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번째 편지 - 장마와 무더위
장마가 한참 이어지더니 이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도 숨이 턱 막히는 찜통더위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매년 장마와 무더위를 겪어야 할까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일까요. 아니면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저마다의 장마와 무더위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초여름이 되면 북쪽의 차고 습한 오호츠크해 고기압과 남쪽의 덥고 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주변에서 세력을 겨룹니다. 성질이 다른 두 공기덩어리가 맞서는 경계에는 동서로 길게 정체전선이 형성됩니다. 이 전선이 한반도 남북을 오르내리며 오랫동안 비를 내리는 현상이 바로 <장마>입니다.
장마가 끝날 무렵에는 오호츠크해 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지고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쪽으로 확장합니다.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밀려난 자리를 덥고 습한 공기가 차지하면서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시작됩니다.
이 변화는 계절에 따라 바람의 방향과 강수 체계가 크게 달라지는 <몬순>이라는 기후 시스템의 일부입니다. 세계의 몬순 지역은 동아시아,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호주와 해양대륙 등 여섯 지역으로 구분됩니다.
한국의 장마, 중국의 메이위(梅雨), 일본의 바이우 또는 쓰유(梅雨)는 모두 동아시아 몬순 지역에 속합니다.
무더위는 모든 대륙에서 나타납니다.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는 높은 기온에 높은 습도까지 더해지는 <습윤 폭염>이 문제가 됩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미국 남서부에서는 극단적인 <건조 고온>이 나타나고, 유럽에서는 강한 고기압이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며 대규모 <폭염>을 일으키곤 합니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비와 더위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옛사람들은 자연을 설명하기 위해 신과 용, 하늘과 인간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장마와 무더위를 어떻게 이해하고 견뎌 왔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한국과 동아시아 사람들은 비는 용이 내리고, 재난은 하늘이 보내는 경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옛사람들은 비가 오기 전 구름이 길게 꿈틀거리고, 천둥과 번개가 치며, 강과 연못 위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물속에 살던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으로 상상했습니다.
날씨는 정치와도 연결되었습니다. 왕이 정치를 잘하면 절기에 맞추어 비가 내리고 풍년이 들지만, 왕이 잘못하면 가뭄과 홍수, 이상고온 같은 재해가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기상재해는 하늘이 왕에게 보내는 정치적 경고장이었습니다.
둘째, 인도 사람들은 용이 세상의 물을 가두자, 천둥과 번개의 신 인드라가 그 장벽을 깨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도 신화에는 '브리트라'라는 용이 등장합니다. 브리트라가 세상의 물을 가두자 강은 흐르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땅은 메마르고 생명은 시들어 갔습니다.
그때 천둥과 번개의 신 '인드라'가 번개 무기로 브리트라를 쓰러뜨립니다. 용의 몸이 갈라지자 갇혀 있던 물이 한꺼번에 풀려나고, 강물이 흐르며 대지에 비가 내립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용이 비를 가져다주는 신성한 존재였지만, 인도에서는 용이 물을 가로막는 괴물로 나타납니다.
셋째, 그리스 사람들은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이 태양마차를 너무 낮게 몰아 대지가 불타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파에톤은 자신이 태양신의 아들임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단 하루만이라도 태양마차를 몰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늘을 달리는 태양마차에 오른 그는 불을 내뿜는 말들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태양마차는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땅 가까이 내려왔고, 대지는 불타고 강물은 말라붙었습니다. 산과 들은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제우스가 번개를 던져 파에톤을 추락시키고, 태양을 본래의 길로 돌려놓았습니다. 고대의 이야기꾼들은 이 신화를 통해 불타는 사막과 뜨거운 대지가 생겨난 이유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의 이러한 사고를 단순한 미신으로만 보아야 할까요. 그들의 설명에는 세 가지 중요한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자연을 인격화했습니다. 비를 내리는 용왕, 천둥을 치는 인드라, 태양마차를 모는 헬리오스처럼 자연현상을 의지와 감정을 지닌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자연을 살아 있는 존재로 받아들였기에 인간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기보다 두려워하고 경외했습니다.
둘째, 자연을 도덕화했습니다. 홍수와 가뭄을 탐욕스러운 인간이나 부덕한 왕에게 내리는 벌로 해석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재난 앞에서 공동체와 통치자의 책임을 묻는 기능을 했습니다.
셋째,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했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는 때, 매실이 익는 시기, 별이 떠오르는 위치, 삼복과 절기의 변화를 오랫동안 기록했습니다. 원인에 대한 설명은 틀린 경우가 많았지만, 자연현상의 반복되는 시기와 징후는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장마와 무더위도 우리만의 고통은 아닙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비에 갇히고, 홍수에 쫓기고, 메마른 땅과 뜨거운 밤을 견디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신화를 만들고, 절기를 정하고, 제사를 지내고, 시와 노래를 남겼습니다.
옛사람들은 날씨를 하늘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메시지로 읽었습니다. 그들의 설명은 과학적으로 틀렸을지 모르지만, 자연의 변화 앞에서 인간의 삶과 공동체의 책임을 함께 돌아보려 했다는 점만은 오늘날에도 되새길 만합니다.
장마가 길어지고 무더위가 심해질수록 우리는 더 좋은 예보와 더 강한 냉방시설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주변의 취약한 이웃을 살피고, 일의 속도를 조절하며, 우리가 자연에 가한 부담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비와 더위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로 건너갈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옛사람들이 신화와 이야기로 계절을 견뎠다면, 오늘의 우리는 과학과 지혜, 그리고 서로를 향한 배려로 이 여름을 건너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6.7.28.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