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간 금고 속에... KFC 튀김옷의 영업 비밀
<8> KFC의 비밀 레시피
편집자주※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오리지널 레시피에 서명을 남기는 순간 대령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한 인생 역정의 끝을 맞이하는 기분이었을 거라고. 프라이드치킨 프랜차이즈인 KFC를 설립하고 11가지 배합 양념의 비밀을 남긴 할란드 샌더스 대령(1890~1980년) 이야기다. 직함 탓에 오해할 수도 있지만 샌더스는 군복무를 한 적이 없다. '대령(colonel)'은 명예 직함으로 공을 이룬 이들에게 켄터키주에서 수여하는 비공식 명예 칭호이다. 샌더스는 1935년 칭호를 받았는데, 물론 치킨 덕분이었다.
어쩌면 그는 성공을 예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으며 공부도 일찍 그만두었고, 밥벌이를 위해 자주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농사도 시도했고 군복무도 했으며 철도 회사에도 몸담았다. 소방관으로 자리를 잡으려 시도했고 법무사로도 일했지만 성미 탓에 의뢰인과 싸움을 벌여 업계에서 퇴출됐다. 그런 그에게 전환점은 주유소였다. 1930년, 정유회사인 셸이 켄터키주 노스 코한의 주유소를 무월세로 빌려주었는데 한편에서 치킨을 포함한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경쟁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살인 사건을 저질러 퇴출되면서 자리를 잡았으니 오늘날 KFC의 전신이었다.
KFC의 창업자 할란드 샌더스 대령.
대령의 시대에는 닭의 사정이 사뭇 달랐다. 요즘에 비해 훨씬 오래 사육해 육질, 특히 다릿살이 훨씬 질겼다. 따라서 패스트푸드를 지향하는 음식점에서 주문과 동시에 야들야들하게 튀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라이드치킨이 유명한 남부에서 통했던, 너무 깊지 않은 무쇠팬으로 닭이 기름에 3분의 2쯤 잠기도록 튀기는 팬 프라잉(pan frying)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겉은 타고 속은 익지 않는 조리의 불균형이 벌어질 뿐이었으므로 기름 온도를 무작정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령은 고심 끝에 전용 튀김기의 개발을 공모에 붙였다. 발명가 윈스턴 셸턴이 개발한 '콜렉트라매틱'이 채택되었으니, 고온보다 고압을 활용하는 원리였다. 압력 튀김기에서는 물이 106도에서 끓으므로 튀겨지는 닭에서도 수분이 덜 증발해 치킨이 훨씬 더 촉촉하게 익는다. 콜렉트라매틱은 오늘날까지도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영계를 선호하는 식문화의 변화로 당시에 비해 닭을 10주나 덜 사육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콜렉트라매틱은 샌더스의 시대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온도와 압력으로 운용되고 있다.
아무래도 대중에게 KFC는 압력 튀김솥보다 '특제' 11가지 비밀 허브 및 향신료의 배합으로 더 유명하다. 대령은 처음 치킨을 팔기 시작했던 1930년대부터 레시피를 다듬어 1940년 7월, 오늘날 '오리지널 레시피'라 불리는 배합비를 완성했다. 튀김옷인 밀가루에 더하는 이들 양념의 레시피는 코카콜라의 배합비와 더불어 식품 산업의 양대 영업 비밀로 통한다. 특허로 분류했다가는 20년이면 지식재산권이 소멸돼 공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영업 비밀을 선택한 것이다. 대령의 손글씨 레시피는 11가지 향신료 및 허브의 작은 병(바이얼)과 함께 KFC 본사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다.
KFC 관계자들이 치킨을 만들기 위해 튀김옷을 준비하고 있다. KFC 유튜브 캡처
튀김기에서 갓 나온 KFC 치킨. KFC 유튜브 캡처
맛의 비법도 비법이지만, 인터넷 시대에 KFC의 영업 비밀은 홍보 수단으로 한결 더 유용하게 쓰인다. 2008년, KFC는 켄터키주에서 현금 운반용 트럭을 임대해 '특급 비밀'이라는 문구를 써붙여 홍보 활동을 벌였다. 대령의 손글씨 레시피를 위한 보안 절차가 한층 더 강화되던 시기였다. 한편 그와 별도로 KFC는 요즘 인터넷 보안에 쓰이는 것과 흡사한 '2중 인증' 절차를 통해 레시피의 비밀을 지키고 있다. 일단 절반을 그리피스 연구소에서 제조한 뒤 후추 등 향신료로 유명한 매코믹사에 넘겨 완성시키는 방식이다.
물론 이런 시도가 대중의 호기심이며 맛을 재현해 이득을 보려는 이들의 시도를 막지는 못한다. 레시피의 비밀을 캐려는 시도가 아직도 활발한 가운데 1983년, 회의론자이자 작가인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시도가 가장 먼저 유명세를 탔다. 그는 저서 '빅 시크릿: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의 성역 없는 폭로'에서 KFC의 치킨에는 밀가루, 소금, MSG와 흑후추만을 맛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류의 주장에 KFC는 대령의 1940년 오리지널 레시피 그대로 11가지 향신료와 허브를 고수한다고 대응하고 있다.
2016년 시카고트리뷴에 보도된 KFC 튀김옷의 레시피. 시카고트리뷴 트위터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