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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강해 3부 박해 받을 때 성도가 해야 할 일
요한복음 15장 18-27
요절 15장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니라
우리는 지금까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과 관계, 성도와의 관계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면 하나님과 성도의 사랑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과의 관계를 가르쳐주십니다. 근본적으로 성도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도가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 때 무엇을 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아멘
(1) 예수님께 속한 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기뻐해야 합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은 성도를 미워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성도를 미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왕은 사탄이고 사탄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므로 예수님이 택하고 예수님께 속한 제자들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박해 받을 때 내가 잘못해서 박해받는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잘 믿고 예수님께 속한 자라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기뻐해야합니다. 사도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다가 채찍을 맞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인하여 채찍 맞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며서 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물론 성도가 미움받는 이유가 순수하게 예수님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성도가 받는 박해에 성도가 잘못해서 미움 받는 것을 포함시켜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이 게을러 가정이나 사회의 책무를 다하지 않아서 박해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도가 지나치게 탐욕적이거나 교만하거나 이기적이어서 박해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예수님을 잘못 믿어서 미움 받는 것임을 알고 예수님을 잘못 믿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요즘에 가톨릭의 신용도가 25프로, 불교의 신용도가 24프로, 기독교의 신용도가 19프로라고 합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첫 번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지나치게 참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비도덕지어서 돈 문제, 이성 문제, 권력 다툼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단들이 예수 이름으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인 욕을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단들이 득세하는 것도 우리 기독교인들이 잘 믿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박해 받을 때 눈물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복을 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주고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내가 공부하는 것 돈을 버는 것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 모두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잘 믿어도 미움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가까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합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시기하여 우리를 미워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기 전에 그들을 첫 자리에 두고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 그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면 그들은 시기심이 생겨서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이런 경우는 미움을 잘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미움 받을 때는 우리가 예수님께 속하였음을 생각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이런 박해는 일시적이고 나중에는 복을 받습니다.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은 나에게 교회 목회자는 돈 버는 사업가라고 예수님 믿지도 말고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비난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그 말이 일부는 일리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일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나는 평신도 목회자로 살고자 서원햇고 하나님이 그렇게 사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나는 돈을 가장 많이 헌금하고 돈을 지원 받는 목회자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욕을 얻어 먹을 짓을 하지 않았고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가족은 나를 박해하였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고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핍박을 통하여 내 신앙이 분명해졌습니다.
이전에 학원 선생할 때 나는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칼 퇴근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저녁 기도모임이 있고 말씀 공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료선생들은 남아서 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남아서 학생을 돌보는 것은 의무는 아니었으나 자원하여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일찍 퇴근하고 월급은 더 많이 가져가니 시기하여 나를 미워하였습니다. 그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복을 많이 주셔서 좋은 성적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2) 제자들의 말을 지키는 자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라”
사람들이 성도를 미워하는 것은 성도들이 믿는 주인이신 예수님이 미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박해를 받았으니 우리도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박해만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열두제자를 비롯하여 70제자 120명의 성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많은 사람이 있었으므로 예수님께 속한 성도들의 말을 지키는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을 통해서 많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유무상통하며 살았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이런 성도들을 종교지도자들은 박해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도들을 존경하고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들도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기를 바랐습니다. 믿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로마시대 초기 성도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로마황제는 이들을 자신을 경배하지 않는다고 박해했지만 당시에 대부분로마 시민은 성도들을 존경하였습니다. 직장에서 사람을 뽑을 때 예수 믿는 자는 영순위였습니다. 결혼상대자도 예수 믿는다면 무조건 오케이였습니다.
나도 나를 박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말씀에 은혜를 받고 순종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선교사로 나갔고 그들이 지금 여기에 남은 여러분들입니다. 나는 이분들을 생각하면 감사가 넘칩니다.
(3) 제자들을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사람들은 다만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 때문에 제자들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여 성도들을 박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많은 표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면 그들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여 성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가 없다고 핑계댈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커다란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 모르고 박해를 할 때는 용서를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박해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바울에게 나타나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성도를 박해한 것을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고 성도들을 박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모르고 박해한 사도 바울의 죄를 용서하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심판을 받을 때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똑같이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죄를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들이 심판 받을 것을 알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기도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반을 죽일 때 증인으로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났고 그는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은 용서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버지여,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세요” 그 기도를 들은 사도 바울이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마음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것을 아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그들이 변화됩니다.
(4) 미움 받을 때 성경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ㄱ)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박해를 받을 때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박해를 받을 때 시편 35편 19절 말씀 그들이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어둠이 빛을 미워하듯이 그들은 선하신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기억함으로 박해를 극복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아무 이유없이 미움을 받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미워합니다. 열두 사도는 사도 요한만 제외하고 다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사도요한도 예수님 때문에 끓는 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해를 하던 사도 바울도 변화된 후에 예수님을 전하자 아무 이유없이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매도 많이 맞도 돌에도 맞았습니다. 강도의 위험 바다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뱀에게 물려 죽을 뻔하기도 하였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기도 자주 하였습니다.
지금도 북한이나 중국이나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박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탄광에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면 박해를 받습니다.
우리는 박해 받을 때 성경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배신 할 때 함께 먹는 자가 발꿈치를 들었다는 말씀으로 박해를 극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박해받을 때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면 말씀에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박해는 태양과 같이 우리 신앙이 자라가 합니다. 우리의 박해가 잠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가족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등록금도 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사야 50장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자 박해를 잘 이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나는 박해로 잠시 예수님을 부인하였지만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전혀 이유 없이 내가 사랑하고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욕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태복음 5장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말씀을 기억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박해를 받을 때 나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울에게 압살롬에게 박해받는 다윗을 이해할 수 있었고 시편의 말씀이 잘 이해 되었습니다. 시편 강해를 잘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전하는 말씀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여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5) 미움 받을 때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우리는 미움 받을 때 성령님이 나를 도우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며 박해받는 자에게 스데반처럼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박해의 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하였으므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박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생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믿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했을 때 박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스데반의 박해로 흩어진 사람들을 통하여 사마리아와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고 세계선교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죄수로 로마에서 재판 받을 때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로마 성도들이 사자 밥이 되어 죽을 때 로마 선교가 일어났습니다. 로마 황제 네로는 로마시민들이 다 보는 콜로세움에서 성도들을 사자의 밥이 되게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으로 죽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콜로세움을 채운 많은 로마 사람들이 성도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성도들을 보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로마 복음화가 일어났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나도 가족에게 박해를 받았지만 가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사라 선교사는 예배를 드리고자 오빠 결혼식에 가지 않아 가정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사라 선교사는 가정의 박해를 받으며 가정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박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순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니라”
우리는 선한 일을 하고 박해를 받을 때 예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박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박해를 받을 때 박해하는 사람보다는 우리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박해는 해와 같습니다. 해가 식물의 성장을 돕듯이 우리는 박해를 받으며 신앙이 성장합니다. 신앙의 뿌리를 견고하게 내리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천국 복음으로 순수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박해를 통해서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박해를 받을 때 힘써 그들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상주심을 믿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해야 합니다.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 축복 기도하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잘못으로 박해를 받지 말고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박해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죄로 인하여 박해 받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더 사랑함으로 박해를 받고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박해를 통하여 힘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박해 받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박해가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박해가 없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것입니다. 박해가 없을 때 신앙이 타락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박해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5장 강해 3부 박해 받을 때 성도가 해야할 일
요한복음 15장 18-27
요절 15장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니라
요한복음 15장 강해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