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
생빛 아침
봄날
그리움은 그리움끼리
수채화
안개꽃
그대는 누구인가
연묵(硯墨)
춘천 가는 길
섬
나의 노래
비 내리는 날
산다는 것의
빈 잠
여린 사랑에게
인연 2
문 밖의 사랑 3
문 밖의 사랑 1
안부
안부가 그리운 날
네게로 가는 길
그대 아름다운 날에
시작에 대하여
그런 사랑이고 싶습니다
저문 날의 사랑에게
너를 듣는다
사랑이란
사랑법
비오는 날 우체국에 가다
바람부는 날
바람 끝에 서다
비
하구언 詩抄
말하자면
무의도
불혹
아버지
새해아침
희망, 그 바다
나목의 노래
간이역에서
겨울 나무
11월
억새
별에게 길을 묻다
9월이 오면
그대의 우산
8월
여름
그리움의 강가에서
그 여름의 노래
마음에 내리는 비
은사시나무에게
그리움이 있는 풍경
느티나무
담쟁이 사랑
장미
꽃에게 바치는 詩
아카시아꽃 필 무렵
동백
저 봄날에
5월 편지
5월을 기다리며
4월 편지
사월
자산홍
봄
3월
봄의 기도 2
만수리 2
눈 내리는 날
사랑
행마법 3
눈(雪)
겨울 들녘에서
11월에 부치는 편지
늦은 가을 숲에서
안개
기도
그립다는 것
가을편지 2
가을 산
그 길로 오라
행마법 2
나의 詩에게
이 가을에
매미
담쟁이
금강산에서
산이 될 수 있다면
꽃잎에 비 내리면
나의 사랑은
벽속의 남자
나무의 노래
길 위에 쓰다
세상에 내리는 비
봄비
인연 4
거북
꿈
사랑 또는
목련
봄 편지
개나리가 있는 풍경
깨달음을 위한 연가
길 떠나고 싶은 날의 노래
그 숲에 가고 싶습니다
봄을 기다리며
숲의 기억
가난한 사랑에게
겨울 숲으로 가는 길
너에게 보내는 안부
을왕리, 그 겨울
새해에는
진눈깨비
물의 고백
너를 기다리는 동안
때 늦은 편지
가을 기도
너에게
인연 3
너, 그리운
희망이 있는 아침
그대가 그립다
가을 들판에 이르러
어느날 문득
업(業)
인연 1
어떤 이유
나의 사랑에 대하여
벽
창 밖 세상에는 비가 내리는데
비탈에서
우리는 함께 바다로 간다
가을 편지
거울
~~~~~~~~~~~~~~~~~~~~
아침 햇살
습한 기억들로
소급되지 못한 날들을 맴돌지라도
맑은 세상 풀어지는
넉넉함이고 싶다
아무리 저어도
빈손뿐인 손울림이어도
주고나서 비어있음이
오히려 기쁨이었음을
깨닫고 싶다
새벽 어스름
저자거리 선잠깨우는
아침햇살이고 싶다.
~~~~~~~~~~~~~~~~~~~~
생빛 아침
내 춥던 시절에
화롯불 하나 지폈네
뜨거운 열에도 깨지지 않을
마음으로 빚은 질그릇세
여린 불씨 하나 담아두고서
밤새워 가슴에 안아
고운 꿈을 키웠네
바람 불고 흔들리는 세월 속
작은 불씨는
마침내 잉걸불로 활활 타올랐네
반쯤 타다가 그저 사위는 모닥불이 아니라
불땀좋은 꽃불로 타고 있네
어둠을 밝히는 삶의 표주標柱가 되어
저만치 서 있네
그 뜨거움으로
발시린 새벽은 포근한 아침이 되어 열리고
그 빛으로
생生은 싱싱한 아침이슬로 피어나
이제 겨울벌판 건너온 차운바람도
두렵지 않고
땡볕 내리는 자갈밭도
목마르지 않아
오직 화안한 얼굴로 피어나는
생빛 아침
그 아침.
~~~~~~~~~~~~~~~~~~~~
봄날
세월은 소멸하고
기억은 항상 색채만 남는 걸까
기쁨에 익숙하지 못하여
빛고운 날들은
여름나절의 소나기처럼
언제나 급히 지나가 버리고
그리움의 빛깔로만
온 세상을 나눌 수 없어
멀미나는 삶의 무게
성긴 손으로 더듬다가, 더듬다가
그리운 이름만 자꾸 쌓는구나
가슴속에 돌만 잔뜩 쌓이는구나
연두빛 봄날은
저리도 소리 없이 가버렸는데
~~~~~~~~~~~~~~~~~~~~
그리움은 그리움끼리
그리움은 그리움끼리
아픔은 제아픔끼리
시린 세월 감아 도는
제키 높이만큼의 하늘을 열라
차마 말로는 다하지 못했던
남모르게 숨긴
이야기도 이제 세상으로 향한 작은 문 열어
파아란 바람에 방금 헹구어낸
마알간 햇살이 되어라
오래 묵힌 바램과
끝내 아껴둔 눈물로도
넉넉한 사랑이 되어
그러하리라 정녕 그러하리라
그 향기 그 빛깔
그 아픔마저도
우리들의 하늘은
끝내, 가득 채워오리라.
~~~~~~~~~~~~~~~~~~~~
수채화
그의 투명한 미소가
은빛으로 날아왔을 때
그는 이미 나의 이름이었네
하냥 먼 곳으로 날고 싶은 산새가 되어
그 빛부심에 기뻐하였네
그의 촉촉한 목소리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벌써 그리움을 알았네
그의 초롱한 눈망울에 갇히었네
아슬이 먼 날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네
님과 함께 수채화로 사는 날
겹도록 감추어둔 사랑 꺼내들고
아, 그것이더라
웃자란 그리움 탓이더라.
~~~~~~~~~~~~~~~~~~~~
안개꽃
안개에서 갓 태어난 빛고운 아침은
은총이라 한다
축복이라 한다
저 모퉁이 돌아서면
웃음과도 만나는 정갈한 약속
노래하리
노래하리
꿈꾸는 세월을
그 위에 넉넉한 그리움의 빛깔을
우리들의 언어는
열어놓은 마음도 없이
그저 말씀만의 빈 하늘에 쌓이고
떠나는 것은
세월
그 세월의 이끼
그 세월에 이끼낀 마음의 비늘
그리움이 머문
자리사랑이 머문 자리
외등으로 걸어둔
그대 희고운 불빛
멀리 아득한데
허망의 그림자는
추억밭에서 자라고
사랑하리
사랑하리
물 빛 노래 물 빛 출렁임
정녕 오래 남아 닳지 않을
안개꽃 그리움아.
~~~~~~~~~~~~~~~~~~~~
그대는 누구인가
배꽃 같은 수줍음으로 내리는 이여
온전하게 따순 손길 내민 적도 없으면서
겹겹의 뿌리 굳게 내려
희고운 햇살 다부지게 긋고 있는
잔잔한 수묵화로 번져가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로 웃고있는
그대 보려는 발돋움으로
해종일을 낮달로 뜨고
갈숲바람 저 홀로 부대끼는데
추운 가슴을 덥히며
갈대처럼 서걱이는
그대
그대는 내게 누구인가
~~~~~~~~~~~~~~~~~~~~
연묵(硯墨)
연묵에 그리움 담아
너를 부르면
얇은 연선지에 문득 배어버리고
묻어나는 건
때절은 외로움이다
빈 마음만 찾아와서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어둠속을
무심한 말줄임표로 남는가
가슴에 채 쓰이지 못한 낱말
시린 화폭 뒤채이는
겨운 몸짓으로도
나의 서툰 필법은
더이상 너에게 이를 수 없다
다 못한 겨울얘기를
오늘도 청묵찍어 써보지만
살아 못이룬 노래
가슴에 배인
꽃 빛 외울림.
~~~~~~~~~~~~~~~~~~~~
춘천 가는 길
강바람도 기어가는 소양강변 소롯길
수꿍 수꿍 접동새 저리 우는데
지금 춘천은 못내 가을이라 하네
시린 어깨 닿아 잠 못이루는 물살틈
지긋이 산자락 잡아당기면
털어도 털어도 비밀한 슬픔은
고즈넉한 강심을 오래, 비켜 흐르고
용수철 같은 산굽이 돌고 돌아
나이 어린 支川을
꽃빛 기다림으로 문신하던
너, 소양강
오랜 그리움아
급한 물살 비스듬히
이 가을을 출렁임으로 놓아 흐르면
뱃길 끊긴 중도에는 바람소리만 무성하고
기우뚱, 가을이네
세상은 가을이라 하네.
~~~~~~~~~~~~~~~~~~~~
섬
캄캄함 내리던 골목 어귀
은무리진 빛갈기를 따라
아득한 귀퉁이를 돌아서 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드문드문 발자국
퍼올리는 소리뿐
어디선가
희망을 빗질하는
괘종시계가 실팍하게 두어번 댕댕거리고
드르륵거리는 셔터소리
깨어있지 않으면
새벽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선잠깬 세월
잠들지 못한 절망들이
포장마차 카바이드 불빛에
흐릿한 그림자로
걸쳐있는
섬과 섬들
사이
한 사내가
갈라진 가을의 불안 사이로
투명한 소주잔을 들여다보다가
새벽은 깨어있는 자의 것이라며
소금에 절인 웃음을
배배 웃고 있다.
~~~~~~~~~~~~~~~~~~~~
나의 노래
빗장
살포시 열어
그를 웃고 싶다
보고 싶어 못 보는 나라
가고 싶어 못 가는 나라
댓바람에 안고 싶다
마음 더욱 가난히 키워
하늘을 열면
박속같은 그리움은
아 그리움은
하늘은 부러 비어
저리 먼 것이냐
눈 시린 가을을 세워
머리맡
너를 건넌다.
~~~~~~~~~~~~~~~~~~~~
비 내리는 날
미운 이름도 고운 이름도 잊어버리는 날
여름산 넉넉히 풀어지는
낮은 목소리의 비가 내리면
나도 비처럼 조용히 가라앉고 싶다
흩어지고 넘어져
어느 한 줌 강어귀 적시는
무심함이고 싶다
울먹임 치렁한 모래톱
뻘내음 흥건히
젖으라,
적시라.
~~~~~~~~~~~~~~~~~~~~
산다는 것의
진종일을
헤매 누운 하루가
헐겁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표를
마음 없는 몸짓으로 퍼덕이다 보면
저자거리를 서성이는 것은
얼굴 없는 웃음
속수무책인 배고픔인 것을
엉터리 같은 진짜를 위하여
진짜같은 엉터리를 위하여
삶이란 어차피 그런 거라는
체념으로도
이생의 무늬가 너무 깊어
내 다시 태어나면
사계절을 송죽松竹으로
청청하리라 다짐하면서도
옷을 껴입어도 춥기만 한
이 떨림은 어쩔 도리가 없어
산다는 것의
아슴한 형체를 밝히지도 못하고
부질없는 욕심
버리지도 못하여 버즘으로 피어나는 불안
노릿노릿 구워내고 있다
길닦음을 하지 않으면
누가 모눈종이에 길눈이라도 틔워주겠는가.
~~~~~~~~~~~~~~~~~~~~
빈 잠
무성하게 돋은 꿈 길
얕게 흐르는 물가에서 느닷없이 잠을 깼다
습관처럼 손을 내저어 봐도
잡히는 건 무심한 세월
진저리 싫증나는 어둠뿐
아무 것도 잡히지 않고
무엇하나 보이지 않는다
첫새벽이 오려면 마냥 멀었는가
잰걸음으로 다가가서
남쪽하늘 한 귀퉁이를 당겨본다
별 고운 밤
한껏 긴장한 찬바람이 팽팽하게 달려왔다
별빛을 가슴에 안고 싶어
양팔을 벌려봐도
안겨오는 건 허전함뿐이다
잡히지 않을 꿈으로 나는 또 두통이구나
그리움의 뜨락 한 켠
속살 푸른 세월들이 주춤주춤 달려가고
어디선가 첫닭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수와
경칩 사이
긴 밤 기어이 밝히는 아침이 오는가.
~~~~~~~~~~~~~~~~~~~~
여린 사랑에게
덜지 못한 여분의 죄값으로
서걱이는 겨운
몸짓목마른 헤아림은 마른 발밑에서 분주하고
내게 남은 눈물 한 방울
차마 버리지 못한 치기稚氣
물맑음 짙은 하늘 한 끝에
음표로 걸어둘 수 있다면
사랑은 떠날 것을 예비하지 않아도 좋다
몸날 세우며 젖은 가슴을 나는 새떼
하늘은 상심을 비워내어 저리 맑은 것이냐
어차피 육신으로 사는 것
한 발 늦게 후회할지라도
예습하지 말자
구름이 제 갈길 흐르듯
이제,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기로 한다.
~~~~~~~~~~~~~~~~~~~~
인연 2
어제처럼 오늘
하루 견고한 마음의 빗장을 열어두어도
다가서지 못하리라
채워야 할 것이 많은 탓으로
한 걸음으로도 이르지 못하리라
우리들의 희미한 별자리 사이
은하수는 낮게 흐르고
이 생에선 이루지 못할 인연인 탓에
버려야 할 욕심이 많은 속세
작은 외로움 버리면
더 큰 눈물나는 외로움 있거니
버리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여 이르지 못하리라
이 생에선 끝내 다가서지 못하리라
눈물 많은 세상
많이 버려야 할 탓으로
땅거미는
낮게 내리고.
~~~~~~~~~~~~~~~~~~~~
문 밖의 사랑 1
- 기다림
문 밖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었네
은밀하게 스며들지 몰라
비내리고 바람불어도
문닫아 걸지 않았네
꿈같은 웃음 한줌 건져내지 못하고
햇빛은 너무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도
허술한 마음을
오래 망치질하였네
정녕 나는 그의 이름일 수 없었네
녹슨 하늘을 갈고 또 닦으며
뻘밭처럼 갈라지는 가슴을 추슬렀지만
그저 들고 나는 숲속의 바람 한 줌
기다려야 한다네
언제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몰라
나는 아직 그를 기다려야 한다네
어쩌면 내 생의 마지막 울림이 될지라도
혈관을 조여드는 목마름으로
내 젊음의 가장 추웠던 시절의 그를
나는 아직 기다림이네.
~~~~~~~~~~~~~~~~~~~~
문 밖의 사랑 3
- 신 호
신 호 가짐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닐 터
버려진다고 꼭 추하고 쓸쓸한 것도 아닐 터
때로 당신은 너무 맑고 너무 높고
그리고 빛부신 이름입니다
바스락거리는 바람소리에도
당신의 체취 스민 듯 하여
귀기울이는 세월
언제나 당신은 내 부름이었고
목마름이었습니다
천지간에 해가림도 바람막이도 없이
마른 입술만 버석이는 벌판 위에서
당신이름 석자에 심지를 세워
산 숲길 휘파람으로 울리고 나면
등 뒤 꽃눈으로 돋아나는 절망을 아시는지요
그리운 생각일랑
지나는 세월 모롱이에
기꺼이 접으리라
하면서도
좋아하는 무늬로만 세상을 새기고 싶어
좋아하는 빛깔로만 온 천지를 채우고 싶어
연초록 가슴자리 투명하게 맑히며
그렇게 혼자 힘 풀어내고 있었지요
선뜻 다가섬으로 짙푸른 사랑 그어내는
별빛 오래 파닥이는 당신이여
오늘도 제 하늘 더욱 맑게 닦아
온밤내 홀로 신호합니다.
~~~~~~~~~~~~~~~~~~~~
안부
저녁노을이 말없이 풀리는
수국색 창가에 서서
그대가 서있는 곳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습니다
그대 생각하다가 날이 저물고
그러다가
무심한 날의 안부처럼
하루 해가 또 저물었습니다
어느 새 밤은 닿고
나는 그대에게 이르는 길을 찾아
저문 목숨을 서둘러 보지만
서툰 발자국들이 곤곤히
빠져나간 거리에는
그대 처음 만나던 날의
귓볼 파아란 바닷바람처럼
아직은 속살이 성긴 봄바람 한 자락이
발심한 듯 온 세상을
야트막하게 털고 있습니다
그대의 하늘도 저렇듯 적막한지요
~~~~~~~~~~~~~~~~~~~~
안부가 그리운 날
사는 일이 쓸쓸할수록
두어 줄의 안부가 그립습니다
마음 안에 추절추절 비 내리던 날
실개천의 황토빛 사연들
그 여름의 무심한 강역에
지즐대며 마음을 허물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완전하게 벗는 일이라는 걸
나를 허물어 너를 기다릴 수 있다면
기꺼이 죽으리라고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내릴 거라고
사는 일보다
꿈꾸는 일이 더욱 두려웠던 날들
목발을 짚고 서 있던
설익은 시간조차도 사랑할 줄 모르면서
무엇인가 담아낼 수 있으리라
무작정 믿었던 시절들
그 또한 사는 일이라고
눈길이 어두워질수록
지나온 것들이 그립습니다
터진 구름 사이로
며칠 째
먹가슴을 통째로 쓸어내리던 비가
여름 샛강의 허리춤을 넓히며
몇 마디 부질없는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잘 있느냐고.
~~~~~~~~~~~~~~~~~~~~
네게로 가는 길
내 가난한 풀밭에
젖은 햇살로 걸리던 이여
그 길을 위하여
층층이 걸어놓은 암호마저
기꺼이 풀어버린 것을
너는 아니
그러나 네게로 이르는 길은
내 가난한 영혼이 빠져나가기에도
턱없이 좁아
쪽문 하나 제대로 내걸 수 없는
중심의 사연을 짐작이나 하는 거니
목덜미가 젖은 풀잎들은
그리워
햇살의 골목이 그리워
헐렁한 노래들을 저리 산란하고 있는데
빛과 어둠 사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사이
이제는 푸른 웃음하나
떼풀로 자라고 싶은 것임을
볕바른 산비알의
꽃말이 되고 싶은 것임을
너는 아니.
~~~~~~~~~~~~~~~~~~~~
그대 아름다운 날에
빛고운 날
은빛 세상속으로
그대 고운 웃음을 파닥입니다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
그리움에서 시작되어
그리움으로 끝나리니
그대 펄럭이는 사연을 새겨
언땅을 녹이는 대지의 숨결로
성긴 가지에 움틔우는 희망으로
가슴에선 풀잎 돋는 소리
지금 새록새록합니다.
아름다운 날
그대 태어남의 빛고운 날
오래 하고픈 말은 아껴
꽃과 향기
그리고 새벽이슬을
가슴초롱하도록 기억합니다
내 푸르른 날의
파아란 바람이여
별이 되어
숲이 되어
아 늘푸른 그대여.
~~~~~~~~~~~~~~~~~~~~
시작에 대하여
라일락향기에 취해 있는 사이
하얀 봄꽃들이
시샘하듯 새로운 시작을 분분하게 얘기합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조심스레 감아 올린 열정으로
조용하되 차마 때묻지 않은 순수로
오래 된 정원
느티나무가 서있는 둔덕에 부는
다박솔 푸른 바람입니다
푸근함입니다
매양 엇갈리는 삶의 틈바구니에서
포오란 웃음하나
가슴에 담아내어
부족하지 않고
결코 수다스럽지도 않은
해맑은 빛입니다
넘치지 않고도 세상사는 이치를 넉넉하게 알아
어려울수록 사랑이 되고
가까울수록 힘이 되는
당신을 우리는 느낍니다
결코 변하는 일 없이
묵힐수록 깊은 맛이 나는
투박한 질그릇이 되리라 또한 믿습니다
헐거워진 대문을 지나
늘 덧나기만 하는 상처위로
오늘은 꽃비가 단단하게 내립니다
웬지 참 기분이 좋습니다.
~~~~~~~~~~~~~~~~~~~~~
그런 사랑이고 싶습니다
사는 일이 쓸쓸할수록
우리 살아가는 동안만큼은 파란 풀잎입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직은 켜켜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온기없는 손금들만 저리 무성할수록
제 몸을 스스로 밝히는
불땀좋은 사랑
서로의 젖은 어깨 기대며 돋아나는
들풀들의 단단한 노래가 부럽습니다
치렁치렁 내걸린 어제의 훈장과
오늘을 매단 장식이 아니더라도
지상의 엉성한 일상을 빠져나와
젖은 하늘을 다독여 줄
그런 진득한 사랑하나 키우고 싶습니다
부질없는 소주 몇 잔에도
외짝가슴은 이리 따뜻해지는 것을
쉬이 덥혀지지 않는 세상을 지나
오래도록 수배중이던 사랑
이제 그 섬을 찾아 떠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근처의
그런 사랑이면 족할 듯 싶습니다.
피안의 언덕은 먼동 트기 전이고
극락정토 예서 멀어도
아직은 모든 것이 극진한 탓입니다
기억하건대
세상은 아직 파란 풀잎입니다.
~~~~~~~~~~~~~~~~~~~~
저문 날의 사랑에게
사는 일이 더러 낯설고
더러 허방을 내딛는 일이겠지만
이 추운 밤에도
바람이 불고, 눈발이 퍼붓고
부질없는 소식들은
그대 머리맡의 창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럴 것이다
벌거벗었다고 모두 사랑이랴
그리운 이의 팔베개를 하고서도
길 너머를 그리워하고
때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상처가 되고
독이 되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스쳐온 날들에게
펄펄 끓는 아랫목을 내어주며
지금 우리들은
어제의 사랑을 지나는 중이다
바람나는 중이다
저문 날의 사랑이여
그러므로 어쩌랴
건너야 할 강물은 아직 깊고
기다리는 막차는 오지 않는데
기약없는 저 그리운 골목들을
이제 어쩌랴.
~~~~~~~~~~~~~~~~~~~~
너를 듣는다
오르기가 참으로 힘들고 가파르지만
정녕 마음준 사람들이 살아
아름다운 이 세상
거친 손 맞잡으면
넉넉한 웃음이 되어
쓸쓸한 길이라도 같이 거닐어
작은 인연
작은 사랑으로도 빛밝은 등불이 되어
저녁연기 잦아드는 강가에서
강심처럼 부풀은 그리움을
풀초롱 사연을
오래도록 얘기하고 싶었네
우리 슬픈 손금 사이
사계절을 늘푸른 나무로 서서
하냥 짓밟혀도 불끈 일어서는
독새풀처럼
억새풀처럼 살고자 했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흐릿한 바램으로
빛고운 날들이 저만치 지나가고
그립다 할 수 없어
가까이 갈 수는 더 더욱 없어
노오란 가슴 가득
너를 듣는다 느낌표 같은 발자국만 남겨두고.
~~~~~~~~~~~~~~~~~~~~
사랑이란
키큰 나무와 키작은 나무가 어깨동무하듯
그렇게 눈 비비며 사는 것
조금씩 조금씩 키돋음하며
가끔은 물푸레나무처럼 꿋꿋하게
하늘 바라보는 것
찬서리에 되려 빛깔 고운
뒷뜨락의 각시감처럼
흔들리지 않게 노래하는 것
계절의 바뀜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는 것
새벽길, 풀이슬, 산울림 같은
가슴에 남는 단어들을
녹슬지 않도록 오래 다짐하는 것
함께 부대끼는 것
결국은 길들여지는 것.
~~~~~~~~~~~~~~~~~~~~
사랑법
그대가 그리운 날은
편지를 쓴다
쓰다가 찢고
또 쓰다가 찢고
문득, 책갈피에 끼워둔 사진 한 장을 생각해낸다
그대가 보고픈 날은
술을 마신다
벽장 속에 갇힌 나를 들여다보며
참 바보야, 바보야 너는,
외사랑이듯
홀수로 잔을 채운다
그리움이
제 무게로 무너지는 밤이면
겹도록 감추어둔 웃음 한줌 꺼내들고
때로는
따뜻한 별의 말씨를 기억한다
이제 기약된 결빙의 시간은
질량質量없는 절대한 손끝에서
파르르 떨고
그대 깃털 같은 모습에
밤새도록 뒤척이는 낱말들
멀리 날지 못하는
산새의 파닥거림.
~~~~~~~~~~~~~~~~~~~~
비오는 날 우체국에 가다
점심 무렵, 길 건너 우체국에 가는 동안에도
내내 비가 내리고 바람이 왁자하게 불었다
길가의 은행나무 이파리들은 영문도 모르고
풀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은행알을
풋사랑처럼 우스스 쏟아내고,
길가는 할머니들, 바닥에 떨어진 풍경 몇 장을 주으며
한 시절의 엷은 웃음을 건네고 있다
살아온 세월의 물관을 따라 가냘픈 어깨가 흔들리고
언젠가는 나의 단단하지 못한 미움도
늘 죄송하기만 한 그날의 사랑도 저렇게 끝이 날 것이라고
보고 싶은 거니? 보고 싶기나 한 거니?
비워둔 마음의 안쪽으로 우산이 밀리고
요동을 치는 가슴선의 계단을 따라
우체국 창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창구 여직원의 환해지는 얼굴만큼이나 궁금해지는 소식이며,
설익은 낙엽처럼 바스락대는 소금기 많은 외로움이며,
살다보면 어느 곳이나 틈은 있게 마련이라고
다짐만으로 사랑이 되는 일도 아니라고
우산 끝에서 또르르 말렸다가 흐지부지 풀리는 빗방울의 꼭지에서
고단한 안부가 외진 몸을 고만고만하게 견디고 있다
소식이 당도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라고,
비어있는 우편번호란에 "가을"을 꾹꾹 눌러 써보지만
가끔 우연과 인연을 혼동하던 귀가 닳은 한 때의 시간들이
우체국 아가씨의 가지런한 웃음을 타고
아직 가지가 덜 마른 생각을 툭툭 건드리고 있다.
~~~~~~~~~~~~~~~~~~~~~~
바람부는 날
무수한 기다림의 점액질을 건너
아직 한 번도 뱉지 못한 말들
시린 햇살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간다
불현듯 날은 저물고
바람은 불어오고
가야할 곳도 마땅치 않은 몸뚱어리가
낙엽지듯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빠져나간다
낮게 몸을 웅크리고
지척이 천리만리가 되는 세상 속으로
길 모퉁이 돌아서면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그럴 거라고
두 손 꼬옥 붙잡아도, 어금니 꼬옥 깨물어도
늘 기척없이 푸석거리기만 하는 생활은
허술한 가슴팍 쟁쟁거리며 속수무책 썰물져 오고
하루종일 시달리다 부르튼 가슴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는
왜 그리
별빛만 무작하게 쏟아져 내리던지
세상의 뒷줄들은 왜 그리 길고 쓸쓸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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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끝에 서다
1
어디서든 빛나는 이름이 되고 싶었다
아슴한 불빛을 따라
자갈길 밤새도록 걸었다
두 무릎 까지고 피가 번지도록
아파하며 삶의 이면들을 잘도 굴러내렸다
그러나 오래 아파할 수도 없는
시간들만 때로 견고하게
흔적을 남기곤 했다
2
계절이 바뀌자 허기진 문틈 사이로
찬 바람이 각도를 키우고 있다
며칠 동안의 푸석푸석한 안부와
간간한 욕심을 깁는 동안에도
잔뜩 등이 굽은 하루가
너의 상처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라고 쓴다
3
바람끝, 저공비행하는
새떼들의 울음소리가 시큼하게 번져간다
부르고 싶은 이름들 다 부르기도 전에
가만가만 깊어지는 기억들
그렇게 해는 지고
4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밭고랑을 타고
날은 또 그렇게 밝아오는 것이다
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아직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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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아침부터 줄창 비는 내리고
창틀에 매달린
연초록 빗소리며 바람소리를
빗금따라 읽노라면
보고싶다
많이 보고싶다
하고 싶은 말은
단지 그것 뿐인데
어쩌자고 그 시절 내내
비는 내리고
내내 두근두근 거리고
~~~~~~~~~~~~~~~~~~~~
하구언 詩抄
젖은 사연들이 모여드는
낙동강 하구언
갈대의 서걱임을 차고 오르는
겨울 철새들의 물질소리가 풋풋하다
흐르는 물길 따라
아직 밑불이 꺼지지 않은 생의 온기와
어둑어둑한 사연이 마저 깔리는 밤
줄지어 비상하는 쇠기러기떼의
동선 너머로 젖은 상처가 보일까 봐
헛기침을 털고 있는 오리목 등걸의
뒤채임이 어둠을
조각조각 끊어내고 있다
건넛마을의 시린 불빛 몇 조각만으로도
충분히 따스할 수 있다는 걸
서로의 젖은 어깨를 걸고 있는
빈 나무들의 말 없는 다짐이듯
강심에 돌 하나
조심스레 던져 넣는다
번지는 물결따라 설레임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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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말하자면
누군가의 아주 오래된 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가슴에서부터 발 끝에 이르기까지
몽땅 비에 털리고도
아직 빗방울이 그리운 날들의 그런,
허물없음이 되고 싶은 거다
빈대떡에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이
그리운 밤,
말하자면
누군가의 오래된 바닥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해감내가 풀풀 풍기는
어느 불꺼진 포구에서 맞대보는
이빨 빠진 탁주잔같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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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도
어두워져 본 사람만이
외롭다는 것을 안다
잘못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죽지 않기 위하여
날마다 파아란 바다를
가슴에 매달고 산다
서녘바다에서
하늘이 되고 싶은
외로움을 본 적이 있다
~~~~~~~~~~~~~~~~~~~~
불혹
어느 시절이었을까
한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녀의 발걸음과 목소리 그리고 그림자까지
몽땅 나의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바짝 마른 계절의 언저리에서
뭉툭한 손톱으로 잘근잘근 세상을 그리다가
스폰지같은 한 여자를 보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그만 철벅대는 속살을
들키고 말아
외로운 섬 하나 만들자고
거친 세상 같이 아파보자고 속 가시에 찔렸던 것인데
그랬던 것인데
꽃섬을 지나와서야 비로소 독한 사랑인 줄 알아
자정이 넘은 거리를
꽃다발은 저리 벙글어대고
이제 가야할 시간인데
걸어둔 별들은 저리 쏟아지고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직도 달은 뜨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랬던 것 같은데
꽃무리는 저리 왈칵 쏟아지고.
~~~~~~~~~~~~~~~~~~~~
아버지
쑥부쟁이며 들국화가 우거진 길을 따라
먼 길 떠나신 당신의 그림자가
고인 울음을 퍼올리던 날
가을볕은 여전히 곱고
당신이 남기고 간 시간 위에
잔뜩 길어진 그림자만 들녘을 쓸고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당신은 없고
풀억새가 키를 넘도록 온통
가도가도 오르막인 돌자갈길을 걸으며
아버지,
그리움이란 얼마나 깊어져야 하는 일인지 깨닫습니다
~~~~~~~~~~~~~~~~~~~~
새해 아침
눈 부셔라
저 아침
새벽길을 내쳐 달려와
세세년년의 산과 들,
깊은 골짝을 돌고 돌아
넉넉한 강물로 일어서거니
푸른 가슴을 풀고 있거니
이슬, 꽃, 바람, 새
온통 그리운 것들 사이로
이 아침이 넘쳐나거니
남은 날들의 사랑으로
오래 눈부시거니
~~~~~~~~~~~~~~~~~~~~
희망, 그 바다
아직도 귓볼이 시린 나무들의
보숭보숭한 젖가슴 근처에서
이유없이 얼굴이 화끈거리고
휑한 가지마다 수줍은 기억으로
출렁거린다
발이 빠진다
겨우내 가슴이 근질근질한 나무들이
싱싱한 기다림을 얘기하는 중
은근한 희망을 하나 둘씩 내걸고 있는 중
몸집 좋은 바람 몇 줄기와
바람의 그림자, 그리고
그림자에 걸린 길들이 나무의 뒷 배경을
따라 흐물거리고
길가는 사람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그 길을 조금씩 밀고 있다
그 길이 어디로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상한 마음들이
잎사귀 돋듯 톡톡 튀어나오고 있다
햇살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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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의 노래
일기예보처럼
그 해 겨울은 길고 추울 것이라는 소식에
손등이 시려오는 날이면
그대가 남기고 간 불안의 기층들을
혼자서 뒤적거리곤 했다
연착된 그대의 이름을
위태롭게 부르고 나면
굽은 나무등걸에서는 잔설이
기척없이 무너져 내리고
부르면 부른 만큼
그대의 발자국은 자라 있어
나는 그 겨울 내내
그리움의 사랫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머지 않아 이 곳에도
약속처럼 봄이 오고
그대 이름 또한
따뜻한 풍경으로 데워질 것을 믿는다
그 풍경을 따라 세상 소식들,
참 넉넉할 것이었다.
~~~~~~~~~~~~~~~~~~~~~
간이역에서
1. 길
길을 끌고 정신없이 달려가다
길 아닌 곳에서 길을 잃고 말았었네
천방 지방 나는 지금 얼마나 어두운 것인가
얼마나 더 어두워져야 하는 일인가
2. 바람
휑하니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꺾인 가지만 남아서
시린 내력을 썼다가는 지우고
지웠다가 다시 써대고 있습니다
3. 늦은 편지
낮게 흐르는 일
무관심과 조바심을 넘어
함께 반듯해지는 일
처서를 지나온 계절의 안색만큼
기꺼이 가벼워지는 일
4. 슬픔에게
꽃 지네
봄꽃 지네
5. 꽃불
너는 시도 때도 없이 내게로 와서는
가슴에 꽃불을 놓는구나
강물이 깊어지면
바다에 닿는 일일까
6. 낙엽
가을 산에 다녀와서
천산 만산을 조곤조곤 얘기하려 했더니
산은 어디로 도망가고 없고
나만 혼자 남아서
밤들도록 낙엽지고 있구나
7. 마음
마음뜰이 붉어지도록
나는 얼마나 많은 샛강을 건너온 것인가
건너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날마다 돋아나는 욕심의 덧니
8. 따뜻한 날
길 건너편의
심드렁한 은행나무 이파리에
요 며칠, 잘 마른 볕
잘 마른 바람 몇 점이 들락날락 부산하다
오래 덥혀온 이름 하나를 꺼내든다
기억들, 따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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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
먼 길 돌아 나서던 날
아직은 덜 여문 잎맥의 상처를 따라
나무들의 젖은 그림자가
지난 계절의 기억들을 절룩이며,
절룩거리며 산발한 어둠을 끌고 있었지요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눈발도 하나 둘, 흩날리기 시작합니다
길고 긴 물관을 따라
목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초저녁인데 벌써부터
당신이 된통 그립기 시작합니다.
이제 어찌합니까
습관처럼
당신, 당신이 무지 그리운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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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지난 여름
말매미들의 떼울음소리에
귀가 댓자나 늘어진 느티나무들이
고단한 발자국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가지가지마다 창백한 햇살을 불러보아
시린 등피를 덥혀보지만
그 마을에 닿기까지
또 얼마나 먼 길을 뒤척여야 할 것인가
길어진 그림자가
민가슴을 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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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산발한 듯 헤진 머리
질척한 산허리를 감아채고 있다
허락 없이 마음 헤집는 저 불순함이여
저 용감무쌍이여
그래, 한 때는 열정이었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이지
욕심을 훌훌 벗어던지고 싶은 거지
기억들, 참으로 가벼워라
군불지피는 삭정이같은
참으로 그런
이제 누가 와서 불이나 왕창 질러다오
잡목숲 우거져 불땀좋은 억새밭에
산불이나 질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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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게 길을 묻다
별들에게 물었네
새벽이 올 때까지
무너진 잠에 매달려
습관처럼 당신, 당신에게 가는 길을 물었었네
아아, 정녕 살아서 다시는 부르지 못할
허명虛名이라도 상관하지 않았네
곰삭은 생각들
당신의 봉긋 솟은 젖가슴 언저리에
밤새도록 구부러진 둑길을 내고
나는 그 길을 따라 가다가
무심한 흔적을 베고 설핏 잠이 들곤 했었네
달빛은 한 시절 퍼부어 대고 그럴수록
당신을 향한 생각들은 더욱
탱탱하게 여물어가고 있었네
때로 사는 일이 허당을 딛는 일이므로
까치발을 하고 시린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무수한 별빛들, 유년의 길목에서 치렁거리고
소식 없는 기다림을 꺼내
별들에게 물어보지만
그러다가, 당신,
새벽이면 참새들의 울음소리만 반짝거리고 있었네
지금 생각해 보면
별들에게 길을 묻는 것이 아니었네.
~~~~~~~~~~~~~~~~~~~~
9월이 오면
풋기가 채 가시지 않은 하늘에다 대고
미처 소인이 마르지 않은 사연들
밤 새도록 불러내리라
가슴 뛰는 절절한 소식이 아니더라도
지상에서 저 먼 우주로 내보내는
아득한 교신처럼
설레임이 쌓여 금빛이던 길들을 닦으리라
여물지 못한 말들
그대 손바닥만한 가을엽서에 담아
건너편 빨간 우체국에 당도하노라면
일몰처럼 붉어지던 그 이름,
홀로 감당할 수 없어도 좋으리
밤이 깊을수록
세상의 처마 끝마다 젖지 않은 희망들을
꽃등으로 내다 걸고
젖은 어깨 서로 기대고 살라며
새벽으로 가는 강물소리
찰랑찰랑 시름을 지우고 있거니
사는 일이 부끄럽지 않도록
내 작은 섬 하나
마음뜰에 가만가만 내려놓는다
부산하게 번지는 그리운
이름들
새벽 들물소리에
안개에 젖은 별빛이 말갛게 씻기고 있다.
~~~~~~~~~~~~~~~~~~~~
그대의 우산
여우비가 오락가락 하던 날
우산도 없이 길을 나섰다가
꼼짝없이 비에 갇히다
빗속에 젖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랴
이제는 우산 없이 걷는 일이다
비가 오면 젖는 것이
어디 이녘 몸둥이 뿐이랴
이제는 스스로가 우산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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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장마 끝의 푸른 햇살이
여름나절,
젖은 뚝방 위로 쏟아지고 있다
가벼운 것들도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아파트 옆 대추나무 등속은
가지마다 푸른 하늘을 매달고 서있고
기마자세로 두 팔 벌린
등나무들이 삶의 매듭을 단단히 짓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깊어지는
청푸른 무늬들
쳐들어오고 쳐들어오고
무너지도록 사랑하여라
통제되지 않는 생각들만
무턱대고 깊어지는 여름날
나는 아직도 제대로 된 사랑을 몰라
슬픔은 날이면 날마다 사나워지고
청푸른 댓잎들
날마다 넘치고 있는 것인지
가슴속을 푸르게 푸르게
흐르고 있는 것인지
~~~~~~~~~~~~~~~~~~~~
여름
그대 깊은 잠속을 헤매일 때
제가 부르던 노래소리 들렸는지요
오늘은 아침부터 까치소리가
삼태기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늘을 버티고 선 느티나무
꼭대기에서는 그대에게
부쳐질 전언들이 마구 나부끼고 있습니다
십년 세월이면 끄덕 없을 줄 알았지요
더 이상 물별들 가슴에서 성글거리지도 않고
그립다는 말로 손 내미는 일도 없으리라 믿었지요
앞산이 뒷산을 밀어내고
산맥처럼 일어서는 물굽이들을
보내고 또 보내며
묵묵부답의 안부를 건너노라면
풀내음 자욱한 아침이 오리라 믿었지요
허술한 등짐, 기척없이 무너져 내려도
보고 싶은 풍경들
언젠가는 마음귀에 햇살무늬로 켜지리라
청푸른 노래
쌀티밥처럼 펑펑 쏟아지리라 생각했지요
푸른 강물소리가 밤새도록 출렁거리고
그랬었지요
새벽 강변의 쇠백로떼가 방금 깨어난 물안개를 끌고
허허공공 날아오르노라면
삶이란
장마철, 창틀에 매달린 심드렁한 바람 같다고
종종 여명을 뒤척이는 풀벌레 울음소리 같다고
우우거리며 달려오는
저 공복의 아침을
구절양장의 너른 강폭을 하나로 잇대고 싶었던 거지요
수천 수만의 그리움들이 몸 지워간
새벽 강변에서
입벌리며 달려드는 저 거대한 물오름의
뿌리를 건너
이 아침, 안부를 묻습니다
당신...
~~~~~~~~~~~~~~~~~~~~
그 여름의 노래
바람이 불 때마다
느티나무 이파리들이 쳐놓은 촘촘한 그늘에
당신의 어수룩한 세월이
구부정하게 걸리곤 했었지요
정오에서 오후로 가는 시간 무렵
햇살이 주춤주춤 제 그림자를 끌어당길 즈음이면
나무 허리춤 아래로 동네 어르신들 모여들어
젖은 경계를 허물고 계셨고
옥수수 깡치와 씨름하다 심심해진 아이들은
제 몸보다 수십 배는 더 굵은 나무 둥치에 매달려
샛푸른 하늘을 따담기도 하고
주야장천 푸르기만 한 섬진강 물줄기를
잠자리채로 끌어당기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나무 등속을 빠져나온 그림자가
한 낮의 무료함을 뒤적거릴 무렵이면
쇠잔등에 모여 앉은 쇠파리떼가
시간의 등뼈를 따라
떼거리로 몰려오곤 했었지요
산마루가 짙은 어둠 속에 잠기도록
아무리 기다려도 당신을 실은 막버스는 오지 않고
그럴수록 섬진강 물줄기는 더욱 더 파래지고
길어지고 있었지요
나무는 점점 제 그림자를
멀리까지 내보내고 있었지요
돌아가는 길,
꿈이 비만해질수록
당신의 안부가 느티나무와 닮아 있음을
깨닫곤 했었지요
지금도 유년의 가슴뜰에는
쇠뜨기풀이 한 아름 자라나고
파아란 하늘을 이고 진 초록이파리들이 무성하겠지요
숲이고 싶어
당신을 닮은 노래가 되고 싶어
늑골 시린 그런 그리움이고 싶어.
~~~~~~~~~~~~~~~~~~~~
마음에 내리는 비
몇 날 며칠 쉬지 않고
비가 내리는 사이
도시의 위벽은 잔뜩 헐고 있다
콜타르를 덕지덕지 바른 길들은
겁먹은 채 제 멋대로 휘어지고 있고
아파트와 큰 길가의 빌딩들마저
습기와 습기사이,
우울을 꾹꾹 눌러담고 있다
웃자란 마음도
발 밑의 안개에 갇히고 있다
이렇게 습관처럼 비가 오는 날,
발자국을 지우며 걷는 일이
얼마나
눅눅해져야 하는 일인가를
대책도 없이 젖는 일이
얼마나 허망하고 흙덩이 같은 일인지를
앙가슴팍 쟁쟁거리는
불안인지를
잠깐 얼굴을 내민 햇살이
앞 가슴에 난 빗물자국을 지우고 있다
다시는
이승의 비에 젖지 마라
마라
오락가락하는 여우비 사이로
올이 성긴 그물을 던지고 있다.
~~~~~~~~~~~~~~~~~~~
은사시나무에게
엷은 바람에도
저토록 몸을 떨고 있는 것은
이승에 지은 죄가 많거나
네가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탓일 게다
백 마디 말보다
투명한 심중의 몸짓으로
엷기만 한 부재를 확인해 보고 싶은 거다
별 되지 못한 삶의 어룽들
후둑후둑 빛 꺾으며
하얗게 다짐하고 싶은 거다
세상의 가벼운 인연들이여
풀내 나는 삶의 건지들이여가
까울수록 천리만리가 되는 풍경들이여
라고
쓸쓸히 외치고 싶은 거다
~~~~~~~~~~~~~~~~~~~~
그리움이 있는 풍경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움의 이름으로 남는 걸까요
허름한 청량리 역사에서
월요일 아침마다 춘천행 첫기차를 기다리던
십여년 전의 추억에 잠깁니다
몇 번이나 들꽃들이 피고 지었는지조차
아슴한 날들이지만
물안개 자욱한 춘천댐이며
의암댐의 넉넉한 풍경들이
잔 파방을 치며마음안에 물길을 내고 있습니다
넉넉한 들물소리가
천산 만강에 날 저물도록
귀를 매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대로
그리운 것은 그리운 것대로
오손도손 둘러앉아 별이 되는 일인가 봅니다
오늘도 춘천행 기차가 새벽 미명을 감아물며
빈 자리를 내밀고 있습니다
소양강의 싱싱한 일출을
한 입 베어 물고 있습니다
~~~~~~~~~~~~~~~~~~~~~
느티나무
풍경들, 푸르게 푸르게
물들도록
당신을 사랑하고 싶은 탓이다
별 되지 못한 생각들
우렁우렁 일어나서
겹겹의 기억으로 뿌리내리면
손바닥만한 그리움
안마당 가득 울울창창하도록 널어 놓고
날저물도록 당신을 기다리고 싶은 탓이다
바람 깊은 날이면
외로운 잎사귀마다
세상의 소란을 몇 장씩 매달아 놓고
헐떡거리는 햇살들
잠시 쉬었다 가게 하고 싶은 탓이다
그렇게 한 세상
야무지게 흔들리고 싶은 탓이다
몸 속을 배회하는
푸른 울음소리를 벗삼아
차라리 슬프도록 무성해지고 싶은 탓이다
~~~~~~~~~~~~~~~~~~~~~
담쟁이 사랑
아직도
나는 사랑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땡볕아래
담벼락 기어오르는 일
바람의 은밀한 유혹에
고개숙여 부끄러워 하는 일
그처럼
소리없이 다가와서
속수무책으로 가슴 헤집어대던
너의 언어
너의 가냘픈 노랫말만 기억한다
파아란 웃음들
허공 가득 널어놓고
네게로 가는 길
이제 한 낮이 휘어지도록 묻는 일이다
부끄러운 몸뚱아리에서
초록빛 안부
씩씩거리며 튀어나오고 있다
청청한 세상
치켜들고 있다
~~~~~~~~~~~~~~~~~~~~
장미
살다보면
뼈속까지 휘어지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이지요
푸른 생각들을
허공 가득 널어두고
때때로
붉은 가슴으로 타오르고 싶은 거지요
채 전입신고도 되지 않은
유월의 푸른 여백에
사랑은 점령하는 거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지요
이렇게 온 몸이 근질근질하도록
하늘 깊은 날이면
우르르 몰려나와 담장 너머
한 움큼의 노래를 야무지게 날리고 싶은 거지요
저 붉은 웃음
무턱대고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내 밋밋한 삶을 범하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 책임지세요.
~~~~~~~~~~~~~~~~~~~~~~~
꽃에게 바치는 詩
밤늦도록 가장의 귀가를 기다리다
시력 약한 골목길마저
취객들의 발자국 소리를 베고 졸고 있는 밤
삶의 변두리일망정
길 없는 길이 어디 있으랴
새벽이 푸른 꽃등을 매달기 전에
저 어둠을 가로질러 오시게나
밀린 사랑 받으러 오시게나
어설픈 위안들만 무성한 골목에서
창 밖 풍경들을 잡아당겨
빛이 되고
평생 하나뿐인 꽃말이 되어
내 마음의 채마밭으로 오시게나
후박나무 여린 잎사귀 울리는 바람도 되었다가
여인의 깊은 속살도 되었다가
물살의 높낮이를 넉넉하게 헤아릴 줄 아는
새벽강변의 달빛으로도 오시게나
밀린 사랑 받으러
그리 오시게나
길이 열리는 동안
도시는 아직 충분한 미명이라네
~~~~~~~~~~~~~~~~~~~~~~
아카시아꽃 필 무렵
아카시아 꽃망울이 한창이던 이맘 무렵
방화에서 당고개
평생을 가도 잇닿을 수 없는
지명처럼
당신 소식 쿵쿵 가슴 울리며 들었지
종일토록 가슴 울렁이며
눈썹까지 무너졌었지
그렇게 맨발로 멍드는 날들이
가고 또 오고
그대 만나리라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습관처럼 꽃망울 걸어놓고
그대가 보고 싶다
한 번만 보고 싶다
아물한 기억의 강폭을
혼자 가늠하곤 했었지
오늘도 무거워진 산색山色을 거느리고
나, 그대에게 가는 길 재촉해 보지만
살아가는 일이란
맨발로 달려와서는 서녘의 일몰처럼 붉어지는 일이라고
시퍼런 가슴 물켜에
새 핏줄 밀어올리는 일이라고
아카시아 꽃망울
아침부터 하얀우표를 사들고
명치 끝에 시린 추억을 퍼 올리고 있네
~~~~~~~~~~~~~~~~~~~~
동백
묵묵부답의
일주문을 지나
무심코 걸어와 버린
길들
푸른 잎맥이 눈뜨는 첫새벽에
가슴 붉은 사연들
통째로 던져대는구나
훌러덩 마음 비우고 있구나
비워낼수록 목숨길은
밝나니
당신 이제
푸른 노래가 되라
습관처럼 홀로 붉지 말아라
~~~~~~~~~~~~~~~~~~~~
저 봄날에
참새들의 재재거리는 목소리가
가슴의 물켜를 따라
아침부터 반짝거리고
봄빛을 밤새도록 퍼마신
수양버들이
제 흥에 겨워 연두색 그리움을
강둑에 내거는 날
실핏줄 화안하도록
몸을 푸는 조팝나무며 자산홍
겹철쭉 붉은 울음들아
미치겠네
저 봄날에 내가 빠져죽겠네
무작정 가슴은 붉어오고
저 봄날에 환장하겠네
~~~~~~~~~~~~~~~~~~~~
5월 편지
수런거리는 숲그늘을 지나
백두대간 푸른 산맥 따라 가다보면
라일락이며 산다화 무리 사이로
당신 웃음도 만나리라 기대했었지
혼자
가슴 벅벅 긁어대는 쓸쓸한 날에
꽃들은 어쩌자고 저리 피고 지는지
어쩌자고
빗줄기는 저리 굵은 것인지
꽃별처럼 영그는 당신의 안부와
연두빛 소식이 그리워
산빛 짙어
까막까치 우는 날
당신에게 맨 먼저 달려가리라 했었지
그랬었지
세상의 언약들이여
저 짙푸른 5월을 건널 수 있을 것인지
거듭 앓으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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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을 기다리며
왕벚꽃 흐드러지던
윤중로를 지나
진달래 꽃망울 실없이 토옥 톡 터지던
여의도 공원의 작은 연못가에도 그대 이름이
실없이 피어납니다
겹철쭉의 해맑은 미소와 라일락의
은은한 향기가 가슴을 허무는 날이면
보고싶다
참 보고싶다는 말을
돌아서는 계절의 어깨너머에
살며시 풀어놓습니다
오래 묻어둔 그리운 이름으로
그대와 나
가슴뿌리와 파란 줄기로 잇닿을 날
산도 되고 바다도 되는 날
낮은 하늘의 노래가 되는 날
새벽이 이슥할 때까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봄비가 초록가슴을 헹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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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편지
잎보다 먼저 노오란 연정부터 피워대던
개나리도 어느 새
푸른 사연들로 두 주머니가 불룩하고
산당화 붉은 꽃 그늘에서
뻐꾸기 한 마리
꽃울음을 울었다네
숨죽여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아직도 다 못한 사연들이 남았는가
써야 할 꽃편지 아직 저리 많은데
꽃이 진다네
겹겹의 마음이 진다네
이제 기다림도 반역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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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시방쯤
나의 계절은 눈 시린 사월
보고싶어 보지 않는 마음들이 맞비치어
하늘은 저 혼자 저리 맑은데
차마 쓰여지지 않은 언어는
비좁기만 해 죄스러운
가슴 한 켠 묻어두고
그리움은
봄빛으로 오지 않아도 좋으리
한 무리 이름 없는 들풀이래도
수줍음의 빛깔로 향기나누는
유년의 뜨락에 피던 들꽃이면 좋으리
발끝에 채이는
먼지 같은 인연으로도
가슴아리는 세월
부대끼는 젊음을 가진 탓으로
내 가난한 마음밭엔 진종일 비가 내리고
파란 하늘 보려는 눈돋움으로
오늘은
어느 피안의 숲속을
나즈막한 종소리로 울려 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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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홍
공원 모퉁이에서
한 여자가
설핏 웃고 있다
봄이 돋는다
낭창낭창하도록
물이 오른다
탱탱하도록 불어 오른
그 여자의 봄
너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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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푸른 이파리들이 튕겨내는
청음의 가락에 맞춰
덜 여문 마음을 덜어내리라
산산첩첩
또르르 젖은 풍경들을 말리고 있다
아직은 대궁이 푸른 하늘이
장단을 맞춰
쫘악
부끄러움을 펴고 있다
도대체 절망이라니요
더러 세상은 저런 풍경 하나로
족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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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캄캄한 발밑의 어둠 속에서도
제 갈 길 알아
때되면 굵어지는 계곡 물소리
살아간다는 일이
저렇듯 아귀같은 산비탈
뒹굴며 흐르는 일임을
서로의 젖은 어깨 토닥이며
시린 상처까지도 함께 붙들고 가는 일임을
봄강에 닿도록
알몸으로 어깨 풀리는 물돌이에 이르러서야
혼곤한 깨달음이다
비비새 몇 마리 동백 꽃망울 속을 날고
저, 은사시나무의 시린 이마에서
튀어나오는 목소리
우우우 거리며
봄 날의 떨림으로
저 깊은 속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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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도 2
이 봄에는
가난한 이들의 골목골목마다
따뜻한 소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빈 둥지마다 맑은 심지 돋우며
별들이 실하게 차오르고
외롭고 힘든 일들로 밤이면 밤마다
가슴에 비질하는 이들에게
푸른 새벽이 부리나케 달려갔으면 좋겠습니다
벌판을 지나온 그림자들이
아직은 추운 하늘에서 비척일 때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들이
따뜻한 날들의 희망을 들먹거리고
추신을 덧붙인 사연들이
서로의 젖은 어깨에 당도해서 고운 노래가 되는
그런 날들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봄에는
젖은 발자국과도 운명처럼 어울려
꽃처럼 한 세상 터져우는
그런 사랑
그런 손해보는 사랑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하루 종일 그리움만 돋아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풍경이 한 자나 더 깊어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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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리 2
할아버지의 큰 기침소리가 밤새도록
골목을 떠돌아 다녔지요
쉬임없이 내리던 눈발에 언 발이 푹푹 빠지며
삼박골 대나무숲에 걸린 달빛을
무작정 따라 나서곤 했었지요
안산 소나무밭을 가로질러
울울창창 울어대던 솔바람 소리하며
미나리꽝 얼음 귀퉁이에 걸어놓은 팽이소리는
지금까지 윙윙거리고 있는데
집앞 들녘에서 날려보낸 연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요
어느 하늘의 별이 된 것일까요
팽이치기하느라
언 손 부르트던 그 아이들
물고구마 먹어가며 딱지치기하던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숨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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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오랫동안 참아 온 눈발이
오후 무렵부터 굵어지더니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쏟아내고 있다
마른 풀잎들이 비워둔 자리에
발자국을 부리고 있다
더러는 막막한 일이겠지만
이유없이
젖는다는 일
그리하여 잎 진 자리에
하얀 잔뿌리로 닿는다는 일
서로에게 건네는 안부조차
부질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어디 한 두 번이랴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오늘같은 날은 그저 마음뿐이거니
한 걸음씩 목숨을 지우며
그리운 이여
오늘은 네가 눈발이 되겠느냐
그리하여 내 먼 곳에 닿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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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한 세상 무너지듯
퍼붓는 눈발 속에서도
숲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서로에게 기댈 가슴이 있기 때문이라네
젖은 안개가 숨어드는 밤이면
마음 이슥하도록 별들을 불러들여
허공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 잠들지 못하고 서걱대는
푸른 기다림들을
벌판에 내다 걸기도 한다네
우리는 알고 있지
새벽녘 지상의 가난한 약속들이
고단한 잠을 비울 때까지
저 숲들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임을
해야 할 말들 너무 많고
가지 끝 빈 사연들 너무 깊어도
숲,
서로의 젖은 어깨를 토닥이며
참회의 겨울을 묵묵히 서있을 것이네
그 단단한 사랑을
이제야 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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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마법 3
아물지 않은 상처위로
어제처럼
빈 나뭇가지들을 가누는
매운 바람은 불어올 테고
떠나는 것들이 모두 절망은 아닐 터
아프지 마라
그렇다고 쉽사리 등을 내주지도 마라
돌아보매, 견디며 부대끼는 것들로
빈 벌판 일어서는 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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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雪)
차라리
하얗게 유혹할까
젖은 몸피 뒤척이더니
그 마음 풀어놓지도 못하고
동지섣달 빈 하늘에서묵은
그리움만 키우고 있나요
참 게으른 당신
하얀 마음
속 시원히 고백하지도 못하고
흐린풍경으로
얼마를 더 질척거려야 하는지요
아무래도
세상이 더 낮아져야 할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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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들녘에서
숨가쁜 관능이 비켜간 거리에
쉬이 살붙이지 못하는 기다림의 뿌리들이
너울도 없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비울수록
맑고 단단한 생각들이
생의 갓길을 하염없이 오르내렸을
저, 촘촘한 추억들이
꺾인 시간의 관절들이 내지르는 비명속으로
가슴길을 내고 있습니다
비워낸다는 것은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 위함이겠지요
습관처럼 되풀이되는 해묵은 안부 사이로
연민의 상처 몇 마디
슬쩍 묻어둡니다
날마다 한 뼘씩 자라나는 마음의 경계를
들풀들의 낯선 외로움을
이제 가슴에 묻어도 괘념치 않을 듯 싶습니다
늘 외로운 이여
거친 들판을 품어도 좋을
세상은
지금 불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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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부치는 편지
오늘처럼
잎 너른 플라타너스가 분분히 지는 밤이면
상기된 마음을 꼭꼭 눌러담아
발신인 없는 편지라도 부치리라
울퉁불퉁한 욕망들이 솟아나는 길목에서
겹도록 바스락거리고 싶어
더불어 눈부시고 싶어
눈두덩이부터 젖어오는 노래 한 소절을 꺼내
잎 지는 풍경들을 가랑가랑 채우리라
외로움에 찔려 넘어질 때마다
푸른 잎맥들을 흔들어 깨워
둥둥거리던 날들의 이야기라도 풀어내리라
시린 바람이 목을 치켜드는 골목에서
그리운 이름들이 해탈할 수 있도록
키 작은 이파리들을
가만가만 불러내리라
그 길로 가는 경계가 멀다하여도
좁은 등짝 부비며 살아 온 이야기들은
저리 따스한 일임을
가슴에 안고도
늘 섬이 되는 플라타너스의 등 시린 사연들을
가슴 속의 한 잎이여
아직 푸르기만 한 나의 노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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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가을 숲에서
쓸쓸하여라
무작정 치달려온 숲그늘에서
가을가을
가을잎새들이 종알거리네
밤새도록 여린 생각들을 덜어내었는데도
무심한 풍경들은 왜 그리 가슴을 찔러대는지
실없는 갈바람은 왜 그리 혼을 빼놓는 건지
떡갈나무며, 은행나무며
키작은 배롱나무의 잎잎까지
세상은 사방에서 날라드는 편지들로
저리 부산하다는데
가슴근처의 시퍼런 기다림에 걸려
나는 아직 꿈을 놓지 못하고
쓸쓸하여라
내 젊은 날의 오기들아
아직도 햇푸르기만 한
내 생의 갈참나무 이파리들아
그러므로
그러므로 사는 일이란
목숨길 뜨겁게 데워
어디론가 귀순하는 일이었다고
가슴에 첩첩이 꽃불 켜는 일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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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이제 얼마 있지 않아
굳은 표정을 한 한 떼의 추억들이
여기를 지나갈 것이다
삼삼오오 행렬을 지어
불임의 계절들을 비켜갈 것이다
아득히 돌아보면
산은 산그늘을 만들고
깊어서 보이지 않는 길들 위에서
경계를 허물어야 할 일도 있으리라
마알간 상처마다 작은 꽃망울을 매달고
가슴가슴에는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을
몇 장씩 품고 사는 일
그게 사는 일 아니겠느냐며
사는 일이
무심에 베인 상처같아라
마음 둘 곳 모르는
안부처럼
세상은 아침부터 안개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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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일요일 대방동 성방에서의
가지런한 기도
산 자들의 남산만한 욕심에도
성모마리아의 웃음이 그저 따뜻하다
무엇인가
저토록 간절한 것이
쉬이 날지 못하는 저 묵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바라건대
산다는 것은 맑은 소리 하나
다듬는 일이었던가
쉬 가벼워지지 못하는
영혼들 위로
수척한 햇살이 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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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는 것
생존을 위하여
그리고 때로 은밀한 호기심을 위하여
너의 생은 그리 분주했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전신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단단한 속울음이여
습관들이여
축제는 끝나고
숲으로 가는 길은 아직 기다림일 것이므로
더 이상 바람도 불지 않고
불지르면 훨훨 타오를 생각들
이대로 주저앉아 그리움이나 한 바구니
따 담을까 싶다
강둑을 지날수록
후줄근해질 목숨을 위하여
종일토록
너를 돋아도 좋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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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편지 2
세상은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어설픈 투정이지만
까마득한 어둠 속을 헤집고 다니는
시퍼런 가슴들을 보시는지요
가을은 온 산이며 들이며 심지어
빈 강물소리마저도 가슴 깊도록 질러올 터이지만
수천, 수만의 잎사귀마다
그리움이 매달린 풍경들을 상상이나 하시는지요
돌아가는 길마저 수상하여
그믐밤을 꼬박 곤두서있는 내밀한 북소리를
짧아, 늘 짧기만 하여
서두르는 가을낙엽들의 사연을
어림짐작이나 하시는지요
수천 개의 묵은 그리움과
수만 개의 사랑을
가슴에 꽃등처럼 매달고도
보고 싶어, 그저 보고 싶어
그런 세상하나를
부력도 없이 가슴에 품어대는
정체불명의 낯가림을 아시는지요
깃들 곳 없어 밤새도록 펄펄 끓기만 하는
저 세상들을
이제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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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
추분을 지나 상강霜降에 드니
여겨보면
무심한 세월도 이제 득음得音이란다
안산을 쏘다니던 발정난 바람도
실하게 살이 쪄서는
우웅우웅
쫀득하고 차진 노래를
시도때도 없이 매달고 다닌다
가을이 술렁이는 산산마다
길잃은 사람들
바람에게 길을 물으며 떠다니고
오메,
처처산산이 아침부터 벌개져서는
사는 일이
저리 깊어져야 하는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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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오라
사는 것이 아직은 물빛이던 시절
이승에 준비없이 머문 죄사함을 위하여
가슴 한 쪽을 볕바른 희망쪽에 심는다
더 이상 화려한 슬픔은 없으리라
사랑아,
이제 너는 그 길로 오라
각혈하는 세사世事를 지나
기다림을 끄고
미혹을 끄고
네 마음 안의 허깨비불을 끄고
늘 만성숙취에 시달리는 밤거리를 끄고
오라, 낮은 곳으로 이르라
쉬이 지혈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리움이 촘촘한 하늘은
마음 한 잔으로도 충분히 따뜻하리라
불 꺼진 창이 위독하다
오라, 사랑아 너는
바람소리보다 먼저 아침창을 두들기는
부신 햇살로 오라
그 길로 이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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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마법 2
그냥 꾸욱 참기로 합니다
참고 살아야 할 일이 많은 세상
한번쯤 더 나를
낮은 쪽으로 내려놓기로 합니다
얼마 전 장맛비에 혼쭐이 난
샛강의 억새풀 위로
전신을 내 던진 초가을의 빛살들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당당한
뿌리내림을 위하여
세상의 소리 가운데
진득하니 서있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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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詩에게
밤이 늦도록
몇 줄의 詩아닌 詩들이 달그락거린다
불러 모은 생각의 끝을 붙잡고
우두망찰 허공에 기대 서보지만
詩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제 그만하고 일찍 주무세요
그렇게 힘든 詩는 시인더러 쓰라고 하세요
무심코 던진 아내의 말들이
그날 저녁
가슴은 죽고 머리만 남은
나의 詩가 되었다
오, 불쌍한 나의 시여
너는 내게 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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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이 가을에는
젖은 음표들을 말려야지
지난 여름
욕망의 이깔나무숲을 건너오는 동안
무심코 자라난 귀를 맑게 씻어야지
노역勞役의 상처들을 말리는 동안
아다지오의 여백속은 참으로 넉넉하리라
때때로 쉼표를 찍어가며
촉촉한 노래들을 오래도록 흥얼대리라
지상의 세간世間들이 때로 노래가 될 수 있다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일 것인가
물빛만 출렁이는
내 발자국 길어 올리는 이 없어도
이 가을에는
당당하게 웃어야지
깊은 뿌리내림으로 당당하게 일어서야지
곱지는 않아도 넉넉한 음색으로
내게 주어진 것들을
흔들림없이 사랑할 수 있다면
열꽃의 아열대
아, 그 아득함을 건널 수 있다면
이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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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그 숲에 가보아라
말매미 한 마리 젊은 잎그늘에 앉아
무더기무더기 허공을 불러들이고 있다
팽팽하게 견디고 있다
웃음보다 먼저 배운 울음
하기야 산다는 것은
온 가슴이 녹아야 하는 일이지
시린 속살 맞부비는 일이지
후두둑 지는 빗방울 사이
헐거워진 시간들을 꿰매고 있다
돌아보면, 그리움으로 버텨온 세월 있어
울음은 저렇듯 쉬이 오는구나
고단한 저녁 나절
남은 세월을 타진하며
낮은 쪽으로 마음을 던지고 있다.
지상의 낮은 골목으로
시린 노래들을 가만가만 내려놓고 있다
어둠보다 네가 먼저 바닥에 가 닿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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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외로우니까
자꾸 발돋움하는 겁니다
더 멀리 보기 위하여
높은 곳을 기웃거리는 거지요
마음을 파랗게 열고
잎잎에 푸른 하늘을 매달고 싶은 겁니다
촉촉한 밤이슬도 만나고
때로는 지나는 바람과도 사랑하면서
스스로 젖고 싶을 따름입니다
절망하지 않는 씨앗 하나
오장육부에 키우고 싶은 겁니다
왜 사랑하느냐고
무엇을 기다리느냐고 그녀에게 묻지 마세요
뒤틀린 줄기의 파아란 정맥이
그대 오목가슴을 아파올지도 모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외로운 일입니다
외로우니까 발돋움하는 겁니다
꿈은 마음이고
세상은 꿈꾸는 질량만큼 아름답습니다
잎잎이 마음이고
사랑의 窓인
파란 그녀를 우리는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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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낙락장송과 기암괴석의 숲을 지나
만물상으로 가는 길에는
온통 노래아닌 것이 없고
어울림 아닌 것이 없네
美人松의 늘씬한 허리와
안개비를 타고 흐르는
저 단단한 외침
온종일 푸른 어깨를 들썩이며
푸른 미소를 매만지던 그녀를
나는 듣네
마음을 비워내라
서로 사랑하여라
일만이천 연봉을 휘돌아 내린
그녀의 노래는
단단한 울림이 되어
한 줄의 연애편지가 되어
마음 안에 투명한 물길을 내고
금강이여
촘촘한 그리움이여
오래 단단하리라
내 마음 안의 금강이여.
~~~~~~~~~~~~~~~~~~~~
산이 될 수 있다면
분홍의 시절들이 무심코 산란한
저 촘촘한 기억의 단층
참 오래도록
잘도 참고 있다 싶었는데
오늘은 지평선이 누설한
풍경 하나가
널찍한 산이 되어 서있다
바쁘게 몸 여는
마음속 금기
누구는 사랑이라 부르고
누구는 그리움이라 얘기한다지만
더러는 목마름도 제 몫이 있는 일일까
그 이름에
나를 매달 수 있다면
그리하여 푸른 잎새 하나로 피어날 수 있다면
누군가 버려둔 익명의 섬에
희망 하나쯤
낯설지 않게 내걸 수 있다면
그리하여 나지막한
산이라도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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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에 비 내리면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하루를 꼬박 울고도 모자라
꽃잎에 노래 한 소절 기어이 얹어놓는다
밤새도록 옆에서 통음하던 달이
도미솔 도미솔 낮은 화음으로 걸리면
호기심의 골목마다
만삭의 욕망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들
누가 볼까 봐 보고 싶다는 말
참 보고 싶다는 말을
비 개인 하늘 한 귀퉁이에 슬며시 찔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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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점잔빼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내게 오게나
더불어 웃을 한 줌 숨결로
한 때 구름
한 때 가슴에 소나기 내림
살덩이 가슴으로 그냥 오시게
어둑발에 기대어
야시시한 모습으로 와도
상관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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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속의 남자
그 남자
가슴속에 혼자만의 길을 내고 있구나
숨죽여 지내던 몇 평의 우울과
불면의 시간들
저리 무심하도록 꽃잎 지고 있구나
산다는 것은
채우며 되울림하며
흔들릴수록 단단해지는 업장인 것을
그 남자
오늘과 내일 사이
벽과 벽 사이
추억에 기대어 무심한 풍경하나
저리 허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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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노래
우리는 너를 기꺼이 사랑이라 부른다
가슴이랑까지 들이찬
풋풋한 노래와
단단한 뿌리내림으로 아름다운 하늘
그 뜨거움으로
살아있었구나, 진정 살아있었구나
그리하여 면벽의 시간들
지친 햇살들이 마음놓고 꺾어 쉴 수 있는
나무가 되어
넉넉한 숲이 되어
저리도 가슴 따뜻한 온기와
오래 변하지 않을 풍경들을 구워내고 있구나
세상으로 내려가는 길이 어두울수록
든든한 믿음 하나로
오래 변하지 않을 말씀의 잎맥과 실뿌리와
오래 싱싱할 부름켜를 세워
다박솔 향기 무성하도록, 너른 가지 휘도록
한량없이 피워내는 초록빛 희망들
저리 속마음을 풀어내고 있구나
발뒤꿈치 높이 들고
새벽을 부르는 단단한 외침들
숲이라 부른다
결 좋은 사랑이라 이름한다
떨리는 몸짓으로
그 숲에서 노래하리라
오랫동안 너의 이름을 부르리라
그리하여, 오래 참아 둔
저 웃음소리마저 짙푸르도록
단단한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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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쓰다
멈춰 설 수 없다
흔들릴수록 부끄럽게 돋아나는
마음의 비늘
그냥 불립문자가 되는 거다
낯선 방향으로 쓰러질 수 없어
햇 여문 가슴으로
낯익은 얼굴들과
따뜻한 체온을 나누다 보면
발자국 머무는 곳
마음 닿는 곳이 곧 길이 되리라
걸어온 길만큼
새로 시작되는 길
헤픈 말을 씻고 설익은 눈을 씻고
부질없는 마음마저 곱게 씻어 내걸면
뜸부기 박새 지저귀던 길 위에
마음에 꽃비 내리던 그 길섶에
촉촉한 마음은
저리 무한정 송출되고
까맣게 인화하는 기억들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갈 거라고
조팝나무 명자나무 우거진 길 위에
그 길섶에
다만, 한 가지 안부만을 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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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리는 비
마음이 젖는 날이면
떠나온 고장이 무작정 그리웁고
온기를 잃는 것 또한 두려운 일이지만
세상은 자기를 비울수록
오래 단단해지는 업장소멸이라서
빗줄기, 허공에 결코 흔적을 남기는 법이 없지
나무이파리를 타고 해탈하던
빗방울
이제 중심이 푸른 세상을 위하여
제 육신 다 드러내고
스스로 길을 만들고 있다네
사랑은 이유없이 젖는 거라 누군가 말했었지
어둠을 길어올려 세상이 황홀하다면
그리하여 저 갯물 속에서
꿈의 비늘을 건져 올릴 수만 있다면
습관처럼 돋아나는 우울도
늘상 기다림에 익숙한 풍경들도
뜨거운 꽃울림이 될 수 있으리
한 웅큼의 노래를 위하여 기억은
부푼 상처를 저리 연주하고 있는데
꿈으로 걸려 있는 외로운 산기슭에
야윈 몸을 부리고 있는데
시간과 공간 사이
기다림의 줄에 매달려
저 하늘은 저리 흘러 넘치고
세상은 더 이상 젖을 수 없는 것을
한 번 젖은 마음은 다시 젖지 않는 것을.
~~~~~~~~~~~~~~~~~~~~
봄비
때까치의 울음마저 뚝
끊긴
밤의 허리를 돌아
그녀가 나를 부르고 있다
깊지도 얕지도 않게
가만가만 옷 벗는 소리
내 성긴 후회와 조바심을 타고
조심스레 다가와서는
세상의 틈 사이에
빗금무늬 화음들을 부리고 있다
그 이름을 부를 수만 있다면
오늘 밤은 흠뻑 젖어도 좋으리
촉촉한 목소리
간지럽다
세상이 흠뻑 젖는다
빗장 풀린 비낱들 사이로
연분홍 기다림들
수줍은 마음을 가만가만 내려놓는다.
~~~~~~~~~~~~~~~~~~~~
인연 4
봄 볕 깊은 골에
지난 계절의 가랑잎들이
부대끼고 있다
한 줌 흙이 될 수도 없는 쓰라림이
탈출하고 싶은 어제가
바삭거리며 바람을 말고 있다
지상에는 온통 산성비라는데
그리하여
빌붙어 사는 세상에서는 썩을 수도 없다는데
애착을 놓으면 비로소 자유가 되는 것을
열반할 수 없는 기억들이
가슴 언저리를 쓸고 있다
마음을 놓으면 해탈이라는데
맺었으되 풀 수 없는
목마른 사랑을
채웠으되 비울 수 없는
모진 인연을
상처하나도 제대로 감추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이 남루한 욕심들을.
~~~~~~~~~~~~~~~~~~~~
거북
결코 서두르는 법 없어도
멀리 간다
바람이 불면 엎어지지 않도록
머리와 손발은 안으로 숨기고
세상을 향해서는
딱딱한 등껍질 하나로 버티는 거다
세상을 둥그렇게
마음안으로 말아 쥐는 거다
이렇게
그래도 내가 보이니?
~~~~~~~~~~~~~~~~~~~~
꿈
그대가 만든 길안에
기꺼이 갇힌다
사방으로 나가는 문이란 문은
다 닫히고
보름달이 환해지도록
바람소리 한 점
들리지 않는다
~~~~~~~~~~~~~~~~~~~~
사랑 또는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오늘도 쟤들은 사랑을 하는구나
새벽 가슴에 그물을 치고 있구나
사랑한다는 것이
먹가슴에 대못을 치고
징을 때려 넣는 일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구나
쟤들은 아직.
~~~~~~~~~~~~~~~~~~~~
목련
그녀는 북쪽으로 난 사월의 창가에서
하얀 손으로 하얀 피아노를 치고 있습니다
하이얀 드레스를 입고 하얀 불빛 아래서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피아노에서 흘러나온 하얀 음자리들은
노래가 되고 울림이 되어
오랜 기다림의 부름켜를 떠다니고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솜털 송송한 목덜미며
허벅지의 허이연 속살까지 아슴아슴거립니다
음표들마저 수줍어 눈을 감습니다
이제 어둠은 낯선 밤을 웅크리고 있다가
곧 창문을 닫고 떠날 것을 압니다
머지않아 빗방울이 그녀의 하이얀 미소를 물고
무작정 투신할 것도 압니다
봄의 속살이 까실까실 트기 전에 얘기해야 합니다
그녀가 푸른 드레스를 입고 떠나기 전에
아름답다고 얘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눈이 부셔 차마 고백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지독한 사랑을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
봄 편지
하이얀 목련 꽃잎에
제목없는 편지를 써내려가다가
뜬금없이 그대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꽃그늘이 깊을수록
잡념처럼
그 이름이 나풀거립니다
그립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끈불끈 돋아납니다
시방 천지사방이 목련입니다
이 많은 편지를 언제 다 쓸 수 있을런지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뿐입니다.
~~~~~~~~~~~~~~~~~~~~
개나리가 있는 풍경
해바른 창가에 둘러앉은 노오란 목숨들이
한없이 밝아지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봄은
위태롭다는데
어쩌자고 봄날은 이리 좋은 것이냐
엷은 가슴솔기마다 빙그르 번지는
新生의 설레임
말보다 웃음이 먼저 벙그는 열정탓으로
무작정 타올라도 좋을
노오란 일렁임 하나
겨우내 비어있던 허공을 휘어잡고
통통거리는 햇살
엉성한 삶의 기마에 단단한 꽃잎들을 피워대고 있다
세상 한 귀퉁이가 불룩하다
무장무장 환해지고 있다.
~~~~~~~~~~~~~~~~~~~~
깨달음을 위한 연가
그늘이 되기 위하여
쪽문 열어놓고 기다리는
이 속수무책을
더 이상 젖은 보폭으로
비좁은 길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노래도 못하면서
무작정 목부터 메이던 무모함도 버리기로 했다
사람이므로 가지는 추위와
비만의 욕심과
옷깃 한 번 스쳐도
흐느껴 노을이 되고 강이 되는
엉성함도 주워담기로 했다
별은
마음에 뜨는 거야
그리운 노래를 가슴에 묻는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길들이 지워진다
다시, 어둠의 각질角質 헤집고
높이 나는 새떼들이 보인다
졸졸거리는 강울림 소리
세상은 푸르다 마냥 푸르다 한다.
~~~~~~~~~~~~~~~~~~~~
길 떠나고 싶은 날의 노래
습관처럼 불려와 쌓이던
허름한 생각들이
파란 물빛으로 걸리던 날
서로의 시린 어깨를 껴안고
강변을 뒤척이던 춘삼월의 젊은 햇살이
푸르다
황급히 푸르다
말하지 않아도
겨울강은 제 스스로 욕심을 비울 줄 안다
버리고 나서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마음으로 더듬는 단단한 이별
눈부시다
강둑은 언제나 새로운 추억으로
눈이 부시다
한때 우리가 기다림이라 이름하던 길은
갈수록 아득하고
멀리 갈수록
깊게 흐르는 물살
오래 머물지 않아도
세상을 향한 다순 마음은 식지 않는다
사람들이 버린 생각들을 만지작거리며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제 마음 안에 단단한 길을 낸다
문득, 강물이여
강바닥의 기억에 젖지 마라
남은 세월에 섬을 만들지 마라
때로 돌날에 베인 상처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욱신거리겠지만
아직 비워야 할 강심은 넉넉하고
흐른다는 건
끊임없이 자신을 출렁이는 일이란다
때로는 어둠마저 껴안는 것이란다.
~~~~~~~~~~~~~~~~~~~~
그 숲에 가고 싶습니다
숲에 들면 누구나
숲이 됩니다
지금쯤 겨울 숲에서는
내 안의 그림자
올올의 빛을 투망질하며
솔향 한 줌 기꺼이 퍼담고 있습니다
자작나무들이 자작자작거리며
저네들끼리
다가올 봄을 부대끼고 있습니다
바람이 수상쩍습니다
단단한 날을 위하여
몸뚱이 함부로 누일 수 없습니다
숲에 들면 누구나
파아란 숲이 됩니다
이제 그 숲에 가고 싶습니다.
~~~~~~~~~~~~~~~~~~~~
봄을 기다리며
스물스물 쓸쓸한 감성이
담벼락 한 귀퉁이
남루한 전단지에 갇혀있습니다
스물스물 젖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눈길을 거두어도
오래 잊혀지지 않는 것들은
모두 눅눅한 빛깔입니다
울어 버리든가
아니면 조심스럽게 불러보아도
따뜻한 웃음은 조립될 수 없습니다
허술한 마음의 이음새마다
푸른 별들은 초저녁부터 못을 박아대고
오늘 밤은
먼 곳에서 불쑥 달려올지도 모를
그리운 날들을 위하여
잎넓은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밝은 꽃등 하나
그렇게 밤새 밝혀두렵니다
세상은 그렇게 이유없이 밝아올 겁니다.
~~~~~~~~~~~~~~~~~~~~
숲의 기억
네게로 가는 숲길에는
벌써부터 성긴 눈발이 글썽글썽 녹고 있는데
끊임없이 숲을 헤집는 바람소리
그래, 나의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뚝심하나 곧추세우는 일이지
발기하여 오래 시들지 않는
살집 좋은 꿈길 하나
너의 창가를 향하여 내거는 일이지
입덧난 바람이 불어오는 길목
걸려있는 것들은 모두
제 잘난 맛으로 펄럭이고
비워내는 일
버리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는데
겨울햇살 몇 줌
자라난 키만큼 수줍게 웃고
그래, 창 너머로
이유 없이 팽창한 마음이 보이기나 하는 거니
한겨울의 퇴행성관절이
나긋나긋 풀리고
외등으로 걸린 골목길
그래도, 목발로 걷기에는 여전히 불안한 거지
시간의 푸른 등뼈가 푸욱 무르도록
오래 참은 한마디의 낱말을 위하여
네게로 가는 숲길에는
여린 햇발들
오늘도 조심스레 꿰매어지고
나는 함부로 슬퍼할 수 없다는데
너는 느낄 수 있는 거니.
~~~~~~~~~~~~~~~~~~~~
가난한 사랑에게
사랑하는 이여
너를 풀어내고 싶다
덜어낸 무게만큼 가벼워진 세상
주고 나서
언젠가 채울 수 있음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깨닫고 싶다
넉넉한 마음들이 모여
저만큼 숲이 되어 우거질 수 있다면
비어있음으로 서로의 허물이 된들 어떠하랴
촉촉한 기다림으로
서로의 젖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 또한 작은 행복이지 않겠느냐
사랑이란 정녕 가슴 뜨겁고
오래 기다려도 뒤척이지 않을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기도임을 알기에
노래하리라
푸른 숲에 기꺼이 스며들리라
그 숲에서
어제의 습기를 털어 말리며
내가 외울 수 있는 나무들의 이름을
하나 둘 불러내리라
때묻지 않은 풍경 속으로
그리운 이름들을 불러내는 동안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노라고
가만가만 얘기하리라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길은 시작되고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이 밤내 잠들지 못하거니
빈 가슴으로 달려와
가장 먼저 새벽 숲길을 여는
맑은 별 하나로 뜨리라
눈발 속의 내 사랑이여.
~~~~~~~~~~~~~~~~~~~~
겨울 숲으로 가는 길
오늘처럼 바람 깊은 날이면
벌거벗은 나무의
너의 나무를 만나고 싶다
시린 가슴이 전부인 겨울 숲과도 만나
푸른 잎잎들의 노래
온기와 같은 낱말들을 기워보고 싶다
섣달 그믐밤이면
목청 돋구어 달려오는 기다림처럼
오래 사무치리라
색등을 켜지 않아도 아름다울 그 날을 위하여
기꺼이 생솔가지라도 태우리라
스스로 허리를 낮추어
너를 위한 빈터를 만들고
반 옥타브 낮은 배음背音으로
맑은 바람의 설레임을 노래하리라
가는 실뿌리로 시작하여
서툰 몸짓으로 서로 얽혀도
언젠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함께 가는 길 위에 아름다움으로 흐를 것임을
너에게로 걸어가는 배경에는
어제처럼 젖은 바람이 불어오고
창 밖 저편의
때묻지 않은 풍경들이
물푸레나무의 부끄러운 귓볼 위에
그 숲에 가고 싶다고 속삭인다
나는 가만가만 그리움이라 받아 적는다
겨울 숲으로 기꺼이 스며들어
너를 젖어갈 거라고 적는다.
~~~~~~~~~~~~~~~~~~~~
너에게 보내는 안부
1
차마 詩가 되지 못한 생각들이
저녁 밥상을 물리자마자 스멀스멀
책장 위를 기어올라
컴퓨터 모니터 위에 정전기를 튀기다가
흥미없다는 듯 HB연필을 깎고 있다
요즘 연필은 왜 그리 잘 부러지는지
부끄러운 제목의 살점들이
눈처럼 얇게 저며지고 있다
네가 사는 곳에는 눈이 오느냐.
2
사랑이라 그랬다
한때는 빗금무늬를 소용돌이쳤었지
눈도 오지 않는 겨울밤에
일곱 난장이가 꿈꾸던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자답하며
문풍지에 걸린 세월이
안부를 묻는다
그 곳에는 지금도 눈이 오느냐
3
꿈이 깊을수록 그림자가 곱다는 걸 안다
얼어붙은 생솔가지
손으로 툭툭 분질러가며
눈에 보이는 배경들에 익숙해져야 하리
이제는 잊어도 좋을
젖은 추억과도 기꺼이 악수하리
흐린 하늘이 지상의 얕은 곳을 찾아 내리고
오늘은 이 곳에도 큰 눈이 내릴 모양이다.
정녕 지금도 사랑하느냐.
~~~~~~~~~~~~~~~~~~~~
을왕리, 그 겨울
짙푸른 생명의 파닥임
웃어야 하는데, 웃어야 하는데
파도는 배경으로 뒤척이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차마 만들지 못한 말들로
겨울바다는 얼 수 없다
조금과 사리가 만나는 길을 따라
앞서간 발자국들 해변에서 서성이고
가만가만 모랫벌에 새겨지는
너의 긴 그림자
쓸쓸한 등을 보지 않기 위하여
수평선 위의 물새들
기어이
오목가슴에 날다.
~~~~~~~~~~~~~~~~~~~~
새해에는
새해에는 꽃이 벙그는 이유와
꽃이 아름다운 사연을 오래 얘기할 수 있게 하소서
이 땅 위에 더불어 사는 모든 사람들과
모국어의 향기를 같이 누릴 수 있게 하시고
바퀴벌레와 모기, 개미와 같은
하찮은 생명에게도 축복을 내려주소서
눈들어 보이는 것마다
우리들의 첫사랑임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되
길 위에서 서성이는 생각들로 하여
오래 마음 아프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는 이들의 그리움은 올해도 끝이 없을 것이므로
따뜻한 위로의 말을 배우게 하시고
정녕 사랑으로 하여 고통받지 않게 하소서
밤을 새워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이므로
미움, 시기, 욕심, 절망, 분노와 같은
좋지 않은 생각들은 잠시 잊게 하시고
희망, 따뜻함, 파아란 하늘과 같은
마음에 와 닿는 단어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오래전에 잊혀진 슬픔을 위해서도
가끔씩은 목젖이 아프도록 울게 하시고
질감좋은 색조로 새벽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마른들판을 건너 온 겨울바람에도
향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쓸쓸한 등을 보이며 흐르는 저녁강이
깊은 바다와도 만나게 하소서
따뜻한 한 그릇의 시와 포옹하며 뒹굴게 하시고
사랑하는 여인이 단단한 꽃으로 그 자리에 오래 피어있게 하소서
이름 모를 늙은가수의 느끼한 랩송마저도 사랑하게 하시고
함께 청청한 목소리로 노래하게 하소서
얇은 월급봉투라도 좋으니 그로 하여 기죽지 않게 하시고
작은 베품으로 인하여 오히려 빛이 나지 않도록 하소서
무엇보다 마음살에 돋아나는 욕심의 잔을 비우게 하소서
주님 !
~~~~~~~~~~~~~~~~~~~~
진눈깨비
그러지 않아도 미끄러운 세상위로
오늘은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흩내린다
겨울숲 가지사이로
실밥 많은 세월 한 줌이 풀리고 있다
잘난 어깨를 흔들면서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 앉는다
마른 그림자떼가 하강한다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흰 속살을 내보인다
그러나 그 누가 알기나 하리
눈발이 조용조용 발끝 치켜드는 이유를
내릴수록 가벼워지는 생각들을
해질 무렵
지상의 얕은 곳을 찾아내리던
눈들이 멎었지만
바람은 여전하고
각진 풍경은 그대로이다
어디에도 쌓인 눈은 보이지 않는다
흰 속살 오래 내보이기에는
욕망의 웅덩이가 너무 깊고
시린 가슴 부리기에는
너무 젖은 세상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든 오늘은 몹시 추운 날이다
미끌어지지 않도록 부디 조심하거라
가벼워진 생각들이여
지상의 낮은 골목들이여.
~~~~~~~~~~~~~~~~~~~~
물의 고백
나의 사랑은
소백의 능선 위에
순백의 눈꽃으로 보송보송 피어날 것이네
그리하여 따뜻한 봄날이 오면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되었다가
어두운 땅속에도 기어히 길을 내는
옹골진 샘물이 될 것이네
때로는 도도한 강물이 되어
세상 속으로 감히 흐를 것이네
아, 참말로 지독한 사랑일 것이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서툰 부름으로
너를 기다리는 동안
햇살 성긴 그늘은
퍼어렇게 얼병이 들고
절망의 세포들이 부유하도록
너는 오지 않는다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에는
바람 한점 없는 땅거미가 내리고
허술한 어둠 속을 배회하다가
욕망이 살포하는
원형질의 목소리를 길어올린다
희고운 슬픔들과 불화한다
닿을 수 없는 거리
저마다의 가슴으로 부표들만 지우고 있다
너는 나를 탕진한다.
~~~~~~~~~~~~~~~~~~~~
때 늦은 편지
어느 날 한쪽 귀퉁이를 잃어버린
편지봉투처럼
우리들의 사랑 또한 남루해질 것이나
내 삶에 걸리던 너의 무게
생각하면 할수록
슬픔의 알갱이들 무수히 흩어져
오래 단단해져 간다
오래 집요하다
계절이 깊을수록
나의 목소리는
늘 같은 자리를 맴돌고
무수한 실뿌리들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
상처나도 피흘리지 않을
투명한 거푸집을 짓는다
어쩌면 단 한 벌뿐인 사랑을 위하여
끝내 낮추지 못한 나의 목소리
창밖을 허무는 바람소리가
거칠수록
깁다 만 생각들
몸을 닫지 못한다
너는 나의 감옥이다.
~~~~~~~~~~~~~~~~~~~~
가을 기도
기다림이게 하소서
오직 한뜻 기다림이게 하소서
갈빛 쏟아지는 언덕너머
간절한 바램담아
내 물 젖은 눈빛일 것만 같은
너를 부른다
한바램이게 하소서
나의 기도는
천야만야 무심한 밤별로 뜨고
내 육신의 언어는
풀잎처럼 누웠는데
정녕 인연으로는 닿을 수 없어
헐거운 모음으로 기진맥진하던 사랑아
외돌아 서던 너의 발끝에
가을 볕낱만 무성하도록
무심하도록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너의 이름 석자에 나의 노래는
더 이상 분주하지 않는다.
~~~~~~~~~~~~~~~~~~~~
너에게
너를 기다리는 동안
입술이 부르트도록
나는 같은 목소리로만 중얼거린다
한소리쯤 던져두면
그것이 나의 짙푸른 사랑이라는 걸
절망 깊은 날이면
알 수 있을까
너를 잊지 않기 위하여
약한 시력에 걸리던 영혼의 무게
두 눈이 짓무르도록
나는 너를 닮아간다
문밖에서 서성이는
분별없는
생·각·들
감당할 수 없는 거리에 너는 서 있다.
~~~~~~~~~~~~~~~~~~~~
인연 3
비워야 할 것 기꺼이 비워내는
상실의 언덕에 서면
헐거운 시간들이
휘청휘청
위태로운 전생을 건너고 있다
핏살깊은 화인火印으로
낯선 추위는
저리 번지는데
낙엽지는 세월
낙엽지는 마음
모든 것은 그저 지나는 것일 뿐
계절 한 귀퉁이에서
오래 갈무리한 바램으로
눈에 닿는 모든 것마다
서있는 자리에서 깊어지고
헐거운 인연은
건너편 줄에 덩그러니 매여 있다.
~~~~~~~~~~~~~~~~~~~~
너, 그리운
때로 너는 너무 맑고
너무 빛부신 이름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바람소리에도
너의 체취 스민듯 하여
귀기울이는 세월
언제나 너는 내 부름이었고 목마름이었다
해가림도 바람막이도 없는
이 황량한 결핍 위에서
너의 그림자에 한 발을 매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유혹인지
너는 정녕 알지 못하리라
오늘도 빛 바랜 세월 몇 장을 꺼내들고
좋아하는 무늬로만
온 세상을 새기고 싶어
온 천지를 채우고 싶어
저문 햇살 속으로 팔을 뻗는다
시간의 그물을 뒤져 너를 소묘한다
그러나 나의 그리움이 지독할수록
너는 늘 부재중이고
나의 노래가 오래 머물수록
너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너는 너무 길다
너에게 끝내 배달할 수 없다
단단하지 못한 속내로 끝내
나는 단지 슬픔 몇 장만을 살 수 있었다
산다는 것은 늘 그러한 것이다
희미해진 여러 갈래 길에서
가질수록 가벼워지는 것이다.
~~~~~~~~~~~~~~~~~~~~~
희망이 있는 아침
벌판이 되어도 외롭지 않을
저마다의 빛깔로
제각기의 품새로
흔들림 없는 노래를 부르라
작지만 야무진 사랑
오래 묵힌 꿈길하나 가슴에 묻고
조금은 품이 넉넉한 차림새로
숨결 푸르도록 기도하라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알기에
가슴에 남은 아쉬움의 몇 낱 비늘
다독여 잠재우지 못하는
허기와 갈증쯤
이 아침에 버릴 것은 버리라
유난히 고운 음자리표로
갓 구워낸 새벽이 뽀시시 열리고
그래, 아침이다
오래 참은 햇살이
동녘하늘 솟을대문을 넘고 있다.
빛고운 추억들이
삼동 끝의 해토解土
푸른 날것과 입맞춤하고 있다.
~~~~~~~~~~~~~~~~~~~~
그대가 그립다
그대가 보고 싶다
한없이 보고 싶다
마음은 지척인데
몸은 천리길
가슴엔 홀로 낙엽지고
그대가 그립다
너무 그립다.
~~~~~~~~~~~~~~~~~~~~
가을 들판에 이르러
풀잎 같은 목숨둘레에
엷은 웃음을
기대고 서서
너를 바라봄으로 살아간다
동구밖 내리는 어둔 밤길을 지나
여명이 밝을 무렵쯤
빛부신 사랑
비원의 손길 모으며
나는 너를 버티며 애늙어간다
언제일까
정녕 사랑함으로 남겨진
가을 들판에 이르러
목젖이 아프도록 떠돌던 이름 하나
불현듯 불어오는 바람
얼큰한 계절은
함께 바라보던 수평선을 밟으며
아득이 휘어지고 있는데.
~~~~~~~~~~~~~~~~~~~~
어느날 문득
내 서툰 부름은
햇살 성긴 그늘에
퍼어렇게 얼병이 들고
보고 싶다
그저 보고싶다는 말 외에는
이제 하고픈 말 없어
멀리 가까운 듯
실뿌리까지 눈틔워 둔 기다림으로
문득
은빛 파닥이는 그대 향하여
다가설 수 있다면
어느날 문득
비어둔 계절모퉁이에
잠시 머무를 수 있다면
잘 익은 가을은
두런두런 창밖으로 내리고
오늘은 눈시린 바람이
모로 불어도 좋은 날이다
그런 날이다.
~~~~~~~~~~~~~~~~~~~~
업(業)
숲이 되었다
나무로 자라서
수풀로 모였다가
비로소 숲이 되었다
하여, 오래 화답하는 여름은 없다
끝내, 단풍이 들겠구나.
~~~~~~~~~~~~~~~~~~~~~
인연 1
서로 잊으려
만나려 했네
세상은
그렇게 잊으며 잊혀지며
또 그렇게 살아지는 것을
꽃잎하나 피우지 못해
쓰러진 하늘 틈 새
서두르지 않은 인연으로
성긴 노래는 그믐밤 견우직녀로 내걸리고
만남과 만남의 기인 터널
그 아쉬움의 오작교
나는 이름 없는 들꽃 그 향기를
차마 잊으려 하네.
~~~~~~~~~~~~~~~~~~~~
어떤 이유
해지면 별로 뜨리라
별지면 달로 차리라
뜨는 별마저 잊는 밤이면
차는 달빛조차 이우는 밤이면
그대, 내 마음속
한줄기 꽃대궁으로 피어나
쪽빛 그리움이 되어라
이제, 떠야할 별조차 아득한데
차 오르는 달빛조차 잊혀지는데
달이 없어도 별은 뜨리라
별이 없어도 달빛은 차리라
사랑한 탓으로
그대 사랑한 탓으로.
~~~~~~~~~~~~~~~~~~~~
나의 사랑에 대하여
미움도
그리움도
눈 시린 원색
정녕
녹아서야 없어질까
엇박자
외사랑아.
~~~~~~~~~~~~~~~~~~~~
벽
그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목까지 차오르는 허기를 버티고 서서
다가서면 다가설 듯
이것이다 싶으면 바램은 애매해지고
지평너머 하늘이 보일까
발돋움 하던 날
고운 미소만으로는
굳은살로 박힌 마음을 허물 수 없어
처음부터 우리들의 영토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자갈밭, 황토언덕입니다
하냥 고운 계절은
먼지 켜켜이 더께쓴 책장 위를
아쉬움인 듯 기울거리고
밟으면 밟을수록
빙판이 되는 가슴녘
정체를 알 수 없는 허허로움은
눅진한 일상을
파아란 녹같은
파르르, 하늘에 걸어두고 있습니다.
~~~~~~~~~~~~~~~~~~~~
창 밖 세상에는 비가 내리는데
쉽게 사랑하였으나
쉬이 잊는 법을 배우지 못해
알음의 죗값은
나를 옭아매고
그대 허락치 않는 땅
그 유배된 도시 위를
지금 창 밖 세상에는 비가 내리는데
나는 장승처럼 비를 맞고 서서
사립 밖에 걸리던 달빛을
오래 버티고 있다
신열 내리는 법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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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에서
계절 비끼는 비탈에서
부족하기만 하여 죄스러운
꿈 한 자락을 접는다
짧아서 더욱 고운 노래여
부대낌의 숨소리만 가득한 이 땅에서
나 또한 목숨 앓으며 살아가나니
이저리도 못하는 삶의 기로에
파랗게 돋아만 가는 시린 손금은
모양지을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뒤돌아보며 웃기에는
삶의 그늘이 조금 우울할지라도
촛불이 꺼지기 전 한참은
그 빛부심으로 기뻐하라
잊고도 못 잊어 뼈앓이로
빈 잠 지새우는
허망한 욕기 그뿐이어니
이제 저만치 비켜서려함도
변함없는 나의 바라봄이었음에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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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바다로 간다
퍼 올린 날보다
퍼 올려야 할 날들이 많기에
헐거워진 시간을 지나
비로소 뿌리는
가슴에 묻어놓은 樹液들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속살 내보이지 못하는 푸른 세월을 건너
오래 뜨겁다
꽃빛 이슬 내린다
터무니없이 귀를 밟아대던
말매미의 울음소리에 더 이상 주눅들지 않는다
슬금슬금 기어오르던
가슴언저리의 불안을 매만지며
오래 전에 가버린 사랑을 꿈꾸듯
그렇게 뻐근한 계절이 가고
정녕 그런 것이다
마른 텃밭을 가꾸듯
오래 남은 날들의 몫으로 발돋음하며
자유롭게 날아올라
보다 단단한 시간을 위하여
이제 우리는 함께 바다로 간다
江心 깊이 흐르는 초록강물이 된다
언젠가 저문 기억들 흘러 넘쳐
폭풍아래서도 하늘 돛 펄럭이리라 믿기에
한 뼘 두레박으로 맑은 물길 퍼 올려
비좁고 살집 없는 갈비뼈 근처일망정
따스한 꽃들 무더기로 피어나
싱그러운 사연들 우리에게 조용히 길을 묻는다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을
차진 햇살이 된다.
- 2001.9월, 금융감독원 사보「금감원이야기」 창간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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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사랑하는 이여
안개자욱한 그리움의 비탈에서
그대 나를 듣는가
타고나서 재가 되는 것이
어디 사랑뿐이랴만
가슴이랑 들이찬 강물로
나의 하늘은 밤새도록 무너지는데
그리운 이여
갈숲 헤짚는 바람 한 줌으로
때로는 저문강 빈허리에
무반주 소나타로 흐르던 이여
바람이 불면 불수록
가쁜 숨 아슬하도록 다가오는
가을빛 사랑이 보이지 않는가
사랑하는 이여
하나를 가진다는 것은
또 하나의 절망과도 만나는 것이지
물살같은 외로움이 어둠으로 고여
이 계절을 절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데
그리운 이여
캄캄한 밤
흔들리는 바람끝에서
그대가 나를 웃는가 내 그대를 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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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거울속에서
누군가 히쭉 웃고 있다
낯선 사내가
세상 틈바구니에서
무엇인가를 엿보고 있다
버리고 나면
내가 나일 수 있을까
겨워하던 날
벽에 걸린
나를 보았다
웃는 듯 우는 듯
쓸쓸한 나를 보았다
황당하게 늙어버린 거무튀튀한 얼굴
그래, 오래 잊어버린 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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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현근 프로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詩 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운영자
「詩 마을」 동인
월간「문학세계」운영위원, 심사위원
월간「아름다운 사람들」편집위원
시집으로「수채화로 사는 날」,「안부가 그리운 날」,
시마을 작품선집 「꽃 피어야 하는 이유」,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