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조병화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의 가슴에 안겨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이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을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했습니다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하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나를 믿어야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하나의 최후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가슴에 안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사랑하니까, 괜찮아. 나라원]===
조병화 시인(1921~2003)
1929년 경기도 용인 송전공립보통학교 입학하였으나, 서울로 이사하면서 1931년 미동 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1941년에 경성사범학교 보통과를 졸업, 1943년에 연습과를 졸업했다. 1945년 동경고등사범학교 3학년 재학 중 일본의 패전으로 귀국했다. 1945년 9월 경성사범학교 교유, 인천중학교 교사, 서울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59년부터 경희대 교수, 1981년부터 인하대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했다.
1974년 중화학술원(中華學術院)에서 명예철학박사, 1982년 중앙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1999년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일부분 발췌>-----
시인은 나쁜 결과가 될 줄을 알면서도 좋아했다고 고백합니다.
서러워서도 외로워서도 아니라고.
임을 잃은 사나이의 힘없는 하소연이 들립니다.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점점 봄기운이 주위를 맴돕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노오란 수선화 같은 봄꽃과
조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