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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사람들 로마서 10:9-13절
은혜를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잊어버리거나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감사하고 감격하는 사람들은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지만 감사하지 않고 불만스러워하면 받은 은혜마저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여행과 바쁜 일이 겹쳐 오랜만에 「여인천하」드라마를 시청했습니다. 극의 전개가 몹시 궁금했던 터라 흥미를 가지고 화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궁중은 뇌물사건으로 벌집을 쑤신 듯 난리였습니다. 대신들 중 어느 하나도 뇌물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중종은 뇌물 받은 대신들의 명단과 액수가 적힌 치부책을 들여다보며 노발대발하고, 연루된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중전은 모든 대신들의 비리를 덮어주고 그들을 용서하여 종묘사직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은 물론 왕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대책이라고 간언합니다. 이를 고맙게 여긴 중종은 중전의 아량과 지혜를 고맙게 여겨 "내가 그렇게 하리다"라며 마음을 바꿉니다.
드디어 대신들이 중종 앞에 무릎을 꿇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호령이 떨어지고 파직에 중형이 떨어지기를 전전긍긍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중종이 대신들에게 치부책을 내주며 자기이름과 뇌물액수가 적힌 부분을 각자 뜯어내라고 명령합니다. 대신들은 떨리는 손으로 자기에게 해당된 부분을 뜯어냅니다. 다 뜯고 남은 책을 되돌려 받은 중종은 책을 불로 태워버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짐은 이 책을 본 일도 없고 아는 바도 없노라"
"경들도 자기가 뜯어낸 종이를 불에 태워버리도록 하라"
왕의 용서가 떨어진 순간입니다. 그 다음장면이 중요합니다.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받은바 용서가 감격하여 "성은이 망극하여이다"를 외치는 대신이 있는가하면, 야릇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잘됐다. 죄는 없어졌으니 중전내치는 일을 서둘러야지"라는 표정으로 눈을 내려뜨는 대신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지켜보며 죄사함 받고 용서받아 구원받은 사람들의 자세를 대입시켜 보았습니다. 감사하고 감격하여 눈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구원 받았노라면서 감사도 감격도 없은 채 늘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합당한 그리스도인 입니까?
로마서 10장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구원받은 사람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믿고 시인해야 합니다.
9절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모든 행동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인격의 중심지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전인격적으로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영화산업이 발달되지 못했던 50년대만 해도 무성영화시대였습니다. 흑백으로 영화를 촬영한 다음 변사 한사람이 마이크도 없이 화면을 바라보며 대사와 해설을 늘어놓던 영화시대가 있었습니다. 변사의 해설이 없으면 그 영화는 벙어리 영화에서 무슨 뜻인지 무슨 장면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적당한 예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소리 없는 몸짓은 해석도 힘들고 설명도 어렵습니다. 본문은 마음으로 믿는다 하더라도 입으로 소리내어 시인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는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라"고 했고, 10절에서도 "입으로 시인하여"라고 했고, 13절에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부른다는 것은 소리내어 시인한다는 것입니다.
음악도 소리가 없으면 성립이 안됩니다. 기악도, 타악도, 관악도, 성악도 소리가 있어야 음악이 됩니다. 구원받은 증거는 소리로 드러나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실을 말로 입으로 시인하고 말해야 합니다.
첫째, 자신에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 나는 죄사함 받았다.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사실을 자기 자신에게 말해야 합니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나는 죄사함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라고 떳떳하게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말 못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10:32∼33을 주목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하고 했습니다. 믿지 않으면 부를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부끄러워 말고 예수를 시인합시다.
셋째, 주님께 말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입을 열어 기도로 찬송으로 말해야 합니다.
13절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의 대상은 구별도 제한도 없습니다.
아직도 미국 안에는 백인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학교가 있고, 백인만 모여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유색인종은 돈 있어도 그 동네에 못 들어갑니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제도를 없앤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권과 평등과 자유를 내세우는 미국 안에는 차별과 구별이 엄격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누구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리내어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도 앞 못보는 소경도, 물속에 빠져가던 베드로도 소리질러 불렀기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소리질러 불렀을 때 주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입으로 시인합시다. 소리내어 부릅시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나는 죄사함 받았습니다.
"나는 구원 받았습니다.
"주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2. 주의 이름을 부르면 부요해집니다.
12절을 보면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주님은 모자람이 없는 완전한 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4을 보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8:9을 보면 "부요하신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시고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 LA에 가면 일반호텔보다는 풀러신학교 안에 있는 손님을 위한 기숙사에서 잠을 잡니다. 값도 호텔보다 싸고 제가 공부한 곳이어서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풀러신학교는 챨스 풀러박사가 세운 학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헨리풀러(Henry Fuller)였는데 1846년에 태어나 192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LA에서 가구공장과 오렌지 농장을 운영해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아들인 챨스 풀러에게 그 당시 돈으로 600만불을 주면서 단 한푼도 딴 곳에 쓰지 말고 하나님을 위한 일에만 쓰라고 유언했습니다.
챨스 풀러는 퍼모나대학과 바이올라대학에서 공부한 후 목사가 되고, 박사가 되었습니다. 일반대학을 세우려다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종을 배출하는 신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풀러신학교를 세웠습니다. 챨스 풀러는 빌리 그레함 목사보다 앞서 대중전도자, 방송설교가, 교육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동안 풀러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20,623명인데 그 중 한국사람이 320명으로 가장 많고, 일본은 89명입니다.
하나님은 헨리 풀러를 부요하게 하셨고, 헨리 풀러는 전세계 2만 여명의 주의 종들에게 부요의 기회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영적으로도 부요하고, 육적으로도 부요합니다. 수명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길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수명이 깁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남자보다 여자가 예수를 더 잘 믿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교회를 가도 여자교인이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재료 때문입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기에 쉽게 바스러지고, 여자는 뼈로 만들었기에 평균 10-15년을 더 산다는 것입니다.
북미는 신앙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고, 남미는 돈 때문에 모여든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자유 찾아 나선 사람들이 세운 미국은 잘살고, 돈벌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세운 남미는 못삽니다.
그 동안 노벨상을 받은 민족가운데 유대민족이 22퍼센트입니다. 그리고 기독교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64퍼센트를 차지합니다. 나라별로 노벨상을 받은 순위를 보면 스웨덴,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미국, 영국, 독일 순입니다. 모두가 기독교 국가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성경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성경공부하면 머리도 맑아지고 좋아집니다. 새벽 2시나 3시까지 술 마시고 잠만 잔 사람이 공부 잘하겠습니까?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자는 사람이 공부 잘하겠습니까?
공부도, 사업도, 출세도, 성공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십니다.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부릅시다.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물우물하지 말고 확실하게 고백합시다.
대학입학시험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한 자기표현입니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면 면접점수는 0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 나의 생명, 예수 나의 소망, 예수 나의 구원, 예수 나의 전부이십니다"라고. 아멘!
구원받은 사람들 요한복음 3:11-16절
「구원」이라는 용어는 기독교가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종교도 구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러나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란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 영생을 얻는 것 "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가 말하는 구원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로마서 3:10-12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죄 없는 존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의 기사대로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타락함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죄의 유전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 지은 죄가 그 후손에게 유전된다는 것입니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죄의 유전을 허구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담이 지은 죄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유전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5천년전의 미이라 뼈 속에 남아있는 DNA를 가지고 복제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전인자만 남아있으면 인간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죄는 유전인자 보다 더 강한 유전성과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로마서 6:23을 보면 "죄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고 했습니다.
민주국가와 독재 국가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죄를 처벌하는 방법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우 죄를 범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대통령도, 대통령아들도, 장관도, 장군도 죄를 묻고 법에 따라 벌을 내립니다. 그러나 독재 국가의 경우는 선별적으로 벌을 줍니다. 힘 가진 권력집단은 다 빠져나가고, 힘없는 사람들만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신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절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구원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이 기록되었고, 신약이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했고, 신약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사실을 밝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야말로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 얻는 단순 명료한 진리를 한마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주시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모세의 구리뱀 사건으로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했고, 15절을 보면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14절 말씀은 민수기 21:4-9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거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여정은 한마디로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길을 가로막는 부족들과의 전쟁, 더위와 추위, 배고픔과 목마름 등.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영적 방황이었습니다. 고생을 견디다 못한 그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싸잡아 원망했고, 그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단 한번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망을 지나치신 일이 없었습니다. 반드시 원망죄를 벌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원망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박사는 그들의 원망의 원인을 악한 건망증 때문이었다고 했고, 매튜 헨리나 베이커는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4:11을 보면 "모세를 향해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려느냐 "라며 원망했고, 출애굽기 16:2-3을 보면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굶주려 죽게 하려느냐 "라며 원망했습니다.
출애굽기 17:3을 보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목말라 죽게 하려느냐"라고 원망했고, 민수기11:5-6을 보면 "애굽에서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거늘 이제는 정력이 쇠약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민수기 14:2을 보면 "애굽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을뻔했다"고 원망했고, 민수기 16:41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다"고 대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원망한 백성들은 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원망을 싫어하십니다. 민수기 21:5을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느냐 이곳에는 식물도 물도 없도다 "라며 원망하고 대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 불뱀을 동원해 그들을 물게 하셨고, 독이 올라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백성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자는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민수기 21장 9절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구리로 만든 뱀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물 수도,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놋뱀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은 그 놋뱀을 통해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바라본 사람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놋뱀 사건을 십자가 사건과 대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놋뱀을 바라보아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모순이요, 비과학적이며 비합리적인 가설에 불과합니다. 이치에 맞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믿고 바라본 사람들은 죽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33년 짧은 생애를 살다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ale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결과는 둘입니다. 그 약속대로 믿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약속을 불신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고, 1:25에서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멸망 받을 사람들에게는 유치하고, 어리석고, 허무맹랑하고, 허약한 사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십자가 사건이 능력과 사랑과 구원의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믿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고 바라보아야 구원을 받게 됩니다.
2.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15절에서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고 했고, 16절에서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18절 역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믿어야 영생을 얻고, 멸망하지 않고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16절에서 주목할 부분은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과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며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믿어야 하고, 믿을 수 있고,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으면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왕도, 대통령도, 회장도, 장군도, 박사도, 남자도, 여자도, 서양인도, 동양인도, 어른도, 아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뜨거운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를 믿지 않고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0:33을 보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부인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둘째,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서 일부러 죄 짓고 타락하는 사랍들입니다. 히브리서 10:26을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고 했고, 29절을 보면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당연히 중한 형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6:4-6을 보면 "예수 믿고 은사 받고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버림받는다"고 했습니다.
셋째, 예수 믿고 따르노라며 못된 짓만 골라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가룟유다는(마 26:14-16) 예수님의 제자까지 되었지만 예수를 팔아 넘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었습니다.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딤전 1:19-20)는 바울의 전도를 받고 교회 섬기는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교회 안에서 못된 짓만 골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믿음이 파선했고, 사단에게 빠졌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12에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이미 받은 구원을 저버리거나 사단에게 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어 인류를 죽음과 절망과 공포 속에 빠지게 했고, 자신도 멸망했습니다.
앞으로 세계는 유신론과 무신론, 유일신론과 다신론, 기독교 문명과 반기독교 문명의 충돌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요한복음 3:16의 공식을 벗어나서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종교다원주의라는 신학사상이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구원받고, 부처 믿어도 구원받고, 마호메트 믿어도 구원받고, 공자 믿어도 구원받는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누구를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믿는다는 그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을 믿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4:12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길은 하나뿐입니다.
부산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비행기, 자동차, 기차, 배를 타고 그리고 걸어서 갈 수 있지만,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결론으로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복음 14:6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구원이십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을 지켜야 합니다. 아멘.
구원받은 사람들 이사야 43:1-3절
철학이 찾고 규명하는 대상은 인간입니다. 철학은 부단히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 존재를 규명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신학이 찾고 규명하는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가? 즉 하나님의 존재를 찾고 규명하는 것이 신학이 하는 일입니다.
이사야 43장은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선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시라는 것이 설명입니다. 좀더 자세히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은 누구입니까?
1.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1절을 보면 "너를 창조했다 조성했다 "고 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6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했고,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7절을 보면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라고 했고,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시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산절로 수절로"입니다. 이 세상이나 사람은 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뜻이 있어 창조하셨습니다.
맹인가수 이용복 씨가 부른 노래 가운데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부여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그런 노래를 애창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것이 본문 7절의 설명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목적은 돈을 벌고 성공을 하고 출세를 해도,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어도, 인기를 얻고 명성을 얻어도 그 목적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라야 합니다.
성악가 조수미가 이탈리아 산타세칠리아 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할 때 핀란드 콩쿠르에 최연소자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유학간 지 1년 반정도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콩쿠르에서 우승 후보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일등은 중국인이었습니다. 심사결과를 놓고 사람들은 "심사에 문제가 있다", "수미가 실력은 훨씬 더 위였다"라며 격려했지만 수미는 넉달동안 실망, 좌절, 울분 때문에 노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핀란드와 중국은 수교를 앞두고 정치적 여건을 고려해 중국인에게 일등을 주기로 미리 각본이 짜여져 있었습니다. 좌절하고 있던 조수미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 것은 그녀의 어머니였습니다. "나는 너에게 단 한번도 일등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수미야, 노래는 아름다운 거야. 그런데 일등을 하지 못했다 해서 질투가 가득 찬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면 그건 이미 노래가 아닌거란다. 최고가 아니고 일등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단다"그렇습니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왜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하는가? 내 생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2.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1절을 보면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라고 했고, 3절을 보면 "나는 네 구원자"라고 했고, 11절을 보면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했고, 12절에서는 "내가 구원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21을 보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전한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16에서는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다"고 했고, 3:17에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조건치고는 너무나 파격적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1억씩 내야 한다든지, 한번 죄사함 받기 위해 10억씩을 내야 한다면 재벌만 죄사함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식축구선수 O.J 심슨은 백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일반 여론이나 심증은 그가 범인이라는게 중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그동안 번 돈을 변호사 비용으로 다 내놓고 최고의 변호사들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죄사함 받기 위해 동원할 돈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믿음 하나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찌 감사치 않을 수 있습니까?
141장 찬송시를 쓴 아이작 왓츠의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라는 찬송을 듣고 맹인 페니 크로스비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크로스비는 "나는 이 찬송을 듣고 내 영혼이 하늘빛으로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감사에는 익숙하지만 큰 감사에는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커피 한 잔, 냉면 한 그릇, 작은 선물을 받고 난 다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합니다만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대해선 잊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용서받기 어려운 죄, 기억도 다 못하는 태산 같은 죄,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무서운 죄, 쌓이고 쌓여서 태산보다 더 큰 죄를 값없이, 공로없이 용서받았습니다.
그 은혜를 감사합시다. 그 사랑에 감격합시다.
왜 구원하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만드셨고 조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43:1을 보면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조성하신 자", "너를 구속하신 자"라고 했고, 7절에서는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절 끝에서는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인간이 죄 짓고 죽음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구원하신 것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 "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한마디 속에 하나님의 강력한 소유권 주장이 들어있습니다. 나는 내 것도, 부모의 것도, 남편의 것도, 아내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2절을 보면 "물 가운데로 지날 때 함께 하시고 침몰하지 않게 하시고 불타지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5절을 보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에 구원하시고, 사랑하고,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1966년 6월에 결혼했습니다. 그러니까 제 아내와 35년을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저는 제 아내에 대해 아는 면도 있고 모르는 면도 있습니다.
최씨 집안의 딸이라는 것, 나와 결혼해 35년을 함께 살았다는 것, 나를 위해 희생하고 동고동락했다는 것, 그리고 성깔이 있다는 것,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 최씨 특유의 고집이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은 제가 아는 부분들입니다.
하지만 때로 돌아앉아 우는 이유, 토라져 등돌리고 있는 이유, 털어놓지 않는 속내 등 그런 부분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잘 모릅니다.
나를 지으시고 조성하신 하나님은 앉고 일어서는 것도, 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나의 고민과 걱정과 답답한 사정도 다 아십니다. 그래서 해결하시고,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십니다.
1절을 보면 "두려워 말라 "고 했고, 5절에서도 "두려워 말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함께 하심을 믿으면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창조하신 여호와", 3절을 보면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네 구원자", 11절을 보면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2절을 보면 "나는 하나님이니라", 15절을 보면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고 했습니다.
창조자, 구원자, 거룩한 자, 왕이시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11절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은 구원의 유일성과 존재의 유일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구원도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를 알고 믿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야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타이거 우즈는 세 살때부터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 살때부터 지금까지 "골프를 잘 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연습"이라고 대답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우즈를 훈련시켰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연습도중 "지금부터 우즈골프학교 시작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우즈는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골프 연습을 하는 우즈 옆에서 아버지는 온갖 방해를 합니다. 부스럭거리고, 움직이고, 걸어다니고, 쿵쾅거리고.... 공을 치려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소리난 쪽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 아버지의 호통소리가 들립니다. "공을 치려거든 벼락이 쳐도 이쪽으로 눈을 돌리지 말아야지..." 골프가방을 넘어뜨려도, 곁에서 기침을 해도 아버지의 훈련방법을 안 우즈는 공만 바라보고 공을 쳤습니다.
훗날 우즈는 "아버지가 만들어내는 어떤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고 끓어오르는 화를 견뎌냈던 훈련이 나로 하여금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갖게 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시사하는 바 큰 얘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시고 연단하십니다. 이스라엘을 40년간 거친 광야에서 연단하시고 훈련하신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처럼 실패도 겪게 하시고, 고통도 겪게 하시고, 좌절도 맛보게 하시고, 슬픔도 만나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구원입니다.
13절을 주목합시다.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나님만 구원자이십니다. 그 손에서 빼앗을 자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멘!
구원받은 사람들 갈라디아서 6:14-18절
오래 전 어느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응접실 정면 벽에 불(佛)자를 쓴 대문짝만한 족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해인사 큰스님이 쓴 글씨라며 자랑삼아 대답했습니다. 예배를 드리자고 했더니 응접탁자 밑에 있는 성경찬송을 꺼내며 옷자락으로 먼지를 닦아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재작년 새로 집 짓고 이사할 때 전에 다니던 교회 목사가 선물로 가져다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날 저는 두 가지 때문에 속이 편치 않았습니다.
하나는 불(佛)자족자는 벽에 보물처럼 걸어 놓고 성경찬송은 탁자 밑에 먼지가 쌓이도록 넣어두었다는 것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은 큰스님이라고 부르고 주의 종은 목사라고 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뭔가 달라야 합니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1960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작가 펄벅은 한국을 소재로 한 `살아있는 갈대`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대한 제국 말기에서 1945년까지 나라를 위해 싸운 한 가족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 `살아있는 갈대`입니다. 펄벅은 작품 첫 머리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예찬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미국이나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가지지 못한 고유한 심성과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일본인이나 중국인인척 해도 한국 사람의 특성을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펄벅이 예찬했던 것처럼 보석 같은 자랑거리를 더욱 빛나게 해야 하고 한국인의 긍지를 전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구원받은 사람다운 행실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 네 번째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1.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14절을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위해 못 박혀 죽으신 형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대속과 속죄의 상징이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십자가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와 그 사건만을 전하고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 외에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통 유대인이었고 베냐민지파였습니다.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가말리엘 선생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으로서는 드물게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 믿고 난 후로는 온갖 고통과 위험을 겪어야 했고, 주를 위해 삶을 다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린도전서 2:2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고, 9:16에서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은 자신을 구원해준 예수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본래 서울 삼성병원과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 등 그 병원 가족들이 저희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아무런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3주 동안 그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 진료팀이 최선을 다해 저를 치료해 주었기 때문에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삼성병원 홍보요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운영방법, 관리시스템, 진료태도 등 기회 닿는 대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제 개인 신상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만 바울은 죄에서 구원받고 하나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십자가만을 자랑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말하고 전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나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그때 구원을 이루셨네
마지막 피 한방을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2.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 믿고 구원받고 난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인연을 맺고, 세상과 짝하고 살던 자신의 삶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라는 말씀의 원문의 뜻은 미래완료형입니다. 한번만 못 박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번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짓지 않는 것, 한번만 나쁜 짓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 다음과 같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첫째, 견딜 수 없이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제 생애 처음으로 제 복부를 20cm길이로 절개했습니다. 절개할 때는 마취상태였으니까 잘 몰랐습니다만 문제는 마취에서 깨어날 때였습니다. 숨만 쉬어도 꿰맨 곳이 찢어지고 아팠습니다. 그 아픔은 필설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진통제를 주사하지만 그때뿐 약효가 떨어지면 그 아픔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참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쓰리셨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십자가는 아픈 사건입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 나도 함께 주님의 아픔에 동참해야합니다. 주님은 매맞고 못 박히고 조롱당하고, 나는 편하고 행복하고 복 받고 잘살고 칭찬만 받겠다는 태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움직이지 못합니다.
천하없는 장사라도 두 손목에 못 박고 두 발목에 못을 박아 매달면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움직이면 통증이 심해지고 못 박힌 곳이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 꼼짝을 못합니다. 입도, 손도 발도, 내 맘대로 못 움직입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면 내 맘대로 할말도 못 하고, 가고픈 곳도 못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먹지 못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잠깐 고통스럽지만 영원히 우리를 살리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십자가 서는 곳에 내가 서고, 십자가 가는 곳에 내가 가고, 그 십자가를 자랑하면 나는 십자가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파멸과 죽음으로 끌고 가겠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면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새 사람이 됩니다.
15절을 보면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17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성형외과 전문의의 말을 빌리면 신체부위를 성형하는 경우 그 효과가 10∼20대가 제일 좋고, 40∼50대는 50%정도이고, 60∼70대는 하나마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0∼20대의 성형수술도 나이가 들고 피부가 노화되면 다시 해야 될 부분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형수술만으로 완전히 새사람을 만들 수는 없고 태어날 때 잘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최첨단 성형수술도 새 마음, 새 인격, 새 인간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예수 믿으면 "새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된다"고 했고, 고린도후서 5:17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새롭게 태어난 존재입니다. 거듭난 존재, 구원받은 존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4. 평안합니다.
16절을 보면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 지어다"라고 했고, 18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결과는 마음이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고, 지키시고,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행동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80지난 노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의 건강은 젊은이와 같다면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운동을 하고, 헬스클럽에서 매일 몸을 단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강관리법은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80평생 깨달은 진리는 걱정으로는 단 1%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뜻깊은 얘기였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걱정을 멀리하고 평안하게 살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께 맡겨버리면 됩니다.
베드로전서 5:7을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맡기고 평안을 누리며 살아갑시다.
5. 흔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17절을 보면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했습니다.
흔적은 스티그마라고 합니다. 고대사회에서 주인이 노예가 자기 소유임을 확인하기 위해 노예의 몸에 낙인을 찍었는데 그것을 스티그마라고 했습니다. 흔적이 찍힌 노예는 그 소유권이 주인에게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스티그마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예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의 바울을 구원하고 살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의 소유입니까? 내 소유권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가 나의 주인입니다.
예수가 나의 소유권자입니다.
나는 예수의 스티그마를 가진 사람입니다. 내 맘대로 내 멋대로 살면 안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 자랑하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평안을 누리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