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Sn) 과 구리(Cu)의 합금이 청동이다.
구리는 녹는 점이 1081도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 청동이다.
주석은 구리와의 합금을 통해 녹는 점을 1000 도 이하로 낮추어 주었고, 철기가 나타나기 전, 구리 보다 강한 청동기 시대를 열게 하였다.
주석의 산지는 청동기 시대를 앞당겨 주었고, 각 대륙의 문명사와 전쟁의 양상을 변화 시켰다.
청동은 구리 90%에 주석 10%를 첨가한 합금이다.
주석은, 인체에 무해하고 녹는점이 231도에 불과하며 조형성이 뛰어나다.
청동기가 철기 전에 온 것도 그 덕이다. 특히 구리 광석은 눈에 띄는 특유의 청록색을 띄고 있어서 고대인의 눈에도 암석에 뭔가 특수한 물질이 들어있다는 느낌을 주고 광맥을 발견하기도 쉬워서 일찍부터 이용되었다.
주석은 부드러운 은백색의 금속으로, 아주 오랜 옛날인 기원전 3000년 이전부터 이용된 금속 원소 중 하나이다.
주석이 없이는 청동기 시대도 없었을 정도로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금속이다.
주석 함량이 12%인 청동은 인장 강도와 강성 등의 기계적인 특성이 구리에 비해 우월하면서도 주조가 쉬웠기에 무기나 장신구와 같은 복잡한 형태의 물건을 만드는 데 적합했고, 폭넓게 보급되어 청동기 시대라는 문명을 불러올 정도로 인류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청동기 시대에는 구리는 비교적 널리 분포해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이었지만 주석은 산지가 한정되어 있어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예를 들어 지중해의 중요 동광은 키프로스나 시실리아 등이어서 중동지방 주변에서 많이 거래되었지만
주석은 멀고먼 중앙아시아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수입해야 하는 중요한 국제적인 교역 품목이었으며,
한반도 역시 주석이 거의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청동기 시대는 구리는 국내 광산에서 채광하더라도 주석은 외부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구리와 주석이 풍부하게 출토되는 지방을 중심으로 청동기 문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부터였다.
기원전 3100년경에 청동의 야금술이 최초로 개발된 곳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이었다.
청동의 야금술은 중동 지방으로부터 전 세계로 전파 되었지만 구리와 주석이 출토되지 않는 지방에서는 훨씬 후세까지도 청동의 야금술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찬란한 고대 문명을 이룩했던 민족들은 청동기 문화를 거치지 않았고, 이집트를 제외한 아프리카에서도 청동기 문화를 찾아볼 수 없다.
청동기 시대의 유무는 청동기의 재료가 되는 구리와 주석 산지의 유무,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 등에 따라 결정되었다.
신석기와 청동기 사이에는 구리만 쓰던 동기 시대도 있었지만, 매우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생략된다.
1532년 피사로가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라시아는 오래전부터 청동기를 거쳐 철기를 사용하여, 강한 총과 칼로 무장 할 수 있었으나, 그때까지도 잉카제국은 청동기는 물론 철로 만든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역사적 사실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 균 쇠’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