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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 트렌드> 가 색다른 연비 레이스를 진행했다. 공인 복합연비 대비 가장 높은 연비를 기록한 팀에게 우승이 돌아가는 레이스다. XC90 D5와 르반떼 SQ4, 718 박스터 GTS가 레이스에 참가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우승을 걸 텐가?
이달 우리는 색다른 연비 레이스를 진행하기로 했다. 무조건 높은 연비를 기록하는 팀이 우승하는 게 아니라 공인 복합연비에 비해 높은 비율의 연비를 기록한 팀이 우승하는 레이스다. 편집부 기자 다섯 명과 나윤석 칼럼니스트가 레이스에 출전했다. 두 명씩 한 조가 돼 레이스에 참가한다. 문제는 모두의 몸무게가 다르다는 거다.
공정한(?) 레이스를 위해 ‘조 추첨 사다리타기’를 열었다. 여섯 명 중 몸무게로 상위 세 명 안에 드는 나윤석 칼럼니스트와 고정식 기자가 한 조가 됐다. 조가 결정되는 순간 나윤석 칼럼니스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편집부에서 가장 가벼운 안정환 기자는 두 번째로 가벼운 류민 기자와 한 조가 됐다. 둘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막내 박호준 기자와 더 막내인 전우빈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마지막 조로 결정됐다. 차종은 세 조가 알아서 정해야 한다. 각자 전략에 따라 정하라고 했다. 세 팀이 고른 차종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볼보 XC90 D5와 마세라티 르반떼, 그리고 포르쉐 718 박스터. 이건 연비 레이스를 위한 차종이 아니다. 하지만 세 팀이 차를 고른 이유는 분명했다.
레이스가 시작되기 이틀 전 코스를 공개했다. 첫 번째 코스는 서울 대치동에서 영동대교를 넘어 동일로를 달리다가 사가정역 사거리에서 용마터널을 지난 후 덕소 강변대교를 달리는 코스다. 동일로라면 시도 때도 없이 막히기로 유명한 길이다. 작전이랄 게 있을 수 없다. 두 번째 코스는 덕소 강변대교를 달리다 중미산길을 넘어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리는 코스다. 평일이라 많이 막히진 않겠지만 산길 와인딩이 복병이다. 마지막 코스는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강촌 IC에서 빠져나와 춘천 송암스포츠타운에 도착하는 코스다. 고속도로와 한적한 국도가 섞여 있어 연비를 높이기에 최적이다. 그렇다면 이번 레이스에선 누가 우승을 차지했을까?
‘이번 생은 글렀어. 아니, 이번 경기는 글렀어.’ 나와 고정식. 체중을 합하면 200킬로그램은 가뿐히 넘는 우리가 한 조가 되는 순간, 희망은 별로 없어 보였다. 자동차 회사가 연비를 높이기 위해 차의 무게를 단 몇 킬로그램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간단히 무력화하는 체중이니 말이다. 출발부터 느낌이 좋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그래, 무거운 차를 고르자!’ 우리 체중이 무겁다지만 이미 무거운 차의 입장에서 보면 하찮은(?) 수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연비 레이스의 규칙은 공인 복합연비보다 몇 퍼센트 더 잘 나왔는가, 즉 비율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무겁고 연비가 나쁜 차를 선택하면 우리의 체중이 미치는 영향도 줄일 수 있고, 코스에 따라서는 연비를 많이 개선할 수도 있겠다는 전술이었다.
‘무겁고 연비가 좋지 못한 차’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차종은 대형 SUV다. 기본적으로 2.5톤 이상의 공차중량에 리터당 5~7킬로미터의 복합 공인연비를 지녔다. 이 정도라면 우리의 체중 0.2톤(+알파)이 더해지더라도 티가 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공차중량 1.4톤인 포르쉐 박스터에 60킬로그램대의 ‘마른’ 사람 둘이 타는 것과 거의 같은 비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염두에 두었던 차들 모두 일정이 잡혀 있거나 신모델 출시 등의 사정으로 시승차가 없었던 거다. 고정식 기자가 수소문하느라 고생을 했는데도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겨우 찾은 차가 볼보 XC90 D5다. 일단 겉모습에서는 우리가 염두에 둔 그림과 비슷하기는 하다. 5미터에 육박하는 길이와 2미터에서 몇 센티미터 빠지지 않는 폭 등 대형 럭셔리 SUV에 비해 높이만 좀 낮지 별로 꿀리지 않는다.
하지만 XC90는 너무 잘 만든 차였다. 이렇게 커다란 덩치를 2.2톤 이하로 경량화했고, 2리터 터보 디젤 엔진으로도 잘 달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공인연비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복합연비가 이미 리터당 11.9킬로미터다. 리터당 주행거리를 상당히 끌어올리지 않으면 개선 폭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거다. 시합 이틀 전 코스가 공개됐다. 이미 참가차는 정해졌기 때문에 이 또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첫 번째 코스는 시가지와 자동차전용도로가 섞인 복합 구간이지만 단풍놀이를 떠나는 차가 많다면 시내보다 더 막힐 수도 있다. 두 번째 코스는 서울 근교 와인딩의 성지였던 중미산을 넘는 구간이다. 무거운 차에게는 이 구간이 가장 어려울 듯하니 오히려 XC90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지막 코스는 고속도로와 한적한 교외 도로가 섞여 있다. 배기량이 큰 대형차에게 가장 유리한 구간이다. 결론적으로 XC90와 200킬로그램 덩어리의 조합인 우리에게는 유리한 게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린 졌다. 패인(敗因)은 두 군데에 있었다. 첫째, 당일 기온이 낮아서였는지 시가지 주행에서 에코 모드를 사용했는데도 스타트 스톱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아마도 열효율이 극도로 높은 볼보의 디젤 엔진이 엔진을 덥히는 데 열을 너무 낭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신호등마다 거의 걸렸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다. 만일 시가지 구간이 마지막이었다면 엔진이 충분히 덥힌 이후였으므로 결과는 훨씬 좋았을 것이다. 둘째는 유명산 오르막이었다. 다른 두 모델은 마력 대비 무게가 좋은 고성능 모델이었지만 XC90는 차체에 비해 엔진이 작은 다운사이징 모델이다. 따라서 오르막에서는 엔진을 좀 더 열심히 돌려야 했다. 그래서 시가지보다 연비가 좋아졌던 경쟁자들에 비해 우리는 시가지 수준을 유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 고속 구간에서는 저회전 토크로 크루징하며 터보 디젤 엔진의 토크를 충분히 활용한 덕에 기름을 가장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최종 결과는 리터당 평균 14.9킬로미터. 우리가 절댓값으로는 단연 1등이다. 가장 먼저 도착했는데도 쪼그만 718 박스터보다 기름을 덜 먹었다. 이렇게 큰 차가 리터당 15킬로미터에 달하는 연비를 기록하다니 그 자체로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꼴등이란다. 공인연비 대비 연비 개선 비율로 승부를 결정하는 규칙 때문이다. 아니다, 고정식 때문이다.
글_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실 난 경쟁심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다. 이번 연비 레이스에서도 그냥 바람이나 쐬고 오려 했다. 그런데 팀이 나뉘고 코스가 결정된 후 주위가 시끌시끌해졌다. 탑승자의 몸무게를 감안해 무겁고 토크가 높은 차를 고르겠다느니, 아예 연비가 낮은 차로 퍼센테이지를 높이겠다느니 이런저런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음, 갑자기 열정을 불태우는 걸 보니 조금 불안해졌다. 그래도 체면이 있는데 꼴찌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진행을 맡은 에디터는 평소 후배들에게 후한 선배다. 그런 그녀가 1등 상품을 기대하라고 하니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다.
일단 우리 팀은 무게에서 유리했다. 나와 짝이 된 안정환 기자는 편집부에서 가장 가볍고, 난 두 번째로 가볍다(정말이다!). 그래서 연비 좋은 작은 차를 골라 ‘역대급’ 연비에 도전해볼까도 했다. 그런데 그런 차들 대부분은 복합연비가 뛰어나다. 이번 연비 레이스는 단지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게 아니다. 공인연비 대비 몇 퍼센트나 더 높은 연비를 기록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가볍고 엔진은 작지만 복합연비가 좋지 않은 차가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포르쉐 718 박스터 GTS를 골랐다. 배기량은 2.5리터나 되지만 4기통(수평대향)임에도 복합연비가 리터당 8.9킬로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종 선정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다른 팀들은 수군수군 또 전략을 짰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스페어타이어는 물론 뭘 또 뜯어낸다고 한다. 하아…. 그럼 우린 뭘 하지? 718 박스터 GTS는 스페어타이어도 없다. 여기저기 경량화를 위해 마그네슘까지 쓴 차인데 불필요한 게 뭐 얼마나 있겠나. 곰곰이 생각하다 2년 전쯤 자동차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알루미늄 테이프 튜닝을 시전하기로 했다. 그렇다. 토요타가 정전기 저하로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연비와 핸들링까지 개선된다고 밝힌, 그 마법의 은색 부적 말이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절대로 꼴찌는 안 된다. 그런데 이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다. 붙일 때나 뗄 때 고생하는 건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이 다 이것만 쳐다본다. 뭐, 나라도 저게 무슨 코스프레인가 싶을 거 같다. 그것도 우아한 포르쉐의 로드스터에.
일단 레이스 도중 변속은 모두 수동으로 했다. 718 박스터 GTS의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1800rpm 부근에 도달해야 기어를 바꿀 수 있다. 확실히 연비보단 성능에 치중한 기어비와 세팅이다. 7단 기어는 시속 72킬로미터에서 들어간다. 수동 모드를 유지해도 시속 68킬로미터 정도가 되면 다시 기어를 내린다. 파워트레인에 부하가 심해지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고 내구성도 저하되니 당연한 세팅이다.
변속 시점을 1800rpm에 맞췄다는 건 그 부근이 가장 토크가 원활하다는 이야기다. 제원상 최대토크 발생 시점도 1900rpm이다. 7단에서 1800rpm을 찍는 시점은 시속 100킬로미터니 이 속도를 넘기지 않는 게 유리하다. 평지나 내리막에서는 시속 85~90킬로미터 정도가 적당한 듯한 느낌이다. 시내에선 중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긴 내리막이 이어지거나 앞에 신호가 걸렸을 땐 무조건 타력 주행을 했다. 718 박스터 GTS엔 상황에 따라 클러치를 떼어 효율을 높이는 ‘세일링’ 기능이 있지만 이건 6단부터 작동한다.
섀시는 단단한 스포츠에 뒀다. 차체 앞뒤가 흔들리며 에너지가 낭비되진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다. 하루 종일 이러고 다녔더니 아직도 허리가 아프다(아,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지붕은 당연히 닫고서 떠났다.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의 결과 우린 1차와 2차 코스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시내 구간에서 리터당 13.6킬로미터를, 중미산을 넘는 구간에선 리터당 13.9킬로미터를 찍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중미산 와인딩 로드를 거북이처럼 넘는 일이었다. ‘야야, 너 정말 여기서도 기어갈 거야?’라는 718 박스터 GTS의 유혹을 이겨내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모르긴 몰라도 사리가 두 개쯤 늘었을 거다).
3차 코스는 고속도로와 통행이 원활한 국도 구간. 2차 코스까지의 결과를 보고 기고만장해진 난 ‘청명한 가을 하늘이나 즐기자’라는 생각으로 지붕을 열고 달렸다. 그런데 이게 결국 내 발목을 잡았다. 2차 코스까지 2퍼센트 이상 뒤떨어져 있던 르반떼 SQ4가 결승에서 0.9퍼센트 차이로 우릴 추월한 것이다. 난 잠시 ‘톱 오픈’이라는 건방을 떨었던 자신과 알루미늄 테이프의 무능력함에 실망했지만 담당 에디터가 “호호, 1등 상품은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안도로 바뀌었다. 아, 그거 정말 다행이다. 2등 해서.
글_류민
전략의 승리였다. 우리 팀이 연비 레이스에서 1등을 차지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선배는 ‘그냥 너희가 타고 싶은 차 가지고 온 거 아니야?’라며 코웃음을 쳤다. 마세라티 홍보 담당자조차 르반떼 S로 연비 대결을 펼치겠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우린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은 현실이 됐다.
학창 시절 선생님은 항상 “문제 속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그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공부를 못했나?). 10여 년이 지나서야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연비 레이스를 승리로 이끈 답은 정말 문제 속에 있었다. 이번 대결은 공인 복합연비 대비 가장 높은 연비를 기록한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아무리 높은 연비를 기록하더라도 원래 공인연비가 높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다시 말해, 공인연비가 리터당 5킬로미터인 차를 타고 10킬로미터의 연비를 기록하는 편이 리터당 20킬로미터인 차를 타고 30킬로미터를 기록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우리는 그 부분을 공략하기로 했다. ‘공인연비가 낮은 차를 타고 최대한 연비를 올리자’는 작전이었다. 정공법은 아니지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다. 솔직히 레이스에 참가한 세 팀 중 우리 팀이 가장 약체였기 때문이다. 산전수전 다 겪어 해박한 자동차 지식을 가진 나윤석 칼럼니스트 팀이나 운전이라면 오밤중에도 눈을 번뜩이는 류민 선배와 비교하면 1년 차 에디터와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조합은 조무래기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작전을 세우고 나니 차를 정하는 건 간단했다. 최대한 rpm을 낮게 유지해야 하는 시합에서 시내와 고속도로뿐 아니라 와인딩 코스를 통과하기에 4기통 엔진은 너무 작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6기통 모델 중 가장 낮은 공인연비를 지닌 차를 타기로 했다. 강병휘 카레이서가 6기통을 얹은 크라이슬러 300C를 타고 수입차 연비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의 선택을 도왔다. 조사 결과 조건에 가장 잘 맞는 차는 마세라티 르반떼 S였다. 트윈터보를 단 르반떼의 3.0리터 V6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430마력을 내뿜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지만, 복합연비가 리터당 6.4킬로미터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팔리는 6기통 모델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우리가 르반떼를 고른 데는 연료 절감에 도움이 되는 I.C.E(Increased Control & Efficiency) 모드를 사용하면 일반 모드로 측정한 공인연비보다 높은 연비를 기록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촬영 당일 무게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스페어타이어와 각종 공구를 트렁크에서 덜어냈다. 낑낑거리며 15킬로그램이 넘는 스페어타이어를 옮길 때 ‘이렇게까지 해서 이겨야 하나?’ 싶었지만, 곱게 잘라온 알루미늄 테이프를 박스터 GTS에 구석구석 붙이고 있는 류민·안정환 팀을 보고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심지어 나윤석·고정식 팀은 무게를 줄인다며 아침을 굶고 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건 단순한 레이스가 아니었다. 지고는 못 사는 승부욕 강한 사내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서울 대치동에서 출발해 춘천까지 가는 코스였는데 마침 춘천이 고향인 전우빈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내비게이션보다 길을 잘 안내했다. 예를 들어 “여기는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려는 차가 많아 1, 2차로가 항상 막히는 곳이니 3차로로 주행하는 게 빨라요”라고 말해주는 식이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꽉 막힌 시내에서 연비를 엄청 갉아먹었을 게 분명하다. 시내를 벗어난 후에는 시속 80킬로미터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최고 단수인 8단 기어가 시속 80킬로미터 이상에서만 물리는데, 엔진회전수를 1100rpm까지 떨어뜨릴 수 있어 연비 향상에 적합했다.
순조로운 줄만 알았던 레이스는 오르막 코스에서 고비를 맞았다. 고속도로에서 항속 주행할 때 리터당 13킬로미터까지 치솟던 연비가 오르막길에 들어서자마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2.2톤이 넘는 공차중량에 있었다. 크루즈컨트롤과 섬세한 발끝 컨트롤을 동원해 어떻게든 rpm을 낮게 유지하려 애썼지만 2000rpm을 넘기기 일쑤였다. 시행착오 결과 기어를 3단에 넣고 시속 35킬로미터 정도로 언덕을 오르는 게 그나마 rpm을 가장 낮게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그렇게 서행했다가는 뒤차의 경적 세례를 받을 게 뻔했다. 산을 내려가는 길에 가속페달을 한 번도 밟지 않았지만, 한번 떨어진 연비를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코스 후반부에 교통량이 적은 국도를 항속 주행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열했던 승부는 간발의 차이로 갈렸다. 리터당 10.2킬로미터를 기록해 공인연비 대비 59.3퍼센트를 끌어올린 르반떼 SQ4가 58.4퍼센트를 올린 박스터를 불과 0.9퍼센트 차이로 눌렀다. 만약 공인연비가 0.1킬로미터만 낮았어도 박스터에 1위 자리를 내줄 뻔했다. 결과를 들은 다른 팀은 그럴 리가 없다며 연신 계산기를 두드렸지만 결과가 바뀔 리 없었다. 스페어타이어까지 꺼내가며 무게를 줄인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당분간 <모터 트렌드>의 연비왕 타이틀은 박호준·전우빈의 차지다. 감개가 무량하다.
글_박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