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로 기쁨
성경 말씀: 이사야 35장; 빌립보서 4:4-9
요약
세상은 조건적이니, 세상에 기쁨은 만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조건에 의한 만족의 낙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개인들로 표현되는 기쁨은 만족의 낙입니다. 개인들은 세상에서 조건적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에 기쁨은 함께로 표현됩니다. 기쁨은 함께로부터 솟아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기쁨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함께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로 기뻐합니다.
만족이 아닌 기쁨
사람들은 기쁨에 대해 설명을 부연합니다. 설명은 이유를 제시하니, 그들은 기쁨에 대해 이유를 보이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이유는 기쁨에 대해서가 아닌 만족에 대해서입니다. 조건적으로 제시된 이유는 만족 상태의 서술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쁨을 만족으로 설명합니다. 세상 조건에 처해진 그들에게, 그들에 의해 준비되는 조건은 그들 삶의 요인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갖추어진 조건의 상태를 의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쁨은 채워진 만족의 상태에 부연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기쁘지 않습니다.
기쁨이 만족으로 의식되니, 삶에 기쁨이 없다고 말해집니다. 그렇지만 만족으로 누리는 것은 기쁨이 아닌 낙입니다. 낙은 처한 상태를 즐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늘 만족되면, 그는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기뻐한다고 말해질 수 없습니다.
만족으로 오는 낙이 아닌 기쁨은 개인의 성취에 수반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의한 그들의 성취로 기뻐합니다. 그들은 주어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 고초로 이룬 결과에 대해 기쁨의 환호를 보냅니다. 기대를 넘는 성취를 향한 길은 기쁨의 길입니다.
극복으로 오는 기쁨은 만족의 낙을 넘어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상된 만족을 즐기며, 삽니다. 그러나 인류의 자취로 남아진 업적에 대해서, 수반된 기쁨이 가늠됩니다. 극복의 길은 어렵고 위험하지만, 수반되는 기쁨은 여정의 순간을 이어지게 합니다.
세속적 만족의 낙과 성취의 기쁨에 비추어, 성령님의 열매로 기쁨은 개인의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니, 성령님의 열매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옴으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기쁨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지고, 그 약속은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집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열매임으로, 개인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쁨은 감정의 파문이 아닌 영의 열매로 의식됩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기쁨이 아닌 삶에 이루어지는 기쁨은 묵상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 그는 “세상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주 안”이라는 구는 예수님이 주로 고백되는 새 언약의 삶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새 언약의 삶으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는 세상의 삶으로 항상 기뻐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주 안” 혹은 “그리스도 안”이라는 바울의 구는 언약의 삶을 뜻합니다. 그것은 세상에 한 부분을 뜻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기관이 되어 세상에 정착되어옴으로,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한 부분인 교회에 속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경향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나 교회 가르침을 세상 삶에 적용하려 합니다. 그들은 교회에 속하는 이들이 세상에 속하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세상에 살면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보통 사람들보다 나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약의 기쁨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은 항상 기뻐할 수 없지만, 세상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향은 결국 종교로 이끌어집니다. 종교는 어떻든 자기 향상을 자극합니다. 자신을 다른 이들보다 낫게 이끄는 것은 종교적 수련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삶을 살지 않고 새 언약의 삶을 삽니다. 새 언약의 삶을 사는 새 언약의 백성, 곧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쁩니다. 기쁨은 새 언약의 삶에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의 삶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펼쳐가니,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을 따라 삽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새 언약의 삶의 ‘특성’으로 맺어집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라는 바울의 권면은 “서로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계명과 유사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따른 기쁨의 계명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기쁨의 계명은 사랑의 계명과 같이 명령형으로 표현되지만,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언약의 약속은 계명으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이루어지게 되는 내용은 언약의 백성에게 하게 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언약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언약의 삶이 펼쳐짐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이 때문에 언약의 계명은 세상의 계명과 같이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약의 백성은 하나님의 이루심을 따라 함께해야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언약의 계명은 하나님의 약속에 수반됩니다. 이 점이 간과되면, 세상에 일반 계명으로 오해됩니다.
언약의 계명이 언약으로부터 떠나 받아들여지면, 세상에 율법이 됩니다. 그것이 명령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지켜지게 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사랑이나 기쁨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세상에 살면서, 원수를 사랑하고 항상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약으로 주어지는 계명이 언약의 의식 없이 받아들여지면, 세상에서 지켜져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것은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것입니다. 그들은 계명을 그들이 지켜야할 것으로 여겼음으로, 약속으로 하나님의 이루시는 뜻을 상실하였습니다.
기쁨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짐인 것이 의식되기 어렵습니다. 기쁨이 단지 개인의 감정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개인으로 어떻게 기뻐할지 수련하려합니다. 그들은 항상 개인으로 자신들을 향상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삶은 세상 삶으로부터 구별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과 보통 사람들이 모두 세상에 사는 한, 그들은 단지 비교됩니다.
개인의 감정으로 기쁨과 성령님의 열매로 기쁨은 완전히 구별됩니다. 그런 만큼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구별됩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지는 기쁨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만족의 낙이나 성취의 기쁨으로 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별되어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
성령님의 열매로 기쁨은 기쁨으로 예수님의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의 세상에 오심은 기쁨임으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세상에 오심의 기쁨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의 기쁨을 열매 맺습니다. 주와 그리스도로 예수님의 세상에 오심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세상에 주와 그리스도로 오심은 예수님의 구원자로 세상에 오심입니다. 세상의 구원자의 세상에 오심은 세상에서 기쁨입니다. 여기서 구원의 기쁨이 말해지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만족의 낙이나 성취의 기쁨과 구별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야기, 곧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세상의 구원자는 기쁜 소식으로 알려집니다. 이 구원의 소식을 알림은 선각적으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단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열매 맺어집니다. 아무도, 성령님에 의해 인도됨이 없이, 예수님이 세상의 구원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은 새 언약입니다. 구원자로 예수님의 세상에 오심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약속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예수님으로 세상에 보입니다. 예수님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열매로 기쁨을 말하는 근원은 하나님의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의 기쁨은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집니다. 언약의 삶이 아닌 세상 삶에서 성령님의 열매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세상에서 구별된 성령님은 언급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구별됨을 보임이 없이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기쁨만 생각하는 이들은 새 언약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에 삶을 통해 보이는 것은 구별된 삶이 아닌 나은 삶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새 언약의 삶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구별된 삶의 근거는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에 근거됨이 없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됨을 보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상이 변해진다고 말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이루어짐은 세상의 변화가 아닙니다.
바울이 성령님의 열매를 말하는 뜻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맺어지는 구별됨입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기쁨이 개인의 만족이나 성취의 기쁨으로부터 구별되어야만,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의 기쁨이 세상에 행복이나 성공의 기쁨으로부터 구별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구원의 삶을 삽니다.
성령님이 오심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구별된 구원자로 보내신 새 언약이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새 언약의 삶이 성령님에 의해 열매 맺어집니다. 구원의 삶으로 새 언약의 삶은 기쁨의 열매를 맺습니다. 구원으로 인도된 기쁨은 업적으로 얻어진 기쁨으로부터 구별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아버지 나라로 사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기쁨이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지게 하옵소서.
삶이 기쁨으로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게 하옵소서.
그렇게 ‘나’에게 갇힌 기쁨이 아닌
아버지 나라로 임하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조건적인 세상이 기쁨으로 극복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