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7일 (목) 이 곳에 수록된 사진들은 크릭하면 모두 크게 볼 수 있슴.
이 사진은 2년전인 2012년 9월 12일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있는 선두중앙교회의 산후성전 출입구에 걸려 있던 사진을 찍은 것이다. 이후 난, 이 사진속의 인물들이 궁굼했지만 1935년도에 찍은 사진이니 사진속의 인물들이 현재는 모두 80이 넘었을테고 따라서 생사여부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는 분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수 없어 덮어 두었던 일이였는데 오늘 황영자 선생님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았다. 확실 하지는 않지만 이 교회에 오랫동안 다니시고 있다는 권사님을 알아냈다고 했기에..... 그러나 그 권사님은 찾지 못했다.
선두중앙교회의 역사는 깊다. 설립된지가 100년도 넘었다고 한다. 선두중앙교회는 역사만 깊은 것이 아니고 1919년 삼일운동 때에는 강화지역 삼일운동의 진원지로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교회이기도하다.삼일운동 당시 이 교회 장로였던 유희철 선생이 만세운동으로 일경에 체포되여 1년간 옥고를 치뤘다고 한다. 선생은 1942년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 했지만 그 기상은 선두중앙교회와 함께 영원하리라.
선두중앙교회의 옛 성전이다. 산후성전.
산후성전은 1956년도에 새로 지었다고 하니 50년은 더 된 건물이다.
산후성전 뒤 산 허리에 오래된 집이 있어 무조건 올라가 봤다.
그런데, 폐가다.
사람이 떠난지 얼마나 됐는지 집은 이미 반쯤 허무러저 버린 폐가였다.
참 반듯한 집인데.....
창고 건물도
죽어가고 있다. 모든것이 온전하지 않았지만
서까래 아래 매달린 빈 병들만은 먼지를 뒤집어 쓰긴 했지만 온전했다.
예전엔 귀했던 등유를 담아 두었던 듯 기름 찌꺼기가 묻어 있는 병들 중엔 강릉에서 제조 했다는 경월 소주병도 있었다.
이 집 주인은 교회에 다녔었을까? 주인은 아닐수도 있지만 아마도, 아이들은 교회에 다녔을 것이다. 왜냐면 이 집 마당에선
이렇듯 아름다운 교회가 내려다 보이니까. 날마다 들려오는 종소리, 그리고 눈내리는 겨울밤, 들려오는 캐롤 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부름이였을테니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떠난 빈 집 뿐. 공허하다.
난 이 곳에서 상념에 젖었다.
따뜻하고 행복했던 그때를 그려 본다. 아!! 슬프도록 보고푼 님이여. 당신은 지금 행복하나요... 그런가요.
내일이면 늦을지도 몰라, 곧 무너질것 같은 저 담 같이 끝날지도 모르니 오늘 할일은 오늘에.. 미안하다, 고맙다,사랑한다, 오늘 말하자.
무너저 가도 아름다운 것은 그래도 아름답다.
교회 아래 은퇴한 교장선생님의 집에서 교회에 걸린 사진 원본을 주셨다는 할머니를 만났다. 사진의 우측 맨아래 까만 두루마기를 입은 어린 남자아이(당시 4살)와 결혼 하셨다는 할머니의 말씀은 그때의 어린이가 지금은 84세가 되었다고 했다. 출타 중이라 만나 뵙지는 못 했지만 대신 제일 오래 이 곳에 사시고 계시다는 할머니 댁을 소개해 주셨다.
소개받은 할머니댁을 찾아가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나서 주신 유상례(95세) 할머니가
황영자 선생과 함께 성전으로 가는 길이다
90년 가까이 이 길을 오간 할머니지만 오늘 우리와 함께하는 길은 할머니에게도 의미가 있으리라.
성전 입구에서, 늘 보던 사진이지만 오늘은 되 새기며 찬찬히 보는 듯한 할머니의 시선이 따듯하다.
할머니는 지금 추억을 보고 있다. 아버지와 본인 그리고 동생을
까만 두루마기를 입은 분이 할머니의 아버지. 맨 왼쪽 아래가 동생, 그리고 제일 커 보이는 여학생이 할머니다. 15세였다고 했다.
할머니의 손이 닿은 어린 사내 아이가 이 사진을 제공한 지금은 84세가 되신 할아버지다.
옛 생각을 하고 계시는걸까?
교회 안에 걸려 있는 할머니의 결혼 사진이다. 지금은 95세의 최고령 권사님이지만 이때는 17세의 아름다운 처자였다.
두살 연상의 신랑을 만나 10남매 (아들5,딸5)를 낳아 모두 훌륭하게 키워 사회로 내 보냈다. 할머니는 무남 6공주 집안의 장녀다.
할머니의 결혼사진 앞에서
함께 기도를 했다.
무ㅓ든 감사하고 사는 할머니, 오늘 기도 내용도 필경은 나그네들을 살펴 달라고 했을 것이다.
맑은 마음을 가진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게해 주세요. 하나님이 들어 주실거라 믿는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두 사람은 이후 여러번 포옹을 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할머니의 집으로 다시 갔다.
커피 한 잔 먹으려고,
우리 엄마도 살아 있으면 이럴텐데.... 할머니 건강하셔서 감사해요.
쓰다듬고 포옹하고 뜨거운 마음을 나눴다. 감동이다. 할머니의 70이 넘은 장남도 즐거워 했다.
이제 이별이다.
할머니는 오래도록 우리를 보고 있었다.
1번 이야기를 해준 유상례할머니, 2번 유상례 할머니의 동생, 3번 유상례 할머니의 아버지 (주일학교 교사), 4번 사진을 제공 한 84세된 할아버지. 가운데 콧수염을 기른 분이 독립운동가 유희철 장로로 추정됨. 이 사진에 목사님은 없고 뒷 배경의 초가집은 과거의 교회로 현재의 이 자리가 아니라 조금 떨어저 있던 곳에 있었다고 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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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위솔 원문보기 글쓴이: 바위솔
첫댓글 해맑은 할머니
사진속 새색시가 어떤 분일까 보고파 했었던 기억 수년전인데
산후성전 바위솔샘 처음 모시고 갔던 심도기행때 그리 웃으시더니..
다시 찾은 산후성전 수차례만에 요번엔 샘의 청이 있으셔서
동검도 헤집고 다니기하며 하루 왼종일 기쁜중에 권사님 전번을 받고
전화를 드려도 영 통화 아니되었건만 정작 열일곱 새색시 장수를 누리시는
기도하는 할머니모습으로 친견을 하던 날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에도 해맑게 웃으시고..
무얼 어떤반찬을 좋아하시냐 여쭈니
김치지지미(찌게를 뜻하는 말) 하나만 가져도
꿀맛나는 삶이라시며 배움깊고 넉넉하면 당신은 전도의 사명있으시다고.
마침 참깨를 볶고 계시던 맏며느님은
또 얼마나 소녀같으시던지
그냥 맏아드님 두내외분을 뵈며 어찌하여
황순원의 소나기는 절로 생각나는겐지~ ?!!
할머니는 나올적에 집 앞 은행나무가 무척 많이 열렸다시며 은행을 줄까? 하시기에
"아니예요. 할머니 많이 드시고 계셔요. 글구 또 놀러와도 되죠? " 하자마자 "그럼그럼 자주와요"라구
할머니는 두 손을 흔들어주고 아드님은 그 곁에서 또 같이 손 흔들어주시며 또 오라구~ ~~ *^ㅡ^*
해도 저물었는데 일정 핑계하여 그냥 또 먼길 가시게해 마음에 걸렸어요 샘
다음길엔 느긋 시간잡아 저녁 따뜻한 국밥이라도 드시고 가시면 좋겠어요.
참 오른편 맨 뒤의 한복 고은 처자님도 주일학교 여선생님이시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