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잠언 23장 1 - 11절
1 네 높은 관리와 함께 식사를 할 때, 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아라.
2 식욕이 일어나거든, 네 목에 칼을 들이대라.
3 그의 진미를 탐하지 마라. 그것은 사람을 속인다.
4 부자가 되려다 건강을 해친다. 분수에 맞게 사는 지혜를 배워라.
5 아무리 재물에 눈독을 들여도, 재물은 날개가 달린 독수리처럼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 버릴 것이다.
6 구두쇠의 음식은 먹지 말고, 그의 진수성찬을 탐하지 마라.
7 그런 사람은 속으로 '저것이 얼마인데!' 하고 계산한다. '먹고 마시라'고 말은 하겠지만, 마음으로는 아까워한다.
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가 말한 칭찬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9 어리석은 자가 듣는 데서 말하지 마라. 그가 네 지혜를 비웃을 것이다.
10 조상들이 세운 밭 울타리를 옮기지 말고, 고아의 밭이라고 야금야금 취하지 마라.
11 그들의 보호자는 힘이 있으니, 그 보호자가 그들의 사정을 듣고 너를 벌할 것이다.
<묵 상>
본문은 솔로몬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의 단편 어록들입니다.
1. 경제생활에 대한 경고 (1-11)
"네 높은 관리와 함께 식사를 할 때, 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아라. 식욕이 일어나거든, 네 목에 칼을 들이대라. 그의 진미를 탐하지 마라. 그것은 사람을 속인다."(1-3절) 여기서 '높은 관리'는 '벼슬에 있으면서 나라의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입니다. '함께 식사하다'는 '대접하다'는 의미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대접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대접하는 사람이 '높은 벼슬을 맡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높은 사람이 음식을 대접할 때 잘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아예, 그들과 식탁에 앉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을 속이는 음식, 꾀려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함께 하는 것을 넘어, 목에 칼을 두고 있을 정도로 자기를 제어하라고 말합니다. 그 자리에서 대접을 가장한 뇌물을 받는 것보다 목을 치는 것이 나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나랏일을 맡아 공무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탐관오리처럼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을 탐하고, 깨끗하지 못한 행실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는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기에, 높은 사람의 대접은 절대로 탐해서는 안됩니다. 높은 관리의 대접을 주의하라는 경고와 함께 계속해서 인색한 사람의 음식도 먹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구두쇠의 음식은 먹지 말고, 그의 진수성찬을 탐하지 마라. 그런 사람은 속으로 '저것이 얼마인데!' 하고 계산한다. '먹고 마시라'고 말은 하겠지만, 마음으로는 아까워한다.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가 말한 칭찬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6-8절) 여기서 '구두쇠'는 '인색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돈이나 재물 따위를 쓰는 데에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입니다. 식탁의 교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도 사역을 하시면서 참 많은 사람들과 식탁을 함께 하셨습니다. 지혜자는 인색한 자의 식탁에는 앉지 말라고 말합니다. ‘인색함’과 ‘베풂’이라는 두 단어는 함께 연결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인색한 자의 베풂이라는 이 역설적인 식탁은 숨은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도 있는 식탁의 교제는 그 의도로 말미암아 결국 그 먹은 것들은 모두 토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칭찬'은 '아첨'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의 칭찬이 섞인 대화마저도 모두 소용없게 될 것이란 의미입니다. 타인의 대접에 대한 경고에 이어, 재물에 대한 욕심에 대해 경고합니다.
"부자가 되려다 건강을 해친다. 분수에 맞게 사는 지혜를 배워라. 아무리 재물에 눈독을 들여도, 재물은 날개가 달린 독수리처럼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 버릴 것이다."(4-5절) 여기서 '되려다'는 '애쓰다'입니다. 이 말씀은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것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는데 그 강조점이 있습니다. 재물은 독수리의 날아감과 같이 빠른 속도로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재물에 이토록 굶주려 있는 것은 왜인가? 우리 자신의 인생에서 생기는 의문들은 아래에서 났고, 하나님의 대답은 위에서 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질문은 불평의 자리에서 온 것이지 하나님의 자리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물질은 사용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자가 되기에 애쓰지 말라는 권면과 함께 경제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인 또 다른 경고를 합니다.
"조상들이 세운 밭 울타리를 옮기지 말고, 고아의 밭이라고 야금야금 취하지 마라. 그들의 보호자는 힘이 있으니, 그 보호자가 그들의 사정을 듣고 너를 벌할 것이다."(10-11절) 여기서 '울타리'는 '땅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을 뜻합니다. '야금야금 취하다'는 '침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조상들이 세운 토지의 경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것과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는 의미는 부정축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의롭지 않은 재물을 모으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강자의 부정축재는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침범하는 폭력적인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그리고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해 밭의 모퉁이를 베지 말고, 떨어진 이삭까지 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나그네까지 배려하시는 세심한 하나님의 관심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고아의 밭까지 침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억울한 고아들의 보호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보호하다'는 '구속하다', ‘기업 무르다’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업무를 자가 되어 주신다는 것은 고아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기업 무를 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정을 듣고 벌을 내릴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벌하다'는 '원한을 풀어주다' '신원하다'는 뜻입니다. 신원은 재판을 통해서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재판을 통하여 원한을 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침범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고아들의 재산을 환수해 주시고,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여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공의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단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수도 없고, 나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을 잃을 정도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살 수도 없기에 재물과 자리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게 하옵소서. 결코 주무시지 않으시며 항상 인생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방향을 재설정하는 융통성과 민감함과 개방성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작은 것들에 감사하되 단지 작은 것들에 안주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약한 사람들의 것을 취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옵소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지 않게 하옵소서. 여전히 이 나라에 탐관오리와 같은 공직자들이 많이 있기에 약한 사람들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시고, 원한을 풀어 주옵소서. 오직 신실하신 아버지께 이 나라의 부정함과 부패를 잡아 주시를 의탁하며, 나는 여전히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