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정상들이 2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AFP 연합뉴스© 제공: 한겨레 유럽연합(EU) 정상들이 지난 주말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와그너) 그룹이 일으킨 ‘무장 반란’의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27개 회원국 지도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바그너 그룹의 군사 반란이 드러낸 러시아 군 수뇌부의 분열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통제력 상실이었다.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이날 정상회의 공식 의제가 아니었지만, 회원국 모두가 관심을 갖는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회의장에 나온 각국 정상들도 이 문제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화상 연결로 참여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회원국 정상과의 업무 오찬을 하기 전 취재진을 만나 “주말에 우리가 목격한 반란은 러시아 시스템 안에 균열과 분열이 있음을 보여준다”라면서도 러시아 내부 문제이고 벨라루스 등에 바그너 부대원이 얼마나 있을지 아직 명확하지 않아 “최종 결론을 내리기는 너무 이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토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유럽연합 회원국 상당수가 나토 회원국인 점을 고려해 특별히 참석했다. 러시아 내부 상황이 유럽안보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동맹국과 평가하기 위해서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더 약해진 푸틴은 더 큰 위험”이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유럽연합의 모든 정보기관이 현재 상황을 분석 중이라면서 “푸틴은 독점하던 무력을 잃었다”라며 “내가 예상하기론 내부적으로 ‘청소 모드’에 들어가고 더 단호한 노선을 취할 것 같다. 내부적인 불안정성 때문에 이제 우리는 러시아를 위험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럽연합 핵심 당사국인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는 이날 (ARD) 인터뷰에서 이번 반란 사태가 “어느 경우든 간에 (이번 반란은) 러시아에 오래 지속할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푸틴 대통령이) 약화했다고 믿는다”라고 했다. 다만 숄츠 총리는 독일이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일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러시아 정권, 정부의 교체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바그너 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망명한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 해 국가들은 바그너 용병의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며 지켜보는 분위기다. 크리샤니스 카린시 라트비아 총리는 고도로 훈련된 바그너 부대원들이 벨라루스로 모일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 위협이 아마 전면적인 군사 위협은 아니겠지만 알 수 없는 목적으로 유럽의 침투하려는 식의 위협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일부 동료들은 때때로 약한 푸틴보다는 강한 푸틴이 덜 위험하다고 말한다”라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이 역사의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진하고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라고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로 이동한 데 대해 “벨라루스와 러시아 모두 위험하고, 또 앞으로도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했다면서 러시아 쪽에는 “균열”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러시아에 (제재를 통해) 계속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그너 반란 사태가 유럽연합을 더욱 똘똘 뭉치는 하는 계기가 된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태가 야기한 러시아 내부 혼란과 불안정성이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보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태가 “러시아 내부의 역학 관계와 시스템의 취약성, 우크라이나 침공과 유럽 안보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라며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는 우리 의제의 최우선 순위로 유지돼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브뤼셀/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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