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사고와 무심상 사고 2
홍문표(문학평론가)
심상 사고 이미지를 지닌 언어는 모양과 부피와 무게가 있다. 빛깔과 냄새와 움직임이 있어서 우리를 자극하면
서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감동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미지가 없는 관념적인 언어는 이성적인 판단을
통하여 추사적으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바로 이미지를 지닌 언어를 사용하여 보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물질적인 세계는 물론 비물질적인 관념의 세계까지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한다. 이처럼 이미지를 가진 언어로 사물을 인식하고 세계를 조망하려는 사고를 심상
사고(image thinking)라고 한다.
(1) 닫힌 창고가 열리고
(2) 하나의 현실을 세우기 위하여
(3) 굳은 열매가 쪼개지고, 지금
(4) 아직도 이루지 못할 통일을 위하여
(5) 철조망의 가시가 붉게 붉게 녹이 슬고 있다.
(6) 열 두 시가 되기 위하여 시계는 열 시를 지나 한 시로 가고
(7) 우리는 죽음의 자유를 위하여 건강한 육체를 키운다
-박남수 <무제>
인용한 시는 관념적 사고, 즉 이미지가 없는 무심상 사고(imageless thinking)와 이미지가 있는 심상 사고를 교차
시키면서 심상사고의 시적 미학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1)의 행은 속박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민족통일의 관념
을 '창고가 열리고'라는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대치한 심상 사고다. 그러나 (2)에서 현실을 세운다는 말은
다분히 관념적이다. '세운다'라는 말이 다소간 상상력을 보인 것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추상적이다. (3)도 (1)과 같
은 심상사고다. '굳은 열매가 쪼개지고'는 굳은 역사적 상황, 부자유한 정치적 상황이 해결된다는 관념적 세계를
구구체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4)는 정치적 관관념어일 뿐이다. (5)는 분단 현실에 대한 고통을 철조
망의 가시라는 말로 심상사고를 시도하고 있다. 현실이나 통일이라는 추상적인 언어에 비하여 창고, 열매, 철조망,
열 두 시, 육체 등은 가시적이고 감각적이어서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감각적으로 느낄 스도 있는 것이다.
행 | 무심상사고(추상) | 심상 사고 (구체) |
1 2 3 4 5 6 7 | (부자유, 고통, 분단) 현실 (분단, 자유, 통일) 통일 (분단, 휴전선) (통일, 접근) (국력 신장) | 닫힌 창고 쪼개지는 열매 철조망의 가시 열한 시, 열두 시 건강한 육체 |
앞서 상상이란 과거에 경험했던 이미지를 재생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렇다면 심상 사고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
고 이들ㄹ 사고의 공통점은 관념적 언어가 아니라 반드시 감각적 언어에 근거한 사물의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 수
가 있다.
그런러나 시인이라고 해서 순전히 심상 사고만으로 시종할 수는 없다. 심상 사고는 의식이 가장 집중될 때만 가능
한데 그러한 집중적인 상태로만 오래 게속될 수 없는 일이다. 시인의 정신은 고도의 심상세게로 올라갔다가 다시
일반적인 개념의 세세계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또 시인의 상상이 심상세계를 飛翔하는 경우일지라도 그러한 이
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여 통일된 서술(discourse)을 확보하는 고리는 전치사와 접속사와 기타 문법적 관계를 나
타내는 관계사들인데 관계사란 추상적인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과학자에 비하여 보다 사물을 상상적으로,
즉 심상을 통하여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예술가들이고, 과학자는 보다 무심상사고를 통하여 사물을 보려는 입장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