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폭발하는 중서부 시장을 가다
"향후 30년은 내륙 개방시대"베이징·상하이 능가하는 소비력 고급 가전·의류 매장마다'싹쓸이'
家電下鄕·汽車下鄕·以舊換新…중국 정부서 강력한 소비 촉진책 지방 소도시까지도 자동차 넘쳐
"우리 고객들 중에는 큰손이 많아요. 한 번은 어떤 손님이 가죽털옷과 밍크코트, 치마 등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더니 다 싸 달라는 거예요. 계산해보니 6만 위안(약 1000만원)이 나왔더군요. 또 어떤 손님은 한꺼번에 42벌의 옷을 산 적이 있어요. 직접 들고 갈 수가 없어 우리가 포장에서 배달해줬지요."중국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시 쭝푸루(總府路)에 있는 왕푸징(王府井)백화점의 유페이(遊菲) 영업담당 경리는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쓰촨성 소비자들의 씀씀이를 소개한다. "청두 사람들은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 사람들과 소비 관념이 달라요. 연해 대도시는 생활비가 많이 들어 돈 쓰기가 겁나지만, 이곳은 생활비가 싸서 여성들이 입고 꾸미는 데 관심이 많지요. 1만위안을 벌면 베이징에서는 2000위안밖에 못쓰고, 이곳에선 8000위안을 쓸 수 있지요. 나도 월급 받는 것 몽땅 우리 백화점에 털어넣어요. 호호호."
- ▲ 충칭시 통량현의 한 백화점 휴대폰 매장에서 농부 차림의 주민이 대나무 바구니를 등에 진 채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충칭=지해범 기자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그녀는 작년 12월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스키 여행을 다녀왔다며 "새로 생긴 스키장에 눈이 많아 너무나 좋았다"고 활짝 웃었다. 중국 내륙에 자리 잡은 쓰촨성은 2008년 5월 지진으로 많은 희생자가 났던 곳. 하지만 지진 복구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도청 소재지인 청두는 금융위기 이전과 다름없는 경제 활기와 소비 열기를 보여주고 있다. 시설 면에서 서울 여느 백화점 못지않은 왕푸징백화점 2층으로 올라가자 조르지오 아르마니, CK, 시실리, 망고 등 세계적 브랜드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패션기업 보끄레가 내놓은 '온앤온(On&On)'과 '더블유닷(W.)' '스테이지89'가 이들과 경쟁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3시쯤 온앤온 매장으로 들어서자 30~40대 여성 6~7명이 옷을 고르고 있다. 한 고객은 "TV 드라마를 통해 한국 여성들의 세련된 모습을 보고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 매장의 지난달 매출은 280만위안(약 4억7500만원)으로 이 백화점 전체 의류매장 중 1위를 차지했다. 한은숙(韓恩淑) 보끄레 중국 동사장은 "쓰촨성의 소비력은 연해 대도시를 앞선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상하이에 매장을 낸 것은 간판 거는 것이 목적이고, 청두 매장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다. 돈 벌려면 중국 내륙으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내 160개 보끄레 매장 중 청두 지역의 매장당 판매액이 전국 1위라는 것이다.
■내수 폭발의 현장
중국 중서부 2·3급 대도시가 '소비의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Weekly BIZ가 지난 1월 18~23일 충칭(重慶)·청두·우한(武漢)·창사(長沙) 등 4개 내륙 도시를 돌며 50여명의 기업체 관계자 및 판매현장 담당자들을 만나본 결과, 중국 내륙시장은 '아직 익지 않은 과일'이 아니라, '한창 익고 있는 과일'이었다. 이들 도시는 시장 포화로 판매 증가율이 둔화된 베이징·상하이·광저우(廣州) 등 연해 1급 도시와 달리, 가전·자동차·의류·화장품 등 고가 소비재 시장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높은 판매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황치판(黃奇帆) 충칭 시장은 "지난 30년이 연해지역의 개방시대였다면, 향후 30년은 내륙지역의 개방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 관계자들 중에는 "이들 도시를 2·3급 도시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중서부 내륙의 각 성(省)을 개별 국가로 보고 공략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LG전자 청두법인 윤영조 관리부장)도 있다.
청두 시내의 가전 양판점 궈메이(國美) 진화점(金華店). 전 세계 가전업체들이 불꽃 튀는 판매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이곳 LG전자 매장의 신성철(申聲澈) 영업부장은 "1~2년 전부터 이곳에서 판매되는 냉장고 가운데 양문형 냉장고의 판매가 늘어나 지금은 전체의 70%를 차지한다"며 "이곳 소비자들의 고급 소비성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 청두시 왕푸징 백화점‘온앤온’매장. 아내가 쇼핑하는 동안 한 남성이 기다리는 모습에서‘쓰촨성 여성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청두=지해범 기자
1999~2000년이 제1차 가전제품 붐이었다면, 2008년 지진 이후부터는 2차 붐이 일고 있다는 설명이다. 구식 제품을 신형으로 교체하는 수요가 많다. 예를 들어 구형 냉장고를 양문형으로, 세탁기는 드럼형으로 바꾼다. 가전영업 주임인 뤄웨(羅越)는 "TV는 올 초 47~55인치짜리 고급 LCD TV가 가장 많이 나갔는데, 한때 공급이 모자라 미리 돈을 내고 1~2주일 뒤 물건을 받아가는 '푸마이(負賣·예약판매)' 판매까지 했다"고 말했다.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시 쭝산따다오(中山大道). 서울로 치면 명동과 같이 큰 상권이 형성된 곳이다. 지난 19일 오후 7시쯤 이곳 다양(大洋)백화점 1층 애플 매장을 찾았을 때, 작년 10월 출시한 아이폰과 맥북(노트북)을 구경하려는 젊은이들로 교실 절반 크기만한 매장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격은 이동통신업체 보조금이 있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싸다. 아이폰 32GB가 6999위안(약 120만원). 매장 직원은 "다른 휴대전화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 일주일에 10개 이상 팔린다"고 했다.
중서부 지역의 자동차 판매도 급성장하는 추세. 지난 21일 오전 청두에서 만난 페이융강(費永剛) 셴펑(先鋒)그룹 동사장은 다부진 체격의 40대 기업가. 칭화대(淸華大) 기계공학과 출신인 그는 현대·포드·혼다 등의 자동차 판매장을 여럿 가지고 있고 조명기기회사와 택시회사도 운영한다. 그의 판매장을 찾았을 때 한 고객이 현대차 싼타페의 차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페이 사장은 "이들 제품은 베이징현대에서는 생산하지 않는 제품들로, 한국에서 관세와 부가세 등을 물고 들여오면 가격이 50~100% 올라가지만 워낙 잘 팔려서 현재 공급이 달린다"고 말했다.
청두의 소비력은 이곳의 폴크스바겐 수입차 판매량이 2년 연속 전국 1위를 차지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인구 1000명당 승용차 보유량에서도 청두는 전국 3위이다.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농자러(農家樂·주말 농촌 자가용 여행)'가 시작된 곳도 쓰촨성이라고 한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1364만대로 미국 시장을 추월해 세계 1위가 됐다. 올해는 15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호황의 최대 수혜자는 베이징현대차로, 엘란트라 웨둥(悅動) 등이 히트를 치면서 지난해 판매가 127%나 늘어났다. 흥미로운 현상은 지난 2004년 베이징현대차의 2급 도시 판매 비중이 26.5%였으나, 2007년 36.5%로 늘어났다는 점. 이 비중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서부 지역 소비시장이 팽창하는 데는 크게 3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첫째는 정부의 내수진작 정책, 둘째는 중서부 대개발에 따른 SOC 건설, 셋째는 쓰촨성 지진 복구 작업이다.
2008년 말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외 수출이 급감하자 중국 정부는 '수출 확대'에서 '내수 부양'으로 경제 성장 기조를 선회했다. 이와 함께 향후 10년간 4조위안(680조원)의 경기부양 자금을 투입키로 하는 한편, '가전하향(家電下鄕)' '기차하향(汽車下鄕)' '이구환신(以舊換新)' 등의 내수진작책을 도입했다. ◀표
창사시 우이(五一)광장에 위치한 가전제품 전문 유통업체 '수닝전기'는 이 정책이 집행되는 현장의 하나이다. 지난 22일 3층 TV 매장에 들어서자 화려한 색채를 뿜어내는 대형 LCD·LED TV 위에 '국가가전이구환신보첩(國家家電以�V換新補貼) 10%'라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낡고 오래된 가전제품을 가져오면 10% 할인해 준다는 의미다. 진열대 바로 아래에는 20년은 족히 돼 보이는 구형 브라운관 TV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소비자 두 사람이 다녀갔다는 의미다. 중국 가전브랜드인 TCL 매장의 뤼징(呂靜) 매니저는 "정부의 가전제품 소비 지원책으로 TV 매출이 작년 9월 이후 40~50%씩 증가했다"며 "농촌지역 소비자들에게 저가의 가전제품을 13% 할인해 보급하는 '가전하향' 정책 대상 제품도 작년 초 10여대 팔리던 것이 최근에는 30대로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 ▲ 창사의 핑허탕 백화점 1층에는 해외 고급 브랜드 화장품 매장이 가득 차 있었다. /창사=홍원상 기자
가전 브랜드들은 가전하향 시장을 겨냥해 별도의 저가 제품을 내놓고 있다. 중국 현지 시장조사업체인 메타브랜딩에 따르면 가전하향용 가전 제품이 작년 11월 말까지 2788만개(508억위안)가 팔렸다.
배기량 1300㏄ 이하 자동차 가격의 10%(최대 5000위안)를 깎아주는 '기차하향' 정책도 중부 내륙지역의 자동차 내수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중국의 푸톈(福田)자동차 창사영업소 마오웨빈(毛岳濱) 총괄 매니저는 "작년 1월부터 자동차 구매에 혜택을 주는 정책들이 실시되면서 2008년 한해 200여대 팔리던 것이 작년에는 500대 이상으로 늘었다"며 "올해는 600대 판매를 목표로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충칭시에서 50㎞가량 떨어진 퉁량현(銅梁縣)을 찾았을 때 '기차하향'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구 81만명의 현급 도시의 도로 양편이 자동차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곳 진룽(金龍)공업구에서 만난 권오철(權五哲) 웨스터엘리베이터사장은 "2006년 10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도로에 차가 거의 없었는데, 3년여 만에 거리에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통량현의 양용(揚勇) 초상국장은 "2009년 1~10월 사이 신규 등록 차량이 2200대에 달한다"고 했다. 중국의 자가용 붐이 현급 지방도시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서부 대개발을 위한 SOC 투자와 쓰촨지진 복구 자금이 쏟아지면서 지금 장강(長江) 중상류 지역의 각 성들은 어디를 가나 공사장이다. 도로와 교량, 철도 등이 속속 건설되어 웬만한 지역은 자동차로 3~4시간이면 도착한다. 교통망은 도시와 낙후 지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발전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특히 오는 2020년경 완성될 '쓰쭝쓰헝(四縱四橫) 고속철도(CRH)' 망은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말 완공된 광저우~우한간 고속철은 10시간 이상 걸리던 거리를 3시간으로 단축시켰다. 시안(西安)~란저우(蘭州), 난징(南京)~우한, 타이위안(太原)~스자좡(石家庄), 충칭~청두, 칭다오(靑島)~지난(濟南)간 고속철이 현재 건설 중이다.
KOTRA는 최근 경제성장률과 소득수준, 교통망, 시장 경쟁 정도 등을 고려해 국내 기업 진출이 유망한 2·3급 도시로 충칭, 선전, 톈진, 우한, 항저우, 창사, 지난, 하얼빈, 정저우, 난닝 등을 꼽았다.
'중서부 대개발'의 거점 도시로 육성되고 있는 충칭은 삼협댐 건설 이후 장강의 수위 상승으로 1개이던 컨테이너 항구(集箱港)가 3개로 늘어났다. 주변 공단에서 생산된 화공, 제약, 건자재 등이 이곳 항구에서 선적돼 상하이 앞바다를 거쳐 전세계로 수출된다. 전체 인구 3500만 중 구매력이 높은 도시 인구가 1100만명에 달하며, 이 중 10%(110만)의 부유층은 중국 어느 도시 부자 못지않게 잘산다. 충칭에 진출한 SG테크 사공일 대표는 "충칭의 부자들 중 겨울철에 하이난섬(海南島)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은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서너 달을 쉬다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세계 기업들의 각축장
중부 내륙의 2·3급 도시는 이미 글로벌 업체들의 각축장이다. 일본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인 시세이도는 향후 1~2년 안에 중서부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판매 점포를 3500개에서 4500개로 늘리기로 했다. 세계적인 유통업체인 까르푸도 현재 우한시에만 5개 매장을 갖고 있는데도 올해 3~4개의 매장을 추가로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유아용품업체 피죤은 '부유층이 많은 연해부에서 지위를 확립한 뒤 내륙으로 진출한다'는 기존 전략을 180도 수정해 2007년부터 내륙지역의 성도(省都·성의 수도)와 주변 도시로 진출하는 클러스터화 전략을 펴고 있다. 1급 도시에서 브랜드력이 강한 구미 기업과 정면 승부를 벌였다 실패했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다. 피죤은 현재 유아용품 전문점 400여개와 백화점 80여개를 비롯, 인구 100만 이상 도시에 7000여개의 판매망을 구축했다.
국내 가전업체 관계자는 "현지 가전업체들이 낮은 가격과 기술력 향상을 무기로 빠르게 추격해 오고 있어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상해 KOTRA 우한KBC 센터장은 "중부 내륙 도시의 발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데다 SOC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해외 자본의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며 "아직은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이고 베이징·상하이에 비해 경쟁이 덜 치열한 만큼 투자 의향이 있는 기업이라면 발 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