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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불로초(不老草)
이 순 창
기원전 473년 오나라가 월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그러고 나서 기원전 391년에 지금의 산둥성 근처에 도읍을 정하고 개국하여 위세를 떨치던 제나라 위왕과 이웃에 위치하며 북경을 터전으로 대국의 야심을 키워가던 연나라 소왕은 통치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일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다투어 바다로 여러 무리의 배와 선원들을 내보냈다.
하지만 두 왕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그때까지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권력보다도 더 소중하고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귀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불로초였다. 이미 불로초의 광신자가 된 두 왕은 선원들에게 불로초를 구해오지 않으면 모두 죽일 것이니 그것을 구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불로초를 가지고 온 선원은 없었다.
사실 불로초에 관한 소문은 두 왕만이 알고 있는 비밀은 아니었다. 불로초는 세상에 떠도는 먼지처럼 언제나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더욱이 소문은 사실처럼 구체적이기까지 했다. 즉 삼신산에 불로초가 있는데 아직 누구도 그 불로초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불로초나 불사약은 지금도 이 세상에 없다. 위왕이나 소왕이 불로초를 먹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역사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노자(老子)도 말했듯이 현(玄)에서 나와 현으로 돌아간다. 즉 어둡고 검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다시 검은 땅속으로 들어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또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은 봉래. 방장. 영주의 산을 일컫는데 이 역시 어디에 있는 어느 산을 말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삼신산에 불로초가 있다고 하니 권력으로 짓눌러 그것을 편취하려 했던 왕들의 우매함이 불로초에 대한 갖가지 전설적 우화만 만들어냈다.
아무튼 소왕의 명령을 받은 오족왜인 출신의 오태백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나가기에 앞서 비밀리 아내와 자식이 있는 집으로 갔다. 황제는 그가 불로초를 캐올 때까지 가족을 볼모로 잡고자 했으나 오태백은 그 명을 어기고 불원천리 달려온 것이다. 그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치려한 아내의 입을 막고 나직하게 말했다.
“여보, 난 불로초에는 관심이 없소. 당신만 있으면 돼요.”
“그 무슨 말씀을 하세요? 불로초를 구하러 안 가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이 일을 황제께서 아시면.....”
“우리 식구가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는 못 만날 것이오. 그러니 우리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삽시다.”
“삼신산에 가면 불로초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걸 캐다가 황제한테 바치면 우리는 한평생 행복하게 살 텐데.....무슨 말씀이세요?”
“당신도 참 순진하오. 불로초가 있으면 내가 먼저 먹었을 것이오. 불로초는 없어요.”
“그럼......도망가자는 말씀이세요?”
“긴 얘기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갑시다.”
오태백은 아내의 손을 끌어당기며 발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어린 사내 아들은 골목에서 노는 것을 믿을 만한 선원에게 부탁하여 미리 데려다 배 안 쌀 두지 안에 숨어 있게 했다.
만일 이 일을 황제가 알면 목숨이 열 개라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오태백은 아내가 배에 오르기 전에 남장을 시켜 철저하게 선원으로 위장했다. 그 사이 소왕의 병사들은 철저하게 배안을 수색했다. 쌀 두지 안에 숨겨놓은 아들이 걱정이었다. 병사들은 주방을 뒤지다 큰 쌀 두지를 보고 소리쳤다.
“저 쌀 두지를 열어 보여라!”
“가기는 쌀밖에 없습니다요.”
선원이 멈칫하자 병사는 창부리를 선원에게 겨누며 말했다.
“열라면 열 것이지 죽고 싶냐?”
그때였다. 오태백의 부하 하나가 일부러 선원의 뺨을 치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뭐해 열지 않고....”
“뭐 새끼?”
격분한 두 선원이 싸우기 시작했다. 소란이 격해지고 주방 기물이 날아다니자 병사는 두지를 열어보지 않고 그냥 발길을 돌렸다. 병사가 돌아가고 난후 두 선원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빙긋이 웃었다. 하지만 오태백의 아내를 배에 오르게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소왕이 파견한 장군 진마는 오태백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선원들은 다 올랐소. 어서 배에 올라 출발하시오.”
“예.”
오태백은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배 위에서는 오태백의 부하 선원들이 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아내한테 말했다.
“자 갑시다. 태연하게 행동해요.”
남장을 한 아내는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부르르 떨었다. 진마가 다가와 말했다.
“이 자는 누구요?”
“아예, 이 사람은 불로초를 잘 찾는 일종의 심마니입니다.”
“황제의 허락을 받았소?”
“그게......저....”
오태백이 말을 더듬자 진마는 금방 경계의 눈빛을 부라리며 아내를 쳐다보다가 병사에게 소리쳤다.
“이 자를 수색하고 포박하라.”
실로 위기일발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배에서 선원 하나가 바다로 뛰어내렸고 돛을 관리하는 선원이 소리쳤다.
“선원이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진마가 선원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선원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진마는 병사들에게 활을 쏴 죽이게 했다. 병사들이 물속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 붉은 피가 바다 위에 퍼졌다. 출발도 하기 전에 죽은 선원은 공교롭게도 그 시각에 집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을 못 잊어 고민하다가 도망간다고 뛰어내렸는데 그게 오태백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이다.
“누구든 불로초를 구하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 만약 황제의 명을 어기고 도망하거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죄로 삼족을 멸할 것이며 나아가 부족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진마는 칼을 빼들고 하늘을 향해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오태백은 진마에게 말했다.
“장군님, 선원 한 명이 죽었으니 대신 이 자를 데라고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좋다. 빨리 출발하라!”
한 선원의 희생으로 아내를 살린 오태백은 아내를 데리고 배에 오른 뒤 출발을 명했다. 돛이 올라가고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오태백은 아내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제 살았소. 당신은 빨리 식당 안으로 들어가 두지 안에 있는 아들 탄을 데리고 나오시오.”
아내는 선원을 따라 식당으로 갔다. 그녀는 아들 탄을 안고 나와 항해가 끝나는 그날까지 남편 오태백과 함께 했는데 오태백의 가족은 끝내 연나라로 돌아가지 않았다. 또 항해도 몇 달 간만 해 연나라의 추적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때 육지에 닻을 내리게 했다. 그리고 모두 자기가 살 길을 스스로 찾아 가라고 했다.
일찍이 오족 왜인으로 채약상을 했던 오태백은 불로초가 있다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지 그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후에도 그는 유랑생활을 하며 온갖 약재를 거래하는 채약 장사를 했으나 불로초는 발견하지 못했다. 채약상들이 불로초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사기꾼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인삼이나 상황버섯, 송이버섯, 영지 등이었다.
한편 연나라 소왕은 오태백이가 불사약을 구해서 돌아올 것으로 굳게 믿고 기다렸으나 그가 끝내 돌아오지 않자 그를 찾아 죽이기 위한 자객을 파견하고 그가 살던 동네를 불 질러 멸족을 시켜버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그는 산둥성 곡부와 역시 산둥성 남쪽에 있는 량야타이와 허베이성 갈석산 근처로 꾸준히 오태백과 같은 채약장을 보내 불로초를 찾았으나 허탕을 치고 말았다.
불로초에 대한 중국 황제들의 집착은 대단했다. 이들은 불사약의 소문만 들어도 귀가 번쩍 뜨였고 불사약 탐색선을 꾸준히 보내 불사약을 구해오게 했다.
세월이 흘렀다.
제나라를 멸하고 중국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시황은 기원전 219년 어느 날 월주를 출발하여 량야타이를 순행하다가 그야말로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들었다. 연나와 제나라 왕이 그렇게 구려고 해도 못 구했던 불로초에 관한 소문을 들은 것이다.
소문의 진상은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이 불로초를 구해서 먹었다는 것이었다. 불로초 광신자나 다름없었던 진시황은 당장 서복이라는 자를 수배하고 잡아 오게 했다.
그 무렵 서복은 시내 어느 유곽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진개라는 유곽의 주인은 술과 여자로 곯아떨어지게 한 다음 계집을 통하여 불로초 있는 곳을 알아내든가 그가 캔 불로초를 훔쳐오게 하여 먹으려 했다. 하지만 서복은 이미 그의 계략을 훤히 알고 있었다.
“주인장! 불로초를 먹었더니 술 맛이 영 아니오. 다른 술 없소?”
“다른 술........ 있지요. 불로장생주인데......”
“에이, 말이 그렇지 그런 술이 어디 있소?”
“그럼 불로초는 어디 있소?”
“그건 말할 수 없지요. 내가 먹다 남은 불로초가 있는데.....그걸 먹으면 죽은 사람도 살아나고 산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지요.”
진개는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술을 다 가져오게 하여 서복에게 주었다. 그리고 매일 여자를 바꾸어 침실에 들이고 서복의 입에서 불로초가 있는 곳을 내뱉도록 하려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개를 사기 친 서복은 이제 어지간히 얻어먹었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계집에게 말했다.
“매향아, 내 너를 보니 불로초를 나 혼자만 먹을 수가 없구나.”
“어머 그럼 소첩에게도 좀 주시어요.”
“그럴 생각이다. 내가 불로초가 있는 곳을 너에게만 알려줄 테니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 알았느냐?”
“나리, 소첩을 뭘로 보시옵니까? 소첩의 절개는 수양산 낙락장송이옵니다.”
“하하하. 수양산 낙락장송이 시궁창에서 크고 있다는 못 들었다. 하여튼 주둥아리 하나는 내가 못 당하겠구나.”
“나리, 어서 말해 주셔요. 불로초가 어디에 있사옵니까?”
“그게 말이지. 어디 있느냐 하면....”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진시황의 병졸들이 유곽 안으로 들이닥치고 유곽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지나가고 나자 유곽 안이 잠잠해졌다. 그때까지 서복은 침실에서 계집을 껴안고 유유자적하게 음탐을 즐기고 있었다.
“서복은 어디에 있느냐? 당장 나와라. 그렇지 않으면 유곽에 불을 질러 죽여 버릴 것이다.”
“나리, 불을 지른다고 하옵니다. 빨리 나가시어요.”
계집은 겁에 질린 모습으로 몸을 더욱 움츠리며 서복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서복은 여유 만만했다.
“허참! 천하의 진시황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구나. 졸개들이 저렇게 설치는 것을 보니까 말이다. 슬슬 일어나 볼까.....”
그는 침상에서 계집을 살며시 밀치고 일어나 옷을 입은 다음 밖으로 나왔다. 유곽 2층에서 내려다본 1층은 유곽은 그야말로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유곽 주인 진개는 뒷문으로 도망을 치고 진시황의 병사들은 주방에 있는 술을 가져다 신나게 마시고 있었다.
“나를 찾는 손님이 누구요?”
병사들이 칼을 들고 경계를 취했다. 그때 갑옷을 입은 장수가 소리쳤다.
“네가 서복이라고 하는 자이더냐?”
“그렇소만.....장군은 누구시오?”
“황제께서 너를 찾고 있다. 당장 가자.”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병사들이 달려들어 서복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서복의 입에서는 아직도 술 냄새가 풍겼다. 장군은 서복을 말 위에 얹고 진시황이 임시로 머물고 있는 행궁으로 내달았다. 진시황은 서복을 보자 크게 기뻐했다. 서복을 데리고 왔다는 것은 자신이 그토록 찾던 불로초를 손아귀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시황은 서복에게 온갖 맛있는 음식과 옷을 하사하고 행궁에서 한 발자국도 못나가게 했다. 며칠 사이 서복은 변해도 너무 변해 있었다. 그의 손에는 술잔이 떨어질 날이 없었고 궁녀들의 시중은 넋이 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마냥 행복한 것만 아니었다. 황제가 불로초가 없다는 것을 알면 그날로 목이 날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황제는 서복을 대전으로 친히 불렀다.
“폐하! 서복 대령이옵니다.”
내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황제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라하라.”
궁녀가 문을 열고 내시가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서복은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서복은 엎드려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황제 폐하, 서복 문안 인사드립니다.”
“허허허. 서복 공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짐도 한없이 기쁘오. 며칠 궁중에서 지내는 동안 불편한 건 없었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궁녀들이 주안상을 차려 두 사람 사이에 대령했다. 황제는 서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친히 술잔을 하사했다. 서복으로서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을 정도였다. 일개 채약상이자 뱃놈이 황제가 친히 주는 술을 받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생에 최대 영광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진시황이 누구던가? 조나라의 대상인이었던 여불위의 공작으로 즉위한 장양왕의 아들로 13살에 즉위하여 여불위의 반란을 평정하고 강력한 부국강병을 펴 한, 위, 초, 연, 초, 제나라를 차례로 멸망 천하를 통일한 사람이다.
“짐이 서복 공을 이렇게 부른 것은 소문의 진상을 알고자 함이오? 짐이 들은 소문에 의하면 공께서 불로초를 구해 먹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오?”
술잔을 내려놓자마자 성급한 황제가 말했다. 서복은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한 말이 그를 두고 한 말이었다. 황제는 서복을 의심하고 있었다. 불로초를 빙자해서 세상을 속이고 황제를 속이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폐하, 아직도 불로초를 가지고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많사옵니다. 일찍이 제나라와 연나라 왕도 사기를 당했사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도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서복은 자신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나서 적극 해명하며 황제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것은 일종의 연막이었고 선재 공격이었다. 진시황은 서복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될 것이오. 어서 공께서 구해 먹었다는 불로초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인은 일찍이 배를 타고 많은 항해를 하였사옵니다. 바다는 하늘만큼이나 넓었고 물고기가 무궁무진했사옵니다.”
“무슨 사설을 그렇게 길게 하시오.”
황제가 역정을 내자 서복은 움칠했다. 어떻게 황제를 안심시킬까 골몰하느라 잠시 사설을 깔았을 뿐인데 황제는 그것마도 눈치를 챈 것이다.
“사설이 아니옵니다. 폐하! 불로초는 우리 진나라에는 없고 바다 건너 이상한 나라에 있사옵니다.”
“바다 건너 이상한 나라라......”
“그 나라의 이름은 소인도 잘 모르옵고....삼신산이라고 하는 산 안에 선인이 사는데 그 선인이 불로초 있는 곳을 안내해줘 소인은 그것을 먹었사옵니다.”
“삼신산이라.....다시 가면 찾을 수 있겠소?”
“있사옵니다. 발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그 삼신산은 물 밑에 있었사옵니다.”
서복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생각나는 대로 둘러댔다. 그가 말한 삼신산은 어딜까? 얼겁 결에 둘러댄 삼신산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이었다. 그는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여러 번 들른 적이 있었다. 제주도는 화산으로 이루진 산으로 산꼭대기에는 백록담이라는 연못이 있고 섬 전체가 그 연못 밑에 있으니 물밑에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거기다 중국 사서인 사기(史記) 봉선서에도 ‘삼신산은 발해에 있어 중국에서 그리 멀지 않고 물밑에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서복은 상당한 지식을 가진 뱃사람이고 상인이었던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도 ‘영주산을 해상의 삼신산’이라 하여 제주도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고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항구’라는 뜻을 담고 있어 적어도 서복은 제주도를 제 집처럼 드나든 것은 아닐까?
아무튼 진시황도 불로초가 있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술술 내뱉는 서복의 임기응변에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차츰 서복에 대한 경계심을 늘어뜨리고 믿기 시작했다.
“짐이 일찍이 공이 말한 선인이 갈석산 근방에 산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을 찾았으나 만나는 사람마다 말은 안 하고 모두 숨어버려 선인은 찾을 수 없었지요. 어찌나 화가 나는지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소이다.”
서복은 황제의 말에 주눅이 들어 얼굴이 저절로 굳어졌다.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진시황은 불로초에 대한 집념이 강했고 그 덧에 서복이 걸려든 것이다.
“폐하! 저는 분명히 불로초를 보았고 선인이 준 불로초를 먹었사옵니다.”
“어떻게 생겼소?”
“이상하게 생긴 풀로 열매가 있고......”
“앵이! 그래 가지고 어떻게 짐작을 하겠소. 좀 가지고 온 것은 없소?”
“선인이 준 불로초를 먹고 나서 욕심이 일어나 불로초를 훔쳐 도망하려 했습니다. 어느 날 선인이 잠든 틈을 타 불로초를 캐서 가져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큰 물고기가 나타나 제자리에 갖다놓지 않으면 배를 뒤집겠다고 해 부득이 다시 제자리에 갖다 심었사옵니다.”
진시황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술잔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폐하! 폐하께서 직접 삼신산에 가서 선인으로부터 불로초를 캐 오게 하여 드시면 어떻겠사옵니까?”
“짐은 나라를 한 시도 나라를 떠날 수 없으니 공이 가서 불로초를 구해 오시오.”
“물고기가 막으면 어떡하옵니까?”
“공은 불로초를 훔쳐왔으니 물고기가 막은 것이오. 짐은 선인에게 줄 친서도 줄 것이니 불로초를 꼭 구해 오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서복은 이제 완전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해올 서복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주라고 명했다. 그는 즉시 불로초를 구할 때 타고 갈 수십 척의 배를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배가 만들어지는 동안에 두려움을 잊기 위해 진탕 마시고 즐겼다. 드디어 배가 완성되고 서복이 부두에 나갔을 때 깜짝 놀랐다. 불과 몇 척의 배로 항해를 떠나려 했는데 수백 척의 배가 바다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진시황은 마지막으로 서복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다짐하듯이 말했다.
“공이 불로초를 구해 온다면 발해를 주어 다스리게 할 것이오. 그러나 불로초를 구해오지 못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깊이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궁사와 불로초를 캘 동남동녀 3천 명을 딸려 보낼 것이오.”
“궁사라면.......”
“활을 잘 쏘는 궁사들이 필요할 것이오.”
진시황은 서복이 배신할 것을 염두에 두고 궁사를 딸려 보낸 것이다. 여차하면 죽이라는 것이다. 서복은 그제야 바다에 왜 수백 척의 배가 떠 있는가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서복은 하늘이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 믿고 동남동녀 3천 명과 함께 삼신산 불로초를 찾아 힘차게 출항을 했다.
일설에는 서복이 우리 민족의 한 사람이었다는 말이 있다. 그가 제주도를 자주 찾은 것과 배를 잘 다루고 항해에 능했다는 것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한족들은 원래 기마민족으로 바다로 나가는 것을 꺼려했고 멀리 가는 항해술로 그렇게 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에서 30만 대군을 몰살시킨 것을 보더라도 서복은 중국 한족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민족의 한 사람이었던 장보고가 동아시아 해상의 바이킹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을 보더라도 서복은 타고난 우리 민족의 뛰어난 항해술과 배 건조하는 기술 등을 이미 핏속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서복은 뱃머리를 이번에도 제주도를 향하게 했다.
파도가 거칠게 일었다. 수백 척의 배에 탄 동남동녀들은 모두 몇 주 동안 거친 파도와 바람에 시달려 배 멀미를 하고 간혹 향수를 이기지 못해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복은 그래도 항해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어디 가까운 섬이라도 들어가 쉬어가자는 궁사들의 위협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항해를 계속했다. 그리하여 거의 두 달 만에 제주도 근방에 도착하였다. 수평선 저 멀리 섬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자 맨 앞에서 지휘를 하던 궁사들이 활을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섬이 보인다!”
그러자 항해에 지쳐 있던 동남동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제주도는 서복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한라산을 수십 번 올라가 봤고 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원주민과도 친형제처럼 교분을 쌓은 사람이었다. 섬이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한라산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저 산이 삼신산입니까?”
궁사를 이끌고 있는 장군 혜후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불로초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 산에 있지요.”
그는 불로초에 미쳐버린 진시황만큼이나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배가 서귀포에 닿았다. 바다는 고요했고 봄빛이 완연한 한라산은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서복은 우선 먼 항해 끝에 오는 피로를 풀기 위해 다음 날 큰 잔치를 열었다. 영문도 모르고 황제의 명으로 그를 따라온 동남동녀들도 모처럼 신나게 춤을 추며 놀았고 마치 신천지를 발견한 개척자들처럼 좋아했다. 서복은 어느 새 무리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궁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진시황의 충성스런 부하들로 쉽게 서복을 따르거나 돌아설 사람들이 아니었다.
혜후는 조급했다.
하루라도 빨리 불로초를 구해서 돌아가고픈 생각뿐이었다. 또 불로초를 구하게 되면 서복은 죽일 것이며 동남동녀들은 버리고 궁사들만 데리고 오라는 황제의 명이 있었다. 서복도 그것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두 사람의 지략 싸움은 치열했다.
제주도 섬에 봄비가 내리고 나자 한라산은 더욱 푸르고 아름답게 보였다.
서복은 그때까지도 임시로 만들어 놓은 막사 안에서 전날 마신 술에 골아 떨어져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서공! 어서 일어나시오.”
혜후가 그를 깨웠다.
“혜후 장군, 무......무슨 일이십니까?”
“오늘은 불로초를 캐러 갑시다.”
“난 또....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했잖습니까?”
“그렇다고 마냥 술이나 퍼 마시고 있을 겁니까?”
“소인도 지금 답답해서 죽겠습니다. 어디서 선인이 나타나야 하는데....보이지... 않으니....기다리는 수밖에요.”
“공께서 전에 선인을 만났다는 곳에 가면 또 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어딘지 한번 가 봅시다.”
“거긴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폭포가 있는데 거기서 만났지요.”
서복이 말한 폭포는 서귀포 폭포를 말한다. 혜후 장군은 즉시 궁사들을 풀어 폭포를 찾게 하고 자신이 직접 그곳에 가서 확인했다. 줄기차게 떨어지는 폭포수에 답답했던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혜후는 돌아와 서복에게 말했다.
“선인이 나타날 곳으로 충분하지만.....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공께서 당장 불로초를 찾아 나서시오.”
그러자 서복이 역정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날더러 황제 폐하를 사기 치란 말이오?”
“그 무슨 말씀을.....소장은 그저 답답해서......”
“장군, 냉철하게 생각해 보시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아무리 충성을 해도 황제는 당신을 죽일 것이오.”
서복은 장군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심리적으로 압박을 할 심산으로 느닷없이 직언을 한 것이다. 혜후 장군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 무슨 망발이오? 난 황제의 충복이요. 그러니 회유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시오. 또 앞으로 그런 망발을 한 번만 더 하면 그땐 가만 두지 않겠소.”
“장군, 생각해 보시오. 장군이 불로초를 구해 가서 황제께서 먹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상이라도 줄 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황제는 분명 불로초가 있는 곳을 아는 자를 없애 혼자서 남은 불로초를 독식하려 할 것입니다.”
“감히 황제를 모독하다니.....그냥 둘 수 없다!”
혜후는 칼자루를 움켜쥐고 소리치며 서복의 목을 노려봤다.
“장군! 소인의 말은 결코 모독이 아닙니다. 진시황은 불로초에 정신이 나간 황제입니다. 불로초는 없습니다. 애당초 없었던 겁니다. 그래도 모르시겠습니까?”
서복은 이제 숨길 것도 내놓을 것도 없었다. 어차피 알게 될 만고불변의 진실이 바로 불로초는 없다는 것이었으니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내가 네놈의 말을 들을 것 같더냐? 너는 황제를 속인 천하의 사기꾼으로 내가 먼저 용서치 않겠다.”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이 많은 동남동녀들은 장차 어떻게 할 것이오? 또 소인이 죽고 황제에게 속은 것을 알면 폭동이 일어나 장군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난 내 말을 하나도 믿을 수가 없다. 혹시 불로초를 독차지하려는 심보가 아니더냐?”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병들고 늙어 죽는 것이오. 불로초는 없습니다.”
혜후는 참으로 난감했다. 서복의 말은 진실이었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그 자신도 몰랐다. 서복을 죽인다고 해서 없는 불로초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 서복을 다시 진나라로 압송을 해서 황제 앞에 대령한다고 해도 황제의 노여움에 자칫하면 자신의 목숨도 날아갈 수 있었다.
그는 서복의 변심과 반란을 두고 냉철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서복의 말대로 불로초를 구해 간다 해도 의심이 많고 난폭한 황제는 자신을 의심한 나머지 죽일 수도 있었다. 더욱이 불로초를 구해가지 못하면 서복은 당연히 죽겠지만 자신도 예외일 수 없었다.
서복은 혜후 장군을 설득했다.
“장군, 내가 장군을 비롯한 저 동남동녀들을 먹여 살리겠소.”
“어떻게? 무슨 수로? 또 황제의 손아귀에서 어떻게 벗어난단 말이오?”
“황제가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치는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 정착해 함포고복의 땅을 만드는 겁니다.”
혜후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이미 황제까지 속인 서복인 것이다.
“난 공을 믿을 수 없소. 진실을 보여주시오.”
“우리는 한 배를 탄 사람들이 아닙니까?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도......”
“장군님만 마음을 돌리시고 저를 따라 주신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혜후는 그제야 경계의 눈빛을 완전히 누그러뜨리고 말했다.
“계획부터 말해 주시오. 들어보고 결정하겠소.”
“우리는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진시황은 이곳을 알고 있고 분명 군사를 보내 찾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둔 곳이 바로 넓은 광택의 땅입니다.”
“넓은 광택의 땅이라....”
“장군께서는 이 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돌과 바람이 많은 섬이외다.”
“그렇습니다. 돌과 바람이 많은 이 섬보다 훨씬 살기 좋은 땅이 바다 건너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시오. 난 도무지 감이 안 오니......”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입니다.”
혜후는 한참 생각하다가 서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혜후 장군님! 감사합니다. 저 죄 없는 동남동녀들이 장군의 용단을 자손대대로 칭송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를 서둘러 내일 아침에 동이 트면 바로 출항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그들 입에서 더 이상 불로초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제나라와 연나라 황제를 비롯하여 진시황까지 그토록 찾고자 했던 불로초는 바다를 무대로 항해와 무역을 하던 일부 상인들의 불로초 사기 공정에 놀아난 것뿐이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서귀포는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서복과 동남동녀들로 분주했고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그들은 바다로 나갔다. 배가 닻을 올리자 동쪽을 향해서 빠르게 움직였다. 서복은 뱃머리에 서서 바다를 응시했다. 그는 자신이 희망의 땅으로 봐 두었던 벼의 나라를 가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서복이 마지막으로 간 벼의 나라는 일본 후쿠오카 현이다. 이곳은 일본 최초의 이다스게(板付) 관작도작지로 서복의 일행이 도착한 기원전 3세기부터 벼농사를 겸한 야요이 문화가 일어난 곳이다.
며칠간의 항해 끝에 벼의 나라에 도착한 3천여 명의 동남동녀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루 종일 온화한 기후에 하루 종일 미풍이 속삭이고 들판에는 온갖 곡식과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서복은 새로운 신천지까지 자신을 믿고 따라준 동남동녀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불로초를 재배할 것입니다. 불로초는 바로 우리가 가꾸고 수확하는 곡식이 바로 불로초이며 우리는 진시황제보다도 더 오래 살 것입니다. 자! 땅은 널려 있습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일해 올 가을에는 풍년을 일구고 우리가 만든 불로초를 배터지도록 먹도록 합시다.”
그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후일 유민들은 서복을 왕으로 혜후를 대장군으로 추대하여 일본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야요이 문화의 주역이 된 것이다. 서복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떠돌이 뱃사람에서 일국의 왕이 되고 죽는 그날까지 선정을 베푸니 가는 곳마다 칭찬이 자자했다. 그리고 혜후를 비롯한 동남동녀들은 서복의 은덕으로 해마다 함포고복의 불로초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이를 두고 후일 사람들은 서복왕의 태평성대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