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광복군 중대장으로 복무하기 전 단 하루도 일본군 신분이었던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식한 노빠들이 그가 일본군 장교였다는 픽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국 군관을 일본군 장교와 동일시하는 것은 정치외교학적 거짓이요, 역사학적 왜곡이요, 군대 행정에 대한 무지입니다. 노빠들은 이런 거짓과 왜곡과 무지가 애국인 줄로 착각하기에 박정희가 복무한 군대의 국적에 대한 논란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 분의 노빠 논객 야한남자님 그리고 거친들판님과 제가 한토마 "박정희와 박근혜" 방에서 2월 9일에 한 토론은 광복군 중대장으로 복무하기 전의 박정희 소위의 소속 국적에 관하여 무엇이 주요 이슈인지을 잘 보여주는 글이기에 여기 소개합니다. (이 토론글에서 저의 필명은 시사논객입니다.)
야한남자(namjaro) 만주국이 독립국가라고 보긴 힘듭니다. 일부 일본과 친한 몇몇나라만 국가로 어쩔 수 없이 인정해준 괴뢰국이었습니다.
시사논객(sionvoice) 일본군이 만주국 군인이 되었다니 무슨 말인가요? 박정희는 처음부터 만주군 군관일 뿐입니다. 군대행정상 그리고 군편제상 일본군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만주국군은 관동군이 아닙니다. 군인에게도 국적이 있습니다. 관동군과 만주국군은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관동국군은 주둔군입니다. 그러나 만주국군은 만주국 자국 군대입니다. 국적으로도, 행정으로도, 편제로도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만주국이 100% 독립국인가는 보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는 부의는 2살에 황제가 되어 6살에 쿠데타 세력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 시대에 중국도 우익과 좌익의 싸움이 심하였습니다. 중국이 모택동 공산군의 침략으로 시달리는 틈에 관동군이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의가 만주국을 세우는데 일본이 돕습니다. 그러나 후에 일본의 내정 간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통성입니다.
1945년 8월 러시아의 침략으로 만주국 왕정이 와해되고, 1949년 모택동의 공산당 군대에 의해 중국이 완전히 공산화되고 1950년 부의가 정치범으로 중국 공산당 군대에 체포되어 죄수복을 입고 감옥으로 연행되던 때는 6살에 부의 황제가 손문의 신해혁명 세력에 의해 폐위된지 40년도 더 지난 때임에도 중국인들이 역이나 거리에서 그글 알아보고 몰려와 넙죽 업드려 절하였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부 시각에서 부의는 친일 전범이었습니다. 요즘 노빠들의 용어로 과거사 청산 대상이요, 친일 청산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인민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중국인의 황제는 부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의가 2살 때 황제에 즉위하여 6살 때 폐위될 때까지 4년간 다스렸던 궁전이 외국인을 위한 관광명소입니다. 아마 이제는 중국도 청나라의 정통성을 합법적으로 이어받았다는 설명이 필요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가의 시각에서 중국의 정통성은 모택동 도둑놈에게 있을까요? 아니면 부의 황제에게 있을까요? 이것은 어려운 질문입니다. 만약 친일파 노빠들이
야한남자(namjaro) 님은 우리나라 사람맞습니까? 만주국은 일본의 식민정책에 의해 세워진 이름뿐인 나라였고 그래서, 일본관동군이 만주국군인이 되었던겁니다. 머가 그래 정통성 어쩌구 따지고 자시고합니까? 그래서 만주국이 망했을때 만주국에 있던 군인들이 다시 일본군이 된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그게 국가였습니까?
시사논객(sionvoice) 모택동의 쿠데타는 성공하였으니깐 중국의 정통성은 모택동에게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바로 5.16혁명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1940년대 상황에서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청나라-만주국은 약소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국민이 그를 황제로 인정하였기에 정통성은 분명하였습니다. 표면상 완전 독립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주국은 러시아와 중국 공산당 등 주변 공산주의 국가들의 침략을 홀로 막을 힘이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외교적으로 일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내용상 완전 독립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국가예산 90%를 외국 원조에 의존해야 했던 때에는 내용상 완전 독립이라고 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박정희 시대에 완전 자립 경제를 실현하였기에 그때부터 실질적인 독립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상 독립국이었던 시절에도 독립국은 독립국이었습니다.
거친들판(shalomki) 만주국은 일본이 세운 괴뢰 정권이 아니란 소리? 그 증거가 뭐요? 거친들판(shalomki) 누가 세운 독립국입니까? 만주국은 일본의 병참기지로서 만주에 있는 한국 독립국을 토벌하고 중국을 통해서 아시아로 나가려고 일본이 세운 괴뢰정권이지요. 또한 군관학교를 세워서 만주지역을 담당할 일본의 충실한 군인들을 양성했답니다. 그곳에 박정희가 들어가서 독립군을 몰아내는데 앞장 서서 긴칼 옆에 차고 일본인임을 자랑한 곳이지요.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것이 중국을 위한 것입니까?
시사논객(sionvoice) 야한남자님, 중국에 주둔하였던 일본관동군과 만주국군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만주국군은 만주국인들로 구성된 병력이었습니다. 국적상, 군대행정상, 편제상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만주국군은 일본군의 작전 지시를 받지 않았습니다.
거친들판(shalomki) 박정희는 청와대에서도 일본군복을 즐겨입던 일본군입니다. 만주는 관동군의 산하에서 조정된 괴리정권이지요.
야한남자(namjaro) 만주국 일제의 허수아비국가였고 그래서 국가라고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만주국의 1등국민이 일본인이 었다는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일제의 정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자기나라 국민은 최하층 3등국민이 되고 일본인이 1등국민이란 등식이 성립이 되겠어요? 여보세요. 시사논객님 만주국군은 일제관동군이 이름만 바꾼 군대였습니다. 관동군 사령관이 만주국을 사실상 통치했구요... 야한남자(namjaro) 일본관동군이 갑자기 만주국군이 되었는데... 일본군이 왜 가만히 있었을까...
시사논객(sionvoice)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것은 중국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거래였습니다. 부의 황제가 너무 순진해서 거래 댓가가 무엇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아니, 부의 황제는 정치가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선택에 따라서는 모택동으로부터 다시 청나라를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대륙에 진출할 명분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은 상술 외교를 한 것인데, 처음에 일본이 잘해 주니깐 부의가 일본 제의를 선뜻 받아주었습니다.
거친들판(shalomki) 그러니까 일본의 식민지는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것이란 뜻이군요.....만주국은 일본에게서 완전히 독립된 국가라면 왜 일본이 좌지 우지 했을까?
시사논객(sionvoice) 야한남자님, 국군 창군을 위해서도 처음에는 외국 군대의 도움을 받아야 했듯이 만주국 창군에 일본관동군 군사고문관으로 도왔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국적과 군대행정상 소속과 편제는 전혀 다릅니다. 박정희가 근무하였던 부대에서도 사병들도 상급 지휘관들도 모두 만주인들이었습니다.
거친들판(shalomki) 영화 "마지막 황제"를 한번 보시고 그렇게 말하시지요.
맨날 같은 말만 하고 증거를 말해도 증거를 말하라고 하는 모습 맹신교도의모습이지요.
시사논객(sionvoice) 거친들판님, 그것은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청나라 황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택동 공산군 군대와 전쟁을 치루는 시대 상황에서는 달리 청나라 황실을 도와줄 우방이 없었습니다. 그게 당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과의 거래도 유쾌한 일은 못되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부의가 실수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의 처신에 따라 중국 역사의 미래가 달라지는데,
야한남자(namjaro) 만주인이긴했죠. 문제는 출신성분이 일본이란겁니다. 아셧어요? 출신성분이 일본이냐 조선이냐 중국인이냐에 따라서 분리정책을 썼습니다. 조선에 있던 박정희가 어떻게 만주 군관학교로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어디 설명해보시죠? 만주군관학교는 다른나라사람 군대 훈련시켜주는 나라였습니까? 야한남자(namjaro) 거참 말도 안돼는 변명그만하세요. 어거지도 정도것하시라고요.
시사논객(sionvoice) 쟝개석 총통의 국민당 편에 섰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만약 쟝개석 총통의 국민당과 부의 황제가 조금만 더 가까왔더라면 중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쟝학량 장군이 이끌던 본래의 만주국군은 처음에는 쟝개석 총통의 중화민국을 지지하다가 1936년에 모택동의 공산당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이것이 만주국이 그때 국군을 새로 창군하여야 했넌 이유이며 박정희는 1940년에 입학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2기생이었습니다.)
거친들판(shalomki) 중국인이 청나라를 보호하고 싶었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무엇이지요? 장개석이 국민당이 아니라고요? 왠 이상한 소리. 장개석은 국민당이엇는데.....장개석의 국민당이 모택동의 공산당과 싸웠는데 뭔 소리를 하는 것인지? 그렇게 역사를 바꾼다고 바꾸어지나? 박정희가 쿠데타를 안했다면 한국의 역사는 달라지지요. 제대로 경제 개발하고 민주화도 되고. 그것을 왜 못 볼까?
시사논객(sionvoice) 야한남자님, 여러 말 하실 필요 없어요. 관동군과 만주국군은 서로 외국 군대의 관계였습니다. 더 이상 여러 말이 필요없습니다. 외교 관계와 국적은 별개의 것입니다. 부의 황제 국적이 만주국이었듯이 박정희의 군대 행정상 소속도 만주국 군대였습니다.
* 지금 한국전쟁 다큐멘터리 동영상 을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무지한 채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노빠들은 아직 이 영화 동영상 상영 중일 때 빨리 보셔요.
http://cafe.daum.net/issue21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