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락의 그림에 소더비는 환호했다
캔버스를 누인 채 물감을 붓고 흘리는
새롭고 독특한 기법, 뉴욕은 환호했다
기실, 그 신선함은 우리가 내다버린 것
한 획 글자를 갈겨쓰면 나비가 날고
또 한 번 휘감아 돌면 설경에 봉황이 울던
하지만 아서라, 재인(才人)과 환쟁이는
난전에서 태어나고 난전에서 스러졌느니
우리들 예인의 삶은 저자거리의 힘이었다
약장수 신파극도 지쳐가는 오일장
함석전을 비집은 반 평 돗자리는
처음 본 갤러리였고 내 시심의 우물이었다
- 이달균(1957~ ), ‘혁필’ 전문
아주 어릴 적에 엄마 손잡고 갔던 부여군 충화면 갓개장 난전에서 보았던가. 혁필화는 얄궂은 가죽 조각에 색을 묻혀 일출, 돛단배, 대나무, 원앙, 잉어, 거북 등의 그림을 그리는데 환상적인 데칼코마니 같은 이 모양이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臣禮義廉恥)를 뜻하는 글자에 마술처럼 덧입혀지는 것이었다.
수복강령과 부부금슬도 빌어주었다는 이 혁필화를 그리던 환쟁이들은 장바닥에서 흥정하는 허름한 아낙네보다 가난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모습을 용인 민속촌이나 인사동, 이태원이나 동두천, 성남 모란장 등에서 볼 수 있다는데 이십여 명만이 남아 삶의 방편으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혁필은 우리 고유의 민중예술이다. 일본에서는 혁필을 하나모지(花文字)라 하여 일본의 전통문화인 것처럼 크게 떠벌리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있다.
홍성란 /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