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불교 탐방기-8
바다 같은 호수,
바이칼 불교를 가다
지구상의 가장 청정하고 신선한 민물
글 | 이치란 박사
부랴트 공화국 쪽의 바이칼 호수, 어느 바닷가 해안에 와 있는 듯 한 바다 같은 호수
바이칼 호수는 누구나 한번 쯤 가보고 싶은 호수다. 나는 운 좋게도 이번에 여섯 번째로 왔다. 특히 여름철에 이곳에 오면 더위를 모른다. 한국은 지금 찜통더위라고 한다, 폭염이 연일 푹푹 찌는 모양이다. 이곳에선 더위란 단어를 모를 정도로 너무나 시원하다. 여름이란 단어보다는 그저 ‘바다 같다’는 말만 터져 나온다.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면 바닷가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어느 낯선 해안가에서 조용히 명상을 하면서 산책하는 나그네 같은 낭만에 젖는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에 젖는 것을 ‘힐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바이칼 행은 몽골에서 부랴트 공화국 수도 울란우데를 경유해서 왔다.
바이칼 호수 지도
바이칼 호수의 수량(水量)은 엄청나다. 지구촌 담수량의 23%라고 한다. 바이칼 호수는 실로 엄청난 호수다. 길이 636 km, 폭 최대 90km, 면적 31,494 km², 깊이 1637 m로,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민물호수이며,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다. 호수의 바닥은 해수면보다 1285 m 아래로, 내륙에서는 가장 낮다. 또 투명도가 뛰어난 호수(약 40m)로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부피는 23,000 km³로, 북아메리카의 오대호를 모두 합한 크기이며, 지구상의 민물의 23%에 해당하는 양이다. 생물다양성에서 바이칼 호수에 비길만한 다른 호수는 없다. 852개 종과 233개 변종의 조류와 1550여 종의 동물이 살고 있으며, 이 중 60% 이상이 고유종이다. 어류의 경우 52종 중 27종이 오물(Omul)처럼 고유종이다. 바이칼 물범과 같은 물범 종류도 서식하고 있으며, 주변에 곰과 사슴도 나타난다고 한다.
바이칼 호숫가에서 낙조를 즐기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방문객들
바이칼은 너무나 크고 바다 같은 호수여서 호수 같지 않는 바다 같은 호수다. 해가 갈수록 바이칼은 지구촌에서는 두 개 밖에 없는 지구대 호수로서, 쉽게 이야기하면 갈라진 두 단층 사이의 땅이 내려앉아서 생긴, 크고 긴 띠 모양의 땅에 물이 고인 격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신선한 민물(淡水)이다. 65종의 민물고기류가 있는데, 살기속이라는 연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가 유명하다.
바이칼에서 서식하는 연어과에 속하는 살기속
바이칼 주변의 어부들에게 주 수입원이 되는 오물
오물은 플랑크톤과 같은 다른 작은 생물들을 잡아먹는다. 바이칼 호에 서식하는 다른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바이칼 호의 주요 수입원이며, 오물의 알은 특히 진미로 여겨진다. 현지 소비 및 러시아 서쪽에서도 많이 팔린다. 특히 훈제로 만든 오물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시베리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별미이지만, 그 숫자가 계속 감소하여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허가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고 하는데, 몇 년 전 만해도 싼 값이었는데, 지금은 싸지만은 아닌 값이었다.
바이칼 호수의 낙조: 서해안의 바닷가에서 서쪽 하늘에서 넘어가는 석양을 보는 듯하다.
바이칼은 찾는 사람들에게 우선 위안감을 준다. 호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하기야 여기까지 찾아오는 데에는 멀고먼 길이다. 한국서 여기까지 오려면 그냥 쉽게 오는 길이 아니다. 그것도 여름 한철인 7-8월이 적기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와서 보면 힘들게 찾아온 피로가 일시에 풀린다. 바이칼은 신비하기 그지없는 지구상의 가장 청정하고 신선한 민물이다. 수면 위의 배에서 보니, 수심 40m가량이 그대로 훤하게 보였다. 고기들이 노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오물이라는 물고기가 물이 반, 고기가 반이었다. 이르쿠츠크 쪽 바이칼 보다는 부랴트 쪽 바이칼은 경사가 완만하고 해안가 모래 비치가 있어서 바다 같은 운치가 정감이 간다.
바이칼의 종교, 자연과 함께하는 영성
바이칼 호수라고 해서, 그냥 호수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같은 호수다. 흡사 한국의 어느 동해안이나 서해안 어딘가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바이 칼은 거대한 호수 바다이다. 지금이야 바이칼 호수 주변의 리조트 사업은 전부 모스크바의 유력자들의 소유이지만, 먼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수 천 년 수 백 년 동안 삶의 터전으로 여기면서 끈끈한 생의 현장을 지켜온 민초들의 삶이 있다. 바이칼엔 문화가 없는 것 같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바이칼 호수에 있는 어촌마을, 노란 지붕의 불교사원이 보인다
시베리아는 오랜 기간 동안 예네츠인, 네네츠인, 훈족과 같은 유목민의 땅이었다. 한때는 칭기즈칸의 영토였다. 16세기에 이르러 코사크를 앞세운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되어 이 시기에 만가제야, 타라, 예니세이스크, 토볼스크와 같은 도시들이 형성되었다. 17세기 중엽 러시아는 시베리아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시베리아는 최근 몇 세기 동안에도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었으며 오랫동안 러시아 제국의 유형지였다. 사람이 살지 않았단 말은 유럽인들을 의미한다. 유럽문화권인 러시아는 시베리아에 유럽문화를 전파시켰다. 그렇지만 유럽문화가 들어오기 전에는 몽골족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다.
‘오보’란 일종의 성소(聖所)에 경배드리는 부랴트 샤먼
종교로 말할 것 같으면 샤머니즘이 대세였다. 아시아 문화권에서도 특히 북아시아인 시베리아는 샤머니즘의 종교문화가 있다. 지금도 이곳 바이칼 주변에는 샤머니즘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샤머니즘적인 종교문화가 존재하고, 부랴트 족들은 불교화 되었지만, 샤머니즘적인 불교를 신봉한다.
그렇지만, 현재는 샤먼도 하나의 종교 성직자란 위치보다 민속적인 차원에서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바이칼을 찾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시베리아 샤먼의 푸닥거리 공연을 보고 싶어 해서 관광 상품화 되어 있지만, 샤먼들은 수가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특별히 예약을 하고 움직인다. 샤먼의 무속신앙은 티베트-몽골계 불교에서 흡수했다. 이 지역에 전해진 불교는 이런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습합한 것이다. 마치 한국불교가 토속신앙의 여러 요소를 습합했듯이 말이다.
하바롭스크에 있는 러시아 정교의 성당
러시아인들의 종교는 러시아 정교이다. 15세기 후반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모스크바 대공국은 스스로 자신들이 로마 제국의 정당한 후계자이므로 모스크바 대공 역시 로마 황제의 후계자를 자처, 정교회의 유일한 군주로 등극한다. 1472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는 동로마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 소피아 팔래올로기나와 결혼하고, 동로마 제국의 문장인 쌍두 독수리를 문장으로 삼아 그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차르(카이사르, 즉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구심점을 잃은 정교회를 사수하라는 하느님의 거룩한 소명을 받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모스크바가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어 제3의 로마라는 신념의 기원이 되었다.
바이칼 호수 어촌 마을에 서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수립되자 러시아 정교회는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917년의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지자 정교회를 종속시키던 요소가 사라졌고, 이에 따라 주교들은 새로이 11대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총대주교로 티혼을 선출해 끊어진 총대주교 좌를 잇게 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가 무너지고 레닌과 트로츠키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선 뒤, 공산당은 정교회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주로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순교, 설교 금지, 성당 파괴, 교회재산 몰수, 이전 제정 시절 교회가 누리던 특권박탈 등으로 고난을 겪었다.
바이칼 호수에도 종교는 있었다. 샤머니즘과 불교와 정교회 모두가 제각기 존재하면서 영성생활을 하고 있었다. 필자의 영역이 불교 쪽이라서 자연스럽게 불교사원과 접촉이 있었지만, 바이칼은 분명 다종교사회였다. 바이칼 호수는 이르쿠츠크와 부랴트가 양분하고 있는데, 이번 여행은 몽골에서 항공편으로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를 경유해서 바이칼로 향했다. 울란우데는 소비에트 시절엔 군수공장이 있었고, 시베리아 황단열차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러시아인들보다는 몽골계 부랴트족들의 터전이지만, 현재는 러시아인들의 수가 더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