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회창 지지 구국동지 여러분, 맑은샘입니다. 오늘 낙원동 떡집을 다녀오신 이회창님을 보니 그 분의 서민들을 위한 진솔한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 집니다. 전에 써놓았던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만, 어서빨리 이회창님께서 대통령에 당선 되시어 이 나라 국민들의 걱정거리인 안보문제와 경제문제가 일거해 싹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바쁜 일정을 마무리 하고 경제 리포트를 마치니 속이 다 후련 하군요. 졸필 올라 갑니다.
----------------------------------------------------------------------------------
<맑은샘의 신좌익사상비판 15 : (잘난 부르디외로는 국가의 위기를 구하지 못한다)>
구국결사대의 맑은샘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설레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온갖 문명의 이기가 어떻고 첨단의 사상이 어떻고 해도 역시 대한민국사람으로써 설날이 다가오는 것이 늘 설레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아직 젊은 필자도 그렇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배우고 자라고, 가친 때부터 그 은택을 입은 이 몸은 8,15해방때 쏘련 군의 총칼에 밀리어 남으로 오신 조부를 두고 제사 때마다 임진강 어귀에서 등 뒤에서 쏜 쏘련 군의 총탄에 돌아가신 작은 할아버지들의 제위에 지금은 나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를 북의 검은 악마적 휘장아래 신음하는, 어쩌면 아직도 내 골육상잔 중 누군가가 있을 것 같아 저 북녘 넘어 하늘에 한숨이 이어 온다.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어른들도 그렇게 말씀들을 하신다. 8.15와 6.25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의 이 국가적 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위험함이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를.... 그때나 지금이나 살기위해서 이전투구를 했고 순수한 맑은 영혼과 가족들 때문에 이편에 서고 저편에 섰던 사실들과 큰 맑음을 위해 내가 죽었던 것과 자신만의 사리사욕을 위해 무엇을 팔아먹고 성장했던 부류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도 분명한 것은 크게 맑고 순수한 것은 “대의(大義 )”이고 무식하던 유식하던 우리의 대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즉, 우리 “헌법”과 붉은 사상으로 왜곡되지 않은 그 내용, 그리고 그를 위한 국민적 안보, 올바른 경제성장을 지키고 더 이루는 것이며 이를 토대로 가슴속 한이 많은 우리 집같이 북에 일가친척을 두고 온 모든 실향민의 아픔을 치유하는 “북 정권 붕괴” 로 인한 “대한민국헌법아래 통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친 때부터 거지 같은 환경에서도 자기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입지를 보고 들은 결과의 반항하지 못하는 진실에 기초 할 때, 그리고 작금의 조국의 현실과 소위 같이 일류의 00대학에서 공부한 얼치기들의 행태를 볼 때 진정 서글픔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볼 때 소위 대한민국의 많은 매머드급 소위 일류 언론들은 때로는 가끔, 자신의 자존을 해할 만큼 언론의 사명과 정도를 벗어나 정신 못 차리는 작태를 썩어빠진 정치권에 연결되어 벌리기도 하며 소위 3개 방송은 이미 노무현 개멍멍소리 앞에 무릎을 꿇은지도 오래다.
더 웃기는 것은 위장의 카멜레온들이 이 언론들을 정화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더 웃기겠는가? 역시 카멜레온은 카멜레온이라 그 진정성을 평소에 보이지는 않았고 꼭 권력의 단물과 깃발에 있는 곳에만 몰려 필요한 때 따라 위장 사기를 치니 고소를 금할 수 없지 않는가?(사실 심각한 문제다.)
또, 이제는 배부른지 소위 지식인이라고 그 동안 늘 사기를 쳐왔던 도올이라는 작자는 다 지나간 국민대중하위 담론수준의 기독교니 한국전통사상이니 하며 꽉 막힌 철지나간 싸움을 벌리며 국민 이간질을 시키니 대한민국은 아직 엽전들의 나라인가?
오늘 이 부르디외편은 이런 작태들을 고발키 위한 글임을 미리 밝혀 둔다.
부르디외는 전후 프랑스 사회학자들 중 좀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다. 그런데 이 부르디외도 기본적으로 마르크시스트였다는 사실은 많은 지식인들도 아직 대중을 속이고 있거나 모르고 있다. 그의 사상은 누구보다도 역동적이고 현실 저항적이다.
매스미디어의 상징적 폭력을 비판하며 TV출현을 거부하는 지식인이고( 여기에 많은 우파 지식인들도 헷갈리는 부분들이 많다. 예를들면 작금의 매스미디어 현실이 좌파가 가지고 있다고해서 무조건 출현을 거부하는 이유가 부르디외적 사고에 있으면 곤란하지 않는가? 우리는 합법적인 한에서는 철저히 싸워야 한다.),
노동자들의 파업 때 마다 현장에서 직접 성명서를 읽는 참여지식인, 프랑스 최고 권위의 콜레주 드 프랑스 사회학 교수, 현대 사상가 중 가장 학술인용 빈도수가 많은 학자 등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다. 그는 무엇보다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면서 국제적 신좌파 연대투쟁을 선도하고 있다. 부르디외의 학문적 세계를 살펴보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가 프랑스 남부 출신이라는 점이다.
남부 사투리 때문에 겪었던 파리 유학 시절의 경험은 부르디외로 하여금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파헤치게 만드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그는 시골뜨기 출신으로서 대학생활에 적응하는 데에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의 사고는 그 갈등이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몰두한것에 기인한다.
대학이라는 “상징적 가치”가 자신의 환경과 경험을 통해 얻은 그의 모든 것보다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또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온갖 촌스러움을 내던짐으로써만 대학에서 적응할수 있었다고 그는 회고하는데 예를들어 필자처럼 서울이 아니라 촌에서 태어나 서울이나 세계의 학문대도시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백프로 이 부르디외의 조금 휴머니틱하게 현혹하는 유혹의 말에 모두 동의할 수 있겠는가?
1930년에 태어나 1951년 에콜 노르말에 입학, 철학교수 자격을 취득한 부르디외는 1958년에서 1960년까지 알제리대학의 조교로 있으면서 알제리 전쟁을 겪게 된다. 단절기로 기록되는 이시기 이후 그는 민족학과 사회학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며 1964년부터 3년간에 걸쳐 (알제리의 노동자들)(뿌리뽑기)(상속자들)등 일곱권의 저서를 쓴다. 특히 그의 문화적 불평등의 재생산을 연구한 (상속자들)은 1968년 프랑스 좌파 학생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부르디외 사상의 특징은 프랑스 마르크시즘의 영역을 넘어, 또한 구조주의의 경계선을 벗어나 이 둘을 종합한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를 우리는 신좌파적 사상가로 보아야 함이 필자는 온당하다고 본다.(이를 모르고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사고를 차용하는 얼치기 우파 사상가들( 자신이 우파라고 외치는 펜대들)도 각 신문사에 현재 혼재해 있다^*^).
그는 알제리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에서 출발하여 1992년(예술의 규칙들)의 플로베르연구에 이르기까지 그의 독특한 분석을 통해 인류학, 언어학, 정치학, 철학, 미학, 문학 등 광범위하게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객관적 구조와 역사적 행위, 경제적 구조와 실천행위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함으로써 그는 사회구조의 역동성에 관심을 갖는다. 구조주의적 발생론이라는 명칭으로 그의 연구를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계급관계를 단순히 원래 마르크시즘의 경제적 관계로만 보지 않고 힘의 관계인 동시에 의미의 관계로 파악함으로써 상징적 관계와 계급간의 지배에 관심을 가지며 이로써 그는 전통 마르크시스트와 구별하는데 여기에 많은 얼치기 지식인들이 그를 전통 마르크시스트와 구별 된다며 속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치밀한 듯 보이는 시도는 기존의 사회이론들에 대한 검토와 아울러 드러나지 않는 사회의 구조를 밝히는데 매우 유용한 개념이라고 많은 얼치기 지식인들이 설파해 왔다. 그러나 그는 신좌파이며 기본적으로 마르크시스트이다.
그는 “공급의 획일성” 이라는 형태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은 결국 다양성이 아니라 동질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할리우드-맥도날드 문화를 양산할 것이고 이 때문에 각 문화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세계가 조종사없는 비행기같이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반세계화 연대투쟁에 동참할것을 호소했다.
저서로는 (재생산)(실천이론 개요)(구별짓기)(실천감각)(강의에 대한 강의)(호모 아카데미쿠스)(국가귀족)(예술의 규칙)(세계의 비참)(텔레비젼에 대하여)(맞불)(남성지배)(정치의 장에 대한 소고) 등이 있다.
나는 차라리 우리 우파 진영에 묻는다.
우리는 좌파와 싸우면서 항상 염두에 둘 것이 그 어느 것이든 싸움의 기술과 요소가 좌파 저질 쓰레기 녀석들보다는 더 낳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가끔 우파 신문사들의 개시판을 훝어보면 가끔 좌파를 공격하면서도 아직 부르디외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그것의 일부가 (조종석론)이다....좌파가 잡고잇는 한심한 언론을 공격하면서도 같이 조종석 수준의 사고에 머물고 있으면 뭐가 말이 되는가? 하이재킹당한 조종석을 다시 점령하는 것은 이들을 쓸어버리는 고도의 전문훈련을 받은 대테러 특공대다.
그러니 붉은 독도마뱀을 퇴치하겠다고 붉다가 푸르게 위장한 카멜레온 놈들의 위장도 모르고 퇴치하라고 맡기는 우도 나오는 것 아닌가? 솔직히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메머드 언론도 마찬가지다.
지금 진정 국민들의 염원이 무엇인지 안다면 썩어빠진 정계의 야권과 연계한다 해도 그렇게 눈치 보기식 자신이 얼치기인지도 모르는 한심작태는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자신들의 명예회장이 테러를 당했는데도 말이다.
“기존의 조그마한 뭐만 비판하면 무조건 지성이다?” 는 사고는 이제 저 멀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자기 합리화일뿐이고 또 다른 권력교만중독의 마약이다. 우리는 부르디외 자체를 검증하고 비판하는 언론인은 왜 없는 것일까?
맥도날드 햄버거가 획일적 세계화의 산물이라면 그 트랜스지방을 경고하는 것은 좋은데 부르디외적 사고에만 머물러 우리가 세계화하는 작업에 방해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을 위한 펜이 아니라 부르디외 뭐 핥기 작태일뿐 아닌가? 그러면서 자신이 무슨 지성인양 똥폼잡는 마약에 도취되는 꼬락서니 아닐까?
예를들어 설날 맛잇게 먹는 수정과와 갈비찜이 전세계에 유통망을 가진 거대 경영조직으로 성장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도올의 철지난 기독교대 전통사상 해석도 그 맥락을 같이하는 유치한 삼류 짓거리 아닐까? 제대로 된 지성 이라면 대한민국의 위기를 바로 보고 정필을 해야 한다.
한갓 유치하게 삼류 기독교와 삼류 전통사상쓰레기들 주위의 경?╂? 토대, 정치국물의 눈치를 왜 보며 왜 곡학아세해서 이간질시키고 싸움시키는 것인가? 도올 그대의 치졸한 치기인가? 우리전통무당이나 고대 유대교의 무당이나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붉은 목사 자식들이 북에가서 기쁨조의 흥분스러운 술을 받아 마시고 목사 김진홍이는 북한공민증수여행위를 해명하지도 않고 북에 갔다 남에 왔다 하며 무슨 큰 무당 개춤을 추시는가?
즐거운 설 명절이 다가오면서 인상을 찌푸리고자 하는 말을 여러 자유애국동지들, 제위들에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하여튼 올해는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며 또 새로운 투쟁을 필자는 다짐하면서 동지들의 가정에 만복 가득들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12폭 병풍의 시나 한수 전하고자 한다..... -------------------------------------------------------------------------------
<백운십곡가(白雲十曲歌) >: 현대시
맑은샘 지음.....
백운구곡담(白雲九曲譚)을 사람들이 모르시더니 바위 깨고 집지어 하늘 님 네 다 오셔라 아 무엇을 하늘에 생각해 붓을 올릴까
일곡(一曲)은 어디 메요 백운(白雲)에 해 비친다 금잇 들에 하늘입김 걷어서 시루봉이 그림 이로다 은행나무 수정병 놓고 아는 벗을 부르노라
이곡(二曲)은 어디 메요 소나무 바위 다듬어 맑은 물결 난 꽃 띄워 바깥들로 보내노라 사람이 즐거운 땅을 모르니 알게 하여 날아볼까
삼곡(三曲)은 어디 메요 진달래고개 푸른 기름 부었다 초록 물결 위 종달이 해오라기 나는 곳에 푸른 잎 닭은 소나무 맑은 바람 맞이하여 여름 놀라 있어라
사곡(四曲)은 어디 메요 향로봉에 해 걸려 빛놀이를 뿌린다 향림 담 폭포수는 비색으로 포말 뿌려 바위를 새기어라 숲 초록길 매봉우리 가는데 바위 옆 낭떨어지 객기를 삼가노라
오곡(五曲)은 어디 메요 밝은 병풍 펼쳐진 숲 마음 머물러 물가에 지은 정자 뜨겁고 맑음이 가이 없다 이중에 학습도 하려니와 밝은 해님 맑은 바람처럼 하오리까
육곡(六曲)은 어디 메요 진관계곡 물이 맑다 나와 옥 같은 물 뉘와 더욱 즐길 것인가 붉은 해 넘어 가네 서책을 매고 달빛취해 즐겨 밟고 온다
칠곡(七曲)은 어디 메요 젖꼭지 봉 가을빛 부끄러워 맑은 이슬 머물러 족두리 봉 얼굴 봉선누이 사랑 실이 감고 찬 바위 홀로앉아 달빛 잊고 있노라
팔곡(八曲)은 어디 메요 거문고소리 같은 물위 달님이 떠가네 좋은 줄 받침 줄감개로 십 수년을 다듬어라 높낮이를 알아내어 구름과 즐겨 하노라
구곡(九曲)은 어디 메요 백운 봉에 하얀 길 열렸는데 하늘바위 눈 속에 쌓여 솟았다 경치 좋은곳 찾는 사람 왔는데 떨어져 죽고 봉우리만 웃어라
십곡(十曲)은 어디 메요 이 십일세기 황진이가 미소를 풍기고 백운의 항복이는 잠시 홀렸다가 오늘은 다만 화담께서 하늘에 대고 구슬퍼 미인의 해골바가지 뉘리 끼리함이 측은해 미래에 누군가 그 해골의 인 칼슘물을 미네랄 워터스라 목축임에 용암 문에 앉아 눈물주 흘려 해 다시 비침에 만경 봉에 절한다네
천지의 유유함을 생각하자니 홀로 구슬프고 하늘께서 이르시기를 그대들은 신선의 재질을 가져 나라와 겨레를 보라 노력하여 스스로 가벼이 하지 말라. --------------------------------------------------------------------------
*주* 백운십곡가 : 북한산 백운대를 지칭하고 필자가 북한산을 여러곳 등산하며 얻은 감흥을 율곡선생을 생각하며 노래함. *감상음악 : Time to say goodbye(그대와 함께 떠나리)-노래 :안드레아 보첼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