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성인이 제시하는 세 번째 길은 '균형 잡힌 길'이다. 달리 말해, 극단을 피하고 균형과 조화를 찾는 중용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 중용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성인의 지혜를 배워보자.
성인이 가르치는 중용의 지혜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은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고, 엄격함과 유연함,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먼저 기도와 노동, 휴식을 위한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다(성규 41장; 48장). 기도든 노동이든 휴식이든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을 잃고 일상의 리듬은 깨지게 된다. 이는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도가 중요하다고 일이건 뭐건 다 전폐하고 기도만 할 수 없다. 일에 미쳐 기도도 휴식도 없이 직진하다가는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 일도 안 하고 마냥 쉬기만 한다면 영육으로 영양실조에 걸릴 수 있다. 그래서 항상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규에서 중용의 지혜는 각 사람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그에 맞는 권고를 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상반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각각에 맞는 적절한 권고를 하는 것이다. 병든 형제에 대한 다음 구절이 대표적이다. "병든 형제들 자신은 하느님에 대한 존경에서 자기가 봉사 받는다는 점을 명심하여 지나친 요구로 자기에게 봉사하는 형제들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한다."(성규 36,4) 병든 형제를 그리스도에게 하듯 잘 돌보라고 강조하고선 그들을 돌보는 형제 역시 배려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예사롭지 않은 가르침이다. 이처럼 상호 배려를 하는 데서 우리는 성인의 중용의 지혜를 엿보게 된다.
중용 정신의 핵심, 유연함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하나의 규정을 모든 이에게 획일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인은 대상과 상황에 따라 규정을 다르게 적용한다. "강한 이는 더 하기를 갈망하게 하고 약한 이는 물러나지 않게 할 것이다"(성규 64,19)라는 구절이 좋은 예다. 성인은 강한 이와 약한 이에 대한 규정에 있어 차별을 두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다. 녹을 너무 지우려다 그릇을 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한 이는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고 강한 이는 안주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분발시킨다. 이것이 베네딕도 성인의 특징이다. 성규 34장의 필요성에 따른 분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라고 한다. 모두의 필요가 다르기에 많이 필요한 이는 더 받을 수 있고 조금 필요한 이는 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균형감 있는 가르침인가! 이상을 토대로 볼 때 베네딕도 성인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성인 자신의 인생 경험에서 나온 지혜로운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성인은 이런 중용의 정신으로 우리에게 균형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하느님을 향한 여정, 날개를 달다 하느님을 찾는 길, 그분께 나아가는 길은 영적 순례 여정이다. 여정 중에 우리는 때론 잘못된 판단으로 그릇된 길로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길을 가는 데 있어 분별력이 그렇듯 중요한 이유다. 분별력이 없으면 균형을 잃고 극단으로 치우칠 수 있다. 베네딕도 성인은 상당한 분별력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베네딕도를 "탁월한 분별력"을 지닌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대화집』 II, 36). 성인 자신도 분별력을 "덕행의 어머니"로 표현하며(성규 64,19) 아빠스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로 제시하고 있다(성규 64,17). 아빠스는 분별력을 갖고 모든 일을 절제 있게 행해야 한다고 권고한다(성규 64,17-19). 중용과 분별력은 성인을 특징짓는 모습이다. 이 둘은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서 극단으로 치우쳐 길을 잃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 주는 두 날개와도 같다. 이는 우리 일상이나 신앙생활에서도 필요한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나의 일상과 신앙생활은 과연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