 의도를 깨닫고 영화에 확 끌려들어갔다.
(땡전뉴스 = 그 시절 저녁 TV 뉴스들이 9시 시작을 “땡”하고 치자마자 무조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생긴 이름. 어떠한 톱뉴스가 있더라도 전두환의 동정이 우선시되었음.)
첫 시작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지금 영화의 에필로그와 같은 형식의 프롤로그도 계획했다. 젊은 세대는 그 당시를 잘 모를 테니 그 시절을 보여줄 수 있는 영상적인 몽타주를 보여줄까도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더라. 그냥 똑딱똑딱 시계소리부터 시작해서 30초 만에 30년 전으로 들어가는 것도 색다른 묘미가 있을 것 같고. 또 그 당시 땡전뉴스, 대한뉴스에 대한 추억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최근 한국 영화들은 대부분 2.35:1 화면비를 사용하는데 비해서 <1987>은 그 시절 영화처럼 1.85:1 화면비를 채택했다.
그 시대의 느낌을 많이 담고 싶었다. 또 그 당시 TV 화면이나 자료 영상이 자주 나오는데 화면이 넓으면 비율이 잘 안 맞는다. <영웅본색>(1986) 같은 그 시절 영화의 화면비와 질감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과거의 필름을 보는 듯한 효과는 후반작업을 통해 이루어진 건가?
그렇다. 초반 장면은 대한뉴스 자료들을 조사해서 편집하고 CG로 박처장을 추가한 거다. (언론 시사회 이후) 개봉 버전은 좀 더 수정을...
또 달라진 건가?
그 사이에 또... (웃음) 마지막 광장 장면에 박종철 열사의 걸개그림이 시청 건물에서 내려오는 걸 추가했다. 시사회 버전에선 박종철 열사가 안 보이는 게 아무래도 허전하더라. 그밖에도 조금씩 더 고쳤고.
보통 다른 작품에서 옛날 영화 같은 느낌을 억지로 내려고 하면 어색하던데, <1987>은 정말로 그 시대의 필름을 꺼내온 것 같았다.
촬영할 때도 빈티지 렌즈 세트, 과거에 유명했던 칼자이스, 아리플렉스 렌즈 등을 써서 초반 드라마 장면에 많이 활용했다. 그런 렌즈만이 가진 특유의 룩이 우리 세대에겐 친숙할 거다. 그리고 후반 작업 때 필름 그레인을 좀 더 추가하는 등의 작업을 했다.
80년대를 떠올리면 우중충한 회색과 더불어 그 당시 대중문화의 알록달록한 색채가 기억난다. 2010년 초반에 나온 비정치적인 80년대 배경 영화들이 낭만적인 느낌을 내기 위해 그런 색들을 사용했는데 <1987>은 묵직한 느낌을 줬다. 한편으로 김태리가 나오는 장면들은 긴장감을 해소시키기 위해서였는지 신입생 캐릭터에 어울리는 알록달록함도 보였다.
아무래도 젊은 캐릭터들이라서 그렇게 디자인된 것 같다.
연희는 수많은 실존 인물을 대표하는 보통 사람
김태리 캐릭터(연희)는 완전히 허구의 인물인가?
허구의 인물이라지만 한편으론 실존 인물이다. 그 당시에 수많은 연희들이 있었다. 역사가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지. 하지만 역사를 바꾼 건 그런 보통 사람들이었다. 내겐 연희가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었고 실존 인물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극중에서 이한열 열사의 스토리를 극에 끌어오기도 하고,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민주화 운동을 불신하다가 점점 바뀌어 가는 부분이 수많은 실존 인물들을 대표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나는 <1987>에서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1987년 6월 항쟁의 역사를 만든 건 기자와 학생, 거리의 신발 가게 아줌마, 넥타이 부대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영화에 굳이 유명 정치인 같은 사람들을 안 넣고, 언급한 대로 수많은 민중들의 상징 같은 인물을 넣은 것이 좋았다.
감사하다.
4.19나 1987년, 그리고 작년 촛불 집회까지, 우리나라 정치의 흐름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국민들이 바꿔나간 것 같다. <1987>이 그 점을 상기시키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단하다.
2016년 촛불 집회 덕분에 6월 항쟁 영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 같다. <1987>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 2015년 12월쯤이었다. 그때 사회적 분위기가 (각본을 쓴 김경찬) 작가님의 말처럼 ‘혼이 비정상’이었던 시대여서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6월 항쟁은 우리나라 국민이 스스로 자각하고 이룬 민주주의의 큰 족적인데,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는지 안타깝고 화가 났다. 그게 영화를 시작하게 된 하나의 포인트였다.
또 이야기로서도 마치 누군가가 지어낸 시나리오처럼 큰 긴장과 더불어 누구 하나 빠질 수 없는 꽉 짜인 밀도, 각 캐릭터들의 역할이 있는 것도 놀라웠다. 그래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꼭 만들어야겠다고 해서 시작했다.
개봉 시점도 일부러 1987년에서 딱 30주년이 되는 2017년으로 잡은 건가?
되도록 그 시기에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란 게 몇 년에 걸쳐서 제작되는 거고, 게다가 또 여러 가지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건데 운이 좋았다고 할까. 촛불 집회가 열리고,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발견될 줄은 몰랐지. 광장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데 또 다른 광장의 역사가 벌어진다는 게 신기했다. 한편으론 또 안타깝기도 했고.
만약 정권 교체가 안 됐더라면 <1987>이 못 나왔을까?
그럴 가능성이 컸을 거다. 투자도 힘들 것 같아서 ‘저예산 영화로 바꿔야 하나’ 혼자서 고민도 했다. 그럼에도 박종철 열사로 시작해서 이한열 열사로 끝나고 광장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해보고 싶어서 각색 작업에 들어갔다.
촛불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을지도
전작들(<지구를 지켜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엄청난 영화 마니아적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대중성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세 번째 작품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위험한 프로젝트에 뛰어든 이유는?
너무 매끄러운 작품은 내 성향이 아닌 것 같다. <1987>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악역을 중심에 두고 따라가다가, 여러 주인공들이 릴레이를 하다가 결국에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형식이다. 보통의 다른 작품이 한두 명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시켜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라서 내겐 더욱 끌렸다. 예술적인 도전이자 재미랄까. 객석에 앉은 관객이 ‘어, 내가 주인공이네? 역사의 주인공은 나구나. 저 광장에 내 모습을 비추는구나’라는 느낌을 받길 원했다.
작년의 촛불 집회가 이 영화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고 봐도 될까?
갑자기 투자가 이루어졌던 게 아무래도 그 영향이었을 것 같다. 그밖에도 영화를 찍으면서 신기한 일들이 많았다. 예상치 못한 큰 선물들을 받은 것 같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같은 장애물도 아슬아슬한 순간에 사라지고. 내가 미신을 안 믿는데도 누군가가 보살피고 도와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많은 조연이 등장하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스타급 배우들이다. 그들이 작은 역할을 맡으면서 보여준 에너지, 그리고 그들의 시대정신에 대한 조응에 놀랐다. 어떻게 그들을 불러 모았나?
그것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야기를 잘 따라가려면 익숙한 배우들이 군데군데 포진을 해줘야 낯설어 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한편으로 잘 안 알려진 낯선 배우들도 중간에 섞어서, 가짜 같지 않은 리얼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런 캐스팅이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닌데 이번에 너무나 조화롭게 이루어졌다.
캐스팅이 정말 놀라웠다. 나는 처음 볼 때 설경구 배우가 나온 줄도 몰랐으니까. (웃음) 또 김윤석의 부하 형사들 중에 최근에서야 뜨기 시작한 배우도 있고, 교도소 부안계장 역 맡은 최광일 배우라든지. 그렇게 낯설면서도 연기 잘하는 이들을 어디서 구했나 싶다.
연극 무대나 독립 영화 쪽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오디션으로 캐스팅했다. ‘황형사’ 역의 박지환 배우는 캐스팅할 당시에는 별로 안 유명했다. (웃음) 그런데 <대립군> <범죄도시>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박종철 열사의 가족 역할을 할 배우는 부산 사투리를 잘 하면서도 잘 안 알려진 분들이 해줬으면 했는데, 김종수 선배님(박정기 역)은 워낙에 연기를 잘하시는 분이라 욕심이 나서 캐스팅을 한 경우였다.
박종철 열사의 유골을 뿌리는 순간에 회오리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임진강에서 유골을 뿌렸는데, 실제로는 그 일화를 윤상삼 기자가 아닌 동아일보 황열헌 기자가 취재했다. “철아, 잘 가 그래이, 이 아버지는 할 말이 없데이”란 말이 나중에 시위할 때 플래카드로 만들어진 것도 (유골을 뿌린 모습이) 기사화되어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 말이 나올 줄은 알았지만 나오는 순간 울리더라.
촬영도 임진강에서 진행했다. 얼음이 녹기 전에 꼭 찍어야 해서 공식 크랭크인 전에 미리 찍었다. 그런데 그날 마침 눈이 왔다. 원래는 눈까지 찍을 계획은 없어서 연출자 입장에서 멘붕이 왔지만 (웃음) 촬영을 못할 정도로 많이 오진 않아서 장면을 일부 바꿔서 진행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찍고 보니 나중에 CG 팀에서 “몇 억짜리 공들인 미술 같다”며 감탄하더라. 눈 오는 게 장면과 너무 잘 어울려서 비극성이 더 살아난 것 같다. 그때도 정말 누군가가 도와주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박처장은 우리나라의 비극적 역사를 담은 인물
김윤석 캐릭터(박처장)에 관해 묻고 싶은데, 다른 영화의 감독들에게 악역 캐릭터에 관해 물어보면 ‘악인을 꼭 악인처럼 그리고 싶지 않았다’는 식의 대답을 많이 한다. 그런데 악당이 악당인 건 사실이지. 그 당시는 ‘남영동’하면 누구나 벌벌 떨던 시절이었으니. 요즘 뻔뻔한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은 자기가 하는 나쁜 일을 제 딴에는 옳다고 여기는 것 같다. <1987>의 김윤석 캐릭터도 자신의 행동이 옳은 것인 양 합리화를 시키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악인을 악인으로 그리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악인을 어떻게 더 무섭게 그릴까’에 집중했다. 악인이 더 무서우려면 악인이 어떤 내력을 갖고 있는 게 훨씬 더 강력해질 거라 믿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가 이상하게 뒤틀려서 또 다른 엄청난 폭력으로 나타나는,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역사를 담고 있는 인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987년으로만 가두지 않고 그 당시의 비극이 어디서 와서 어디까지 가는지를, 다 표현할 수는 없더라도 어렴풋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종로 쪽에서 (태극기) 시위가 있는 것처럼, 그것은 우리 시대에 떠도는 큰 공기라서 외면할 수는 없다고 본다.
박처장은 실존 인물이면서 가공이 들어간 건가?
자신이 평안도 용강의 지주 집안 출신인데 6.25 때 빨갱이들한테 핍박을 당해서 월남했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더라. 작가님이 얘기하기로는 그 얘기를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영화에서 박처장이 가족사진을 놓고서 이야기하는 장면도 진짜일지, 가짜일지 불확실하게 보이도록 했다. 만약 가짜라면 자신의 권력을 위한 지어낸 이야기이니 더 소름끼치는 거다. 물론 김윤석 선배와 상의할 때는 진짜처럼 연기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 장면을 볼 때도 좀 눈물이 났다. (웃음) 영화 전체에서 좀 튀는 부분이긴 하지만 박처장이 자신의 슬픈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빠져들게 되더라. 공감하면 안 되는 악당인데 그 캐릭터 때문에 울어야 하는 건가 고민도... (웃음)
그런 부분은 현실에서도 종종 있지 않나. 세대간, 부모 자식 간의 갈등에 있어서 부모님의 삶 자체를 부정할 순 없으니까. 그분들이 겪은 고초가 있지만 한편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부딪치는 부분도 있다. 그런 것이 더욱 현실감을 주는 것 같다.
‘조반장’ 역할의 박희순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악인이긴 하지만 동정이 가는 부분도 없잖아 있다.
굉장히 복잡 미묘한 인물이다.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이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감옥에서도 찬송가를 불렀다더라. 영화에선 박종철을 고문할 때 기독교 서적을 읽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렇게 신을 믿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쁜 일을 벌인다는 게 수긍이 가는 한편으로 무섭게 느껴진다. 교도소에 가서는 자기연민일 수도 있는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고 마치 자신이 역사의 희생양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잔인하게 물고문하는 과거의 모습이 다시 또 겹쳐진다. 그런 부분들을 함께 읽는다면 캐릭터가 더 흥미로울 거라 생각된다.
굉장히 공들인 캐릭터였다.
사실은 독방에 갇히는 장면도 있었지만 박희순 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해서 잘라야 했다. (다들 웃음) 관객이 그 인물에 대해 너무 큰 연민을 느끼면 영화가 가야할 방향과 어긋나 버리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조심해야 했다. 하나하나의 인물들이 나에겐 너무나 중요해서, 그들이 각자의 기능과 역할, 정서를 갖고 있도록 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설경구가 연기한 김정남 캐릭터가 교회 지붕에 매달려서 있을 때,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이에 두고 박처장에게 발견될 뻔하는 장면도 대단히 강렬했다.
관객들이 각자 머릿속으로 해석했으면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내가 이야기를 하자면, 애국가 중에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말이 있지 않나. 나는 아직 신을 믿지는 않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신도 분노해서 어떤 응징을 내리지 않을까? ‘너의 먹잇감을 보여주마’라며 박처장을 유인하다가 그가 잡으려는 순간 ‘너는 잡지 못하고 대신 벌을 받는 거다’라고 식으로.
그 장면에서 선글라스를 벗는 건, 어둠 속에 있던 사람이 어둠에서 나와야만 빛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아이러니라고 할까. 또 박처장이 자기를 부르는 부하의 목소리를 듣고서 그답지 않은 멍한 표정을 짓는 것도 무언가 이상한 체험을 한 듯한 모습이다. 김윤석 선배가 그런 부분들을 잘 이해하고 연기해주셨다.
<1987>은 두드러진 영화적 연출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만들었다. 배우들의 미세한 감정 표현과 거리의 모습을 담을 때 호흡을 잘 조절하면서, 아주 중요한 순간에만 영화적인 개입을 하면서 스토리를 묶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장면과 박종철 열사의 마지막 모습 같은 장면이다. 박종철 열사의 얼굴이 욕조 속에 잠기고 나서 멀어질 때 환한 빛이 비춰진다. ‘이게 뭐지?’하고 의아해하는 순간, 그것이 명동성당 안에 있는 영정 사진에 비치는 기자들의 플래시 라이트였던 것으로 나온다. 그런 부분이 뭐랄까... 내 입장에선 압축된 시를 쓰는 것 같은 작업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고 보니 민망하네. (웃음)
아니, 정말로 그랬다. (다들 웃음)
운동화 장면에서 관객이 느꼈으면 하는 것
김태리, 강동원이 나오는 장면이 불필요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내 생각은 반대다. 박종철 열사는 우리가 몰랐던 곳에서 싸우다가 희생당한 사람이지만, 이한열 열사의 경우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2학년생이라서 혁명가나 투사라기보다는 그 시절의 어리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던 걸, 영화에서 어마어마한 사람처럼 그렸다면 사실감이 없었을 거다. 그런데 김태리 캐릭터와 연결시키면서 대학 초년생의 이야기로 잘 그려낸 것 같다.
맞다. 열사란 이름 안에 갇힌 박제된 영웅처럼 그리기는 대신에 지금으로 따지면 갓 20살 된 학생이... (감정이 북받쳐서 잠시 말을 못 이어감) 너무나도 어렸지. 그 학생이 잃어야만 했던 나머지 인생과 가능성을 관객들이 느끼길 바랐다. 그걸 로맨스로 보든 썸으로 보든지, 혹은 긴장감이 떨어트리거나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지 몰라도 말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혹은 마음이 아파서’가 사실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한열이 버리고 간 한 짝의 운동화처럼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말이다.
운동화 씬이 3번이나 나온다. 그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던 이유는?
<1987>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서 연출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이한열 기념관에 가봤다. 거기서 남겨진 운동화 한 짝을 보고서 ‘다른 한 짝은 어디로 갔을까?’란 생각을 하다가 이한열 열사의 신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다. 그의 청춘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 운동화가 ‘타이거’라는 저가 브랜드인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월드컵’보다도 싼 거였다. (웃음)
왜 그게 인상적이었냐면 연대 학생들 중에는 부자가 많았다. 나는 시골에서 올라왔는데 서울 애들의 패션을 못 따라갈 정도였다. 신는 신발에서도 빈부격차가 확 나서 ‘나는 타이거 따윈 안 신을 거야!’라고 했는데. (일동 웃음) 나보다도 후배였던 이한열이 타이거를 신었다는 사실에 뒤늦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프로스펙스 신고 다녔는데. (웃음)
1987년 하면 보통 안치환의 음악을 상징처럼 떠올리는데 일부러 1988년에 유행한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넣었더라.
사실 그 음반이 1987년에 나오긴 했다. 그 노래의 가사가 주는 느낌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 것 같다. 떠나간 사람들을 보냈지만 우리는 길을 제대로 찾고 있는가. 우리는 아직도 헤매고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영화가 끝난 뒤에 연희가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내가 유재하를 워낙 좋아하기도 해서 요즘 잘 모르는 젊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고증에 관해서 얘길 하자면, 이한열의 죽음 장면에서 나오는 연대 옆 보도블록에 관해서도 사연이 많다. 당시 학생들이 데모하면서 그걸 하도 많이 깨부숴서 집어던지니까 나중에 우레탄 같은 걸로 바꿨다더라. 30년 전의 그런 디테일들을 살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30년이면 강산도 3번 바뀌는 세월이지만 한편으로는 ‘불과 30년’이란 생각도 드는 시기다. 다들 기억하고 나 역시도 너무나 잘 기억하는 때다. 어딘가에서 뭔가가 틀리면 그 시절의 사람이 보다가도 몰입이 깨지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고증이 잘돼야 드라마를 받쳐줄 테니까. 연희네 집 슈퍼를 찾는데도 전국을 다 뒤져야 할 정도여서 우리나라가 너무나 많이 바뀐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히려 조선시대나 고구려 시대가 배경이면 적당히 우기면서 만들어도 됐을 텐데 1980년대라서 더 어려웠다. 소품 하나하나 꼼꼼히 챙긴다면서 했지만 젊은 스탭들과 작업하다보니 그들은 잘 모르더라. (웃음) 공부시키면서 작업했다.
영화 끝부분에 문소리 배우도 나온다던데.
마지막에 연희가 버스 위로 올라가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선창하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문소리의) 목소리만 들리다가 카메라가 돌아가면, 손목에 빨간 손수건을 한 ‘점’이 하나 나온다. (다들 웃음)
<여배우는 오늘도>에 장준환 감독이 출연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나?
서로 품앗이 한 거다. (웃음) 군중 씬, 데모 씬 찍을 때 학생들한테 연기 지도도 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 데뷔 감독님이다 보니 자기 경험을 살려서 잘하시더라.
영화가 세대 간 소통의 계기가 되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는 SF 판타지였고 그 다음 작품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는 리얼리즘 영화, 이어서 <1987>은 역사물이다. 그렇게 점점 현실적인 영화를 찍게 된 건 본인의 의도인지 아니면 우연인 건지?
판타지를 좋아하는 B급 감수성이 내게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는 사실 우리가 사는 지구, 그리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독특하고 재밌게 하는 요소로 판타지를 쓴 거고, 내게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가장 우선시된다. <1987>은 시대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현미경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잘 섞여있는 점에 끌린 것 같다.
그동안 관객들과 많이 못 만나다가 이번 영화의 흥행 조짐이 좋아서 기쁘다. 장준환 감독의 영화는 좋은 의미에서 보는 사람의 진을 빠지게 한다. <지구를 지켜라!>를 비롯해서 이번 영화까지, 보는 나도 힘들지만 찍는 감독도 정말 고생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영화를 마친 감회를 듣고 싶다.
말씀대로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고 공을 많이 들었고 세심하게 신경 써야 했다. 하지만 (목표한 것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고 기적적인 캐스팅으로 배우 분들이 각자 입체적인 인물들로 잘 연기해주셔서, 전체적인 결과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게끔 나왔다. 특히 유족 분들과 당시에 치열하게 싸웠던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우선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관객들과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게 창작자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분들이 진심을 담아 쓴 소감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관객 평 중에서 87학번 어머니와 영화를 함께 본 촛불 세대 딸이 ‘엄마 고마워’라고 했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20대 촛불세대에게 특히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가 1987년을 다루고 있지만 꼭 그 시절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방금 말한 모녀의 경우처럼 영화를 통해서 세대 간에 어떤 이야기든 서로 나누고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때 그 광장에 섰던 엄마, 아빠가 왜 지금은 좋은 아파트를 사려고 애쓰는 건지,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지, 서로를 소원하게 만들고 날카롭게 하는지. 그런 담론으로 확장이 됐으면 좋겠다.
첫 주말 이후 해가 바뀔 텐데 더 많은 관객들이 호응할 거라 생각한다.
(흥행에 대해서는) 내가 많이 단련이 돼서... (다들 웃음) 흥행이 물론 중요하고 투자하신 분들, 스탭들에게 큰 보람이 될 거다.
오늘 인터뷰하러 간다니 누가 감독을 더 이상 울리지 말라고 하더라. 흥행 잘 되길 기원한다.
감사하다. 여태까지 잘 참다가 왜 또 눈물이 난 건지. (웃음)
익스트림무비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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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확실히 올드렌즈 가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았음 처음 칼짜이즈도 그렇고 앙제뉴 올드줌렌즈의 특유의
탁한느낌
저도 색상도 그렇거니와 시네마스코프가아닌 비스타비전을 선택한건 신의한수였다고 봐요
@수원사는울산사람수원팬국축팬밥풀팬 그시대를 완벽하게 연출한 다큐 같았네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