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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처음 연필을 잡던 때를 떠올려본다. 당시엔 학교에서 샤프를 가져오지 말고 꼭 연필을 가져오라고 당부했었다. 처음 글씨를 배울 때는 샤프보다 연필이 좋다고 해서 지금도 초등학교에서는 연필 사용을 권장한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결국 연필은 샤프를 이기지 못하고 미술 시간에만 겨우 쓰인다. 지금이야 연필도 샤프도 아닌 펜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세대가 돼버렸지만.
아날로그 감성 듬뿍 담은 연필
필기도구의 조상은 누가 뭐래도 연필이다. 흑연과 나무가 내뿜는 냄새는 우리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샤프가 아무리 대단한 발명품이라 해도 연필만이 뿜을 수 있는 감성이 있다. 그래서 필기할 때는 샤프가 나을지라도, 그림을 그릴 땐 연필이 제격이다.
연필은 쓰다 보면 흑연 부분이 뭉툭해지면서 선 굵기가 점점 굵어지는데 필기할 땐 불편하지만, 그림을 그릴 땐 두꺼운 선이 도움이 된다. 연필의 치명적인 단점은 깎기가 귀찮다는 점이다. 전동 연필깎이도 있지만 꼭지만 한번 누르면 되는 샤프의 편리함에는 못 이긴다. 그런데도 연필은 꾸준히 쓰이고 있다. 고장 날 일 없고, 심을 채울 필요 없이 깎으면 심이 나오는 연필은 샤프보다 인간적이다.
연필이라고 모두 두꺼운 선을 그리는 건 아니다. 연필은 심의 굵기에 따른 규격이 있다. 10H에서 10B까지 있는데 2H~4B 정도까지는 쉽게 구할 수 있고 그 밖의 규격은 제품으로 구하기 어렵다. H는 HARD의 약자로 경도를 나타낸다. 앞의 숫자가 높을수록 연필심이 더 단단하고 색은 옅어진다. B는 BLACK의 약자로 숫자가 높을수록 연필심이 더 진하고 무르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필기용 연필은 HB인데 HB는 10H와 10B의 중간 정도 연필심을 말한다. 간혹 F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릴 땐 진하고 무른 4B가 널리 쓰인다.
▶ 파버카스텔 카스텔 9000 연필
연필에도 고급이 있다. 독일의 문구 회사로 세계 최초의 연필 회사인 파버카스텔은 연필을 만들 때 쓰이는 나무를 따로 가꿀 정도로 좋은 나무를 쓰는 것에 주력한다. 특히 카스텔 9000 연필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모델로 연필의 기준이 된 제품이다. 육각형의 모양도, 연필의 경도도 모두 카스텔 9000이 만들어낸 것. 질 좋은 나무에 접착제로 단단하게 연필심을 붙여 견고하다.
▶ 스테들러 마스 루모그래프 100
파버카스텔의 라이벌인 스테들러에도 카스텔 9000만한 연필이 있다. 바로 마스 루모그래프. 카스텔 9000은 초록색, 마스 루모그래프는 파란색이다. 연필이지만 사각사각하기보다 부드럽게 쓰여서 필압이 약한 어린아이들도 쓰기 좋다고.
▶ 문화 더존연필
국산 연필 브랜드는 전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단지 오랜 세월이 지나 까먹고 있었을 뿐. 문화의 '더존' 브랜드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갈색 연필을 떠올리면 된다. 고급 향나무를 사용했고 문화사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한 초미세결정심(하이믹심)을 사용해 필기감이 부드럽다.
불편한 건 못 참아, 샤프
샤프는 누가 발명한 걸까. 참으로 기특한 발명이다. 연필을 깎지 않아도 된다니. 처음 등장했을 땐 얼마나 센세이션했을까. 심이 다 닳았을 땐 새로운 심을 끼워주기만 하면 된다. 꼭지를 딸깍 누르기만 하면 얄팍하고 날렵한 심이 나와 얇고 깔끔한 글씨를 쓸 수 있다. 그 메커니즘 덕분일까. 문구류 덕후 중 샤프 덕후가 유난히 많다. 심이 얇기 때문에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진다는 단점이 있다.
▶ 펜텔 그래프 1000
일본의 필기구 회사인 펜텔은 유난히 샤프 부문에서 강세다. 그중에서도 그래프 라인업, 또 그중에서도 그래프 1000이 가장 인기가 좋다. 촉이 기다란 제도용 샤프인데 필기감이 아주 뛰어나 유명해졌다. 무광 블랙으로 시크한 디자인도 한몫한다. 그립 부분에는 18개의 고무를 심어 미끄러지지 않게 했다. 워낙 잘 나가는 모델이라 컬러를 다르게 한 한정판 모델도 많다.
▶ 제브라 델가드 샤프
제브라는 무엇보다 샤프심 안 부러지는 것에 공을 들였다. 그리하여 출시한 게 델가드. 제품의 슬로건이 ‘더이상 부러지지 않는다’라니 말 다 했다. 어떤 방향으로 써도, 필압이 강하든 약하든 심 주변의 스프링이 압력을 흡수해 샤프심이 거의 부러지지 않는다고.
▶ 미쯔비시 쿠루토가
심이 뭉툭해지는 게 싫어 연필보다 샤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쯔비시의 쿠루토가 만큼 좋은 샤프가 없을 것. 쿠루토가는 글씨를 쓸 때 심이 알아서 조금씩 회전해 계속 가늘고 선명한 글씨를 쓸 수 있다. 샤프가 종이에서 떨어질 때마다 심을 잡고 있는 쿠루토가 엔진이 한 칸씩 회전하는 방식이다.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지우개는 잘 지워지는 게 제일이다. 최근 문방구에서는 각양각색의 지우개를 볼 수 있지만 지우개 본분으로서의 능력을 영 발휘하지 못한다. 고등학생쯤 되면 지우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 지워지는 것으로 고르게 된다.
▶ 톰보우 500 지우개
일명 ‘잠자리 지우개’로 불리는 톰보우 지우개는 미술학도들이 박스로 가지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지우개다. 지우는 용도보다 지우개 따먹기 용도로 썼던 기억도 난다. 오렌지색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최근엔 모던한 케이스로 바뀌었다. 예전의 명성은 조금 사그라들었고 필기용보다는 미술용으로 적합하다는 평.
▶ 펜텔 아인
필기용으로는 펜텔의 아인 지우개가 대세다. 가볍게 힘을 줘도 잘 지워지고 쫀쫀해서 부서지지도 않는다. 블루, 레드, 블랙 세 가지 타입이 있는데 블루가 많이 쓰인다. 레드는 지우개 가루가 덜 나오는 편이고, 블랙은 지우개가 지저분해지는 게 보이지 않아서 좋다.
▶ 파버카스텔 더스트프리 지우개
파버카스텔의 지우개는 더스트프리 라는 이름답게 지우개 가루가 적게 나온다. 지우개 가루가 아주 안 나올 수 없으니 나오긴 나오는데 깔끔하게 한 줄로 밀려 나와 정리하기 편하다. 부러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부드럽게 잘 지워져 지우개 본연의 역할도 잘 한다.
연필을 깎아보자, 연필깎이
밤마다 필통 속 연필들을 깎으며 내일의 등굣길을 준비하는 것. 아주 좋은 하루의 마무리다. 기자의 어릴 적에도 기차 모양 연필깎이가 유행이었는데 아직도 그 녀석이 가장 잘 나간단다. 여담이지만 기자가 유치원생일 때 유치원에 찾아온 산타 할아버지가 인형을 안 주고 기차 모양 연필깎이를 줘서 울어버린 기억이 난다.
▶ 티티 하이샤파 KI-200 연필깎이
앞서 소개한 하이샤파의 기차 연필깎이다. 국민 연필깎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유명하다. 연필깎이에 기차 모양을 형상화한 건 정말 혁신적이었다. 회전식 연필깎이는 웬만하면 고장이 나지 않아서 아직도 어렸을 때 산 이 연필깎이를 쓰는 사람이 왕왕 있더라. 2단계로 심 굵기를 조절할 수 있다.
▶ 스테들러 원통형 2홀 연필깎이
휴대용도 하나 소개한다. 스테들러의 2홀 연필깎이는 두 개의 홀이 사이즈가 달라 2가지 사이즈의 연필을 깎을 수 있다. 보통 1홀은 일반 연필용, 2홀은 색연필용으로 쓰인다. 연필을 거꾸로 꽂아 돌려서 깎는 방식이다. 뚜껑이 있어서 날에 베일 염려가 없고 날이 상당히 잘 드는 편이라 썩 괜찮다는 평이다.
좋은 연필의 좋은 집, 필통
지금이야 펜 하나 덜렁 가방에 넣어 다니지만, 학생이라면 필통이 필수다. 특히나 앞서 소개한 연필이나 샤프, 지우개 등은 필통에 들어가야 안전하다. 연필은 심이 부러지거나 가방 여기저기에 그림을 그릴 위험이 있고, 샤프는 끝이 뾰족해 가방을 뚫고 나올 수가 있다. 기자의 어릴 적엔 철로 된 필통, 변신 필통 같은 것들이 인기였는데 요즘은 그것보다는 덜 요란한 제품을 쓴다고.
▶ 카카오프렌즈 리틀프렌즈 봉제필통
보통 좋아하는 캐릭터의 필통을 고르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기자가 고른 건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봉제 인형이 달린 필통이다. 책상 위에 엎드려 놓으면 필통이 아니라 인형을 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룬룬 660 레이니 스탠다드 필통
좀 더 기능적인 필통을 찾는다면 룬룬의 필통을 추천. 필통 속에 필기구를 구분할 수 있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정리하기도 좋고 원하는 필기구를 편하게 꺼내 쓸 수 있다. 뒤적뒤적할 필요 없이 한눈에 볼 수 있다. 필통의 디자인도 단정해 요란한 게 싫다면 딱이다.
▶ 다나와굿즈 '기분이 좋아지는 필기구 세트'
▲ 다나와에서 제작한 필기구 세트
만약 이것저것 구매를 고민하는 것이 골치아프다면? 다나와에서 제작한 '기분이 좋아지는 필기구 세트'를 눈여겨보자. 한 세트면 펜, 샤프, 지우개, 자, 필통까지 한방에 해결이다.
연필과 샤프는 학교라는 곳을 졸업하고 나면 통 손에 쥘 일이 없어서 문득 마주치면 괜히 아련해지고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주변에 입학을 앞둔 어린이나 학생이 있다면 명품 연필 한 다스, 신기술을 품은 샤프 한 자루를 선물해보자. 당사자는 시시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는 두고두고 기억나는 선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기획, 편집 / 송기윤 iamsong@danawa.com
글, 사진 / 염아영 news@danawa.com
원문보기:
http://news.danawa.com/view?boardSeq=63&listSeq=3569718&page=1#csidx0e21cfb1b183ccd888097a1318397fe
첫댓글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