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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렐루야 찬양대 은혜 아니면 귀한 찬양을 불러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줄을 믿습니다.
7월 잘 보내게 하시고 또 오늘 8월의 첫 번째 주일 3부 예배로 올라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많이 덥죠? 우리 요사라면서 이 사람 보시면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7월 한 달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8월 한 달 또 평화롭게 은혜로운 삶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내 마음의 평안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며칠 전에 이 모로코에서 이 스페인 자치 정부인 세우타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해변으로 이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수십 명의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끝이 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의 이민 행렬은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더 이상 그곳에서 살기 싫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그 마음의 평안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의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복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마음의 평안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왜 열심히 일하며 재물을 모을까요?
결국은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입니다. 왜 건강을 챙기고 왜 자녀가 잘 되기를 기도합니까?
결국 최종 목적은 마음의 평안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평안을 오래토록 유지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받는 것은 참 쉬운데 그 받은 것을 오래토록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오늘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어 하는 선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민수기 6장 26절의 말씀을 한번 볼까요? 시작
아멘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무엇 주시기를 원하노라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요한복음 14장 27절의 말씀도 한번 보겠습니다. 시작
그말을 너희에게 주시로니 나의 그만을 너희에게 주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이 아니라 너희는 마음에 무심한 하고 괴로워 하지도
아멘 자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누구에게 너희에게 주노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참 역설적입니다. 그들은 늘 언제나 전쟁을 겪었습니다. 평화로웠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늘 불안했던 이스라엘의 완벽한 평화가 찾아왔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1절 하반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10년 동안 뭐 하니라 평안하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감사는 평안에 대한 감사인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또 여러 가지 권세가 있다 할지라도 내 마음에 평안이 없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평안이 있어야만 우리의 삶이 기쁘고 즐겁고 살 맛도 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아사에게 10년이라는 평안이 주어졌는데 어떻게 이 평안을 누릴 수 있었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는 이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겁니다. 누구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요? 나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6절 말씀 보다 6절의 말씀 시작
여호와께서 자에게 평화를 주셨으므로 그 땅의 평화의 에서 로 다과 사들을 그간의 권주
아멘 여호와께서 누구에게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뭐 하여 평안하여 여러의 싸움이 없었다. 아사에게 평안을 주시니까 아사가 평안을 누린 그 땅에 평화가 임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불안 짜증이 전염이 되듯이 여러분이 평안도 전염이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맑은 물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면 물 전체가 물이 들듯이 우리 가정과 직장에 그 직장이 평안해지려면 나 한 사람이 먼저 주님 안에서 평안해야 될 줄을 믿습니다. 내가 평안하면 내 아내가 평안하고 내 남편이 평안하고 내 가족이 평안하고 내 동료가 평안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 아멘이십니까?
아멘이시죠 반대로 내가 지금 불안하고 내가 지금 염려 걱정으로 가득 차다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아십니까?
그러니 우리 성도님들의 불평과 짜증이 아니라 평안을 전념시키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리고 평안을 지키기 위해서 성벽을 건축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7절 말씀 한번 보겠습니다. 7절의 말씀 시작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업을 형통하게 하였더라.
아멘 7절 하반절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뭘 주셨다고요?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무엇을 성업을 형통하게 뭐 하였더라 건축하였더라. 오늘 우리에게도 영적인 성업, 영적인 성벽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벽이 뭘까요? 바로 말씀과 기도와 예배입니다.
할렐루야 뭐가 뭐가 무엇이라고 했죠? 네 말씀과 기도와 예배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보다 더 귀한 것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여러분 교회도 예배, 기도, 말씀보다 어떤 행사나 일이 앞서게 되면 반드시 시험이 찾아옵니다. 초대 교회가 시끄러웠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시끄러운 교회, 문제 있는 교회를 가보면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고 뭔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교회가 평안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과 기도와 예배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우리 성도들은 다른 것을 열심히 하려고 하기보다는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예배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도 혹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데 마음에 예배에 집중이 안 되고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에는 평안히 임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배, 오직 기도, 오직 말씀으로 채워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평안을 누려야 될까요? 왜 우리가 평안을 누려야 되냐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비밀이 한 가지 숨겨져 있습니다. 왜 우리가 평안을 누려야 될까?
참된 평안이 없으면요. 사람은 자꾸만 다른 곳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곳에 기우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채우지 아니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물질에 관심을 갖고 명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사람의 인정에 세상의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제 전개 월삭 새벽 기도회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편 119편 113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내가 어떤 마음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뭐 하는 사이다 사랑하나이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 품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 앞에는 온전히 한마음으로 가야 되는데, 이 마음이 나뉘어져가지고 두 마음이 생김으로 해서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한다면 이 마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마음에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늘의 양식, 하늘의 평안을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재물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두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디에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서 그곳에 온 마음을 기울입니다. 여러분 목회자도 목회 외에 다른 곳에 집중하게 되면 그 평안이 깨어질 것이고, 엉뚱한 곳에 가서 방황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내 마음의 말씀과 기도, 예배로 채우지 아니하면 결국은 다른 것이 들어와서 우리 영혼을 좀 먹게 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내 영혼이 주님으로 채워가는 자가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자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에 세상의 것으로 채우게 되면 하늘의 평화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 그곳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또 마음에 평안이 깨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육체에 질병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반드시 불안,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불안은 불면증으로 올 수 있고 우울증도 올 수 있고, 또 공황, 장애 등 여러 가지 정신적인 병으로 우리 육체를 갉아먹는 심각한 그런 것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 영혼이 평안해야지, 우리 육신도 건강하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 영혼이 평안해야 삶에 감사도 있고 기쁨도 있고 은혜도 누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목회를 하면서 이 부분을 굉장히 중요시 여깁니다. 이 부분이 약해지면 사실 목회 사역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만 내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지, 내 안에 불안과 염려, 걱정, 두려움이 찾아오면 그 전하는 메시지도 평안과 기쁨이 아니라 독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또한 이 고난 중에 평화는 성도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으로 찾아옵니다. 고난 중에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 조금 전에 불렀던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이 곡을 작사한 호레시오스 이 스테포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영혼의 찬양입니다. 이 찬양의 가사를 보면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던지 이 가사가 얼마나 마음에 평안히 임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조용한 가운데 평안한 가운데 이 시를 썼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스테포드는 그는 바다에서 끔찍한 사고로 내 딸을 한꺼번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슬픔에 잠겨서 딸들이 잠든 그 바다 위를 배를 타고 지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상이 알 수 없는 벅찬 그 평안이 그에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그가 고백했던 찬양이 바로 오늘 413장의 찬양입니다.
내 영혼 평안에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도저히 평안할 수 없는 그 절망 같은 그 누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평안이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런 평안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러한 하늘의 평안이 있을 때 가장 훌륭한 전도지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여러분 오늘 전도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과거처럼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렇게 해서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 공공장소나 아파트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전도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전도지는 여러분의 얼굴과 여러분의 마음의 평안에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에 줄 수 없는 가장 큰 평안으로 그들에게 다가설 때 구원의 역사가 크게 나타날 줄을 믿습니다. 이 평안이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크게 나타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렇다면 이 아사가 10년 동안 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평안을 누리는 적극적으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2절 말씀 한번 보세요. 2절의 말씀 시작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4절 말씀 보겠습니다. 시작
사원들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에게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고,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아멘 하사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의 율법과 그의 명령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건강해지려고 하면 가만히 누워서는 건강해질 수 없지 않겠습니까? 걷든지 뛰든지 해야지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오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신앙의 근육을 키워놓으면 걱정거리가 와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리에 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부지런히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드려야 될 줄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비 평안을 원한다면 우리의 평안을 빼앗는 울상을 과감하게 없애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3절 5절 말씀 3절 보겠습니다. 3절 시작,
양과 상장을 없애고 수사를 깨뜨리며 박세한 상을 찍고,
5절 말씀 시작,
나 모든 수업에서 장담과 양창을 벗을 때 다 마음과 앞에서 바람을 느
아멘 이 아사 왕은 이방, 제단, 산당을 주상을 다 깨뜨려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보이는 우상도 있습니다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우상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 보이지 않는 우상 무엇일까요? 은연 중에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우상입니다.
여러분 우상이란 거대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나의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이 바로 우상이라는 것 아십니까?
왜 우상일까요?
여러분 이런 것들이 세워지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걱정하고 내가 염려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질 뿐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말씀의 토끼로 잘라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혹 근심과 걱정, 염려, 두려움이 나의 우상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위치를 하나님보다 더 세우게 되는 것은 바로 우상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참된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참된 평화는 폭풍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평안하게 잠들 수 있는 것 그게 하늘의 평안이 아니겠습니까? 이 평안은 결코 세상에 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는 평안은 하늘이 주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평안을 여러분이 누리심으로 이 평안이 나로부터 시작이 되어서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하늘의 평안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