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9일 오전 귀국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화제는 ‘외국어’였다. 박 대통령은 영국에서는 영어 실력을, 프랑스에서는 불어 실력을 자랑했다. 대통령의 외국어 실력 자랑이 이제는 어색하지도 않다. 영어와 불어, 중국어, 일어, 스페인어를 잘 한다고 했으니 이제 스페인어와 일어 실력을 확인할 기회가 남아있다.
대통령의 영어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한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영어로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수준임이 이번 유럽 순방 기간에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현지시각으로 6일 로저 기퍼드 런던시티 시장 초청 만찬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다 한복을 밟고 넘어졌다. ‘에구!’하며 넘어지는 이 장면은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다. 상당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박 대통령은 놀란 시장 내외에게 웃으며 “드라마틱 엔트리(극적으로 입장했다)”라고 농담을 던졌고 만찬이 끝난 후에는 “콰이어트 엑시트(조용히 나가겠다)”고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장면 자체는 우스꽝스러웠지만 대통령의 영어 실력은 꽤 되는 수준임은 확인됐다.
앞서 프랑스에서 박 대통령은 불어로 연설을 해 박수를 받았다.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박 대통령은 파리 전경련 본부에서 300인의 기업인을 대상으로 불어로 연설했다. <르몽드>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청중이 ‘환호’했다고 보도했는데, 그 대목은 바로 박 대통령이 “공공시장을 개방할 예정”이라고 말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박 대통령의 ‘언어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인의 99%는 한국말을 잘 한다. 그렇다고 언어 능력이 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말과 글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 내용까지 잘 파악하려면 지적능력과 지식,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학능력시험에도 ‘언어영역’이 있고 말과 글의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 기업인들에게 환호를 받은 ‘공공시장 개방’이 무슨 뜻인지 과연 박 대통령은 이해하고 말하는 것일까? 그 발언이 향후 한국에서 어떤 논쟁을 불러일으킬 지 검토하고 말한 것일까?
공공시장 개방 문제는 한국의 시장 개방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한미FTA 논쟁에서 공공부문 개방은 뜨거운 감자였고 정부도 비판 내용에 대해 해명하기 바빴다. 최근 철도 민영화 논란이 한창인데, 핵심 논점 중 하나는 외국자본에 철도 운영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KTX 운영권에 대한 권한을 국토부장관이 확보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미FTA 조항과 내용이 충돌하고 있어 철도 민영화 논란 중 가장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당장 철도 민영화 절차에 들어갈 경우 노조가 파업을 감행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며, 실제 파업에 들어갈 가능성도 높다. 철도노조의 투쟁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철도민영화가 향후 공공부문 민영화와 시장개방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력, 통신, 가스, 상하수도 등 거의 모든 공공부문이 민영화 논란에 놓여 있고 대외개방이 그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다.
이 와중에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외국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공공부문 개방을 선언해버렸다. 취임 100일에 즈음해 발표한 ‘공공기관 합리화’에서도 공공부문 시장개방을 확언하지는 않았었다. 이번 발언은 ‘폭탄’에 가깝다. 과연 대통령은 ‘폭탄 정책발언’을 준비했던 것일까. 정말 궁금해진다. 만약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은 ‘시장개방’을 향하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대통령의 외국어실력이 언급될 때마다 ‘한국말은 왜 못하냐’는 비아냥이 섞여 나온다.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한 수사를 잘 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주장을 해도 ‘난 도움 받은 적 없다’는 동문서답을 되뇌는 판이니 ‘한국어 구사능력’이 의심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이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으로 ‘공공시장 개방’을 말한 연설을 보면서 언어능력이 낮은 것이기를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왠지 한국어 능력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왜 일까. 왜 한국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운명과 관련된 얘기를 프랑스어로 들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